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대신 플랫폼 위로 흰 먼지가 눈처럼 날렸다. 오래된 봉투의 모서리에서 떨어진 종이 가루였다. 설계 열람실의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그 가루를 비출 때마다, 피엘은 어제 보았던 배달 영수증을 떠올렸다.
[배달 예정: 삼백 년 전. 실제 수령 예정: 내일.]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그런데 반환 접수함은 닫혀 있었다.
“천계의 내일이란 건 누구 기준입니까?” 토비가 거침없이 물었다. “우리 밭에서는 해가 뜨면 내일이 오늘이 됩니다. 관공서에서는 절대 안 그런 모양이네요.”
나엘은 접수함 뒤편에 걸린 시계들을 가리켰다. 전부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1문도, 제8문도, 종점도. 단 하나, 반송 봉투에 매달린 작은 회중시계만 움직이지 않았다. 바늘은 삼백 년 전의 새벽 다섯 시 십칠 분에 박혀 있었다.
“그때 처음 배달을 시도했어요.” 나엘이 말했다. “수령인을 찾지 못해서 '내일'로 이월했죠. 수령인을 못 찾는 한 내일도 오지 않았고요.”
서온은 수령 조건을 읽었다.
서온이 조건을 읽는 동안 피엘은 창구 뒤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발송일을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경위서를 먼저 쓰고, 무엇을 받았는지는 나중에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 이름이 지워진 사람, 오지도 않은 미래의 빚을 떠안은 아이들이 그가 얼마나 성급하게 일했는지 가르쳐 주었다.
“겁납니까?” 세아가 물었다.
“조금요. 누군가 제게 유리하게 쓴 편지를 보내 놓고, 그걸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사람의 일을 제가 했다고 주장할까 봐요.”
“그런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 혼자 서명할 필요는 없어요.”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의지하는 일과 판단을 넘기는 일도 서로 달랐다.
[수신 자격: 피엘이라는 명칭을 가진 자가 아니라, 그 명칭으로 발생한 발송 사고를 조사 중인 현직 담당자.]
“꽤 까다롭군.” 벤이 말했다. “수취인을 찾기 위해 삼백 년을 기다릴 만큼 중요한 내용이라면, 악마는 보통 그냥 문 밑으로 밀어 넣는데.”
“그래서 악마에게 계약서를 맡기면 안 되죠.” 세아가 응수했다.
그들이 창구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피엘은 바닥의 오래된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나무는 삼백 년 동안 사람이 자주 밟는 자리부터 깊이 패여 있었다. 그러나 수령 창구 바로 앞만큼은 거의 닳지 않았다. 기다린 사람은 많았어도 이곳에 편지를 받으러 선 사람은 드물었다는 뜻이었다.
에다가 새벽 우편을 배달하러 들렀다가 그들을 보았다. 그녀는 오래전 수령인을 기다리던 창구를 기억하고 있었다. 역무원들이 교대로 작은 난로에 불을 피웠지만 끝내 편지를 건넬 사람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때마다 사흘 뒤에 다시 오세요, 일주일 뒤에 다시 오세요 하고 썼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일' 한 글자만 남더라고. 아무도 구체적으로 약속하지 않았다는 걸 뜻하는 편리한 말이었어.”
“저도 어제는 내일 읽겠다고 했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건 다르지. 네가 직접 그렇게 정했고 오늘 네 발로 걸어왔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편지에 적힌 기한은 때로 날짜보다, 실제로 누가 약속했는지를 더 분명히 말해 주었다.
세아는 접수함의 외부 전선을 살폈다. 낡은 설계도에는 수취인의 현재 신원을 확인한 뒤 전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결 채무 자동 승계'라는 최근 인쇄 문장이 우측 모서리를 덮고 있었다. 글씨 아래에는 제7문에서 사용된 것과 비슷한 계산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기능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세아가 말했다. “어느 시점엔가 누군가 봉투 하나를 사람의 채무에 붙여 버린 거예요.”
“그럼 누군가 편지를 받지 못하게 일부러 만들었겠군요.” 토비가 중얼거렸다.
벤은 창문 밖 바닥에 쌓인 우편 자루를 보았다. “이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감옥은 철창이 아니라, 출구에 붙은 작은 추가 조건인 모양이군.”
