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의 풀씨가 손바닥 위에서 갈라졌다.
피엘은 놀라 몸을 움츠렸다. 마른 씨앗 속에서 나온 것은 싹이 아니라 아주 가느다란 물줄기였다.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린 물이 조종실 바닥을 가로질렀다. 선은 곧 세 갈래로 나뉘었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흐르더니 작은 호수 모양을 그렸다.
“씨앗 안에 강이 들어 있었습니까?” 토비가 물었다.
“강 전체가 아니라 길을 기억하는 흙일 거예요.” 세아가 말했다.
자운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건 지금 지도와 다릅니다. 오래전 우회 수로가 표시돼 있어요.”
세 갈래 중 첫 번째는 마을의 낮은 길, 두 번째는 언덕의 진료소, 세 번째는 버려진 물레방앗간으로 이어졌다. 세 번째 물길은 수문을 열어도 물이 흘러나갈 수 있는 오래된 배수로였다. 단, 지금은 사람이 통행하는 다리 밑을 지나고 있었다.
“배수로를 열면 다리가 위험합니다.” 오스벨이 말했다. “하지만 주민을 전부 강제 이동시키는 것보다 작은 범위의 대피로 끝낼 수 있어요.”
피엘은 다린과 마을 대표들에게 지금까지 확인한 정보를 전했다. 마을 사람들이 먼저 선택했다. 다리 옆에 있던 집 두 채는 언덕으로 피하고, 진료소 환자는 별도 이동 지원을 받는다. 배수로를 여는 작업에는 다리 아래에서 일하던 주민이 안내를 맡기로 했다.
토비는 검을 들어 들썩이는 수문을 받쳤다. “저는 왜 항상 문을 받치는 역할이죠?”
벤은 배의 구속선을 자르고 있었다. “네가 용사로 잘못 배송된 게 아니라 문지기로 배송됐을지도 모르지.”
“그럼 월급이 더 나옵니까?”
“잘못 배송이니까 배송비부터 내라겠지.”
자운이 웃음을 참다가 급히 표정을 바로잡았다. “상류 제어권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자동 개방 명령을 제가 취소하면 제 직무 권한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피엘은 그를 보았다. “현장의 위험을 알고도 무시했다면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위험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면 그 이유도 함께 남기겠습니다.”
자운은 도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제복보다 작은 손으로 작동 레버를 잡았다. 서온이 보낸 독립 신호가 조종실을 통과했고 상류 수문의 경첩이 끼익 소리를 냈다. 자동 장치가 수문을 밀어 올리려는 힘과 현장 제어가 버티는 힘이 맞섰다.
다섯 분이 세 분이 되었다. 강가는 다시 떠들썩해졌다. 주민들은 흰 구속선을 한 사람씩 떼어 내고 높은 곳으로 움직였다.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들에게도 홍수 정보를 제공했다. 지원을 거절한 선택 때문에 경고까지 빼앗기지는 않았다.
배수로 입구에는 오래된 돌문이 하나 있었다. 다린의 가족이 대대로 쓰던 나무 열쇠가 맞아 들어갔다. 문의 안쪽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올라왔다. 수백 년 동안 쓰지 않은 물길이 다시 숨을 쉬는 듯했다.
“열어도 되겠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다린은 다리 위에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네. 지금은 열어야 해요.”
돌문이 열렸다. 쏟아진 물이 낡은 수로를 타고 돌아나갔고 들판 아래의 늪지가 한순간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 마을의 낮은 길에는 여전히 물이 차올랐지만 사람들은 이미 피신해 있었다. 들것이 필요한 주민에게는 자운의 배가 다가갔다.
강 건너편에서는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늦은 햇살이 비쳤다. 주민들은 한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은 채 물줄기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오래된 배수로는 마치 풀어 놓은 매듭처럼 갈색 물을 멀리 돌려보내고 있었다.
다린은 강에 떠내려온 나무판을 집어 들었다. 판에는 홍수 전 마을 우물에서 쓰던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오래전 물에 떠내려갔다가 이번 물살에 되돌아온 물건이었다. 그녀는 그 판을 망가진 제방 옆에 기대어 놓았다.
“가끔 잃어버린 게 다시 돌아오기도 하네요.”
피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었다. 모라와 그 배달부는 이미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남긴 질문에 직접 답을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원본을 살려 두는 일이 더 중요했다.
