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변천표는 책이 아니라 긴 천에 기록되어 있었다.
미엘이 두루마리를 펼치자 제7문의 복도가 한순간 천으로 가득 찼다. 기록은 출입문을 지나 계단으로 내려가더니 아침 식당까지 이어졌다. 토비는 국그릇을 들고 두루마리를 밟지 않으려고 애썼다.
“모든 변경 기록을 이렇게 보관한 거예요?”
“종이 장부를 훼손한 사람이 있었거든.” 미엘이 말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모든 수정 사항을 이렇게 이어 붙였지.”
“그런데 이걸 볼 사람은 누굽니까?”
“너희가 첫 번째야.”
루코는 두루마리에 붙은 번호를 하나씩 읽었다. 처음에는 실제 재난 현장의 지원 날짜와 대출 수령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열두 번째 칸부터는 '기대 생애 편익'이라는 항목이 생겼고, 그다음에는 수신인 대신 번호가 들어갔다.
[미래 수신인 F-0001.]
[미래 수신인 F-0002.]
[생존 여부: 해당 없음.]
[동의 여부: 해당 없음.]
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해당 없다는 걸 왜 동의 없음도 아니고 동의 완료도 아닌 상태로 놔두지 않았을까요?”
“애초에 물을 사람이 없으니까.” 피엘이 답했다. “그런데 청구를 진행하려면 빈칸이 거슬렸겠죠.”
벤이 봉랍을 가볍게 굴렸다. “누군가 빈칸을 채워 주겠다고 나선 거군.”
표의 다음 칸에 익숙한 기호가 나타났다. 네 개의 하얀 원. 0000. 뒤에는 천계의 옛 직무명인 '대리 피엘'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또 다른 주석이 붙어 있었다.
[대리 계정과 대리자의 개인 의사는 별개.]
[수신 거절 처리: 대리 계정 자체의 판단 대상 아님.]
서온에게 원격 연락을 보내자 답장이 늦게 왔다. 그는 제8문의 독립 기록망에서 유사한 항목을 조사 중이었다. 잠시 뒤 통신판에 짧은 문장이 떴다.
[나도 한때 그 번호로 취급됐어. 내가 실제로 작성한 기록을 보내 줄게. 하지만 0000으로 된 모든 문서는 내 것이 아니야.]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피엘 자신의 이름을 둘러싼 사건과도 닮았다. 직무명이 무엇을 가리킨다고 해서,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이 모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추적한 F-0001은 의외의 곳으로 이어졌다. 삼십 년 뒤 태어날 아이가 아니라, 삼백 년 전 홍수 때 구조된 사람들의 장래 후손을 뜻하는 번호였다. 후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었다. 제7문은 사람을 찾는 대신 가족 계보의 빈 자리마다 청구서를 붙인 것이다.
“이러면 누구든 빚을 지게 될 수 있잖아요.” 토비가 말했다.
“그게 이 계산의 장점이라고 설명했었지.” 미엘이 얼굴을 찌푸렸다. “수신인이 없어도 채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피엘은 천을 접기 전에 다음 기록을 살폈다. F-0001에 처음 청구된 것은 씨앗 한 자루의 비용이었다. 그런데 장부는 가상의 후손이 앞으로 배울 글자, 만나게 될 친구, 쉴 수 있는 시간까지 모두 예상 편익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미엘이 낮게 말했다. “진짜로 지출한 돈은 적어. 하지만 편익을 무한히 늘려 놓으면, 빚도 무한히 늘릴 수 있지.”
토비는 말없이 두루마리를 바라봤다. 농장에서 씨앗 한 자루를 빌리면 가을에 곡식으로 갚는다. 하지만 그 씨앗에서 태어날 사람의 인생까지 담보로 잡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서온에게서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F-0001의 계보가 원본에서 몇 차례 바뀐 흔적을 찾아냈다. 어떤 시기에는 같은 번호가 한 가족을 뜻했고, 나중에는 그 지역에서 앞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뜻했다. 마침내는 지역조차 사라지고 '유사한 위험을 받을 장래 수신인'으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바꾸면 누구도 자신이 청구 대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없어.] 서온이 적었다.
피엘은 루코에게 실험을 부탁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광 마을의 계보를 넣어 보라는 것이었다. 루코는 주판을 몇 차례 두드렸다. 폐광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마지막 주민도 다른 곳으로 이주해 현재 등록된 주소가 없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즉시 나왔다.
[예정 수신인: 12,407명.]
