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벨은 사흘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시간표를 짰다.
첫날은 계산, 둘째 날은 실험, 셋째 날은 실패 원인 분석.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얻은 뒤에도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지막 칸에 다른 말을 적었다.
[셋째 날: 출발. 실패하더라도 동행인과 의논할 것.]
토비가 연구실 문에 기대어 그 표를 읽었다.
“언제 제 집 헛간을 연구실로 바꾸셨어요?”
“새벽에. 어머니께 허락도 받았네.”
“무슨 대가로요?”
“닭장 고쳐 주기로.”
토비는 못 이기는 척 웃었다. 오스벨의 연구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재료가 필요했다. 오늘은 헛간의 건초, 달걀 껍데기 세 조각, 달빛을 받은 소금, 그리고 토비의 어린 시절 낡은 장화였다.
“장화는 왜요?”
“네가 어릴 때 걸었던 거리를 재려는 걸세.”
“길이를 재면 되잖아요.”
“기억은 길이와 다르지. 같은 마당도 누구랑 걷느냐에 따라 멀어질 수 있으니까.”
그날 아침 오스벨의 첫 실험은 실패했다.
그는 토비의 이름을 작은 수정구 안에 적어 보았는데, 수정구는 이름을 보존하는 대신 토비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냈다. 작은 구슬이 “감자 수확이 먼저예요!”라고 소리치자 토비는 기겁했다.
“선생님, 저처럼 말하는 돌은 필요 없어요!”
“분명 기억의 형태를 담으려 했는데.”
“이름을 보관한다더니 사람을 복사하셨어요.” 벤이 웃었다.
피엘은 수정구를 곧바로 격리했다. 이름과 목소리를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면 누군가는 그것으로 가짜 수신인을 만들 수 있었다. 이미 대리 피엘 사건에서 그런 위험을 똑똑히 보았다.
“증거를 남기는 것과 사람을 복제하는 것은 다릅니다. 구별해야 합니다.”
오스벨은 얼굴을 붉혔다. 마법사로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적은 옳았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해도 되는 건 아니란 뜻이군.”
“동의와 사용 범위를 먼저 정해야죠.”
오스벨은 수정구의 마법을 해제했다. 구슬에서 마지막으로 토비의 목소리가 흘렀다.
“저 감자 좋아해요!”
토비가 한숨을 쉬었다.
“저 말을 제가 실제로 했는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뒤에야 오스벨은 기억 자체 대신 증언의 단서를 봉인하는 실험으로 방향을 바꿨다. 자신에게 주어진 신탁이 틀린 수신자에게 갔다는 사실보다, 그 신탁을 이용하는 자신의 방식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오스벨이 은빛 달걀을 마법진 중앙에 올렸다. 마법진은 천계 문자도 마계 문자도 아닌 형태였다. 곡식 씨앗을 뿌릴 때 그리는 고랑처럼 선들이 이어졌다.
피엘은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신탁에 따라 닭 사육을 연구하신 결과입니까?”
“그렇네. 알을 품는다는 건 미래를 명령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라는 걸 배웠지. 신탁을 처리하는 방식과는 정반대더군.”
벤은 헛간 한쪽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멋진 말이네. 근데 그게 이름 지우는 우편마차에 무슨 도움이 되지?”
“기록에서 이름이 사라져도, 누군가 계속 기억하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수 있어.”
“그건 우리도 알아.”
“하지만 마차에 탄 사람이 서로를 잊게 만든다면?”
그 말에 벤이 입을 다물었다.
오스벨은 달걀을 집어 들었다. 껍데기에 비친 불빛이 잠시 거꾸로 흔들렸다.
“알은 바깥으로 소리를 내지 못해도 안쪽의 병아리를 지키네. 우리도 이름을 안쪽에 보관할 수 있다면 마차가 못 찾는 곳에 증거를 남길 수 있지.”
피엘의 수첩에 새로운 항목이 떠올랐다.
[외부 기억 저장 시도.]
[사전 검증 필요: 보관 대상의 동의, 무단 복제 방지, 반환 권리 보장.]
토비가 물었다.