자운이 다린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제 명찰을 떼어 낸 채였다. “저는 오늘 이 배를 가지고 와서 여러분을 위험하게 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제 행동에 대한 진술을 남기겠습니다.”
다린은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남겨 주세요. 그런데 오늘 다친 사람을 도운 일도 적으세요. 둘 다 있었잖아요.”
자운의 눈가가 잠깐 붉어졌다. 책임을 묻는 것과 사람을 하나의 잘못된 문장 속에 가두는 것은 달랐다. 피엘은 자운의 동의를 받고 그 대화를 사건 기록에 덧붙였다.
끝내 은빛 구조선이 멈췄다. 배의 중앙 화면에는 ‘전원 구조 성공’ 대신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현장 긴급 대응: 부분 이동 및 잔류 지원.]
[주민 의사 확인: 현장 기록 첨부.]
[수문 개방 예정 조치: 취소.]
토비는 진흙탕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을 지켰는데 제 신발이 떠내려갔어요.”
“두 짝입니까?” 벤이 물었다.
“한 짝이요.”
“그럼 아직 절반은 남았군.”
수로가 열렸다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둑 일부가 무너지면서 큰 물레방앗간에 통나무들이 걸렸다. 흐름이 막히면 물이 마을 쪽으로 돌아들어 갈 수 있었다. 다린과 오스벨이 현장을 살폈다. 굵은 나무를 직접 뽑아내기에는 물살이 거셌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토비가 말했다.
벤은 그의 젖은 신발을 가리켰다. “한 짝도 제대로 못 지키는 농부에게 통나무 세 개를 맡기라고?”
“농부라서 이 정도 물살은 알아요.”
토비는 곧장 뛰어들지 않았다. 동네 뱃사공에게 수심과 바닥 상태를 물었고, 자운의 배에서 안전 줄을 가져왔다. 오스벨이 줄이 고정됐는지 두 번 확인한 뒤에야 토비는 돌다리 옆으로 내려갔다. 밀려오는 통나무를 밀어내려다 팔꿈치가 바위에 스쳤고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무리하지 마!” 세아가 소리쳤다.
“아직 괜찮아요!” 토비는 이를 악물었다. “대신 오른쪽 줄 좀 당겨 주세요!”
자운이 배의 방향 장치를 조절하자 토비를 잡아당기는 물살이 약해졌다. 다린은 주민들과 함께 한쪽 둑을 보강했고 세아는 다친 사람을 확인했다. 오래된 수로 하나를 되찾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작동하게 하려면 수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마지막 통나무가 빠져나가자 물소리가 낮아졌다. 토비는 강둑으로 올라와 드러누웠다.
“영웅이라는 직업은 왜 자꾸 물에서 일합니까?”
“네가 밭을 떠날 때 배달 주소를 잘못 적었겠지.” 벤이 웃었다.
토비는 진흙 묻은 팔을 들어 성검을 확인했다. 검에는 사람 하나를 단숨에 구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이 담겼다. 그래도 아까 다리를 살피고 줄을 잡아 준 마을 사람들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옛날보다 자신의 힘이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서 더 쓸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물이 잦아들었을 때 다린은 모라의 나무 식탁을 마을 회관으로 옮겼다. 사람들은 일곱 자리를 채우고도 의자를 더 가져왔다. 누구도 전원 대피라는 한 단어로 서로 다른 선택을 덮어 놓으려 하지 않았다.
피엘은 첫 번째 풀씨를 유리판 위에 올렸다. 씨앗의 물빛은 사라졌지만 그 밑에 아주 작은 글씨가 생겨났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두 번째 씨앗 아래에는 ‘자리를 남겨 둔다’, 세 번째에는 ‘돌아올 길을 닫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모라는 단순히 물길을 알려 준 것이 아니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지 자기 언어로 남겨 놓았다.
그때 다린이 식탁의 짧은 다리에서 나무 조각을 빼냈다. 조각 속이 비어 있었다. 작은 접이식 종이가 들어 있었다.
‘모라의 두 번째 편지는 보내지 못했다. 첫 답장을 배달한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흐릿한 그림이 있었다. 날개가 아니라 평범한 어깨, 지팡이 대신 낡은 가방을 멘 젊은이.
피엘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최초 반송함에서 말을 걸었던 배달부일까요?”
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서는 그 사람을 ‘제 이름을 잃은 배달부’라고 부릅니다.”
제11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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