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아침 마을의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전날 물이 들었던 집에서는 젖은 마룻장을 들어 내 말리고 있었다. 피엘 일행은 식탁을 옮기기 전에 골목 안쪽부터 살폈다. 왕진을 요청한 사람에게 의사가 도착했는지, 수문을 닫았는데도 물이 남아 있는 곳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다린은 피엘에게 작업표를 보여 주었다. 방치된 제방 균열과 낡은 배수로 수리는 여전히 당장 손봐야 할 문제였다. 마을 사람들은 구조선이 영영 떠나버리거나 반대로 영원히 묶여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필요한 때에 사용할 수 있고, 필요하지 않을 때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이면 충분했다.
피엘은 다린에게 말했다.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받더라도 제방 위험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알아요. 누가 대신 결정하지 않아도 힘든 일은 힘든 일이죠.”
이 말은 피엘에게 묘한 위로가 되었다. 잘못된 신탁을 고치면 모든 문제가 기적처럼 사라지리라 믿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자기 삶을 돌려준다는 것은 그 삶의 어려움까지 대신 없앤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울 마을의 식탁에는 의자가 하나 더 놓였다.
다린은 낡은 구조선에서 가져온 접이식 의자와 등록실에서 발견된 나무 의자를 나란히 두었다. 하늘빛 나무 의자는 마을 식탁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오래되고 화려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서명대 아래 숨겼던 규정 대신 대화 자리로 사용하기로 했다.
마을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같은 의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강제 이주 기록을 당장 무효로 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과거 구조 덕분에 목숨을 건진 가족이기 때문에 당시 구조대의 노고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도 자기 말을 대신 전체의 뜻으로 적어 달라 하지 않았다.
하린이 독립 심리관 자격으로 도착했다. 그녀는 판결문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마을의 현재 상황을 물었다. 다린은 장부를 펼쳐 담요와 식량, 왕진이 필요한 사람을 따로 적어 두었다. 제방 보수에는 일꾼과 재료가 필요했고, 그것을 제공한 사람들에게는 실제 임금을 줘야 했다.
“어느 것부터 심리할까요?” 하린이 물었다.
“오늘 밤 다시 강제 이동 명령이 내려가는 것부터 막아 주세요.” 다린이 말했다. “옛날 일이 다 해결된 척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 우리 집이 없어질 수 있어요.”
하린은 우선 강제 주소 변경과 가짜 발신인 지정의 임시 중지를 검토했다. 피엘은 모라의 편지 원본, 여울 마을 증언, 수문 실험 기록, 리오의 가방에 남은 빈칸 표지를 나란히 제출했다. 이시아는 옛 제도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부분을 증언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나 승인하지 않은 항목은 모른다고 답했다.
“책임자를 정해야 한다면 당신 이름부터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이시아에게 말했다.
이시아는 고개를 숙였다. “조사받을 부분은 피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 제가 여러분 대신 새 명령을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벤은 그 말에 작게 웃었다. “천계에서 이제야 제대로 된 모르는 척을 배우는군.”
“모르는 척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피엘이 말했다.
“맞아. 그래서 악마가 계약서에 자꾸 도장을 찍게 되는 거지.”
웃음이 잠깐 지나가자 다린은 식탁에 놓인 세 개의 풀씨를 보여 주었다. 이제 씨앗들은 마른 껍질만 남았지만 물길을 기록한 빛은 오스벨의 장치에 보관돼 있었다. 그 기록 덕분에 실제로 물을 피해 줄 수 있었다는 현장 증언도 있었다.
“모라 할머니는 도와 달라고 했어요.” 다린이 말했다. “그 말을 잘못 보낸 사람들이 있다면 고쳐야죠. 하지만 우리를 도왔던 사람의 선의까지 지울 생각은 없어요.”
하린은 기록을 나누어 보존했다. 첫 편지가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 첫 신탁의 문구가 바뀌었다는 사실, 그 변경에 0000이 쓰였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증거로 확인됐다. 누가 그 변경을 최종 지시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심리 중간에 서로의 의견을 듣고 싶지 않다며 밖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린은 그들을 억지로 불러 앉히지 않았다. 자기가 겪은 구조와 상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기록에 남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대신 필요하다면 나중에 별도 창구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안내했다.
