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일 관리실 문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누벨은 문 앞에 서서 세 장의 오래된 작업 지시서를 꺼냈다. 첫 장에는 자신의 채용 날짜, 둘째 장에는 첫 수리 날짜, 셋째 장에는 은퇴 예정일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지시서의 날짜만 매번 바뀌었다. 오늘 펼쳤을 때는 ‘이후 필요할 때까지’라는 글씨가 떠 있었다.
“제 은퇴부터 미뤄 놓고 남의 계약까지 고칠 거라곤 생각 못 했지.” 누벨이 투덜거렸다.
벤은 웃지 않았다. “그 말은 누군가 사람을 장부의 칸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니까.”
서온이 문 바깥의 날짜 기록을 조사했다. 관리실 출입은 300년 전 이후 없었다. 하지만 안쪽에서 날짜가 갱신되는 횟수는 하루에도 수백 차례였다.
[사람이 드나든 기록이 없는 공간에서 규칙만 바뀌고 있어. 누군가 원격으로 손대고 있거나, 안의 장치가 스스로 날짜를 연장하는 거야.]
피엘은 하르마의 검은 동전을 벽 구멍에 맞춰 보았다. 그 순간 문을 채운 철판이 투명해졌다. 방 안에는 수백 개의 시계가 달려 있었는데, 초침이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각 시계는 계약 한 건의 종료 시간을 가리키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모든 시침이 ‘내일’이라는 낱말에 고정돼 있었다.
“시간이 안 가니까 종료도 오지 않는군요.” 세아가 말했다.
“아니야.” 오스벨의 통신이 들렸다. “실제 시간은 흘러. 다만 종료를 판단하는 기준 시각이 매번 하루 뒤로 미뤄지니까, 언제나 아직 하루 남았다고 계산되는 거야.”
토비는 혀를 찼다. “매일 내일부터 운동하겠다는 제 계획보다 더 심하네요.”
“자네 계획은 적어도 다른 사람을 묶어 두진 않잖나.” 누벨이 말했다.
그때 방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새 규정 변경 요청입니까?”
벽에 천사 모양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얼굴이 없는 서기였다. 이름표에는 ‘만료 관리 대리인, 미루’라고 적혀 있었다. 미루는 날짜를 ‘내일’로 미루는 일을 맡았고, 자신이 한 번도 마감일을 놓친 적이 없다고 자랑했다.
“그럼 오늘까지 끝내기로 한 계약은요?” 피엘이 물었다.
“모두 안전하게 내일로 이관했습니다.”
“내일이 오면요?”
“그다음 날로 이관하죠.”
“상대방이 계약을 끝내 달라고 하면요?”
미루는 잠시 멈췄다. “그 요청도 다음 날 처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벤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거야말로 영원히 관대하다고 우기는 마귀들이 좋아할 규칙이지.”
피엘은 미루에게 처음 이 규칙을 받은 때를 물었다. 미루는 낡은 문서를 꺼냈다. ‘긴급 구조 업무가 끝나기 전에 승인 권한이 사라지면 구조가 중단될 수 있다. 따라서 종료 확인이 안 되면 최대 하루 연장할 수 있다.’ 문장 하나만 보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래에 붙은 추가 조건이 문제였다.
[확인되지 않은 종료는 곧 연장 요청으로 간주.]
[연장 요청의 확인자는 기존 발송 권한의 보유자.]
[보유자 미확인 시 0000 대리 확인.]
“보유자를 확인할 수 없게 만들면 계속 0000이 연장하게 되는군요.” 세아가 말했다.
미루는 피엘을 가리켰다. “처음 0000을 연결한 직무명은 피엘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승인하신 규칙입니다.”
“그때의 직무명과 지금의 저는 같은 개인이 아닙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누가 변경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변경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누벨이 방 바닥의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시계 아래에 오래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안쪽에서 밖으로 향했는데, 인간과 천사의 발이 아닌 바퀴 흔적이었다. 좁은 우편 수레가 이 방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날 수레 한 대가 출고됐지.” 누벨은 낮게 말했다. “긴급 발송 인장을 실었고, 그걸 몰던 사람은 제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고 했어.”
