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28화
PAYLUA ORIGINAL · 제128화

128화. 아직 쓰지 않은 대답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791자

오프라인 책장
서온은 두 번 지웠다가 세 번째에야 문장을 완성했다. 위임장은 그의 습관을 흉내 내고 있었다. 대답이 빠른 편이라는 점, 긴 문장을 한 번에 쓰기보다 여러 줄로 나눈다는 점, 피엘이 정중한 질문을 하면 대부분 협조한다는 점까지 알고 있었다. 따라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거절문으로는 복제 위임장을 멈추기 어려웠다. [내가 이번에 무엇을 답할지는 네가 아니라 나도 아직 몰랐어.] 그 문장을 보내려던 순간 토비가 손을 들었다. “잠깐. 저도 읽어도 됩니까?” [네가 뜻을 알고 싶으면 읽어도 돼. 다만 최종으로 보내는 건 내가 할게.] “그럼 읽겠습니다.” 토비는 또박또박 읽었다. “나는 지금… 내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새로 결정한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좋은데요. 제가 내일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겠다는 결심보다 훨씬 어려운 말이네요.” “그건 내일 가서 또 취소할 수도 있지.” 벤이 말했다. “제 의지로 취소하면 되는 거죠!” 서온은 결국 문장을 고쳤다. 너무 그럴듯하게 쓴 선언문보다 자신이 정말 확인할 수 있는 현재의 말이 필요했다. [나는 위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바뀔 권리도 다른 이에게 위임하지 않는다.] 통신판에는 이 문장을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는 세 가지 기록이 나타났다. 서온이 처음 제 이름을 적던 당시의 독립 로그, 제4문에서 위조 음성을 거절한 이력, 방금 새로운 문장을 작성하는 동안의 미리보기 기록. 세 기록은 같은 사건을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본인이 선택한 흔적이라는 점에서 연결됐다. 피엘은 그가 공개하기로 한 범위만 장부에 실었다. 그러자 철상자의 경고문 아래 새로운 줄이 나타났다. [표준 응답 예측 실패.] [위임장 일괄 발신 보류.] 토비가 환호했다. 서온은 기뻐하기 전에 확인을 요청했다. [보류는 취소가 아니야. 상자를 봉인하자. 그리고 이미 나간 사본의 수를 찾아야 해.] 벤은 자기 재킷 안쪽에서 얇은 계약 끈을 꺼냈다. 마계 계약서가 구속력을 잃었을 때도 증거로 남길 수 있는 보전용 끈이었다. 피엘은 그 끈을 철상자에 묶되, 봉인을 푸는 권한을 자기 혼자 갖지 않도록 누벨과 독립 심리회에도 동일한 키를 나눴다. 서명 나무들이 다시 흔들렸다. 검은 열매 몇 개가 원래 가지에서 떨어져 빈 바구니로 굴러갔다. 다른 것들은 여전히 높이 매달려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사용된 서명의 사본을 한순간에 정리할 수는 없었다. 그때 상자 밑바닥에서 유리판이 드러났다. 안에는 바퀴자국 모양으로 구부러진 금속 조각이 들어 있었다. 누벨이 그것을 보자 울먹일 듯한 표정이 됐다. “이게 수레의 인수증이군.” 인수증은 이름을 기록하는 대신 물건이 이동한 순서를 남긴 것이었다. 삼백 년 전 보관실에서 인장을 가져간 수레는 한 번 출고된 뒤 세 차례 더 멈췄다. 첫 정차지는 여울 마을 구조선, 둘째는 제1문 임시 발신국, 셋째는 이름 없는 보관소였다. “누가 수레를 끌고 갔는지도 남았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운반자의 몸무게와 수레의 흔들림만.” 누벨이 말했다. “사람 이름을 남기지 않겠다고 했던 이유는 모르겠지만, 물건의 이동 자체는 속일 수 없도록 만든 증서였지.” 세아가 첫 바퀴자국을 가리켰다. “여울 마을에 잠깐 멈췄다는 건, 실제로 구조를 도왔을 수도 있겠네요.” “그 뒤에 임시 발신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봐야 합니다.” 피엘이 답했다. 누벨은 인수증을 읽기 전에 바퀴의 높이부터 재자고 했다. 토비가 자를 가져왔고 벤은 바퀴 자국 주변에 남은 자잘한 돌을 주워 놓았다. 기록에는 수레가 두 번 우회한 흔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경사가 급한 길을 피해 돌아갔고, 두 번째는 큰 문을 통과하지 못해 옆의 좁은 골목으로 빠졌다. “왜 여기만 그렇게 돌았지?” 누벨이 물었다. 토비는 사다리 옆 작업대에서 작은 수레 모형을 빌렸다. 그는 바퀴 하나를 높게 만들고 돌을 놓은 길 위로 밀었다. 