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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71화
PAYLUA ORIGINAL · 제171화

171화. 창밖의 일곱 문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514자

오프라인 책장
피엘의 소멸을 예고하던 검은 종이가 재가 된 뒤에도 세탁소 앞에는 빵 냄새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새벽을 무사히 넘겼다고 웃었고, 누군가는 하루 늦게 찾아온 수선물을 내놓았다. 피엘은 그 광경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서온의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영상 속에는 일곱 개의 문이 내려다보이는 좁은 창과 깃펜을 움직이는 손이 있었다. 창밖의 빛은 새벽인데 방 안에는 밤이었다. 시각 표시 아래로 글씨가 떠올랐다. [현재 접속. 정리 대상: 신탁 수령 거부 기록 보유자 전체.] 토비가 감자 자루를 고쳐 멨다. “거절을 했다고 정리 대상이라니. 밭에서 잡초를 뽑듯 사람을 뽑겠다는 거예요?” “기록을 지워 버리면 그들이 거절했다는 사실이 없어집니다.” 세아가 대답했다. “그러면 예전 신탁이 다시 유효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죠.” 서온은 화면 한편에 위치 추적 결과를 띄웠다. [이상해. 창밖의 일곱 문은 한꺼번에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어. 제1문과 제7문은 하늘의 서로 다른 끝에 있으니까.] “가짜 영상인가?” 벤이 물었다. [아니. 영상의 잉크 자국과 현재 접속 시각이 일치해. 대신 창문이 보는 것은 실제 문이 아니라 각 문의 상태를 보여 주는 작은 모형 같아.] 아지는 낡은 모자를 벗었다. “문들을 한눈에 보는 방이라면 하나 알아. 야간 점검실 위의 ‘조망실’이야. 삼백 년 전부터 봉인됐지.” 그 말에 피엘은 보존된 영상을 확대했다. 책상 위에는 부러진 깃펜에서 떨어졌을 법한 검푸른 잉크 방울이 세 개 있었다. 이상하게도 창틀의 먼지는 두꺼웠는데 책상 오른쪽 모서리만 닦여 있었다. 누군가 매일 그 자리에 팔꿈치를 올린 흔적이었다. “봉인된 방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봉인이 출입을 막는 거라면 안 되지.” 아지가 말했다. “하지만 그 방은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설계됐어. 처음엔 화재가 났을 때 구조대가 문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게 하려고.” 토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급한 일을 위해 만든 문이 또 문제군요.” 일행은 세탁소 뒤편으로 난 계단을 올랐다. 푸른 타일이 깔린 좁은 골목에는 밤새 마르지 않은 빨래 냄새가 났다. 계단 끝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는 세 개의 초가 놓여 있었다. 각각에는 ‘접근’, ‘기록’, ‘전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아가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첫 번째 초의 불이 저절로 켜졌다. [접근 의사 확인. 전체 처리 동의로 갈음합니다.] “멈추세요.” 피엘이 말했다. 그들은 문 앞에서 한 발 물러섰다. 단순히 손잡이를 잡은 것을 동의로 만드는 장치는 제3문에서 이미 보았다. 벤이 벽에 붙은 금속판을 읽었다. ‘야간 재해 시 구조 담당자에게 자동으로 세 절차의 의사를 부여할 수 있다.’ “이걸 그냥 뜯으면 안 됩니까?” 토비가 물었다. “안쪽에 누군가 갇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출입 자체를 막지는 않되, 접근과 동의를 분리해야 합니다.” 아지는 비상 출입구의 수동 방화 장치를 찾아냈다. 휴나가 세탁소에서 가져온 무딘 가위로 오래된 밀랍끈을 잘랐다. 세아는 문이 열린 사실과 동의하지 않은 사항을 종이에 적었고, 벤은 마계의 외부 증언판에 같은 내용을 기록했다. 첫 번째 초는 켜졌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초는 끝내 불이 붙지 않았다. 계단 아래를 지키던 휴나는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실제 세탁소의 영업을 계속하면서 비상 연락이 오면 누구에게 전달할지 정리했다. 