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확을 되살리는 날이라고 해서 도현이 곧장 빵을 굽지는 않았다.
그는 먼저 사람들을 모았다. 온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바깥 밭을 경작하는 농부들, 관리장 실렌, 기록을 보관할 루카스와 리벨. 누구에게도 대단한 만찬을 약속하지 않았다. 오늘 하려는 일은 모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가 거절했던 일을 다시 정확한 말로 남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렌이 말했다. “온실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수확량이 폭발적으로 늘 거라고.”
“그럴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도현이 답했다. “봄이 멈췄던 시간이 길다고 해서 열매가 하루 만에 익지는 않겠죠.”
달렌은 팔짱을 끼고 물었다. “우리 밭에 다시 서리가 내리면 누가 책임집니까?”
“온실의 마법과 주변 밭의 손실이 연결됐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수로를 일부 막아 추가 피해가 나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중단하고 현장 기록을 공개하겠습니다.”
도현의 계획은 간단했다. 첫째, 온실이 바깥 밭의 생육을 끌어다 쓰는 것으로 의심되는 보조 수로를 차단한다. 둘째, 온실의 시간을 고정한 원래의 거절 기록을 찾아 다시 읽는다. 셋째, 식물에 실제 변화가 생기는지 며칠 동안 관찰한다. 그 어떤 단계에서도 하나에게 음식을 먹거나 서명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노동 대가를 첫 수확에 묶어 두지 않는 방안을 별도로 논의해야 합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실렌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빚진 임금을 한 번에 마련할 능력이 없었다. 대신 관리장 권한으로 보관료 수입을 공개하고, 왕실과 채권자에게 장기 정산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리벨은 그 약속을 말로 끝내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겼다.
한편 도현은 하나에게 작업실의 가장 낮은 의자를 내주었다. 책상에는 따뜻한 물과 바깥 시장에서 구한 사과를 놓았다. 아이는 사과를 집지 않았지만 한참 만져 보았다.
“이건 어제 자란 거야?”
“어제까지 자라다가 수확한 거야. 시간이 흘러서 익었지.”
“꽃이 져도 괜찮아?”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남기도 해. 물론 모든 꽃이 열매가 되는 건 아니야.”
하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백 년 동안 보아 온 꽃은 아무리 오래 피어 있어도 열매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사람들은 꽃이 떨어지는 순간을 두려워했다.
오후에 에스텔과 리벨은 중심부의 수로를 조사했다. 원래 수로는 온실과 주변 농경지에 물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설치한 검은 관이 수로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검은 관 표면에는 날짜 대신 사람들의 내일을 나타내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걸 닫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전부는 몰라.” 에스텔이 답했다. “하지만 수로를 쥐어짜는 장치는 분리할 수 있어 보여. 원래 관개관까지 망가뜨릴 필요는 없어.”
농부들과 온실 노동자들이 같은 작업대에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바깥 농부들은 온실 때문에 겨울이 길어졌다고 생각했고, 안쪽 노동자들은 온실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평생 노동이 허사가 된다고 두려워했다. 감정이 격해져 누군가는 실렌에게 돌을 던지려 했다.
도현은 두 집단 사이에 서서 식탁을 한 번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우선 오늘 안전하게 물을 돌리는 방법을 정합시다. 누구의 잘못인지 조사하는 일은 그다음에도 할 수 있습니다.”
달렌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온실이 싫소. 그렇지만 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다치게 하고 싶진 않소.”
리벨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저도 바깥 밭이 얼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 사람은 불편한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다. 화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했지만, 수로를 다루는 동안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은 되었다.
루카스는 그 합의의 범위와 중단 조건을 문서에 적었다. 실렌의 서명뿐 아니라 실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확인도 받았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지는 않았으므로 반대 의견도 남겼다. '이견 없음'이라는 거짓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이 이들의 첫 공동 작업이었다.
그들은 인부들에게 먼저 차단 방법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다. 달렌은 바깥 밭 물길을 확인했고, 리벨은 안쪽 급수 계획을 세웠다. 관리장 실렌도 결국 동의했다.
밸브를 돌리기 전에는 작은 문제가 있었다. 가장 낡은 관을 잠그면 안쪽 화단까지 물이 끊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리벨은 관을 따라 걸으며 급수되는 구역을 표시했다. 달렌은 바깥 밭의 물길을 알았으므로 반대편에서 확인해 주었다.
“저 꽃들이 다 죽으면 누가 책임집니까?” 실렌이 물었다.
“그래서 다른 길로 물을 돌리는 겁니다.” 리벨이 대답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더라도 고쳐 쓸 수 있잖아요.”
인부들은 낡은 관 옆에 임시 수로를 설치했다. 마른 나무 홈통을 붙이고 구멍을 막자 물이 정상적으로 흘렀다. 도현은 일행이 하루 종일 겪은 일이 마치 식당 배관 수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한다는 거창한 장치를 두고도 물 한 줄기를 제대로 돌리지 못해 고생하고 있었다.
