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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11화
PAYLUA ORIGINAL · 제111화

111화. 하루 먼저 도착한 부탁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901자

오프라인 책장
편지는 뜨겁지 않았다. 그것이 피엘을 더 당황하게 했다. 천계 제7문의 저울 안에서 나온 편지라면 대개 금빛 불꽃이 일거나 규정 위반 경고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최초 반송함에서 떨어진 봉투는 오래된 밀가루 자루처럼 거칠고 가벼웠다. 모서리에는 손으로 꿰맨 실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찢어진 봉투를 버리지 않고 고쳐 쓴 것이었다. “열어 봐도 됩니까?” 토비가 물었다. “저에게 온 편지가 아닙니다.” 피엘은 봉투 앞면을 뒤집었다. “원래 수신처를 먼저 확인해야 해요.” 수신인은 ‘아직 문이 없는 곳’. 발신인에는 모라라고 적혀 있었다. 주소도 신탁 번호도 없었다. 우표 대신 동그란 물자국 하나가 눌려 있었다. 벤이 코를 찡그렸다. “이건 계약 잉크가 아니야. 냄비에 눌어붙은 보리 냄새가 나.” “악마는 편지 냄새도 맡습니까?” “남의 계약서를 너무 오래 검토하면 냄새만으로도 거짓말이 보여.” 토비가 봉투를 다시 보았다. “그럼 보리죽 먹다 쓴 거짓말일 수도 있겠네요.” “네 비유는 늘 사람을 배고프게 하는군.” 제7문 안쪽은 일단 고요했다. 미래 채무 자동 집행은 잠정 중지되었고, 루코와 핀티는 금고에서 보전된 장부를 목록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계를 멈춘다고 이미 빼앗긴 봄이 곧장 돌아오지는 않았다. 꽃집의 베리는 새싹이 다시 자라는지 보려고 세 시간마다 화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피엘은 편지를 곧바로 뜯지 않았다. 하린에게 보전 요청을 보내고, 미엘과 서온에게 서로 다른 경로로 편지 발견 사실을 전달했다. 이시아는 자기 권한으로 강제 개봉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제1문과 제8문, 제7문까지 지나오며 그녀도 배운 것이 있었다. 독립된 기록판 위에서 봉투가 열리자 네 사람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 안에는 종이 한 장과 마른 풀씨 세 개가 있었다. ‘우리 마을 강이 넘칩니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모두를 데려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병든 사람부터 묻고,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들것을 보내 주세요. 강가를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높은 곳에 올라갈 길을 알려 주세요. 누군가를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그 사람에게 먼저 물어봐 주세요. — 모라.’ 토비는 글자를 천천히 따라 읽었다. “이건 신탁이 아니잖아요.” “부탁이죠.” 세아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신탁보다 먼저 천계로 왔죠?” 대답은 봉투 뒷면에서 나왔다. 한때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난 연필 글씨가 있었다. ‘배달 전 확인 요청’. 그 밑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답장 필요’라고 적혀 있었다. 피엘은 종이를 바라보다 말을 잃었다. 제0경로를 추적하는 내내 그는 누가 잘못된 신탁을 발송했는지 찾았다. 그런데 이 편지의 첫 번째 동사는 ‘발송하라’가 아니었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였다. 그때 서온의 통신판이 켜졌다. [봉투의 종이는 제1문 건립 이전 것으로 확인됐어. 잉크에는 신탁의 강제 효력이 없어. 그런데 발신인 모라는 제0경로에서 최초 수신인으로 등록돼 있어.] “모라가 처음에는 발신인이었고, 나중에 수신인이 됐다는 겁니까?” 피엘이 물었다. [응. 정확히는 ‘보호 요청자’가 ‘일괄 구호 신탁 수신인’으로 바뀌었어. 전환을 승인한 사람의 이름은 없어. 네 개의 빈 원뿐이야.] 피엘은 잠시 제7문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미래에 태어날 아이에게 빚을 지우지 말자던 베리의 어머니는 그날 밤에도 꽃집 창고를 정리했다고 했다. 내일이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당장 오늘의 배고픔과 병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 사소하고 구체적인 일들이야말로 추상적인 신탁이 빼먹기 쉬운 것들이었다. “처음 편지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루코가 물었다. 그는 반송함 문 앞에서 주판을 품에 안고 있었다. “제7문에서는 모르는 사람의 미래를 숫자로 계산했어요. 이 편지 쓴 분도 처음에는 숫자로만 기록됐겠죠?” “모르겠습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적어도 직접 남긴 말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루코는 자기 장부의 가장 위 칸에 ‘모라라는 사람’이라고 적었다가 곧 지웠다. “이름만으로 무엇을 아는 척하게 되네요.” 