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늦은 답장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피엘은 투입구 가까이 몸을 낮췄다. 그러나 방금까지 들리던 목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안쪽에 누가 있다면 폭 한 뼘의 통로 어디에 몸을 숨길 수 있단 말인가. 토비가 성검 끝으로 덮개를 들어 올리자 먼지와 찢어진 봉투 몇 장이 굴러 나왔다.
“아무도 없어요.”
“정확하게는 지금 여기에 없는 거지.” 벤이 종이 조각을 집었다. “과거의 음성 보관 장치 같은데, 제4문 것과 달라. 누군가가 녹음한 문장을 마음대로 승인 명령으로 바꾸는 기능이 없군.”
종이 조각에는 음성을 남긴 사람이 ‘교대 배달부’로 표기돼 있었다. 이름 칸에는 작은 얼룩이 있었다. 천계의 정식 우편 제도가 생기기 이전,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편지를 맡아 주던 사람들에게 붙이던 호칭이었다.
서온이 제1문 낡은 달력과 현재 역법을 겹쳐 보내 주었다.
[첫 신탁의 공식 날짜와 모라의 편지 날짜가 딱 하루 차이나. 그렇다고 신탁이 시간을 거슬러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야. 첫 편지가 먼저 도착했고, 그 다음 날 명령으로 재작성됐을 가능성이 높아.]
“누군가 질문을 명령으로 고쳤다는 건가요?” 세아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원문과 재작성본을 모두 봐야 확정할 수 있어.]
피엘은 그 신중한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잃은 사람, 기억을 바꿔 적힌 사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채무자까지 보아 온 뒤였다. 의심을 사실처럼 굳혀 놓는 것 역시 신탁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미엘은 그들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았다. 제7문에서 가져갈 증거는 원본 봉투만이 아니었다. 편지가 어떤 위치에서 발견됐는지, 당시 반송함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전날 저울의 사고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 모두 분리해 두어야 했다.
“모라의 편지가 오래되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 편지가 왜 하필 오늘 이곳에서 튀어나왔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일부러 우리에게 보여 줬을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고, 제7문의 장치가 멈춰서 눌려 있던 편지가 나온 것일 수도 있어요.”
토비가 주판을 들고 있는 루코를 보았다. “어느 쪽이든 오늘 발견한 건 다행이네요.”
“네.” 루코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잘 발견한 걸로 만족하면 안 되겠죠.”
미엘은 수첩을 두 개로 나눠 주었다. 하나는 확인한 사실을, 하나는 아직 불확실한 해석을 적는 용도였다. 피엘은 전자를 왼손에, 후자를 오른손에 들었다. 두 권의 무게는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같은 책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
루코가 저울 내부로 안내했다. 시계의 뼈대처럼 얽힌 계단 아래에는 손바닥만 한 우체국이 있었다. 벽에는 문이 일곱 개 그려져 있었지만 어느 것도 손잡이가 없었다. 대신 바닥에 나무 바퀴와 짚신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제7문 공사할 때 그대로 묻어 버렸던 방이라고 합니다.” 루코가 말했다. “장부에는 용도가 적혀 있지 않아요.”
토비는 짚신을 들어 보았다. 자기 것보다 훨씬 작았다. 발뒤꿈치 부분은 꿰매 놓은 실이 헤져 있었고, 흙은 아직 굳어 있었다.
“이것도 우편 설비입니까?”
“그 신발을 신고 길을 걸으면 설비였겠지.” 벤이 대답했다.
벽 한쪽에는 수백 개의 나무 칸이 있었다. 각 칸에 주소 대신 ‘강이 불 때’, ‘한밤에 아플 때’, ‘나 혼자서는 안 될 때’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누가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지 적어 놓은 것이지,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칸이 아니었다.
세아는 가장 아래 칸에서 색이 바랜 실타래를 발견했다. 실타래는 세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그 가운데 매듭에 작은 종이가 달렸다.
‘보낸 사람은 대답을 기다린다. 받는 사람은 대답하지 않을 수 있다. 긴급하면 사람을 먼저 살피고 이유를 나중에 적는다.’
토비는 잠시 웃었다. “우리 마을 우물 규칙이랑 비슷하네요. 급하면 두레박부터 던지고, 왜 급했는지는 사람이 살아난 뒤 물어보라고요.”
“네가 그 우물을 자주 망가뜨렸나 보군.”
“두 번밖에 안 그랬습니다!”
“두 번이면 배웠어야지.”
가벼운 말이 오가는 사이 피엘은 실타래의 그림자를 살폈다. 세 개의 매듭은 서로 다른 색이었다. 첫째는 요청을 받았다는 표지, 둘째는 도움을 보냈다는 표지, 셋째는 당사자의 답장이 돌아왔다는 표지였다. 그런데 마지막 매듭에 연결돼야 할 실이 끊어져 있었다.
