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엘이 일행을 맞이한 곳은 열람실이라기보다 서류로 만든 협곡 같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도면이 매달려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문과 계단의 선이 어긋났다. 어제까지 복도였던 선 하나가 오늘은 우편 투입구가 되어 있었다.
“안에서 길을 잃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피엘이 먼저 물었다.
“두 명은 찾았어요. 자기 이름으로 그린 도면 속에 갇힌 채였죠. 한 사람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나엘이 대답했다. “그래서 출입자를 함부로 늘리지 않아요.”
토비는 한발 들어가려다가 멈췄다. “그럼 제가 꼭 들어갈 이유가 있을까요?”
“당신이 농부라면 오히려 필요할지 모르죠. 이곳 설계자 중 아무도 실제 밭에 물이 어떻게 고이는지 몰랐으니까요.”
나엘은 안전하게 표시된 회색 통로만 따라오라고 했다. 서온은 서가 위치를 기록했지만 통로가 움직일 때마다 새 경로를 강제로 확정하지 않았다. 이전에 잘못된 지도 때문에 사람이 고생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길의 양쪽에는 회의실이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문이 바닥에 붙지 않고 도면의 접힌 부분에 매달려 있어, 한 장을 펼치면 방이 길어지고 다른 장을 접으면 천장이 낮아졌다. 토비는 한 번 기침한 뒤 '저는 농부라서 건축 쪽 이야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발을 딛는 자리는 누구보다 정확했다. 바닥에 물기처럼 번진 선을 보고, 이쪽은 누군가 자주 지나다닌 길이고 저쪽은 종이 위에만 그려진 통로라고 구분해 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엘이 놀라 물었다.
“논둑도 멀리서 보면 다 같지만 사람이 밟은 흙은 금방 티가 나요. 종이도 마찬가지네요. 여긴 모서리만 닳았고 저쪽은 가운데가 닳았어요.”
세아가 손을 뻗자 나엘이 급히 제지했다. 빈 회의실 문 아래에 작은 이름표가 떨어져 있었다. '설계 조정 회의 제4차'라는 표제 밑에 참석자 열한 명이 적혀 있었지만 실제 서명은 여섯 개뿐이었다. 나엘은 일부 참석자가 나중에 기록에서 지워진 것 같다고 했고, 피엘은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이 강제로 추방됐다고 추정하지 않았다.
방 안에는 긴 식탁과 마른 물컵 열두 개가 놓여 있었다. 참석자 수보다 컵이 하나 많았다. 세아가 그 차이를 묻자 나엘은 말했다.
“그건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의 자리였어요. 회의실을 만드는 사람은 늘 의견을 내는 사람만 생각하니까, 회의에 오지 못한 사람의 자리를 따로 비워 뒀대요.”
토비는 어느 컵에든 물을 따라 주려다가 멈췄다. 빈자리가 있다는 사실과 거기에 누군가 앉기로 했다는 것은 다르다고 그는 이제 이해하고 있었다. 작은 빈 컵을 그대로 놓아둔 채 일행은 전시대로 향했다.
첫 전시대에는 ‘천계 제1문 설계 초안’이라는 표제가 있었다. 그런데 날짜는 300년 전의 첫 발송보다 사흘이나 앞섰고, 도면 끝에는 사람 이름 대신 세 가지 기능이 적혀 있었다.
[요청 접수]
[위험 알림]
[대답 보관]
“발송은 어디 있습니까?” 세아가 물었다.
나엘이 빈 네 번째 칸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없었죠. 위험을 알리고 답을 기다리는 곳이었어요. 필요한 구조대가 갈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시설이었을 뿐이에요.”
벤은 네 번째 칸에 희미하게 긁힌 흔적을 발견했다. ‘명령 발송’이라는 글씨가 나중에 덧입혀진 듯했다.
“명령을 보내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던 건 아니군.”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구조와 강제 명령은 다른 기술입니다. 설계자들은 그 둘을 한 버튼에 넣지 않았어요.”
나엘은 말없이 창고 선반에서 작은 수첩을 내려놓았다. 첫 장에는 어느 날 들어온 수리 신청이 적혀 있었다. 지붕에 물이 새는데 승인서가 없어서 수리를 시작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장에는 누군가가 승인을 대신 찍어 버리는 바람에 주인에게 임의 증축 책임이 돌아갔다는 항의가 있었다. 모두 다른 문서였지만 장부의 결말은 같았다. '절차 완료.'
“완료가 아니라 떠넘긴 거네요.” 세아가 말했다.
“그때 저도 같은 말을 했어요. 서류 끝에 사람 얼굴이 없다고요.”
