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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72화
PAYLUA ORIGINAL · 제172화

172화.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사람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350자

오프라인 책장
경첩실 안은 뜻밖에 온기가 있었다. 천장에는 뜨거운 물이 흐르는 관이 지나갔고, 바닥에는 밀랍을 바른 낡은 종이 뭉치가 쌓여 있었다. 남자는 사다리를 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아래에서 작은 의자를 내밀었다. “내려올 생각이라면 발밑을 조심하게. 세 번째 발판은 오래전에 부러졌어.” 토비는 의자를 보며 투덜거렸다. “아무나 오지 말라면서 가구까지 준비해 둔 사람은 처음입니다.” “그래도 부러진 발판을 알려 주잖아.” 벤이 말했다. “내가 아는 악마라면 발을 헛디딘 다음에 알려 줄 거야.” 피엘은 먼저 신분을 밝혔다. 남자는 그 이름을 듣자 작은 웃음을 지었다. “피엘. 똑같은 이름이 다시 왔군. 이름을 물려주는 기관은 늘 조심성이 없었지.” “같은 직무명을 쓴다고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알고 있네. 그걸 가장 먼저 구별하자고 한 사람도 나였으니까.” 남자는 오래된 서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야간 근무 입회자 명단이었다. 최근 발견된 근무표와 달리 이름이 전부 남아 있었다. 첫 번째 피엘, 아지, 서명 없는 수령 거부 확인인, 그리고 야간 감독관 ‘사일’.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손끝으로 짚었다. “사일.” 세아가 소리 내 읽었다. “왜 다른 장부에서는 당신 이름만 빠져 있죠?” “내가 지웠네.” 그는 변명부터 하지 않았다. 삼백 년 전, 신탁이 배달되지 않은 밤에는 구조선이 떠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수신인의 답을 기다리느라 늦는 경우도 있었고, 답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사일은 그 가운데 진짜 긴급한 요청을 놓치지 않으려면 담당자가 떠나더라도 업무가 이어지는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피엘은 내게 말했지. 구조를 이어 가려면 사람을 더 불러야지, 떠난 사람의 이름을 가져다 쓰면 안 된다고.” “그 말을 들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들었네. 그리고 듣기만 했지.” 사일의 말이 끊겼을 때 경첩실의 작은 난로에서 철판 소리가 났다. 그가 불을 지핀 것은 아니었다. 난로가 매일 같은 시각에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연결돼 있었다. 벽에는 식사표가 붙어 있었지만 마지막 배식 칸은 비어 있었다. 세아는 그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궁금했으나,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건강 상태였다. 사일은 오래된 보존식과 끓인 물로 지냈다고 했다. 아지는 그가 당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태인지 의료 인력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나를 구하러 오다니 우습군.” 사일이 말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프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닙니다.” 세아가 답했다. “치료가 면책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사일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외부인은 삼백 년 전의 아지였다. 그 뒤로는 거울 속 자기 자신과 장치가 내놓는 숫자만 상대해 왔다. 오래전 그는 동료의 퇴직을 업무 공백이라는 한 줄로 줄였다. 이제 자신의 세월마저 ‘감시 유지’라는 한 줄이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피엘이 대신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 듯 보였으나, 피엘은 묻지 않은 용서를 건네지 않았다. 토비는 모래시계 아래에서 아주 작은 나무 조각을 발견했다. 몇십 년 전 누군가 뜯어 놓은 우편 상자의 손잡이였다. 거기에는 여섯 개의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사일이 말했다. “첫날엔 매일 나갈 생각을 했어. 그다음 주엔 다음 주에. 그러다 나를 이 방에 붙들어 둔 규정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조차 잊었지.” 사일은 책의 찢어진 부분을 펼쳤다. 사직 다음 날, 서쪽 해안의 폭풍으로 나룻배 열한 척이 제때 출발하지 못했다. 폭풍 때문에 배가 출발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장부에는 ‘수신 대기와 담당자 퇴직으로 지연’이라고 적혔다. 사일은 그 문장을 보고 앞으로는 사람이 대답하지 않아도 배가 출발하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당시에는 나쁜 생각만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믿네.” “배를 먼저 움직이게 하는 것과,” 토비가 끼어들었다. “싫다는 사람을 배에 강제로 태우는 건 다르죠.” “그 구분을 지킬 방법을 찾았어야 했어.” 사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대신 나는 모든 일을 ‘처리 완료’로 적어 놨지.” 경첩실 벽에는 작은 모래시계가 천 개 넘게 달려 있었다. 어떤 것은 거의 비었고 어떤 것은 모래가 거꾸로 올라갔다. 서온이 조용히 말했다. [이 방 안의 시간은 하루를 반복하지 않아. 사일에게 지급할 마지막 근무 시간만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어.] 사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면 이 방의 감시가 끝나고, 감시가 끝나면 모든 보류 신탁이 한꺼번에 재발송된다고 설계했네. 그래서 못 떠났지. 처음엔 삼 일만 버티려고 했어.” 피엘은 그 말을 기록하면서도 동정으로 결론을 쓰지 않았다. 사일이 방을 떠나지 못한 사정이 그가 다른 사람들의 거절을 지울 권리가 되지는 않았다. 사일이 꺼낸 다른 서랍에는 짧은 편지 세 통이 있었다. 첫 번째에는 “오늘은 누군가 내가 아픈 줄 알까요”라고 적혀 있었다. 두 번째는 출항 시각을 물었고, 세 번째는 백지였다. 사일은 그 편지들이 처음엔 분류하지 못한 우편물인 줄 알았다고 했다. 뒤늦게야 같은 사람이 매번 전한 연락임을 알아차렸지만, 그때는 이미 회신 주소가 지워진 뒤였다. “제가 직접 답할 수 있었을 때가 있었죠.” 사일이 말했다. “바빠서 나중에 보내겠다고 적어 뒀습니다. 그리고 그 ‘나중’을 기계에 맡겼어요.” 피엘은 편지 봉투의 상태를 확인하되 주소를 다른 사람에게 읽어 주지 않았다. 이제 사일은 잘못을 말로 고백할 뿐 아니라 자신이 답하지 않은 기록을 증거로 내놓아야 했다. 세아는 그가 증거 제출을 동의했는지 확인한 뒤 밀봉된 보관함에 넣었다. 세아는 책장을 넘기다가 붉은 도장이 찍힌 빈칸을 발견했다. ‘수령 거부 통계 1,006건’. 그 아래에는 복원 완료 6건이 따로 적혀 있었다. 현재 조사 중인 수치와 같았다. “이건 당신이 직접 관리하는 대상입니까?” “그중 실제로 내가 확인한 건 열두 건뿐이네. 나머지는 자동 장부가 늘렸어. 하지만 나는 그 숫자를 알고 있었고 멈추지 않았지.” “방금 보낸 정리 명령은요?” 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썼네. 다만 사람을 없애라는 뜻은 아니었어. 답변 대기열을 비우려 했지.” “그 대기열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피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종소리가 들렸다. 조망실 위쪽의 일곱 모형 문 가운데 제6문이 새빨갛게 빛났다. 서온이 통신을 연결했다. [제6문 수령 거부 명단의 이름이 전부 ‘주소 불명’으로 바뀌고 있어. 우편만이 아니라 진료소의 연락망도 함께 끊어지고 있어.] 사일이 얼굴을 들었다. “아직 시작 시각이 아닌데.” “당신이 쓴 명령이 이미 출발했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아니.” 사일이 책상 아래를 뒤지며 중얼거렸다. “내가 정한 시각은 오늘 밤이었어.” 처음으로 남자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는 자기 손으로 적은 문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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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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