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도착했다.
보리골 아침은 평소처럼 분주했다. 사람들은 수로를 고치고, 젖은 장작을 말리고, 밭에 다시 씨앗을 뿌렸다. 그런데 집집마다 낡은 우편함에서 종이 한 장씩이 튀어나왔다. 봉투의 색은 회색이었고, 겉면에는 받는 사람 대신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부고 통지.]
마을 회관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부고장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특히 잔인한 물건이었다. 어떤 이는 다시 돌아온 기억 속의 이름을 발견했고, 어떤 이는 평생 살아 있다고 믿던 친척이 죽었다는 말을 받았다.
우린은 마을 종을 울려 사람들을 회관으로 불렀다. 그는 피엘에게 통지를 전부 회수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안 됩니다. 원본은 사람들에게 남겨 두세요. 거짓인지 확인할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누가 겁이 나서 찢어 버리면요?”
“그분 선택입니다. 다만 원하시는 분에게는 사본을 남겨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민원 접수대를 열었다. 어제까지는 기록을 만드는 일이 싫었다. 출생 장부에서 빈 줄 하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자신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지 않다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피엘은 주민들에게 날짜와 발신인이 없는 부고장은 사망의 증거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슬퍼하지 말라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도 강요하지 않았다. 슬픔을 느끼는 일은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여인이 물었다.
“그럼 이 편지를 믿으면 안 되는 건가요?”
“지금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확인입니다.”
여인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럼 당장 버리지는 않을게요.”
그날 마을 회관의 한쪽 벽에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두 문장이 크게 붙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확인할 권리가 있습니다.’
토비의 집에도 봉투가 하나 도착했다. 에마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들어 올렸다.
“루나?”
피엘이 먼저 우편 표식을 검사했다. 정식 천계 부고장에는 발급 시각과 사망 확인 기관, 당사자 신원이 있어야 했다. 이 편지에는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았고, 사망 일자조차 없었다.
“부고가 아니라 부고 양식을 흉내 낸 통지입니다.”
“그럼 살아 있는 거예요?” 토비가 물었다.
“그렇게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근거로 죽었다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에마는 봉투를 식탁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아들이 사라지던 날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토비는 그녀 옆에 앉아 손을 잡았다.
“어머니, 제가 확인할게요.”
“혼자 가지는 마.”
“혼자 안 가요.”
그는 창밖에서 말다툼 중인 피엘과 벤을 바라봤다. 피엘은 벤이 검은 인장을 함부로 만졌다고 화를 냈고 벤은 자신이 원래 인장의 주인이라고 받아치고 있었다. 오스벨은 두 사람을 피해 암탉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주 시끄러운 사람들이랑 같이 갈 거예요.”
에마가 조금 웃었다.
우체국에 남아 있던 마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는 같은 부고장을 제0경로에서도 발견했다고 했다.
“여기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죽었다는 통지가 나오는데, 정작 원본 수신인 기록은 살아 있는 사람 쪽에 있어요.”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피엘이 물었다.
“대리 피엘이 서류를 둘로 나눴어요. 하나는 지상에서 누가 더는 찾지 못하도록 하는 서류, 다른 하나는 실제 배송을 계속하기 위한 서류예요.”
벤이 휘파람을 불었다.
“행정상 사망과 실제 생존을 분리해 버렸군.”
“그게 가능합니까?” 토비가 물었다.
“가능하면 안 되지.” 피엘이 대답했다. “신원 기록이 서로 모순될 테니까요. 다만 제0경로와 일반 배송망이 분리되어 있다면 오랫동안 들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라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며칠 동안 제0경로를 지킨 탓이었다. 그녀의 뒤로는 보관함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라베른이 들이닥친 뒤부터 언제 또 집행자가 내려올지 몰라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혼자 계셔도 되겠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혼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우체국에서 편지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알아요. 그래도 제가 떠나면 누가 이 편지를 지킬까요?”
피엘은 서고에 머물도록 강요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가 생각했다. 제0경로의 원본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마라에게 너무 큰 책임을 떠넘겼을지 몰랐다.
“보관 업무를 혼자 맡기지 않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교대 인력을 찾겠습니다.”
“그럼 정식 보관인을 더 뽑는 거네요?”
“네.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라는 웃었다.
“저희 우체국에 채용 공고가 붙는 날도 오겠군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고 피엘도 안심했다. 수신인이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정작 동행인의 선택을 좁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마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실 저도 그런 서류를 하나 가지고 있어요.”
피엘의 수첩 속 영상에 낡은 봉투가 나타났다. 수신인은 마라, 발신인은 그녀의 아버지 로엔이었다. 로엔은 오래전 우체국 야간 배달실의 전임 보관인이었다.
“아버지는 편지를 배달하다가 사라졌어요. 저는 돌아오실 거라고 믿었지만, 얼마 뒤 부고장이 왔죠. 그래서 편지를 버릴 수 없었어요. 혹시라도 아버지가 다시 찾아올까 봐.”
“그 부고장에도 사망 날짜가 없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마라는 봉투를 뒤집어 보았다.
“그러네요.”
토비는 천천히 말했다.
“그럼 마라 씨 아버지도….”
“살아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피엘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기록부터 추적해야 해요.”
마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보관했어요. 언젠가 물을 수 있도록.”
그때 서고 뒤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영상이 흔들렸다. 마라가 돌아보자 봉투를 든 금속 날개 집행자 하나가 나타났다. 가면의 눈구멍은 붉지 않았다. 한쪽 날개가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마라 보관인.”
“누구죠?”
“정상 배송 기록 확인을 요청합니다.”