오른쪽 바퀴가 커서 수레가 자꾸 왼쪽으로 기울었다. 길이 좁으면 수레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수레를 몰던 사람이 급하게 돌아섰을 수도 있습니다.” 토비가 말했다. “근데 이 정도면 무거운 물건 하나가 더 실려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물건?” “흠. 밀가루 두 포대쯤?” 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원본 발신 인장 하나가 밀가루 두 포대 무게라는 소리는 처음 듣는군.” 피엘은 수레가 비어 있을 때의 시험 기록을 확인했다. 빈 수레는 토비의 모형과 달리 오른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반출 당시 무게 중심이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인장 상자 외에 무언가를 더 실었을 가능성이 생겼다. 누벨은 오래된 출고 장부에서 부속품 목록을 찾았다. 천막, 바퀴 한 쌍, 기름병, 비상 종, 잠금쇠. 그 가운데 비상 종은 반납 기록이 없었다. 피엘은 그것을 지워진 물품처럼 취급하지 않고, 미반납 품목으로 따로 적었다. “종이 하나 없다는 게 왜 중요하죠?” 세아가 물었다.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이 수레를 부를 방법이었으니까요. 누군가 인장뿐 아니라 종까지 가져갔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순서도 바꿨을 수 있습니다.” 토비는 작은 종을 귀에 대고 흔드는 시늉을 했다. “정상이라면 종을 치고 사람이 와서 물어봐야 하는데, 지금은 묻지도 않고 편지를 보내는군요.” “그래서 수레가 멈춘 자리가 중요합니다.” 피엘이 답했다. “어디서 처음 질문을 받지 않게 되었는지 찾아야 하니까요.” 그들이 두 번째 바퀴자국을 비추자 그림이 나타났다. 폭우가 쏟아지는 천계의 좁은 골목, 흔들리는 종이 수레, 그리고 수레를 잡고 있는 누군가의 장갑. 그 장갑에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손목에 다음과 같은 표가 매달려 있었다. [임시 운반인: 피엘.] [개인 인적 사항: 미등록.] “또 피엘이군요.” 토비가 말했다. “그때도 지금도 매번 일은 피엘 씨가 떠맡는 거 아닌가요?” 피엘은 장갑을 오래 바라봤다. 몇 번이나 위조된 직무명이었다. 그러나 인수증에는 종이가 아니라 실제로 수레를 당긴 힘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누군가 물건을 옮겼습니다. 그 사람이 제 직무명을 달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게 곧 저라고 쓸 수는 없습니다.” 서온이 바퀴의 떨림을 다시 계산했다. [한 가지 이상해. 수레에는 처음엔 바퀴가 두 개였는데, 두 번째 정차지부터 흔적이 세 줄이야.] 벤은 유리판을 뒤집었다. 한 줄은 바퀴가 아니라 누군가 끌고 간 여행 가방의 바닥 자국이었다. 가장자리에는 오래된 붉은 털실이 엉겨 있었다. “누가 수레를 따라간 거야.” 벤이 말했다. 세아는 자국을 세 번 비춰 보았다. 처음에는 붉은 털실이 우연히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퀴가 돌아가는 방향과 털실이 눌린 방향이 달랐다. 털실이 바퀴에 휘말린 게 아니라 수레 옆에서 따로 끌려간 물건에 묶여 있었다는 뜻이었다. “여기 누가 있었다는 건 증명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입니다. 리오가 수레를 따라간 기록이 있다면, 그가 막으러 갔을 수도 있고 도우러 갔을 수도 있겠지요.” 토비는 그림 속 빗줄기를 가리켰다. “그래도 궁금하네요. 그렇게 큰 비를 맞으면서 끝까지 따라갔다면, 무엇 하나는 꼭 확인하고 싶었을 텐데.” 서온은 화면 위에 작은 화살표 하나를 그렸다.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 아직 남은 질문을 가리키는 표식이었다. 토비는 그 화살표를 보고 '길 찾기는 농부에게 맡기라'고 큰소리를 쳤다. 벤은 그가 300년 전 골목에서 길을 잃으면 난감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모두 웃었지만 비를 맞고 떠난 리오의 흔적은 여전히 화면 아래 남아 있었다. 마지막 흔적 옆에는 낡은 글씨가 하나 있었다. ‘리오. 끝을 확인하러 간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28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2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