사일은 제8문을 내려다보는 작은 의자를 보고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조망실에 그런 자리는 없었다. 삼백 년 전의 설계도에도 없었다. 분명 오늘 새로 생긴 것이었다.
의자 위에는 한 장의 카드가 놓여 있었다. '완결 판정자'. 그 아래 이름은 없었다. 대신 수많은 관료가 사용했던 공통 도장의 자국이 겹겹이 찍혀 있었다.
“사람이 아닌 겁니까?” 토비가 물었다.
서온이 카드의 출처를 확인했다. [완전히 자동인 것도 아니야. 제1문과 관리실에서 결재한 수십 명의 판단이 하나의 자격으로 합쳐졌어. 가장 최근에 직접 사용한 사람이 있어.]
마지막 접속 시각은 바로 오늘 정오였다. 진료소 앞에 붉은 편지가 쏟아지기 몇 분 전이었다. 접속 장소는 관리실의 ‘완결 심사실’. 서온은 최근에 열람 허가를 받은 명단을 보여 주었다. 그중 하나의 이름이 눈에 익었다.
“마르켈.” 피엘이 읽었다.
제1문 사건에서 최초 발송 기록을 숨긴 사실이 드러났던 그 사람이다. 그러나 명단 옆에는 ‘해임 및 권한 회수 완료’라는 표시도 있었다. 해임된 사람이 그대로 결재할 수 있었을까. 벤은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 있다고 그 사람이 했다고 결론 내리진 마. 제4문에서 목소리도 훔쳤고, 제6문에서 이름도 지웠어. 이번엔 해임된 사람의 도장을 빌렸을 수도 있지.”
“그래서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피엘이 말했다.
완결 심사실은 관리실 위쪽의 좁은 유리 복도 끝에 있었다. 방문객은 누구나 복도의 거울에 자신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돼 있었다. 거울에는 출입 목적도 자동으로 붙었다. 피엘은 도착하기 전에 공용 전광판으로 출입 사유를 보내지 않았다. 누군가를 조사하러 온 사실과 그의 사건 내용을 모르는 직원들 앞에 공개할 이유가 없었다.
심사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대리석인데도 오래된 빗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천장에서는 우편 분류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점검 결과를 보고받는 관리들이었다. 복도 끝의 창에는 오늘의 발송 성공률이 금빛 글씨로 떠 있었다. 100.0%. 바로 아래에서 제6문의 환자 명단이 지워지고 있는데도 그 숫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토비가 화면을 바라봤다. “감자 열 개를 심고 하나도 안 나면 실패한 거죠. 씨앗을 땅에 넣은 순간 열 개 다 성공이라고 적으면 농사도 정말 편하겠어요.”
세아는 성공률의 계산식을 열어 보았다. '발송 실패'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발송 대상 아님'으로 바꾸는 규칙이 있었다. 분모 자체에서 실패한 우편물을 빼 버린 것이다. 숫자의 정확성보다 무엇을 세지 않는지가 훨씬 더 큰 문제였다. 피엘은 출입 기록과 함께 그 계산식을 보존했다. 숫자만 공개하면 성과를 잘못 읽는 사람이 또 생길 수 있어서였다.
복도 중간의 관리인이 출입증을 달라고 했다. 피엘은 임시 심리 결정과 함께 실제 출입 사유를 설명했다. 관리인은 대조한 뒤 문을 열었고, “어제까지 제 동생도 이 수치를 믿었을 겁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의 동생은 우편물을 두 번 반송했다는 이유로 계정이 정지된 우체부였다. 피엘은 섣불리 복직을 약속하지 않고 이의를 제출할 수 있는 창구를 안내했다.
심사실 문을 열자 사람 하나가 큰 책상 옆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낯선 젊은 직원이었다. 손에는 여러 색의 인장이 묻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마르켈의 퇴임 때 회수됐다는 도장과 똑같은 모양의 물건이 있었다.
“저는 실무 보조관 켈린입니다.” 직원이 먼저 말했다. “윗선의 승인을 받아 자동 회수기 문구를 다듬었을 뿐입니다.”
“어떤 문구를 어떻게 바꿨습니까?” 세아가 물었다.
켈린은 잠시 망설이다 보고서를 꺼냈다. 원래의 문장은 ‘수령 거부 기록의 중복 여부를 확인한다’였다. 새 문장은 ‘수령 거부로 인한 미완결 상태를 정리한다’가 됐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정리는 반송 철회 및 재발송을 포함한다'고 덧붙어 있었다.
“그게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렇게 교육받았습니다.” 켈린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런데 제 동생도 제6문에서 주소가 지워졌어요. 오늘 아침까지는 이 규정이 사람의 삶에 닿는다고 생각 못 했습니다.”
피엘은 켈린에게 사과만 요구하지 않았다. 어디서 지시가 내려왔고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는지 차례로 물었다. 켈린은 자신이 지시한 문구를 직접 고쳤고, 영향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회수기를 실제로 발동시킨 마지막 권한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켈린의 손이 서랍 손잡이 앞에서 떨렸다. 그는 자신이 수정한 조항의 원본을 덮어 두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문제가 생기면 윗선이 책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책임을 찾기 어렵게 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고 했다. 벤은 그 말에 즉시 감동하지 않았다. “진짜로 책임지려면 고친 문서가 몇 건에 영향을 줬는지도 찾아야 해.” 켈린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관련 결재 목록을 복사하지 않고 원본 보관 위치와 열람 권한부터 안내했다.
켈린이 서랍 아래 비밀 통로를 열었다. 그 안에는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없었다. 대신 각 시대의 관리자 도장이 유리판에 찍혀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사일의 것이고, 가장 최근 것은 방금 켈린이 사용한 도장이었다. 도장마다 얇은 실이 이어져 있었는데, 모두 끝에서 하나의 빈 원으로 모였다.
“저 자리에 도장이 없잖아요.” 토비가 말했다.
“그래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켈린이 답했다. “발신인을 특정하지 못하면 기관이 대신 책임진다고 했는데, 그 ‘기관’에 마음대로 서명할 권한을 준 셈이죠.”
서온은 빈 원에 찍힌 잉크 잔량과 사용 시간을 계산했다. 결재는 사람이 했고, 그 뒤 무명 권한이 자동으로 내용까지 바꿨다. 심지어 한 번 입력된 문장을 회수하려면 같은 무명 권한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아무도 이름을 안 쓰는 자리가,” 토비가 낮게 말했다. “제일 힘센 자리라니.”
켈린은 무명 권한을 철회할 수 있는 ‘발신 무효 확인서’를 꺼냈다. 그러나 마지막 난에는 증인 셋의 서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세 사람은 현재 소멸 집행 정지 상태의 피엘, 제8문을 관리하는 서로, 그리고 최초 야간 감독관 사일이었다.
“저쪽은 우리를 하나의 책임자로 묶으려 합니다.” 피엘이 말했다.
서로가 전송 화면 너머에서 고개를 저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뜻을 대신 쓰는 확인서라면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그 순간 켈린의 책상에서 붉은 경고가 울렸다. [무명 권한 회수에 대한 이의 접수. 신청인: 최종 수신인.]
“최종 수신인?” 세아가 물었다.
화면에 나타난 이름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제0경로.]
제17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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