다린은 창가에서 어느 노인이 오래된 배지를 매만지는 모습을 보았다. 노인은 구조대가 온 덕분에 자신의 어린 동생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구원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려 괴롭다고 했다. 반대편에서는 강제 이주 때문에 집을 찾지 못한 가족이 자신들의 목소리가 지워졌다고 말했다.
“두 분 말이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린이 말했다. “도움받아 살아난 사람이 있었고, 원하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도 있었어요. 어느 쪽도 없는 일로 만들지 않고 다루겠습니다.”
그 말에도 모두가 화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기억이 끝내 남의 기억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피엘은 누가 먼저 말할지 기다렸고, 토비는 창문 쪽에 물컵을 놓았다. 그가 아는 위로는 거창한 연설이 아니라 목마른 사람 앞에 물을 가져다 놓는 일이었다.
다린은 그 광경을 보고 모라의 첫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았던 문장을 떠올렸다. ‘병든 사람부터 묻고.’ 구조를 요청한 사람조차 이웃의 필요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사라져서는 안 되는 문장이었다.
그때 마을 밖에서 또 종소리가 났다. 은빛 구조선의 엔진이 혼자 시동을 걸고 있었다. 갑판의 도장은 아래로 내려가며 마지막 집행을 시도했다.
[발신인: 여울 마을 주민 전원.]
[요청 사항: 영구 이주 및 원주소 폐기.]
[동의 기록: 0000.]
다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우리가 신청하지 않았어요.”
자운이 조종실에서 외쳤다. “독립망으로 정지를 요청해도 도장에 힘이 남아 있습니다! 구속선을 다시 발사합니다!”
토비가 배의 사슬을 붙잡았다. 성검을 들려 했지만 진흙 속에서 찾지 못한 신발 한 짝이 계속 미끄러졌다. 벤이 허리띠를 던져 토비를 고정했다.
“이번에도 문지기 월급이 없습니까?”
“오늘은 일단 살아서 청구서나 내.”
피엘은 등록실에서 가져온 의자를 배의 도장 앞에 놓았다. 의자는 무기가 아니었고 명령권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래된 신탁 장치가 의자를 인식하자 집행 속도가 느려졌다.
[원본 당사자 확인 좌석 감지.]
[대리 승인 보류.]
“이렇게 간단한 장치가 있었는데 왜 아무도 쓰지 않았을까요?” 세아가 말했다.
“일을 빨리 끝내려면 기다릴 자리부터 없애기 쉽기 때문이겠죠.” 피엘이 답했다.
다린이 의자에 앉으려 하자 피엘은 막지 않았다. 그녀는 모라를 대신하겠다고 온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이 마을의 주민으로서, 자기 집을 떠나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할 권리가 있었다.
“저는 지금 이곳에 남겠습니다. 다만 제방이 위험하면 임시 대피를 다시 상의할 수 있어요.”
다음에는 다른 주민들이 저마다 답했다. 원해서 이주를 준비하던 사람은 그 뜻을 밝혔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지원을 요청했다. 시스템이 그 모든 답을 한 표로 바꾸려 하자 하린은 즉시 제동을 걸었다.
[긴급 보전 결정.]
[여울 마을 주민의 이름을 이용한 발신 대리 지정: 중지.]
[원주소 일괄 폐기 및 강제 이주 신탁: 잠정 집행 중지.]
[실제 재난 구조와 개별 지원: 계속 제공.]
[원본·변경 이력·권한자 로그: 독립 보존.]
배의 도장이 공중에서 멈췄다. 창문마다 희미하게 붙어 있던 흰 봉인이 떨어졌다. 토비가 사슬을 놓고 주저앉자 벤이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여울 마을에는 아직 고쳐야 할 제방이 있었고 제7문에는 돌려줘야 할 계절이 있었다. 기록상 최초 오배송의 수백 년 된 문장도 한 번의 판정으로 원상 복구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다린은 식탁에 보리죽을 올렸다. 남은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식탁의 빈자리는 곧 누군가를 대신 앉혀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릴 수 있는 자리였다.
피엘은 모라의 종이 뒤에서 희미한 잉크 자국을 발견했다. 제1문의 공식 발송 도장과 다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손으로 끌어 만든 작은 화살표가 서로 마주 보는 그림.
화살표 아래에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답장하는 사람이 생기면, 발신국도 주소를 가져야 한다.’
제11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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