피엘은 수령 창구로 다가갔다. 창구에는 손을 올려놓는 금속판이 있었지만, 그보다 아래에 오래된 나무 손잡이가 있었다. 손잡이에는 작은 글씨로 '우편은 열기 전에 거절할 수 있음'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저는 받겠습니다. 다만 제3자의 이름으로 수령하지 않겠습니다.”
금속판이 푸른빛을 냈다.
[현직 피엘 확인. 삼백 년 전 발송인의 권한 및 미결 채무 자동 승계 신청을 함께 접수합니다.]
피엘은 손을 떼었다.
토비가 눈을 크게 떴다. “편지 한 장 받는데 빚까지 상속받아요? 제7문에서 그걸 그렇게 막았는데!”
“그런 조건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기계가 조용히 울었다. [승계 거절 시 편지 수령 불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계가 기다리는 동안 피엘은 어제 보전한 서명란 세 점을 떠올렸다. 서명한 사람과 실제 영향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 편지를 읽을 권리와 채무를 떠안을 의무도 따로 있어야 했다.
“금속판 말고 나무 손잡이를 써 보세요.” 나엘이 말했다. “최초 설계에는 채무 승계라는 기능이 없었어요.”
피엘은 손잡이를 돌렸다. 먼지가 손가락 사이로 묻어나왔다. 녹슨 톱니가 맞물리며 반송 봉투 하나가 미끄러져 나왔다. 수령 확인은 종이가 나오는 소리로 끝났다. 어느 장부에도 채무자가 새로 등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봉투는 봉인된 채였다. 금색 끈 아래로 글자가 떠올랐다.
'열어서 읽는 일과 따라야 하는 일은 다릅니다. 먼저 그 차이를 확인하십시오.'
피엘은 서온에게 봉투의 바깥쪽 기록만 보전해 달라고 했다. 기록되는 내용과 공개될 내용은 나누었다. 세아는 편지 속에 오래된 마력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고, 이시아는 개인적인 부분을 본인의 허락 없이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다음 피엘이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종이 두 장과 부러진 우편 깃펜 한 자루가 있었다. 첫 장은 놀랄 만큼 짧았다.
'현재의 피엘에게. 당신이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이 편지를 받게 될 것이다. 먼저 말해 둔다. 당신은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대신 완성할 의무가 없다.'
두 번째 장에는 다른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대신 짊어지지 않도록, 내가 한 일을 남겼다.'
그 아래에는 발송인이 없었다. 대신 편지 끝에 짙은 잉크로 칸이 셋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는 '행위', 가운데는 '피해', 오른쪽에는 '구제'라고 적혀 있었다. 맨 아래의 문장만큼은 서툴게 눌러 쓴 손글씨였다.
'책임을 포기하는 법은 피해자를 포기하는 법이 아니다. 내 이름으로 남의 입에 대답을 넣는 일을 멈추는 법이다.'
토비는 어느새 웃음을 거두었다. 피엘이 편지를 접지 못하고 있는 동안, 바깥에서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소리 사이에는 숨을 참은 듯 긴 틈이 있었다.
나엘이 종점 안내판을 향해 돌아섰다. 이삼백 년 동안 종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창구에 새 접수 번호가 뜨고 있었다.
[삼백 년 전 피엘의 마지막 배송 기록 열람 신청 도착. 신청인: 신탁 총괄 완전성 관리실.]
[열람 목적: 미완성 책임의 현직 담당자 일괄 전가.]
피엘은 두 번째 종이를 펼친 채 말했다.
“편지를 받았다고 해서 제 책임이 아닌 것까지 받아들이지는 않겠습니다.”
그 순간 부러진 깃펜에서 푸른 잉크 한 방울이 떨어졌다. 누구도 종이를 움직이지 않았는데, 잉크는 편지의 빈 곳으로 천천히 기어갔다.
'마지막 배송처를 찾으려면, 내가 끝내 배달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라.'
잉크가 멈춘 곳에는 주소도 이름도 없었다. 다만 흰색으로 남은 동그란 자리 한 개가 있었다. 마치 거기에 적힌 말을 누군가 지워 버린 것처럼.
제15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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