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의 유리 지붕에는 겨울이 매달려 있었다.
계절은 분명 봄이었다. 정산국으로 올라오는 길에는 노란 민들레가 피었고 거리의 빵집에서는 딸기 잼을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꽃집의 작은 정원에만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 소녀가 안고 있던 화분 안에서는 새싹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다.
“누가 제 봄을 가져갔어요.”
소녀는 울음을 꾹 참으며 말했다. 이름은 베리. 꽃집 주인 나엘의 조카였고, 동생이 태어나면 선물하려고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 나엘은 지금 임신 중이었지만, 예정된 동생이 제7문의 채무자로 등록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베리의 화분이 망가졌다.
“베리의 이름으로 청구서가 왔니?” 세아가 물었다.
“아니요. 아주아주 나중에 태어날 아이의 거래래요. 그런데 우리 집 지붕으로 날아왔어요.”
토비는 꽃집 바닥을 살폈다. 진흙이 얼어붙은 모양을 보니 마법이라기보다, 한순간 봄의 기온만 쏙 빠진 것 같았다. 그가 손으로 흙을 쥐자 얼음이 손가락 사이에서 녹아내렸다.
“물 주는 걸 잘못해서 죽은 게 아니에요.”
“알아요.” 베리가 코를 훌쩍였다. “그래서 더 화가 나요.”
그 말에 토비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고향에서도 씨앗은 자주 죽었다. 물이 부족할 때도, 비가 너무 많이 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미래를 담보로 잡았다는 이유로 자라는 걸 멈춘 씨앗은 본 적이 없었다.
나엘은 뒤늦게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약초 꾸러미와 낡은 진료 수첩이 들려 있었다. 꽃집을 운영하면서 마을의 산파 일도 돕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서리가 낀 바닥을 보고는 잠시 말을 잃었다.
“오늘 아침에 왜 갑자기 얼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어젯밤부터 산모 셋의 진료 일정이 바뀌었어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신인의 미래 체온을 예치한다'는 통지가 왔거든요.”
피엘은 통지서를 받기 전에 물었다. “조사 목적으로 사본을 보전해도 괜찮겠습니까? 개인 진료 내용은 가려 두겠습니다.”
나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집들에도 물어봐 주세요. 우리 가족만 겪는 일이 아니라면 같이 알려야 하니까요.”
통지서에 적힌 단어는 복잡했다.
[미래 계절성 자원 사전 할인.]
[예정 수신인 편익 예상치에서 분기별 일부 징수.]
[현재 영향은 국소적이며 인과관계 확인 중.]
“국소적?” 벤이 손가락으로 얼음이 낀 유리를 튕겼다. “그런 말은 주로 창문을 닫은 사람이 하지.”
그는 마계식 감정 도장을 꺼냈다. 검은 봉랍에 둥근 뿔 두 개가 새겨져 있었다. 봉랍을 통지서 오른쪽 아래에 대자 색이 변했다. 일반 계약이었다면 피계약자의 서명 흔적이 검붉게 떠올라야 했다. 그러나 반응은 없었다.
“보증인의 동의도 없어.” 벤이 말했다. “그런데 집행은 됐군. 마계라면 사기꾼을 잡아다 계약 교육부터 시키겠어.”
“마계에는 계약 교육도 있나요?” 토비가 물었다.
“있지. 안 배우면 사기 치다가 들키거든.”
베리가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잠깐이었다. 화분의 흙은 여전히 차가웠다.
피엘 일행은 나엘의 허락을 받아 유리 지붕을 조사했다. 한쪽 홈통에서 작은 금속 실이 나왔다. 실은 꽃집의 수신함에 연결되어 있었고, 실 끝에는 저울 그림이 찍힌 미니어처 추 하나가 달려 있었다. 루코가 보더니 얼굴이 하얘졌다.
“담보 실행핀입니다. 정산국에서 배송비 채권을 실물 자원에 연결할 때 써요. 원래는 지급 대상이 확인된 자원 창고에만 달아야 합니다.”
“꽃집이 자원 창고로 등록됐다는 뜻인가요?” 피엘이 물었다.
루코는 주판을 뒤적였다. “아니요. 여긴 '장래 태어날 수신인에게 귀속될 가능성이 있는 장소'라고만 적혀 있어요.”
“가능성으로 지금 남의 집 봄을 가져갈 수는 없지요.”
피엘은 실을 바로 뽑지 않았다. 잘못 건드리면 빼앗긴 기온이 어디로 돌아갈지 알 수 없었다. 나엘과 루코가 제7문 수리인에게 연락했고, 오스벨은 홈통에서 실이 뻗어 간 방향을 지도에 표시했다. 선은 꽃집을 지나 진료소와 작은 학교, 텅 빈 놀이터 아래로 이어졌다.
진료소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다. 며칠 뒤 출산 예정인 산모가 사용할 방의 온기가 밤마다 사라지고 있었다. 진료소 책임자 마르야는 차가워진 침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로에 연료가 충분해요. 그런데 기록에는 우리가 '미래 체온'을 먼저 쓰고 있다고 떠요. 그래서 지금 가진 열이 상쇄된다고 합니다.”