[미래 편익 예상액: 증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만 명이 넘는 수신인이 생겼어요.” 루코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수신인이 실제로 태어날지 확인할 수는 없지요.” 피엘이 답했다.
토비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냥 숫자를 만드는 거네요.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아직 없는 가축을 세는 것처럼요.”
벤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아니. 그보다 나빠. 가축이 실제로 태어나지 않으면 가축 수가 줄었다고 적겠지. 여기선 태어나지 않아도 빚이 남잖아.”
루코는 시험 결과를 저장하고 실제 청구망에는 반영되지 않았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 시험은 외부와 분리된 수기 복제판에서 진행했다.
다른 화면에서는 제6문의 이름 복원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피엘은 그 사실도 확인했다. 재정 장부에 잘못된 계산이 있다는 이유로 실제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업무를 멈춰선 안 되었다.
“오늘 우리가 발견한 건 아직 사람 한 명의 서명이 아니에요.” 세아가 말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그대로 두었는지 각각 알아봐야겠어요.”
미엘은 두루마리의 가장 오래된 종이를 들어 보였다. 그 위에는 흐릿한 글씨가 있었다. '대신 대답하는 자는 발신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몇 장 뒤부터 그 문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리자가 발신인이 되기 시작한 순간이 있어.” 미엘이 말했다. “그때 원본 발신국으로 보내지 말라는 지시도 나왔지.”
피엘은 표시했다. 이제 찾아야 할 곳은 단순히 채무를 계산한 정산국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거절 답장이 원래 어디로 가야 했는지였다.
그날 오후 베리가 꽃집에서 찾아왔다. 손에는 어제 얼었던 새싹 화분이 있었다. 한 잎이 끝내 살아나지 못했지만 줄기 옆으로 작은 초록 점이 돋아 있었다.
“이건 다시 나올 거예요?”
토비는 화분을 들여다봤다. “확실하진 않아. 하지만 살아 있는 부분이 있으니 햇빛을 조금씩 받게 해 보자.”
베리는 기뻐하다가 문득 물었다. “그 애가 태어날 때까지 내일이 계속 없으면 어떻게 해요?”
“그 애가 누군데?”
“서류에 있는 아이요. 아직 없는데 벌써 봄을 빌렸다고 했잖아요.”
토비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서류에 적힌 아이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설명하면 베리가 마음속에 떠올린 아이까지 지워지는 것 같았다.
“아직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몰라.” 토비가 말했다. “그러니까 누군가라고 정해 버리고 빚을 붙여서는 안 되는 거겠지.”
베리는 피엘의 수첩을 잠깐 보고는 물었다. “그럼 제 동생이 태어나도 그 애한테는 물어봐야겠네요?”
“물어볼 수 있는 것은 물어보고, 아직 답할 수 없는 일은 대신 결정할 범위를 조심해야겠지.”
“아기가 울면 배고픈지 먼저 봐야 하잖아요. 울지 않았다고 배가 안 고픈 건 아니고.”
세아는 놀라 베리를 바라봤다. 그 말은 제7문이 놓친 가장 단순한 사실이었다. 답을 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필요한 돌봄을 하는 것과, 그 사람이 빚을 지는 데 동의했다고 적는 것은 달랐다.
나엘은 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동생한테 제일 먼저 가르쳐 줄 건 계산이 아니라 같이 노는 법이면 좋겠다.”
그때 루코가 달려와 장부 한 장을 내밀었다. 미엘의 옛 천 장부 맨 끝에서 작은 그림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네 개의 하얀 원 옆에는 손으로 그린 문이 하나 있었다. 문 밑에는 알 수 없는 옛글자가 적혀 있었다.
오스벨이 글자를 해독했다.
'원본 발신국으로 보내지 말 것.'
“왜 보내지 말라고 했을까요?” 세아가 물었다.
벤은 두루마리를 다시 살폈다. “원본 발신국이라면 0000이 처음 만들어진 장소일지도 모르지.”
그 순간 정산국의 중앙 저울이 크게 울렸다. 하늘을 가르며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미래 채무자 직접 확인 절차 개시.]
[대상: 예정 수신인 전원.]
[확인 방법: 대리 응답 0000.]
루코는 몸을 굳혔다.
“직접 확인한다고 해 놓고, 전부 대신 대답하게 만들려는 거예요.”
저울 접시 아래 달린 작은 신발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누가 보아도 곧 집행이 시작될 참이었다.
제10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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