나엘은 세 번째 장을 펼쳤다. 도면을 그린 사람이 직접 지붕에 올라가 물이 샌 곳을 확인했다는 기록이었다. 그 사람은 승인을 나중으로 미루고 임시 방수포를 먼저 덮었다. 이어서 건물주에게 정식 보수 범위를 물었다. 나엘은 그 장면을 보고 처음으로 설계도 바깥에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토비는 수첩을 바라보다가 작은 탄성을 냈다. 그림 한쪽에 비뚤어진 사다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다리는 밭에 놓으면 바로 쓰러져요.”
“그래서 그 사람이 밧줄을 다시 묶었어요.”
피엘은 수첩의 사본 제공을 부탁했다. 작은 수리 이야기가 세계의 거대한 신탁 사건과 직접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같은 구조적 문제가 있었고, 문제를 다루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나엘의 말투가 건조해졌다.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던 일을 꺼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붉은 열람표를 보여 줬다. 열람실이 폐쇄된 날, 본부는 모든 도면을 세 종류로 구분하라고 지시했다. 발송된 신탁은 제1문으로 이관, 무효화된 신탁은 파기, 미발송 신탁은 ‘계획상 존재하지 않는 기록’으로 처리한다는 명령이었다.
“저는 마지막 지시에 서명하지 않았어요. 파기한 것도 없고요.”
“그래서 갇혔습니까?” 토비가 물었다.
“처음에는 스스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출입문이 제 이름을 ‘직무 수행 중’이라고 분류한 뒤로는 휴가 신청도 퇴직 신청도 반송했죠.”
벤이 씁쓸하게 웃었다. “천계가 사람을 가두는 방식이 생각보다 마계 계약서와 비슷하군.”
피엘은 나엘의 이름과 현재 상태를 독립 증언으로 기록했다. 그녀가 당장 나가고 싶은지 물었다. 나엘은 망설였다. 떠나고 싶지만, 아무도 대신 기록을 지키지 않는다면 서가에 든 판단들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럼 잠깐 쉬러 나갈 권리부터 확인합시다.” 세아가 말했다. “보관 책임이 있다는 말이 평생 출입을 못 한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그들은 입구에 대체 보전 장치가 있는지 살폈다. 나엘은 아직 외부 보관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피엘은 급히 해결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하린에게 기록 보전 긴급 심사를 요청하고, 오늘은 내부 열람만 진행하기로 했다.
그때 먼 서가에서 바퀴 소리가 났다. 서류 상자 하나가 통로를 가로질러 움직였다. 누군가 거대한 책을 밀고 있었다. 책등에는 '실패한 발송안'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 책은 안 됩니다!” 나엘이 외쳤다.
회색 통로 바깥으로 검은 선이 번졌다. 도면에 새 문장이 그려졌다.
[개정 전 설계도 자동 보정 시작.]
[원본 초안에 현재 규정 소급 적용.]
나엘이 급히 설계 책자를 펼쳤다. 책 속 도면 위에 붉은 펜으로 새로운 문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발송 버튼이 있었던 것처럼 역사를 고치려는 장치였다.
토비는 바닥에서 부러진 자 하나를 주웠다. 검은 선이 서가로 이어지기 직전, 자를 그 사이에 끼워 넣었다. 선은 물결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거 왜 자로 안 막힙니까? 선이잖아요!”
“실제 장치와 연결된 선이에요.” 나엘이 말했다. “그 자를 놓으면 이 서가의 과거가 지금 규정으로 덮여요.”
세아는 작업대 밑에 남아 있는 낡은 측량 기록을 찾았다. 초안의 선이 분명히 기록된 종이였다. 서온은 복제본이 아니라 원본의 보관 위치와 수정 날짜를 대조했다. 나엘은 누구의 도장도 받지 않은 구식 기록을 장치 앞에 놓았다.
[설계 초안 수정 충돌. 외부 확정 불가.]
검은 선이 멎었다. 도면 한가운데 뒤늦게 나타난 발송 버튼이 흐려졌다. 하지만 책장 반대편에서 같은 작업을 하려는 작은 바퀴들이 일제히 굴러갔다.
피엘은 그 소리를 듣고 숨을 골랐다. 이것은 이 방 하나의 고장이 아니었다. 누군가 모든 초기 설계를 지금의 명령 발송 체계에 맞춰 고치고 있었다.
나엘이 미발송 신탁 제1호의 상자를 두 팔로 감쌌다.
“저게 바뀌면 첫 번째로 ‘보내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던 게 됩니다.”
“그 판단이 존재했다는 사실부터 지킵시다.” 피엘이 말했다.
그때 상자 바닥에서 새 종이가 밀려 나왔다. 원본 뒤에 붙어 있던 수령인 명단이었다.
맨 위 줄에는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 대신, ‘아직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수신인’이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제14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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