피엘은 온도계와 난로 장부를 따로 받았다. 난로는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온기 배분을 결정하는 정산망 쪽이었다.
나엘은 벽난로 앞에서 팔짱을 꼈다. “나는 누가 출산할지,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아직 모르고, 그 아이들에게 어떤 삶이 올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기관은 벌써 그들의 계절을 쓸 수 있다고 정했군요.”
토비는 창문 밖을 보았다. 놀이터의 그네에 얼음이 붙어 있었고, 학교 운동장만큼은 따뜻했다. 정산 장치가 미래의 시간을 일정하게 훔치는 게 아니라, 누가 이의를 신청하기 어려운 공간을 골라 징수하는 듯했다.
나엘은 진료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도 들렀다. 봄이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파종 수업을 받았다. 그런데 교사 라세는 교실 한가운데 커다란 모래시계를 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계 모래가 떨어질 때까지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왜 문이 잠겼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라세는 교실을 가리켰다. “정산국이 오후 햇빛을 미래 수업 자원으로 등록했어요. 지금 운동장에서 햇볕을 쓰면 나중에 쓸 빛이 줄어든다고요.”
베리는 창문에 코를 붙였다. “그럼 우리가 오늘 웃는 것도 나중 것에서 빼는 거예요?”
“웃음은 아직 계산하지 않더라.” 라세가 힘없이 웃었다. “다만 다음 달부터 정서 안정 편익이라는 항목이 생긴다는 소문이 있어.”
피엘은 잠긴 문의 경고문을 읽었다. 햇빛을 사용한 시간이 개인별로 집계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누가 측정기를 설치했는지, 교사가 조치를 거절할 권한이 있는지 적혀 있지 않았다.
토비는 교실 앞쪽에 마련된 작은 화분들을 살펴보았다. 아이들이 쪽지에 각자 원하는 씨앗의 이름을 적었다. 감자, 오이, 해바라기, 고추. 어떤 아이는 씨앗 대신 '운동장에서 뛰기'라고 적었다.
“전 농부라서 말할 수 있어요.” 토비가 말했다. “씨앗은 빛을 받았다고 내일 빛을 빚지는 게 아니에요. 자라려고 받는 거죠.”
라세는 서류를 펼쳐 피엘에게 보였다. 지난달까지는 교사가 계절 수업을 운영해 왔고, 이번 달부터 정산국이 사용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피엘은 누가 바꿨는지 확인할 기록을 요청했다. 그때 학교 종이 울렸는데, 아이들이 기다리던 점심 종이 아니었다.
[예정 수신인 혜택 차감.]
토비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았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종을 듣고도 식당으로 가지 못했다. 누군가 나중에 이 시간을 갚아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라세는 잠시 생각한 뒤 문을 열었다. 교실 밖은 아직 안전했고, 현재 수업을 중단해야 할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선택을 수기 장부에 남겼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 오늘 이 아이들의 수업이야.”
아이들은 마당으로 나왔다. 햇빛이 발등에 닿는 순간 베리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피엘은 그 평범한 웃음을 보며, 정산국의 숫자에는 결코 적히지 않을 사실 하나를 기억했다.
그날 저녁 루코는 정산국 직원 식당으로 일행을 데려갔다. 식당에서는 '미래에 건강해질 사람의 식사 미리 받기'라는 이상한 할인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토비는 가격표를 보고 손사래를 쳤다.
“전 그냥 오늘 만든 수프를 오늘 돈 내고 먹겠습니다.”
식당 주인은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 “선지급 혜택을 안 받으시겠다고요?”
“예. 내일의 제가 먹을 걸 오늘 다 먹으면 내일 배고프잖아요.”
벤이 피식 웃었다. “농부답게 정확한 경제학이군.”
피엘은 창구의 비용 장부 한 장을 확보했다. 실물 온기 징수 명령과 연결된 코드에는 이상한 표기가 있었다.
[징수 승인: 0000.]
[원가 지급 증빙: 없음.]
[미래 편익 가치: 자동 산정.]
“증빙이 없는데 왜 빚이 발생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루코는 식탁의 주판을 꾹 눌렀다. “정산국에서는 그걸 물으면 가장 먼저 이런 답이 돌아와요. '미래에는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요.'”
나엘이 베리의 화분을 조심히 창가에 놓았다. “그 말로 오늘의 봄을 뺏지는 못해요.”
그때 제7문 전역에 푸른 종소리가 울렸다.
[제7문 미수 채권 보호를 위한 우선 징수 대상 재분류.]
[제1차 대상: 반대 의견을 제출한 현재 보호자.]
베리가 피엘의 손을 잡았다. “그럼 우리 집이 먼저인가요?”
피엘은 통지서가 떨어지기 전에 창문을 닫았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서로 떨어져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제10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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