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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18화
PAYLUA ORIGINAL · 제118화

118화. 누구도 보내지 않은 명령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913자

오프라인 책장
토비가 발신인으로 지정되자 방 안의 종이들이 폭설처럼 쏟아졌다. 하얀 종이는 바닥을 덮고 계단을 채우고 도장 위에 내려앉았다. 종이마다 토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 장에는 ‘여울 마을 전원 이주’, 다른 장에는 ‘제7문 미래 비용 정산’, 또 다른 장에는 ‘제6문 이름 복원 일괄 승인’이 쓰여 있었다. 같은 이름이 서로 다른 시대의 책임을 떠안는 꼴이었다. “제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토비가 외쳤다. 벤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천계는 나이를 그다지 따지지 않더군. 제7문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애한테도 돈을 받으려 했잖아.” 피엘은 서명대 아래에서 또 다른 목록을 발견했다. 명령을 발송하는 동안 실제 구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긴급 구조대장, 담요를 가져온 이웃, 제방을 고친 석공, 달아나는 가축을 붙잡은 농부까지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첫 신탁 이후 자동으로 ‘대리 집행자’로 분류돼 있었다. “자기가 한 일이 있는 사람까지 기계의 하청 직원이 되어 버린 거네요.” 세아가 말했다. “처음엔 그저 돕고 싶었을 텐데요.” 토비가 말했다. 목록 속에서 피엘은 작은 메모를 보았다. ‘물에 빠진 아이를 끌어올림. 인근 주민 3명이 자발적으로 협력.’ 그런데 옆에는 ‘집행 실적 1건, 향후 동일 상황 자동 처리 동의’라고 덧붙어 있었다. 원래 행위와 후대의 추정이 한 문장 안에 붙어 있었다. “도움을 한 번 주었다고 앞으로 어떤 명령도 따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엘이 말했다. 벤은 책상 위 도장을 뒤집었다. 아랫면의 숫자가 닳아 있었다. 누군가 수천 번 찍은 흔적이었다. 그는 오래된 계약서를 검토하던 시절, 지나치게 일 잘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모르는 계약서를 검토할 때마다 일단 도장을 찍고 나중에 틀린 점을 찾았다. 몇 년 뒤에는 그의 도장이 문서 내용보다 중요해졌다. “서명을 먼저 찍는 습관이 가장 위험한 건, 나중엔 누가 한 번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묻지 않게 되기 때문이지.” 피엘은 벤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진짜 서명도 그렇게 사용됐죠.” “그래.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문서를 읽어 주마.” 벤은 목록의 변환 규칙을 입으로 천천히 읽었다. 입에서 나온 말마다 작은 붉은 글씨가 공중에 나타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자 본문보다 비고가 길었다. ‘없음’으로 처리된 사람의 선택, ‘이상 없음’으로 정리된 부상, ‘완료’로 기록된 미귀환까지. “여기서 사라진 말들이 앞으로 우리가 찾을 편지야.” 벤이 말했다. 피엘은 원본 서명대 앞에 섰다. “이 지정은 무효로 다투겠습니다. 토비는 열람자이지 발신인이 아닙니다.” [발신인 부재 시 현재 열람자로 대체.] [보호 대상자의 이익을 위해 즉시 집행.] “누가 이익이라고 확인했죠?” 세아가 물었다. 장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깃펜 여섯 자루가 토비를 향해 날아왔다. 토비가 검으로 종이를 가르려 하자 피엘이 외쳤다. “몸을 피하세요! 원본을 자르면 누가 위조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종이가 사람을 찌르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두죠?” 오스벨이 커다란 필사막을 펼쳤다. 날아드는 종이와 깃펜의 움직임을 바깥 기록판으로 실시간 옮기는 장치였다. 증거를 복제한 뒤에야 벤은 수십 장의 종이를 한꺼번에 접어 매듭지었다. “아무나 대신 발신인으로 만드는 기능을 멈춰야 해.” 벤이 말했다. “그런데 저 장치의 핵심 문구는 ‘도움을 주는 데 허락을 받느라 늦어선 안 된다’야. 아주 오래된 두려움에서 나온 말이지.” 피엘은 그 말을 듣고 조종대의 첫 장을 펼쳤다. 홍수 당시 구조대의 항해 일지가 붙어 있었다. 모라의 편지를 받았을 때 제방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고, 천계의 당시 담당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차례로 물을 시간이 없을까 봐 두려워했다. 실제로 도움이 급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두려움이 거짓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엘이 말했다. “하지만 긴급한 도움을 주는 것과 도움받은 사람의 집과 이름까지 바꾸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책상 뒤 그림자가 흔들렸다. 