“그러면 동생 이름을 넣어 두면 되나요?”
“네 동생 이름은 네가 기억하는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해. 복제하면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있잖아.”
오스벨은 이름 자체가 아니라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줄 단서만 달걀에 넣겠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의 나무 숟가락, 에마가 부르던 자장가, 빈 그릇이 놓이던 자리 같은 것들이었다. 기억을 대신 만들지 않고 서로 맞춰 볼 수 있는 단서들.
그런데 처음 실험을 시작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달걀 표면에 문장이 떠올랐다.
[오배송 신탁: 새벽마다 알을 품어라.]
[원본 목적: 아직 도착하지 않은 증언의 시각을 보존하라.]
오스벨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받은 신탁도 가짜였군.”
“처음부터 알고 계셨잖아요.” 토비가 말했다.
“잘못 배달됐다는 건 알았지. 그 뒤에 숨겨진 원본이 무엇인지는 몰랐어.”
그는 난생처음 달걀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평생 지혜를 자신만의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작 중요한 답은 자신이 우스꽝스럽다고 여겼던 일상 속에 있었다.
“내게 원본 신탁이 전달됐더라면 나는 연구실로 숨어들었을 걸세. 누군가의 미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겠지.”
“그런데 지금은 사람을 만나서 닭장 고치시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오스벨이 미소 지었다.
실험은 다시 시작됐다. 달걀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작은 빛이 떠올랐다. 피엘, 토비, 오스벨, 벤, 그리고 멀리 제0경로에서 원격 연결된 마라의 증언이었다.
“각자 서로에 대해 사실 하나씩 말합시다.” 피엘이 제안했다.
벤이 먼저 말했다.
“피엘은 서명할 때 점을 오른쪽에 찍어.”
“그것 말고도 있겠죠?”
“그리고 맛없는 차를 마시면서도 맛있다고 해.”
“그건 상대를 배려한 겁니다.”
토비가 웃었다.
“오스벨 선생님은 닭을 우습게보다가 닭한테 배웠어요.”
“그렇게 요약하니 참 가혹하군.”
오스벨이 차례를 이어받았다.
“벤은 누구보다 계약 조항을 잘 읽지만, 아주 중요한 계약 하나를 끝까지 확인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지.”
벤의 웃음이 사라졌다. 잠시 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라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토비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함부로 열지 않아요. 그걸 제가 봤어요.”
피엘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마라는 자신을 기다릴 사람이 없는 편지라도 보관합니다. 우리 중 누군가 사라진다면 가장 먼저 수취인을 찾아 줄 사람입니다.”
다섯 개의 빛이 달걀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깥에서 이름을 읽을 수 없지만, 안쪽에는 서로를 확인할 방법이 남았다.
[증언 보관 성공.]
[접근 권한: 참여자 동의 필요.]
[임의 수정: 불가.]
벤은 달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적어도 마차에서 누가 이름을 잃어도 돌아와 확인할 길은 있겠네.”
피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한 해결은 아닙니다. 증언이 남는다고 존재가 자동 복원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낫지.”
증언 보관 실험이 성공하자 벤은 약간 꺼림칙한 표정으로 달걀을 내려다봤다.
“저 안에 내 후회도 들어 있다는 거잖아.”
“동의하신 범위만 있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그게 더 어렵네. 남이 내 약점을 아는 걸 허락했다는 뜻이니까.”
오스벨은 달걀을 작은 면 주머니에 넣어 벤에게 건넸다.
“필요하면 자네가 먼저 확인하도록 설계했어. 우린 기록만 보관하고, 내용 전체는 자네 허락 없이는 볼 수 없네.”
벤은 주머니를 받지 않았다.
“나보다 피엘이 들고 있는 게 안전할 거야.”
“제가요?”
“네가 그동안 구겨진 서류를 얼마나 소중하게 다뤘는지 봤거든.”
피엘은 칭찬을 받아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천계에서 자신이 받은 평가에는 ‘속도가 느림’, ‘업무 외 민원 처리 과다’, ‘결단력 부족’ 같은 말이 있었다. 서류를 소중하게 다룬다는 말은 한 번도 없었다.
