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열두 번 울렸다.
그러나 시간이 열두 번 흐른 것은 아니었다. 저울의 내부 장치가 같은 순간을 여러 번 계산하면서 종이 뒤엉켜 울리고 있었다. 광장의 사람들은 귀를 막았다. 조금 전까지 네모나게 서 있던 구름들은 모서리를 잃고 바람에 흩어졌다.
[최초 납부 요청 발신.]
[미래 수신인의 응답 대기.]
[응답 부재 시 대리 승인 0000.]
피엘은 제어판을 두드렸다. 응답 대기 시간은 한 호흡보다 짧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편지를 받을 주소도, 말을 할 입도 없었다. 시스템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응답 시간이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대리 승인이 되는 거예요.” 루코가 말했다. “처음부터 그 순서로 만들었으니까요.”
토비는 손에 물집이 잡힌 채 방호벽을 받치고 있었다. 세아가 그의 팔에 천을 감아 주었다.
“이제 그만해도 돼요. 우회선 연결됐어요.”
“잠깐만요.” 토비가 숨을 헐떡였다. “제가 검을 빼면 문이 닫혀서 피엘 씨가 안에 갇혀요.”
오스벨이 뒤편에서 추가 고정쇠를 찾아냈다. 그는 토비에게 신호를 보낸 뒤 천천히 쇠를 넣었다. 방호벽이 더 내려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토비가 검을 뽑았다. 검자루에 묻은 피를 보며 그는 뒤늦게 얼굴을 찌푸렸다.
“오배송된 용사도 치료받을 수 있겠죠?”
“네. 이름이 없거나 기록이 잘못되어도 지금 다쳤다면 치료받을 수 있어야죠.” 세아가 대답했다.
피엘은 그 말을 들으며 제어판의 다른 항목을 발견했다.
[대리 응답 적용 대상: 현재 응답 불가능자.]
이것은 제3문의 침묵 문제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제3문에서는 누군가 실제로 존재했지만 답할 수 없거나 답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경우가 있었다. 여기서는 아직 존재 여부조차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사람을 만들어 놓고, 그들이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인을 찍고 있었다.
“대상이 성립하지 않은 청구에 대리 응답을 붙일 수 없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치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벤이 물었다.
“장치의 판단에 맡기지 않겠습니다.”
피엘은 미엘의 수기 장부와 실제 지급 증빙, 이시아의 삼 일 조항 원본, 벤의 진짜 계약 검토 기록을 서로 다른 보전함에 복사했다. 이어 하린에게 '미래 채무자 자동 생성 규칙'의 긴급 집행 중지를 요청했다. 제6문 주민들의 이름 복원과 의료 지원을 중단하지 않고, 그 비용을 존재하지 않는 후손에게 넘기는 기능만 멈추는 조치였다.
하린의 답장은 즉시 오지 않았다. 그 사이 저울의 작은 신발들마다 하얀 불빛이 켜졌다.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루코가 소리쳤다. “한 번에 천 건씩!”
핀티는 계산판으로 달려갔다. 전날까지 징수 실적을 늘리는 게 자기 일이라고 여겼던 그는, 이제 같은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누군가의 내일이 묶이는 걸 떠올렸다. 손을 떨며 집계 장치를 일시 정지시키려 했지만 버튼에는 '관리자 0000 전용'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내가 수금한 것들 중에는 내가 확인하지 않은 것도 많았습니다.” 핀티가 말했다. “이제라도 멈추고 싶어요.”
“확인한 것부터 적으십시오.” 피엘이 말했다. “숫자를 숨기지 마세요.”
미엘은 중앙 화면에 두 장의 표를 띄웠다. 왼쪽에는 정산국이 계산한 미래 채권, 오른쪽에는 오늘 실제 지출된 물자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비용이 적혀 있었다. 두 표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일부 지출은 아직 정산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수백만 단위의 미래 삶을 담보로 잡을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이시아가 공개 홀에서 말했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임시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그 방법이 사람의 인생 전체를 대신 결정할 권한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 역시 그 제도가 바뀌는 것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 중 누군가 외쳤다. “그럼 당신이 전부 갚으세요!”
이시아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골랐다. “제가 책임져야 할 일은 조사받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 대신 무엇을 잃고 무엇을 돌려받을지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입니다.”