한때 거기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을까. 자동 집필 장치의 처음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서온이 기록판에 긴급 신호를 보냈다. [원본에는 두 장이 있어. 첫 장은 구조 지원 요청, 두 번째는 당사자의 선택에 따른 개별 조치. 현재 발송본에서 두 번째 장이 빠졌어. 삭제 기록이 아니라 ‘별도 저장’ 표기가 남아 있어.] 세아는 집필 장치의 작동을 관찰했다. 최초 신탁의 원문을 한쪽에 놓고 ‘대리 처리’ 문구가 붙은 서류를 다른 쪽에 놓으면, 깃펜이 자동으로 두 내용을 합쳐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단, 원문에서 질문표가 있는 문장은 제멋대로 명령형으로 바뀌었다. “이걸 보세요.” 세아가 모라의 첫 편지를 가리켰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가 ‘도우라’로 바뀌어요. ‘남고 싶은 사람에게 길을 알려 달라’는 말은 ‘모두를 이동시키라’가 되고요.” 피엘은 변환 과정을 필사막에 기록했다. 실제 발송된 서류와 지금 재현한 서류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서온은 제1문으로부터 가져온 인증 자료를 나란히 띄웠다. 글자의 획과 잉크 번짐이 거의 같았지만 마지막 도장 위치는 달랐다. [첫 신탁의 마지막 도장은 별도 장치에서 찍혔어.] 서온이 알렸다. [여기서는 문장을 만들었고, 최종 승인 서명은 다른 곳에서 넣었어.] “그렇다면 이 방의 자동 장치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겠군요.” 피엘은 중얼거렸다. 벤이 웃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보통 오래된 거짓말이 그렇지. 만드는 곳과 도장을 찍는 곳이 다르면 한 군데만 닫아서 끝나지 않아.” “별도 저장된 곳을 찾으면 되겠네요.” 세아가 말했다. 그러나 열람 가능한 서랍은 모두 비어 있었다. 피엘은 처음 우체국에서 보았던 실타래를 꺼냈다. 끊어진 세 번째 매듭의 끝이 이 방의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책상 아래에 손을 넣자 작은 고리 하나가 만져졌다. 당기자 바닥판이 열렸다. 아래에는 문서가 아니라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 위에 꼼꼼한 손글씨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당사자가 도착할 때까지 비워 둔다.’ 피엘은 의자를 바라보았다. 서명대가 사람을 대신 쓰기 전에는 이 빈자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찾아온 사람이 자기 뜻을 말하거나,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자리였다. 토비가 의자에 앉으려다 멈췄다. “제가 앉으면 또 뭐라고 뜰까요?” “당신이 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대신 앉지 않는 게 맞겠죠.” 피엘이 말했다. “그러면 모라 씨는 이미 세상에 안 계신데요.” “그분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또 지금 여울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관해 말할 수 있어요. 과거의 모라를 흉내 내는 것과 지금의 주민들을 듣는 건 다릅니다.” 피엘은 의자를 통째로 꺼내 들었다. 빈자리 아래에는 두 번째 문서를 보관하는 얇은 나무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원본 대신 종이 한 장만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장은 첫 번째 발송자가 회수하였다.’ 서명은 없었다. 대신 0000 표지 바깥에 아주 작은 손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빈칸은 대답이 아니다. — 리오.’ 깃펜들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토비가 아니라 나무 의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누가 비워 둔 자리가 다시 발견됐다는 사실 자체가 시스템에는 위협이었던 것이다. 피엘은 의자를 안고 달렸다. 벤과 토비가 양쪽에서 다가오는 종이를 막았다. 문 앞에서는 이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앙 명령을 멈출 독립 심리 절차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집행이 시작되기 전에 현재 피해를 막아야 해요!” 피엘이 외쳤다. “여울 마을에 다시 강제 이동 신호가 가고 있습니까?” [맞아.] 서온의 글씨가 어둡게 빛났다. [이번에는 마을에 남겠다는 사람의 이름을 발신인으로 바꿔서, 본인이 스스로 이주 명령을 내린 것으로 처리하고 있어.] 피엘은 빈 의자를 더 단단히 붙들었다. “자기 이름으로 자기 삶을 빼앗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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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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