“보관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필요 없어지면 주인에게 돌려줘야죠.”
“그래.” 벤이 말했다. “이제 좀 천사 같네.”
“저는 원래 천사입니다.”
“그건 알고 있어.”
오스벨이 웃음을 터뜨렸다. 헛간 밖에서 진짜 닭이 그 소리에 맞춰 울었다.
마법진을 정리하던 오스벨이 문득 말했다.
“이 실험을 아무에게나 가르쳐서는 안 되겠군.”
“왜죠? 도움이 될 텐데요.” 토비가 물었다.
“기억을 보존하는 도구는 빼앗기도 쉬워. 누군가 남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달걀을 훔치려 할 수 있네.”
그는 반짝이는 달걀 위에 천을 덮었다.
“그래서 관리 권한을 나누고, 내용을 보는 데에는 서로 동의를 요구하도록 해야겠어.”
피엘은 수첩에 절차를 적었다. 달걀은 참여한 사람의 동의 없이는 새 증언을 받지 않고, 증언을 열람할 때도 그 사람의 허락을 확인한다. 정말 급한 상황이라도 필요한 단서만 확인할 수 있도록 열람 범위를 제한한다.
벤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이면 마계에서 팔려고 하는 놈들이 싫어하겠네.”
“그래서 잘 만든 겁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오스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하던 위대한 마법은 세상을 뒤집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것은 누군가의 동의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조그만 알이었다. 그 제한이야말로 자신이 배운 가장 중요한 마법일지도 몰랐다.
그날 오후, 토비는 어머니와 함께 닭장을 고쳤다. 오스벨이 도면을 그렸고 벤이 나무를 잘랐다. 피엘은 못을 세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네 사람이 반나절을 보내며 만든 것은 마차도 무기도 아닌 작은 집이었다.
에마가 완성된 닭장에 볏짚을 깔았다.
“고맙구나. 루나가 있었다면 좋아했을 텐데.”
토비는 망치를 내려놓았다.
“동생이 닭을 좋아했어요?”
“유난히 겁이 많았어. 무서워서 닭장 가까이는 못 갔는데, 아픈 병아리를 보면 밤새 옆에 앉아 있었지.”
토비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마침 오스벨의 달걀에서 작은 온기가 전해졌다. 그들은 허락을 받고 ‘루나가 아픈 병아리 곁에 있었다’는 증언을 덧붙였다.
밤이 되자 헛간 창에 희미한 빛이 비쳤다. 달걀은 스스로 떠올라 빛을 한 차례 내보냈다. 그 빛 안에 낯선 시간표가 나타났다.
[미도착 편지 수신 예정: 2일 후 새벽.]
[발송인: 루나.]
[발송지: 돌아오지 않는 우편마차.]
토비가 벌떡 일어섰다.
“살아 있다는 뜻이에요?”
피엘은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적어도 루나의 이름으로 발송 예약된 편지가 있습니다. 본인이 보냈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토비는 달걀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눈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그래도 기다릴 이유가 생겼잖아요.”
피엘은 늦은 밤까지 이름표를 살폈다. 루나의 필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어릴 때 쓴 다른 문서가 필요했다. 에마는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 주었다. 그 안에는 루나가 그림을 그린 천 조각과 깨진 단추, 잘 말린 꽃이 들어 있었다.
“이걸 왜 남겨 두셨나요?”
“모르겠어. 정리하려고 하면 손이 안 가더라고.”
피엘은 기록으로 남긴 뒤 천 조각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본인이 기억하지 못해도 지켜 낸 물건이었다. 그는 에마에게 그 사실을 조용히 설명했다.
“기억을 잃어도 선택까지 모두 사라지지는 않나 봅니다.”
에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부터는 이게 누구 물건인지도 몰랐어. 그래도 버리면 안 될 것 같았지.”
상자 안쪽에서는 루나가 남긴 낡은 글씨가 나왔다. ‘오빠가 나를 기다려 주면 나는 길을 잃어도 찾아올 수 있다.’ 토비는 그 글씨를 한참 읽었다. 이제는 자신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네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달걀 속에서 조그만 노크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누군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일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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