나엘은 꽃집의 화분을 들고 홀에 섰다. “저는 제 아이가 어떤 삶을 살지 모릅니다. 그 아이가 언젠가 저를 원망할지도, 고마워할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지금부터 제 아이의 봄을 누군가에게 팔겠다고 서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에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조용히 서 있었다. 피엘은 그들의 침묵을 찬성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드디어 하린의 결정이 도착했다.
[제7문 긴급 보전 결정.]
[미래에 존재할 가능성만으로 생성된 채무의 신규 집행: 즉시 잠정 중지.]
[대리 계정 0000의 미래 수신인 자동 승인: 금지.]
[긴급 구조 지원 및 현재 당사자의 유효한 계약: 별도 유지·심사.]
[이미 징수된 시간·계절 담보의 피해 조사와 반환 가능성 검증: 개별 개시.]
[원본 장부·수정 기록·책임 권한자 로그: 독립 보존.]
제어판이 흰빛을 뿜었다. 시스템은 한동안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미래 수신인 응답 없음.]
[대리 승인 필요.]
피엘은 결정문을 네 개의 독립 보관 경로에 동시에 전달했다. 루코는 장부에 명령 시각을 기록했고, 핀티는 수금망과 구조망을 분리하는 조작을 시작했다. 오스벨은 실제로 하위 회로가 멈추는지 측정했다. 이시아의 이름이 아니라 독립된 판단과 현장 증거가 결합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내 중앙 저울이 수평으로 돌아왔다. 금빛 봉투들이 허공에서 힘을 잃고 천천히 내려왔다. 작은 신발들에서는 하얀빛이 꺼졌다. 도시의 네모난 구름이 조각나 서로 다른 모양으로 떠갔다.
베리는 화분을 바라보았다. 새싹이 완전히 건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축 늘어져 있던 잎 한 장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다 돌아왔나요?”
“아직 아니야.” 토비가 말했다. “그래도 다시 자랄 수 있는 건 남아 있네.”
미엘의 장부에는 새로운 표지가 달렸다. '부당한 자동 미래 채권 집행 중지.' 그러나 그 옆에는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었다. 과거에 이미 빼앗긴 휴식과 계절을 어떻게 돌려줄지, 실제 구제 비용의 부담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나눌지, 승인 기록을 위조한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야 했다.
피엘은 제0경로 수첩을 펼쳤다.
[제0경로 미해결 오배송: 1,006건.]
[복원 완료: 6건.]
[제7문 미래 채무 자동 집행: 잠정 중지.]
[기존 피해 및 책임 소재: 개별 조사 중.]
이번에도 숫자를 억지로 바꾸지 않았다. 제7문 사건에서 새로운 피해를 막은 것은 성과였다. 하지만 오래된 오배송의 원본을 모두 찾아 되돌린 것은 아니었다.
그때 서온의 독립망에 새로운 봉투가 도착했다. 이시아의 반송 편지와 네 개의 하얀 원을 대조하던 서온이 마침내 다른 점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반송 실패 표지의 검은 점은 발신국에서 만든 게 아니야.]
[제0경로의 첫 번째 수신인이 찍었어.]
[그 수신인은 신탁을 받은 뒤 답장을 보냈지만, 발신국은 그 편지를 '빈칸'으로 처리했어.]
피엘은 봉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첫 번째 수신인이라고요?”
통신판의 문장이 이어졌다.
[수신인은 원래 '도움을 받을 사람'으로 등록됐어. 그런데 거절 답장을 보낸 날, 발신인 목록으로 옮겨졌지.]
[원본 발신국은 제1문과 제8문 사이에 있는 곳이 아니야.]
[모든 문이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진 장소야.]
토비는 성검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신탁이 잘못 배달되기 시작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건가요?”
“아직은 모릅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하지만 처음 누가 답을 보내려 했는지 찾아볼 수 있겠군요.”
금빛 저울 뒤편에 있던 벽이 천천히 갈라졌다. 벽 안에는 오래된 우편함 하나가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표지에는 서툰 글씨로 두 단어가 적혀 있었다.
'최초 반송.'
우편함 안에서 편지가 한 통 떨어졌다.
봉투 앞면에는 이시아도, 벤도, 피엘도 모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발송 시각이 찍혀 있었다.
[발송: 첫 번째 신탁보다 하루 전.]
피엘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신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보낸 편지라니.”
봉투 속에서는 누군가의 손글씨가 비쳐 보였다.
'누군가를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그 사람에게 먼저 물어봐 주세요.'
제11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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