피엘은 수첩을 움켜쥐었다. 집행자들이 서고에 다시 침입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마라 씨, 문을 닫으세요!”
그러나 집행자는 무기를 들지 않았다. 그는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비틀거렸다.
[회수 천사 제18호. 유효 권한 불명.]
[제0경로 오송장 전달.]
[긴급 신고: 라베른 감찰관이 부고장으로 수신자 검증을 우회 중.]
집행자의 목소리가 끊겼다.
“부고 처리가 완료된 수신자는… 일반 배송망에서 추적되지 않습니다. 그 상태로 운송하면….”
“무엇을 운송한다는 겁니까?” 피엘이 물었다.
가면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을.”
마라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집행자는 가면을 벗지 못한 채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그의 금속 날개에는 누군가 정비한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비 인장이 정식 규격과 맞지 않았다.
피엘은 서류를 확보하라고 요청했다. 마라가 우편 열쇠를 대자 봉투가 사본으로 변해 수첩 안에 펼쳐졌다.
[특별 운송편: 귀환 불가 구간.]
[적재 품목: 공식 기록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
[운송 목적: 최초 발신인 소재 은닉.]
[감찰 책임: 라베른.]
[현장 관리자: 대리 피엘.]
토비는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자신이 받은 편지, 사라진 동생, 기억을 잃은 마을, 검은 우물. 모든 것이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동생을 물건처럼 옮긴 거예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피엘은 잠시 수첩을 내려놓았다.
“문서는 그렇게 적었지만, 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천사님이 보증하면 바뀌어요?”
“당장 모든 걸 바꾸진 못해도, 적어도 그 표현으로 다시는 서류를 쓰지 않겠습니다.”
토비는 눈을 감았다. 화가 났지만 누구를 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에마가 그의 손등을 두드렸다.
“루나가 지금 어른이 됐다면, 네가 기억하는 그 작은 아이와 달라졌겠지.”
“네.”
“그 애한테 돌아갈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줘.”
토비가 어머니를 바라봤다.
“꼭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보고 싶지. 정말 보고 싶어.”
에마는 울면서 말했다.
“그래도 내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 애를 또 다른 곳에 가둬 놓고 싶진 않아.”
토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그저 동생이 살아 있기를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말은 한 가지를 더 알려 주었다. 살아 있다면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부고장의 일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주민들이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면서 우체국에는 새 편지가 잔뜩 쌓였다. 어떤 사람은 떠난 가족에게, 어떤 사람은 잊힌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수신인 주소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우체통 앞에는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주소를 몰라도 맡길 수 있습니다. 당장 배달할 수 없을 때에는 보관하겠습니다.]
우린은 피엘이 알려 준 형식으로 임시 접수증을 만들어 주었다. 토비가 어린아이의 편지를 대신 써 주자 아이는 받는 사람 이름을 한참 고민했다.
“친구 이름을 모르겠어요. 함께 놀았던 것만 기억나요.”
“그럼 놀았던 장소를 적자.”
“제가 좋아하던 언덕이요?”
“그래. 그리고 그 친구가 좋아하던 것도.”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파란 돌멩이를 모았음’이라고 적었다. 토비는 그 글씨를 보며 웃었다. 자신이 루나를 떠올렸을 때도 처음에는 이름보다 작은 장난과 약속이 먼저 생각났었다. 편지가 모두에게 답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잊지 않았다는 증거는 남길 수 있었다.
피엘은 우린에게 임시 보관 기한을 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누군가 사정없이 기다려야 하는 편지에 짧은 기한을 붙이는 것은 위험했다. 우린은 창고가 부족하다고 난색을 표했고 오스벨은 아주 작은 공간 접기 마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대신 닭장 수리법을 더 배웠다.
그날 오후, 루나의 이름으로 발송 예약된 편지가 도착했다. 은빛 달걀이 따뜻하게 빛나더니 얇은 종이 한 장을 내보냈다.
편지에는 딱 두 줄이 적혀 있었다.
[오빠, 나를 찾으러 와.]
[하지만 누가 내 얼굴을 안다고 해도 쉽게 믿지 마.]
피엘은 편지를 은빛 달걀 옆에 놓고 오스벨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달걀은 받은 문장의 진실 여부를 판정하지 않네. 다만 언제 들어왔는지, 누가 수정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야.”
오스벨이 빛을 비추자 편지 위에 시간표가 떴다. 발송 시각은 이틀 전, 보리골 사람들이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 날과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 문장이 고쳐진 흔적은 없었다.
“그럼 누군가 루나 이름으로 보낸 원본이네요.” 토비가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 작성자가 루나인지 확인하려면 아직 한 단계가 남았습니다.”
토비는 편지를 소중하게 접어 넣었다. 예전 같았으면 확신해도 되는 대답을 듣지 못해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정말 찾으려면 조급함과 확인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이거라도 다행이에요.”
그는 웃었다.
“전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잖아요.”
편지 끝에는 낡은 장화 모양의 도장이 있었다. 토비와 루나가 어릴 때 서로만 알던 장난스러운 표식이었다.
토비는 한참 종이를 바라봤다.
“진짜일 수도 있겠죠?”
“그렇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그리고 누군가 훔쳐 쓴 것일 수도 있죠.”
벤은 창문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 끝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을 종이 아니었다. 쇠바퀴가 오래된 철로를 긁을 때 나는 소리였다.
“마차가 예정 일정보다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어.”
먼지 낀 길 끝으로 검은 차량의 불빛이 나타났다. 아직 출발까지 이틀이나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창문마다 희미한 얼굴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중 한 창문에, 어릴 적 루나와 똑같은 보조개를 가진 여인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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