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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47화
PAYLUA ORIGINAL · 제147화

147화. 신탁을 쓰지 않는 설계자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978자

오프라인 책장
붉은 선은 두껍고 아름다웠다. 설계 열람실의 천장에 떠오른 선들은 정교한 무늬를 이루었고, 언뜻 보면 축제의 장식 같았다. 하지만 피엘은 그 무늬가 어떤 순서로 꺾이는지 알았다. 제1문의 첫 발송 기록에 찍혀 있던 조정 번호, 제2문의 미래 결정 시각, 제7문의 부당한 채무 집행 경로가 같은 무늬 속에서 갈라졌다. “다 여기서 연결됐군요.” 세아가 말했다. “연결되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하지만 누가 모든 문제를 시작했는지는 여전히 별개입니다.” 나엘은 오래된 설계자 명부를 꺼냈다. 설계 시험관 아렌의 이름 아래에는 출생지나 직급이 아니라 근무 형태가 적혀 있었다. '직접 확인 임무. 현장 관찰을 위해 권한표 사용하지 않음.' “이 사람은 정말 천계 설계자였습니까?” 토비가 물었다. “그는 설계할 때보다 망가진 것을 보러 나가는 시간이 길었어요.” 나엘이 말했다. “제방에 갔고, 배달부들에게 물었고, 필요하면 한동안 신탁을 한 장도 쓰지 않았죠.” “신탁을 쓰지 않는 설계자라.” 벤은 명부를 덮었다. “어쩌면 여기서 가장 드문 직업이겠군.” 종점에 남아 있던 대리 피엘에게서 짧은 문의가 들어왔다. 그는 자신에게 발송 권한을 주던 외부 회로가 잠시 끊겼다면서, 업무 중지를 명령받은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제가 일을 멈추면 잘못 배송하던 편지들이 모두 사라지나요?” “아닙니다. 이미 발송된 기록은 남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그렇다면 저는 쓸모가 없어진 건가요?” 피엘은 잠시 생각했다. 대리자의 존재를 억지로 사람이라고 부르거나, 반대로 기계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남긴 기록을 버릴 수는 없었다. 대리 피엘이 독립 판단을 할 수 있는지도 아직 조사 중이었다. “지금은 새 발송을 멈추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당신이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밝히는 데에는 남겨 둔 기록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보전해야 합니다.” 대리자는 길게 침묵했다. “그 기록에 제가 잘못한 것도 있습니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확인할 겁니다. 하지만 누가 만든 명령인지를 확인하기 전에 모든 책임을 당신에게 몰지는 않겠습니다.” 대리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종점의 외부 전원을 재가동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서온은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어. 그렇다고 내 첫 대답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 그 짧은 회신이 화면에 남자 피엘은 다시 아렌의 기록으로 눈을 돌렸다. 누구에게 결정을 맡기는가, 그리고 어떤 결정은 아예 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 오래된 설계가 오늘 자신의 책상 위에 다시 놓여 있었다. 피엘은 아렌이 최초 발신인이 아니라 최초 보류자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발신인과 보류자의 역할은 달랐다. 누군가 문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답변 권한까지 가질 수는 없었다. 나엘이 아렌의 작업 노트를 펼쳤다. 그 안에는 '멈추는 장치' 설계가 있었다. 우편이 잘못된 주소로 가면 발송을 잠시 중지하고 실제 사람에게 문의하는 기능이었다. 끝까지 읽어도 명령의 효력을 영구히 만드는 규칙은 없었다. “이 장치가 지금의 서온과 비슷해요.” 세아가 말했다. 서온은 잠시 침묵했다.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아. 나는 리오의 부탁을 들으며 내 첫 판단을 만들었어. 이건 그보다 오래된 설계야.] 나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서온을 미리 만들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어요. 그러나 뒤에 만들어진 보관 장치의 설계자가 이 노트를 참고했을 가능성은 있죠.” 아렌의 노트에는 희한한 시험 기록들이 많았다. 그는 어떤 날에는 우편마차의 바퀴가 진흙에 빠지는 시간을 쟀고, 어떤 날에는 다섯 살 아이가 안내 표지판을 읽지 못할 때 어느 쪽으로 걷는지 관찰했다. 가장 마지막 장에는 빗물이 고이는 시장 골목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벽의 안내문에는 ‘높은 곳으로 이동’이라고 적혔지만, 실제로 가장 높은 곳은 그 골목의 막다른 집 마당이었다. “이 안내문대로라면 전부 막다른 데로 갔겠네요.” 