“누군가 답장이 돌아오는 경로만 잘랐어요.”
서온이 곧장 자료를 보냈다.
[잘린 실의 다른 끝이 제1문 최초 발송 장치에 이어져 있어.]
오스벨이 작은 탐지기를 꺼냈다. 잘린 실을 장치에 붙이자 파란 불꽃이 일며 통로 방향을 가리켰다. 불꽃은 시계 아래가 아니라 현실의 남쪽을 향했다.
“그쪽은 물길이 사라진 지역입니다.” 오스벨이 말했다. “오래전 제방 공사 후에 지명이 바뀐 곳이죠.”
이시아는 그곳을 알고 있었다. “여울 마을. 첫 구호 신탁 시험이 이뤄지기 전에도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공식 기록에는 전원 구조로 되어 있어요.”
토비가 작게 물었다. “공식 기록 말고는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우체국 벽면이 덜컹 흔들렸다. 종이 칸들이 일제히 안으로 접혀 들어가더니 천장에 붉은 글씨가 생겨났다.
[미등록 발신국 탐지.]
[해당 설비는 제0경로 안정화 조치의 대상입니다.]
[원본 봉인 후 폐기까지 12분.]
루코는 주판을 쥐고 뒤로 물러섰다. “이건 제가 누른 게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피엘은 봉투와 실타래를 각각 보전함에 넣었다. “자동 폐기 명령부터 보존해야 합니다.”
벤이 한숨을 쉬었다. “천계는 왜 항상 우리에게 점심 먹을 시간보다 짧은 시간을 주는 거냐?”
토비가 성검으로 벽을 받쳤다. “그럼 빨리 나가죠.”
“설비를 부수지 마세요.” 피엘이 말했다. “이곳은 증거입니다.”
“그럼 벽이 우리를 부수는데요?”
천장의 톱니가 한 칸씩 떨어졌다. 먼지가 쏟아지자 루코가 입을 가리고 기침했다. 벽의 종이 칸들은 이미 삼분의 일이 접혀 있었다. 안에는 어느 지방에서 밤중에 요청한 의약품 목록, 수리를 기다리는 다리의 길이, 대답할 수 없으니 다시 방문해 달라는 작은 메모들이 들어 있었다.
피엘은 가장 먼저 손을 뻗어 메모 한 장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열람 권한을 받지 않은 편지를 함부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대신 봉투의 외형과 위치를 기록해 보전 목록에 넣었다. 단순히 기록을 지키겠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가 다음에 그것을 찾아볼 수 있게 해야 했다.
“선생님은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습니다.” 루코가 말했다.
“처음 천계에 왔을 때는 배달 속도가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엘이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도 느립니다. 하지만 빨리 배달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닿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의 말이 끝나자 책상 위에서 작은 종이새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밖으로 나가려다가 닫히는 벽에 부딪혔다. 종이새의 날개에 ‘대답을 기다려 주세요’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토비가 양손으로 조심히 받았다. 손바닥 위에서 새는 더 이상 날지 못했고, 대신 종이 한 장으로 펴졌다.
“이것도 우체국에서 만든 겁니까?”
“예전에는 급한 메시지를 날려 보냈다고 하더군요.” 오스벨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출발지와 도착지를 알 수 없어요.”
토비는 그 종이를 피엘에게 건넸다. “출발지 모른다고 버리지는 마세요.”
“그러지 않겠습니다.”
오스벨은 벽을 가로지르는 압축축을 발견했다. 나사 여섯 개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고, 그 가운데 세 개는 이미 부러졌다. 그는 남은 나사를 하나씩 잡아 고정했다. 강한 힘으로 비틀었다가는 옛 종이 칸이 전부 찢어질 수 있었다. 토비가 뒤에서 기둥을 지탱하는 동안 루코는 남은 시간을 정확히 불렀다.
피엘은 여울 마을을 가리킨 푸른 불꽃을 통째로 기록판에 옮겼다. 동시에 오스벨은 벽의 압력 장치를 분리했고 루코는 중앙 저울의 비상 점검권을 신청했다. 열두 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무작정 도망치기에는 우편함에 아직 손으로 쓴 질문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열한 번째 분, 제어판에 승인되지 않은 접근 표시가 떴다.
[폐기 요청자: 0000.]
[현장 점검 권한자: 피엘.]
[두 권한의 충돌 감지.]
“제 이름을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피엘이 외쳤다.
벽 안의 오래된 음성이 다시 들렸다.
“그 이름은 네 것이기 전에, 배달부들이 서로 불러 주던 말이었다.”
천장이 멈췄다. 바닥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거기에는 여울 마을로 향하는 낡은 길과 ‘모라의 집’ 표시가 남아 있었다.
제11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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