“리오였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누벨은 고개를 저었다. “리오는 받는 사람의 답장을 찾으러 갔소. 수레를 몰고 나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지.”
관리실의 벽에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처리된 종료 연장 사유가 작은 돌판으로 빼곡히 붙어 있었다. '산사태로 연락이 닿지 않음', '의료진 교대 중', '수신인의 주소가 사라짐'. 일부는 실제로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었다. 피엘은 가장 오래된 돌판을 손에 쥐었다. 거기에는 세 아이가 아직 산에 갇혀 있으므로 구조 인장을 하루 더 써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경우에는 정말로 연장이 필요했겠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구조한 사실이 확인된 뒤에는 끝났어야 했지요.”
그 돌판 옆의 두 번째 기록은 이상했다. 아이들 모두 구조됐다는 현장 보고가 있었는데도, 자동 승인 번호 0000이 다음 날 새로 연장했다. 보고서는 '구조 완료'라고 쓰여 있었고 장부는 '구조 지속'이라고 답했다. 서로 다른 기록 중 후자가 무조건 우선하는 규칙이 어느 날 추가된 것이었다.
토비가 돌판 아래의 먼지를 털었다. “현장 보고를 읽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미루는 조용히 말했다. “저는 읽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제 업무는 날짜를 확인해서 내일로 넘기는 일뿐입니다.”
“그러면 구조가 끝났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같은 날짜의 다른 기록이 있기 때문에 다음 날로 이관했습니다.”
“다른 기록을 쓴 사람은 확인했습니까?”
미루는 대답하지 못했다.
누벨은 관리실 벽에 새 칸을 그렸다. '연장 요청 근거' 옆에 '현장 종료 확인의 처리 여부'를 붙였다. 아직 규정을 고친 건 아니었지만, 질문을 남길 장소는 생겼다.
피엘은 그 변화가 조금 반가웠다. 규칙을 바꿀 권한이 당장 없더라도 무엇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분명히 남길 수 있었다. 적어도 다음 담당자는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말만 듣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루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모든 시계가 똑같은 소리로 한 번 울렸다.
[서명 보관실 외부 긴급 발송 요청 증가.]
[제2문 동부 솔잎 숲 산불 현장, 출동 승인 유효 기간 오류.]
[기존 승인 1일 연장 신청 대기.]
“다른 사람이 위험해집니다.” 토비가 말했다.
피엘은 오스벨에게 현장 상황을 물었다. 불은 이미 능선을 넘어 마을로 향하고 있었지만, 구조대는 ‘발송 권한 충돌’ 때문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옛 인장을 닫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불길에서 사람을 구할 길이 있어야 했다.
“관리실의 원본은 잠가 두고 현장에서 직접 선택 가능한 긴급 구조 조항을 찾아보겠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미루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조항은 없습니다.”
토비는 관리실 끝에 놓인 작은 탁자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언제부터인가 배달되지 못한 감사 편지들이 쌓여 있었다. 구조를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보낸 답장이었다. 어떤 편지에는 '늦었지만 와 줘서 고맙다'고 적혀 있었고, 어떤 편지에는 '당신들이 와서 집이 무너졌다'는 항의가 남아 있었다. 답장이 좋든 나쁘든 만료 관리실은 모두 '처리 중'으로만 분류했다.
“왜 이 편지를 읽지 않았습니까?” 토비가 물었다.
미루는 낡은 종들을 바라봤다. “어떤 담당자에게 전할지 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는 동안 마감 시각만 관리했어요.”
“마감은 해도 답장할 사람은 없었다는 거네요.”
피엘은 편지를 원본 그대로 보전하고, 이관할 담당자를 확인할 계획을 적었다. 첫 번째 편지의 작성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 편지가 도착한 시각과 전달받아야 할 기관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미루는 그 일이 자신의 업무가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끝나는 날짜를 관리하려면 당사자가 보낸 통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누벨이 낡은 작업복 안쪽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구멍이 뚫린 오래된 설명서였다.
‘긴급 구조는 신탁 발송 없이도 수행할 수 있다. 당사자의 생명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개입만 허용한다.’
누벨은 쓴웃음을 지었다.
“없는 게 아니라, 쓰지 않는 조항이었어.”
제12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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