그때 관 안쪽에서 뜻밖에 검은 물이 솟았다. 흰 접시를 받쳐 둔 자리에 끈적한 액체가 떨어졌고, 그 위에 '대체 수령인 신청'이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루카스가 놀라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 저 물을 만지면 자동으로 신청할 수 있겠습니다!”
브론이 재빨리 장갑을 던져 물줄기 앞을 막았다. 그러나 헝겊에 닿자 검은 글씨가 장갑 손등으로 옮겨 붙었다. 브론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지금 신청한 겁니까?”
에스텔이 장갑을 잡아당겨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밀랍으로 둘레를 둘러 마법이 더 퍼지지 않도록 했다.
“아직 착용자에게 이어지지 않았어. 격리하자.”
도현은 브론의 양손을 확인했다. 새로운 표식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현장 직원들은 겁에 질려 작업을 멈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도현이 말했다. “안전하게 물을 돌릴 준비가 끝난 다음에 계속합시다.”
일행은 검은 관의 오염된 물을 격리하고 임시 수로를 먼저 검사했다. 리벨은 서두르자는 사람들의 말보다 안전 확인을 우선했다. 한참 뒤 물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인부들이 차단 밸브로 돌아왔다.
브론은 젖은 장갑을 바라보며 푸념했다. “옷도 먹고살기 어렵겠습니다. 저주가 묻은 장갑은 버려야 하잖아요.”
“새 장갑 사 드리겠습니다.”
“그럼 두 켤레로 부탁합니다.”
“한 켤레요.”
“장갑은 한 켤레가 두 개입니다!”
리벨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다가 결국 웃었다. 그 뒤로 현장에 있던 누구도 검은 물을 맨손으로 만지지 않았다. 도현은 작은 실수 하나가 실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험이 되는지 다시 확인했다.
차단 밸브를 돌리자 검은 관에서 낮은 울림이 났다. 온실의 시계가 흔들리고 바깥 밭 위의 차가운 공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꽃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피어 있었다. 시간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도현은 하나와 함께 낮은 돌문 앞에 섰다. 문에는 매듭, 반달, 뒤집은 그릇 세 표식이 있었다. 아이는 먼저 뒤집은 그릇을 가리켰다.
“이건 먹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리고 매듭을 가리켰다. “이건 엄마가 돌아오면 풀려고 만든 거고.”
마지막 반달 모양을 가리켰을 때는 망설였다. “이건 잘 모르겠어. 다른 애가 만들었어.”
도현은 그 말을 모두 기록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 규칙의 시작이었다.
하나는 문 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문 옆에 적힌 오래된 문장을 읽었다.
[최초 수령을 거절한 자는 다음 수확까지 책임을 진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도현은 옆에 서서 물었다. “그럼 무슨 말을 했니?”
“엄마 몫을 먼저 가져가지 말라고 했어.”
문에 새 글씨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작았지만 이내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커졌다.
[거절 대상: 보호자의 미래를 담보로 한 선지급.]
[결실 자체에 관한 거절 기록: 없음.]
실렌은 그 문장을 보더니 뒷걸음질 쳤다. 백 년 동안 온실을 정당화한 문장의 뜻이 달라졌다. 도현은 곧장 환호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더라도 온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나, 문을 열어도 괜찮겠니?”
아이는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대신 다른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면.”
에스텔이 문장을 살폈다. “강제 대체 보관 규정이 남아 있어. 저 장치를 그대로 열면 다음 거절자를 찾을 가능성이 있어.”
도현은 손을 떼었다. “그럼 아직 안 엽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원망 섞인 탄식이 나왔다. 누군가는 여기까지 와서 또 멈춘다고 소리쳤다. 하나는 그 소리에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
도현은 군중을 향해 돌아섰다.
“저 아이가 열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또 담보로 잡는 문이면 우리가 바꿔야 합니다.”
그 순간 실렌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그는 자신이 백 년 동안 온실을 유지하겠다며 믿어 온 규칙을 바라봤다. 그리고 첫 수확 명부를 땅에 놓았다.
“대체 보관 대상을 정하는 관리자 권한은 내게 있소.”
“그러면 누군가를 지목하실 겁니까?” 루카스가 경계했다.
실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권한 자체를 반납하겠소.”
명부의 검은 글씨가 출렁였다. 먼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온실 지붕의 유리가 한 번 울렸다.
[대체 대상 지정 권한: 포기 접수.]
[보존 장치 유지 조건: 재심사.]
도현은 뒤쪽에서 하나가 작은 숨을 내쉬는 것을 들었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이제 누가 안에 갇혀야 하는지부터 묻는 규칙 하나가 사라졌다.
제9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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