그는 다시 ‘모라가 남긴 첫 편지를 확인함’이라고 썼다. 손이 느렸지만 문장은 정확했다. “제 얘기를 하나 해 드릴까요?” 토비가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봄마다 씨앗을 세 줬어요. 심을 게 몇 알 남았는지 알려 주려고요. 그런데 가을에는 늘 다시 세더라고요. 다 싹트는 것도 아니고, 하나가 서너 줄기 되는 것도 있잖아요.” 벤이 눈썹을 올렸다. “네가 그렇게 배웠으면 장부에 소질이 있을 법도 한데.” “저는 수확 전에 먹는 데 소질이 있었습니다.” 웃음이 흘렀다. 피엘은 모라의 풀씨를 보고 생각했다. 세 알의 씨앗은 미래를 확정하는 표가 아니라, 누군가 길을 찾을 때 남겨 둔 가능성일지 모른다. 그러니 이 사건도 숫자부터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주인을 찾아야 했다. 토비가 손가락으로 0000을 그렸다. “저 숫자는 여기저기서 참 부지런히 나오는군요.” 이시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 장치는 원래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리기 위한 표시였습니다.” “기다리기 위한 표시가 대신 대답하는 도장이 된 거군요.” 세아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이시아는 변명하지 않았다. 피엘은 편지 속 풀씨를 유리 접시에 올렸다. 먼지처럼 말라 버린 씨앗인데도 한 알에는 얇은 물빛이 맺혔다. 토비가 손을 뻗자 씨앗이 손끝에서 아주 약하게 진동했다. 마치 땅 밑에 있는 뿌리가 멀리서 물을 찾는 듯했다. “이 씨앗을 심으면 장소를 알 수 있을까요?” “옛 물길의 흙이라면 가능해.” 이시아가 말했다. “다만 기억을 강제로 재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곳이 보존돼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해요.” 루코가 문밖에서 달려왔다. 그의 등에 멘 주판이 덜컹거렸다. “피엘 님! 반송함 아래에 두 번째 투입구가 있어요. 방금 편지를 열자 그쪽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미엘도 곧 작은 수정판을 들고 나타났다. 그가 제7문 정산국의 장부를 정리하다 이곳으로 뛰어온 이유는 분명했다. 최초 반송함에서 발견한 편지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최초 신탁’이라 이름 붙은 기초 장부의 시작 날짜부터 다시 확인해야 했다. “옛 장부는 우표가 아니라 계절을 기준으로 날짜를 적었어요.” 미엘은 표를 펴 보였다. “강이 넘친 날을 ‘큰물 이후 첫날’이라고 적은 기록도 있고, 천계가 시계를 고친 날을 기준으로 다시 세기 시작한 기록도 있어요. 날짜가 하루 앞선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시간여행 같은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토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시간여행이 아니면 다행이네요. 어제 제가 먹은 보리죽을 오늘 또 먹을 수 있다면 좀 고민했거든요.” “먹은 적 없는 것으로 처리돼서 돈을 두 번 낼 수도 있지.” 벤이 말했다. 미엘이 피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본 봉투의 물성은 보전할게요. 하지만 마을 이름과 사람의 기록은 직접 확인해 주세요. 장부만 보면 언제나 빠지는 게 있거든요.” 피엘은 새 기록표를 펼쳤다. 제목은 ‘확정 사실’이 아니라 ‘검증할 질문’이었다. 첫 줄에는 ‘모라의 편지가 먼저인가’, 둘째 줄에는 ‘누가 문장을 바꾸었는가’, 셋째 줄에는 ‘처음의 답장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적었다. 모두가 승강기 옆 벽으로 향했다. 낡은 투입구에는 ‘답장’이라고 써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문을 누군가 안쪽에서 두드리고 있었다. 똑. 똑똑. 똑. 토비가 검을 들었다. “안에 사람이 있나요?”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첫 편지를 읽었으면, 이번에는 그 편지를 보내지 못하게 된 이유를 읽어야지.” 피엘은 굳었다.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말투는 달랐다.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던 제4문의 가짜 승인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지친 목소리였고, 오래 기다린 사람의 목소리였다. “누구십니까?” “모라의 답장을 가장 먼저 반송 처리한 배달부.” 투입구의 문틈에서 아주 작은 종이 조각이 미끄러져 나왔다. ‘첫 번째 신탁은 하루 늦은 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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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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