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는 제1문의 수작업 우편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래전 시험 신탁의 수신자로 남은 자신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뒤, 그녀는 종이에 찍힌 도장을 믿기 전에 날짜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작업대에는 미완성 편지가 칸마다 나뉘어 있었다. ‘긴급’, ‘재확인’, ‘반송’. ‘거절’이라는 칸도 따로 있었다.
“제가 또 무슨 증명을 해야 하나요?” 미나가 물었다.
피엘은 도착하자마자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우선 관리실이 임시 창구 설치를 막았다고 설명했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말했어요. 제1문은 신탁 체계의 얼굴이니까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여선 안 된다고.”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다 진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미나는 작업대 아래 작은 손수레를 꺼냈다. 옛날 화재 때 쓰던 수동 운송 장치였다. “창구는 열 수 있어요. 대신 저 혼자 이름을 걸고 일을 맡겠다는 서류에는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교대자와 감독 체계가 필요해요.”
피엘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하린에게 긴급한 독립 감독을 요청했고, 아지는 옛 야간 검사 규정을 찾아 교대자의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몰아넣지 않는 방식으로 수정했다. 기계가 무조건 처리 완료를 요구해도, 실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량을 기준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하린에게서 승인서가 도착한 것은 정오가 지난 뒤였다. ‘긴급 우편 및 구조 연락의 연속성은 기관이 책임지고, 개인에게 무한 대기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다.’ 피엘은 그 문장을 미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럼 해 볼게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제 이름은 끝나면 지워지는 책임용 서명으로 쓰지 마세요.”
한편 조망실의 사일은 서온과 함께 회수기의 입력 기록을 살폈다. 기록에는 어제의 명령뿐 아니라 과거 삼백 년 동안 수천 건의 ‘자동 정리 권고’가 쌓여 있었다. 일부는 실제 오류를 바로잡는 작업이었다. 잘못된 우편번호를 수정하고, 두 번 발송된 같은 구조 요청을 하나로 묶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거절 사실’을 오류로 분류했다.
[변경 기점: 완전성 관리실 실적 평가 방식 개정.]
“완료율을 올리고 싶었던 거군.” 사일이 말했다.
“그것만으로 설명이 다 되진 않습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누가 명령을 바꿀 권한을 가졌는지, 이득을 얻은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야 합니다.”
벤은 변경 전후의 계약 문구를 나란히 놓았다. 개정 전에는 ‘잘못된 배송을 시정한다’고 적혔지만, 개정 후에는 ‘미완료 배송이 존재하지 않도록 한다’고 적혀 있었다. 문장 하나가 바뀐 뒤로 사람의 거절은 없애야 할 숫자가 되었다.
“마계에서도 이런 계약은 사기라고 불러.” 벤이 말했다. “물론 사기꾼 중에는 아주 부자가 되기도 하는데, 그건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야.”
미나는 낡은 손수레를 광장으로 옮기는 동안 두 번이나 바퀴가 빠지는 일을 겪었다. 토비가 나무 쐐기를 깎아 끼워 주자, 손수레는 겨우 한 뼘씩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 주민 둘이 다가왔다. 한 사람은 예전 우편실에서 일했다며 기록지 묶는 법을 알려 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큰 글씨를 읽기 어렵다며 안내판을 더 크게 써 달라고 했다.
“그런 걸 중앙 관리실에 먼저 물어봐야 하나요?” 토비가 물었다.
“묻는 곳이 있으면 편하긴 하죠.” 미나가 웃었다. “하지만 그곳이 답할 때까지 하루 종일 기다리면 여기서는 편지 한 장도 못 보냅니다.”
피엘은 임시 창구의 보존 기록을 확인하면서 주민의 사정을 전부 이름과 함께 적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러 온 사람들의 역할과 교대 가능 시각만 남겼다. 구조 업무는 누군가의 선의에만 기대면 금세 끊어진다. 미나는 식사와 휴식 시간도 근무표에 썼다. 한때 ‘완전한 발송’을 위해 누군가 밤을 새워야 한다고 주장하던 곳에서, 오늘은 점심시간을 보장하는 일이 가장 구체적인 개혁이었다.
한 어머니가 어린 딸과 함께 임시 창구에 왔다. 딸은 편지를 직접 쓰고 싶어 했지만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랐다. 미나는 딸에게 “받고 싶은 편지가 있니, 아니면 보내고 싶은 편지가 있니?” 하고 물었다. 아이는 생각하다가 “싫은 편지도 안 받아도 돼요?”라고 물었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빈 종이에 큰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주머니에 넣었다. 보내지 않는 선택도 여기서는 기록을 지워야 할 오류가 아니었다.
현장 보고가 차례로 도착했다. 제2문 산악 구조대는 수동 경보 종을 점검했고, 제3문에서는 수어 통역과 종이 확인서를 갖춘 임시 창구를 열었다. 제4문은 음성 인증을 끊고 수신인이 선택한 별도 확인법을 사용했다. 제5문에서는 치료용 기억 보관과 신탁 기록을 분리해 복구했다. 제6문과 제7문도 마지막 통신 시험을 준비했다.
제3문에서 온 짧은 전보에는 '동의 여부를 수어·필담으로 독립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4문에서는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 선택한 손짓과 표식이 정상적으로 접수됐다고 보고했다. 제5문에서는 기억을 치료에 사용하기 위해 맡긴 사람들의 정보가 신탁 동의 창구로 넘어가지 않도록 분리 확인을 마쳤다고 했다.
“완전히 고쳐진 건 아니네요.” 미나가 말했다.
“맞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생겼어요. 기계는 그게 불완전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합니다.”
바깥 광장에서는 저녁 우편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종이 창구의 근무자가 마감 시간을 안내했다. 야간 긴급 접수 번호는 따로 남겨 두었다. 정상적인 우편은 내일까지 기다려도 된다고 말하는 것조차 예전에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였다.
서온은 결과를 표시하며 잠시 말을 멈췄다. [한 곳이 비어 있어.]
“어디죠?”
[제8문. 정식 발송망 밖이어서 수동 창구가 없어. 거절한 사람들이 돌아오는 길인데, 지금 회수기에서 '비인가 반송구'라고 표시하고 있어.]
제8문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거절의 통로였다. 그곳이 막히면 나머지 일곱 문에서 거절한 사람들이 답장을 돌려보낼 곳이 사라진다. 다른 문이 정상적으로 움직여도 누구도 자신의 뜻을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서온은 대리 피엘에게 별도 요청을 보냈다. [제8문에서 임시 반송 창구를 맡을 의사가 있어? 거절해도 돼.]
회신이 늦었다. 대리 피엘은 한때 자동 장치가 만든 자리에서 움직였고, 자기 뜻으로 무언가를 결정해 본 시간이 길지 않았다. 몇 분 뒤 답이 왔다.
[할게. 대신 혼자 두지는 말아 줘. 그리고 내 이름을 따로 쓰고 싶어.]
“이름을 무엇으로 쓰겠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서로.]
피엘은 화면에 나타난 두 글자를 천천히 읽었다. 원본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답장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날 해 질 무렵 제8문의 임시 반송 창구에는 새 현판이 걸렸다. ‘서로의 우편함’. 그러나 현판 밑에서 작은 붉은 글씨가 번졌다.
[임시 창구 개설로 미확인 반송 접수 시작.] [회수기 조기 발동 조건 충족. 전체 정리까지 17분.]
창구를 지킨다는 일이 오히려 회수기의 마지막 조건이 된 것이었다.
제17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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