두 명의 손님은 창문 위에서 빛이 이상하게 깜박이는 것을 보고 무슨 축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휴나는 정체를 모르는 일은 모른다고 대답했고, 위험이 생기면 골목의 어느 방향으로 대피해야 하는지만 알려 주었다. 그 정도면 지금 그녀가 확인한 사실에 맞는 안내였다. 거울 앞에선 벤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 방은 누가 들어오길 원하지 않았던 것보다, 누가 들어왔는지 묻지 않으려 했던 것 같군.” 피엘은 한쪽 거울에 손을 가까이 했다. 거울은 손가락을 비추지 않았다. 대신 ‘피엘이 입장했고 확인 절차를 모두 승인했다’는 문장을 보여 주었다. 손을 대기도 전에 결과가 나왔다. 피엘은 기록지를 꺼내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었다. 같은 모습이 반사된 여섯 번째 거울은 한 사람을 두 명의 출입자로 표시했다. 세아는 거울을 지나간 사람이 아니라 기록이 먼저 생기고 있음을 확인했다. “저도 저쪽에서 두 명으로 나오네요.” 토비가 말했다. “하나만 밥 먹여 줘도 살림이 빠듯한데.” 그 농담에 웃던 세아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가장 마지막 거울에는 여느 때와 달리 아무도 비치지 않았다. 대신 작은 자필 메모가 붙어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은 방에는 아무도 결재할 수 없다.’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뒤늦게 남긴 경고였다. 피엘은 메모를 가져가지 않고 자리와 상태를 기록했다. 어떤 것이 오래된 증거인지 모를 때에는 현장에서 떼어 내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오해를 만들 수 있었다. 문 안에는 계단이 아니라 긴 복도가 있었다. 복도 양쪽에 걸린 거울마다 다른 시대의 천계가 비쳤다. 어떤 거울에는 사람들이 우편물을 손으로 분류했고, 다른 거울에는 아무도 없는 책상에서 펜이 혼자 움직였다. 끝에서 일곱 개의 작은 문이 떠 있는 창을 볼 수 있었다. 영상 속과 똑같은 구도였다. 창문 아래쪽의 모형 문에는 작은 눈금이 달려 있었다. 제1문 옆의 눈금은 정상, 제2문은 수동 조정 중, 제3문은 보류, 제4문은 음성 인증 제한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곱 문이 모두 같은 체계라고 하지만 각 문이 처한 사정은 전혀 달랐다. 피엘은 조망실의 주인이 이 차이를 알면서도 모두에게 같은 ‘정리’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책상 위에는 감자껍질이 담긴 접시와 깃펜 두 자루가 놓여 있었다. 오래된 펜은 끝이 닳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새 펜이었다. 먼지가 쌓인 책장 사이에 날짜순으로 접힌 편지들이 보였다. 가장 위에 놓인 편지는 오늘 아침 작성됐고 아직도 잉크 냄새가 났다. 토비가 고개를 숙여 발신인을 읽으려 하자 피엘이 멈춰 세웠다. “열람 범위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남의 사생활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토비는 두 손을 뒤로 모았다. 그런데 책상은 비어 있었다. 잉크병은 아직 따뜻했다. 바닥에는 누군가 의자를 뒤로 밀며 남긴 길고 얇은 자국이 있었다. 창틀 아래 작은 통풍구에서 마른 기침이 들렸다. “사람이 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묻는 목소리가 참 오랜만이군.” 토비가 통풍구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에는 좁은 사다리와 어두운 경첩실이 있었다. 누군가 그곳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회색 장갑을 낀 손이 위로 올라왔다. “문을 닫아 주게. 누군가 또 거절을 할 테니.” “우리는 거절을 지우러 온 게 아닙니다.” 피엘이 말했다. “방금 정리 명령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손은 멈췄다. 남자는 손목에 감긴 끈을 풀어 위로 던졌다. 끈 끝에 오래된 명찰이 달려 있었다. 글자는 거의 닳았지만 직책 하나는 읽을 수 있었다. [최초 야간 감독관.] 명찰 뒷면에는 지금 막 쓴 듯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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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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