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13화
PAYLUA ORIGINAL · 제113화

113화. 강이 지워진 지도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833자

오프라인 책장
여울 마을로 가는 길은 두 번 사라졌다. 첫 번째는 지도에서였다. 정산국의 공식 지형도에는 남쪽에 곧게 뻗은 도로와 넓은 제방이 표시돼 있었지만, 모라의 편지에서 흘러나온 푸른 선은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끊겼다. 두 번째는 눈앞에서였다. 피엘 일행이 걸음을 옮기자 길은 땅에 삼켜지는 듯 낮아지더니, 끝내 갈대밭으로 바뀌었다. “길이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가 잘못 온 건 아니겠죠?” 토비가 말했다. “이 길은 옛 지도와 현재 지도가 서로 다른 시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스벨이 답했다. “여기서는 두 기록 중 하나만 믿으면 엉뚱한 곳에 도착해요.” 그들은 갈대가 우거진 물가에서 멈췄다. 낮은 하늘 아래 강줄기는 두 갈래로 나뉘어 흘렀다. 오래된 나무다리 하나가 무너진 채 남아 있었고, 강 건너편에는 굴뚝이 없는 집들이 모여 있었다. 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창문마다 빨랫줄이 보였고 바닥에는 아이들이 던진 돌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의 표지판에는 ‘여울’ 대신 ‘제방 관리 구역 8-나’라고 적혀 있었다. 세아가 표지판을 읽고 말했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 관리 구역이라고만 적어 놨네요.” 마을을 감싸는 갈대숲에는 여러 종류의 새가 모여 살았다. 물총새는 낡은 다리 아래에서 반짝이며 날았고, 긴 부리를 가진 새들은 물 빠진 땅에서 지렁이를 찾아냈다. 오래전의 홍수가 모든 것을 떠내려가게 한 뒤에도 강은 이런 작은 생활을 다시 품고 있었다. 토비는 한쪽 둑에 심긴 보리를 보고 반가워했다. 그는 뿌리 사이의 흙을 조금 집어 들고 습기를 확인했다. “잘 자라긴 할 텐데 물이 한 번만 더 넘으면 힘들겠어요.” “농부인지 확인하려면 괭이를 줘야겠군.” 벤이 놀렸다. “말로만 농부라고 하는 줄 알았습니까?” “이래서 신탁 배송 전에 직업 증명서부터 받아야 한다니까.” 피엘은 그 둘의 대화를 들으며 강가에 남은 밭고랑을 바라보았다. 지도에는 비어 있는 관리 구역이었지만 땅에는 파종한 사람의 흔적이 가득했다. 쓸모없는 땅이라고 표시된 곳에서 자라는 것이 이렇게 많았다. “마을 이름이 있으면 담당 부서가 복잡해진대요.” 근처에서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갈대 사이에서 나이 든 여성이 나왔다. 손에는 젖은 빨랫감이 든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피엘의 날개를 보자 얼굴을 굳혔다. “또 이주 신탁 내려왔습니까? 이제 남은 집도 다 비우라고요?” “아닙니다. 오래전 편지 하나를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피엘이 봉투를 보여 주었다. “모라라는 분을 아십니까?” 여성의 손에서 바구니가 미끄러졌다. 토비가 재빨리 받았지만 물은 바지에 잔뜩 튀었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으셨어요?”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여성은 잠시 그들을 살피더니 말했다. “그분은 제 먼 조상입니다. 집에는 모라 할머니가 남긴 식탁이 있어요. 사람이 일곱 앉는 식탁인데 다리 하나가 짧죠.” 그녀의 이름은 다린이었다. 종이로 된 가족 기록보다 나무 식탁과 오래된 재봉 상자가 더 확실한 유산이라고 했다. 천계의 공식 기록에서 여울 마을이 지도 밖으로 밀려난 뒤, 이곳 사람들은 물길과 계절을 몸으로 기억하며 살았다. 다린의 집은 강에서 조금 높은 언덕에 있었다. 부엌에는 사람이 가득했지만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다린은 방문객들에게 따뜻한 보리죽을 내왔다. 벤이 한 숟가락 떠먹자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편지에서 맡았던 냄새가 이거군.” 토비는 벌써 세 번째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편지보다 훨씬 낫네요.” 다린은 식탁의 한쪽을 보여 주었다. 길이가 다른 다리 아래에는 작은 나무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조각의 측면에는 ‘살릴 사람이 있으면 빈자리를 남겨 둔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홍수가 나던 해 모라 할머니는 이 식탁 위에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읽었대요. 배에 탈 사람, 높은 곳에 남을 사람, 다친 사람을 구분하려고요.” “전원을 배에 태워 구조했다는 공식 기록과 다르군요.” 피엘이 말했다. “맞아요. 우리 가족은 배에 타지 않았거든요.” 다린은 화를 내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된 사실을 말했다. 