토비가 말했다. “그래서 아렌은 안내문을 더 길게 쓰지 않았어요.” 나엘이 설명했다. “골목 끝에 가서 배수로를 열었죠. 사람들에게는 어느 길이 위험한지 물어보고요.” 세아는 아렌이 만든 장치가 사람의 선택을 돕기 위한 것이었음을 이해했다. 그에게 설계는 사람을 잘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움직일 수 있게 길을 만드는 일이었다. 노트의 가운데에는 적당히 투박한 삽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토비는 그 삽의 끝 모양을 유심히 보았다. “이 양반은 농사를 못했겠는데요.” “왜?” 벤이 물었다. “삽이 너무 넓어요. 흙이 축축한 날엔 허리부터 나갑니다.” 나엘은 의외라는 듯 웃었다. “맞아요. 현장에 갔다 오면 늘 허리를 붙잡고 돌아왔어요.” 아렌은 신탁을 보내지 않은 날에도 일을 했다. 그 사실은 영웅담처럼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현장에서 필요한 일부터 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었다. 피엘은 작업 노트를 보존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됐다. 작업 노트의 뒤쪽에는 여울 마을 제방을 그린 지도가 있었다. 위험 수위가 붉게 표시돼 있고, 마을 사람이 지나가는 통로가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지도 한쪽에는 아주 작은 물레방아가 그려져 있었다. “이건 물 흐름을 재는 장치인데.” 토비가 말했다. “비가 오기 전에는 사람들이 길을 고를 수 있게 하려는 거였겠네요.” 세아는 물레방아 그림 곁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 '알리는 기술은 선택할 자리를 없애지 않는다.' 아렌이 남긴 물증을 확인한 순간, 나엘의 이름이 붙은 안내판이 검게 변했다. [사직 미처리 직원에 의한 비인가 열람 감지.] [자료 자체의 신뢰성: 전부 상실.] “또 시작이군.” 벤이 말했다. 완전성 관리실이 원격으로 인사를 평가해 원본 증언까지 지우려 했다. 나엘이 열람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이유가 이제 분명했다. 그녀가 자기 업무의 종료를 신청하는 순간, 그동안 지켰던 서류들이 한꺼번에 무효 처리되도록 설계돼 있었다. 피엘은 나엘을 돌아봤다. “직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지금도 있습니까?” “있어요. 그러나 기록이 없어지지 않는다면요.” “그건 당신의 퇴직과 다른 문제입니다. 기록은 기록대로 보전하고, 당신은 당신 뜻대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린에게서 통신이 도착했다. 임시 독립 보관인의 선임 절차가 승인됐다. 완전한 관리를 다른 기관에 넘긴 것은 아니지만, 나엘이 자리를 비워도 자료를 유지할 최소한의 법적 길은 생겼다. 나엘은 오래된 근무 표찰을 떼어 냈다. 정확히 삼백 년 만이었다. 표찰을 내려놓는 순간 천장이 한 차례 흔들렸다. 그러나 서가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원본은 그녀의 고용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의 보전 가치로 남아 있었다. “이제 나가도 됩니까?” 나엘이 물었다. “오늘은 안전하게 문까지 갈 수 있습니다. 나가실지는 직접 결정하십시오.” 나엘은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밖의 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나가서 첫 빵을 사 오고 싶어요. 이 방에서 먹었던 건 전부 말라붙은 비상식량이었거든요.” 토비가 환히 웃었다. “그럼 제가 빵집에 같이 가겠습니다. 어느 마을 빵이 제일 맛있는지도 알려 드릴게요.” 그때 아렌의 노트 마지막 페이지가 열렸다. 잉크가 남아 있지 않은 자리에서 눌린 글자가 빛을 받아 나타났다. '나는 미발송 신탁 제1호의 반려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 혼자 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당시 이름을 쓰지 못한 보호자의 거절과, 신탁을 받지 않은 아이의 현재를 함께 남긴다.' 피엘은 장부의 세 점을 바라봤다. 그제야 왜 가운데 점을 깊게 눌러 두었는지 이해했다. 누군가 한 사람의 서명을 복원하는 것으로 세 사람의 판단을 덮어쓸 수 없도록 남겨 둔 증거였다. 바로 그때 원격 붉은 선이 한꺼번에 회전하기 시작했다. [완전성 재정렬 개시. 보류 의견을 작성한 모든 문서를 하나의 승인으로 통합합니다.] 빈칸을 지키기 위해 남긴 세 점이, 다시 한 사람의 가짜 승인으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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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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