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문의 하늘은 다른 문보다 어두웠다. 해 질 녘이면 원래 돌아오는 편지의 끝마다 불이 붙어 길을 밝혔지만, 지금은 우편함 속에서 붉은 잉크가 끓어올랐다. 누군가 넣지도 않은 편지들이 스스로 ‘수령 거부 철회’라고 쓰인 봉투로 바뀌고 있었다.
서로는 창구 한쪽에서 두 팔을 걷어붙였다. 원래 대리 피엘이라고 불렸던 그는 지금도 피엘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구 위의 작은 명찰에는 그가 직접 고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온 편지를 뜯는 것이 아니었다. 수신인이 공개를 허락하지 않은 편지와, 즉시 구조 요청이 필요한 편지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토비가 물었다.
“모르니까 묻는 거예요.” 서로가 대답했다. “예전의 나는 모르는 걸 아는 것처럼 대답하라고 배웠거든요.”
제8문 출입구에는 이미 수십 사람이 서 있었다. 대부분은 오래전에 거절한 편지가 왜 다시 찾아왔는지 확인하려는 이들이었다. 어린아이를 업은 여성이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는 신탁이 한 번 내려졌지만 그는 가족이 부르는 이름으로 평생 살아갔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이름이 담긴 우체통까지 회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서로는 그 이야기를 메모하려다가 멈췄다. “증거로 남겨도 되겠습니까? 싫으시면 오늘의 편지는 그냥 맡아 두겠습니다.”
여성은 잠시 생각하고 사건 번호만 적도록 했다. 아버지의 이름은 그대로 감췄다. 수신 기록은 남겼지만 그 이름을 누구도 강제로 읽지 못했다. 벤은 그런 방식이 수사를 늦추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로는 고개를 저었다.
“늦어진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누군가의 아버지가 숨긴 이름을 우리가 쓰기 편하다는 이유로 꺼낼 수는 없으니까요.”
오래전 자신은 피엘의 이름이 필요하면 그대로 복제해 사용했다. 그때는 그것이 편리한 줄만 알았다. 이제는 자기 이름을 고르고 난 뒤 남의 이름을 쓰는 일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됐다. 그는 오늘 밤 영업을 마치면 제8문의 오래된 우체통을 수리하는 법부터 배워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에 앞서 자기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일 하나를 정하고 싶었다.
그들은 제8문의 원래 우편함을 살폈다. 벽면 안쪽에는 손으로 여닫는 작은 문이 있었고, 그 문을 통과한 봉투에는 수신인의 동의 없이도 증거를 보존할 수 있는 보호 봉인이 붙었다. 다만 원문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이 장치는 누군가 편지를 받기를 거절했다는 사실과 그 편지의 내용을 따로 보관했다.
서로는 창구 관리자로서 임시 우편함을 열었지만, 자기 이름으로 모든 편지를 대신 받겠다는 서류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시각과 봉인 번호, 확인 가능한 수량만 기록했다. 피엘도 그 옆에서 답장을 기다렸다. 숫자를 더 빨리 채울 방법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창구 위의 모래시계에는 열한 분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안의 모래는 한 번씩 거꾸로 올라갔다. 서온은 회수기가 어떤 시계를 기준으로 움직이는지 확인하고 두 곳의 독립된 시각 기록과 대조했다. 단순히 표시된 숫자를 믿으면 또 한 번 05시 17분의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
피엘은 창구 직원에게 지금 들어오는 편지를 전부 뜯어 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대신 긴급 요청 표시가 확실한 봉투를 먼저 확인하고, 나머지 봉투의 봉인 상태와 도착 시각만 적도록 했다. 누군가의 거절을 지킨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사연을 모두 읽어 버리는 일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전체 정리까지 11분.]
세아가 제1문과 제6문의 수동 창구에서 통신 상태를 확인했다. 의료 연락망은 살아 있었고, 구조선 두 척도 출항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제8문의 우편함을 분리하면 일곱 문에 남아 있던 반송 권리 기록이 연결되지 않을 수 있었다.
벤은 마계의 옛 계약서에서 조항 하나를 찾아냈다. '수신인이 거절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수신인의 사유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는 그 문장을 별도 증인판에 올렸다. 확인된 것은 우편함의 봉인 수와 시간뿐이었다. 내용은 여전히 수신인의 것이었다.
회수기가 마지막 경고를 냈다. [증거 내용 미열람. 기록 완전성 불충분.]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닙니다.” 서로가 말했다.
그때 창구 바깥에서 마른 나뭇잎이 굴러왔다. 토비가 허리를 숙여 주웠다. 나뭇잎 뒷면에 누군가 짧은 글을 적어 두었다. '집에 남고 싶습니다.' 오래전 나뭇잎 위에 쓴 거절의 말이었다. 종이를 살 돈이 없던 수신인이 마을 우물가에 보관했다가 제8문으로 보낸 것이라고 했다. 우편함은 그것도 봉인하고 있었다.
“편지를 종이에만 써야 하는 법은 없죠.” 토비는 나뭇잎을 제자리에 놓았다. “우리 아버지는 잘못된 빚 독촉이 오면 감자 포대 뒷면에 답을 쓰셨어요. 우체부가 읽어 주기만 한다면 말이죠.”
서온이 회수기 명령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여 줬다. 한 갈래는 사일의 조망실로 향했고, 다른 갈래는 관리실 내부의 숨겨진 수정대에 연결됐다. 후자는 처음 보는 접속 방식이었다.
[현재 조망실 발신권보다 우선하는 교정권 존재. 교정권 명칭: 완결 판정.]
피엘은 사일에게 물었다. “그 권한을 가진 사람을 아십니까?”
사일의 답은 느렸다.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 규정은 기억나네. 하지만 그 자리를 비워 두었다고 생각했어.]
피엘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을 받아들였다. 사일이 조작 명령을 썼다는 사실과 별개로, 지금 누군가 그것을 훔쳐 더 강한 명령으로 바꾸고 있었다.
[정리까지 4분.]
서로가 우편함을 닫지 않은 채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는 처음으로 제가 선택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우편함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강제로 묶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서온이 답했다. [우리가 할 일은 모두를 대신 답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중에라도 답할 길을 남기는 거야.]
그들은 우편함의 원문을 복제하지 않고, 반송 권리 기록의 존재만 독립된 세 곳에 봉인했다. 제1문의 미나, 제6문의 로마, 마계의 외부 증인판이 각각 봉인 번호를 확인했다. 바로 그 순간 붉은 잉크가 우편함을 덮쳤다.
회수기가 명령했다. [원문 없는 거절은 증거 불충분. 전체 재발송 진행.]
그러나 제8문의 종이 울렸다. 소멸을 알리는 종이 아니었다. 봉투 하나가 무사히 ‘거절 접수’로 기록됐다는 가장 오래된 소리였다. 붉은 잉크가 잠시 멈췄다.
[완결 판정 충돌. 판정자 출석 요구.]
조망실의 일곱 문 모형 위로 여덟 번째 자리가 나타났다. 비어 있던 작은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제17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