그날 사람들은 모두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동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떠난 이가 있었고, 집에 남아 서로를 돌본 이도 있었다. 구조대가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담요와 식량을 전해 준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다음 해, 그 모든 선택은 ‘일괄 대피 성공’이라는 한 줄로 바뀌었다. 피엘은 묵묵히 기록했다. 다린에게 증언의 공개 범위를 묻자 그녀는 집에 관한 이야기는 공개해도 되지만 살아 있는 가족들의 이름은 빼 달라고 했다. 세아는 그 조건을 따로 적었다. 다린이 재봉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접힌 천과 마른 나뭇잎, 오래된 종이 뭉치가 있었다. 한 장에는 부서진 제방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장에는 모라의 글씨로 보이는 문장이 있었다. ‘강 위로 날아온 빛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빛과 함께 온 목소리는 우리 뜻을 묻지 않았다.’ 토비의 숟가락이 멈췄다. “그럼 구조해 준 게 아니었다는 겁니까?” “도움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다린이 말했다. “그 덕에 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도움을 준 사람이 우리 삶 전체를 대신 결정할 권리를 가진 건 아니잖아요.” 식사가 끝나자 다린은 마을을 보여 주었다. 강을 따라 늘어선 집은 색깔이 제각각이었다. 지붕을 새로 얹은 집은 붉었고, 물에 젖은 목재를 재활용한 집은 검었다. 가게 문 앞에는 채소를 팔기 위한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오래된 선착장의 밧줄이 걸려 있었다. “공식 지도에는 이곳이 비어 있다면서요. 그럼 우편물은 어디로 옵니까?” 세아가 물었다. “옆 마을 잡화점까지 가서 받아 와요. 약품이 급할 때는 힘들죠. 우리 동네로 배달하면 주소 불명으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피엘은 그 말을 적다가 손을 멈췄다. 자신이 담당하던 천계의 오배송과 닮아 있었다. 다만 여기서는 사람에게 잘못 전달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편지가 마을에 아예 들어오지 못했다. 돌담 앞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작은 편지를 내밀었다. 종이에 그림으로 집을 그려 놓았고 문 앞에 할머니 한 사람을 세워 두었다. “우리 할머니한테 편지 전해주세요.” “같은 마을에 계신가요?” 피엘이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희 집 주소가 없으니까 어디다 적어야 하는지 몰라요.” 다린이 아이를 데리고 골목 아래 집으로 향했다. “이건 직접 가서 줄 수 있단다.” 아이는 종이를 꼭 쥐고 뛰어갔다. 피엘은 그 모습을 보며 오래전 리오라는 배달부도 이런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주소는 사람을 찾기 위해 만든 것이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결정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강가에 도착하자 가느다란 흰 조개껍질들이 물에 떠 있었다. 다린은 오래된 물길이 움직일 때면 저 조개들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모라가 풀씨를 세 개 남긴 이유를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 했을 거라고 했다. 오후가 되자 강가의 물이 기묘하게 부풀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갈대줄기 사이로 물거품이 솟았다. 오스벨이 강의 수위를 살피던 중 얼굴이 굳었다. “상류 수문에서 오래된 대피 규칙을 시험 가동합니다. 지금 마을이 다시 ‘일괄 구조 대상’으로 잡히고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 흰빛이 번졌다. [제방 관리 구역 8-나 보호 조치 개시.] [주민 의견 확인: 기존 신탁으로 갈음.] [전원 이동 준비.] 다린은 식탁 위에 손을 짚었다. “우린 그때도 전원 이동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피엘은 그녀를 보았다. “이번에는 직접 확인하고 움직이겠습니다.” 창밖에서 거대한 은빛 배가 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배 갑판에는 사람을 싣기 위한 좌석이 가득했지만, 내리기 위한 계단은 없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1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1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