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자신을 나이가 열한 살인 아이라고 말했다.
정확히는 '열한 살이었던 때를 기억한다'고 했다. 어제도 오늘도 자신은 열한 살이고, 내일이 와도 여전히 열한 살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온실 밖에서 가을이 몇 번 지났는지 몰랐다. 그곳에서는 봄이 끝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일 마지막에 기억나는 건 뭐니?” 도현이 물었다.
하나는 매듭을 만지작거렸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어. 사람들이 빵을 줬는데 그 빵을 받으면 엄마가 내일 돌아오지 못한대. 그래서 안 먹겠다고 했어.”
“누가 엄마가 못 돌아온다고 했어?”
“영수증이.”
아이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도현은 그 대답에 더 묻지 않고 따뜻한 물부터 건넸다. 하나는 물잔을 두 손으로 받았지만 마시지 않았다.
“이거 마시면 또 내일이 없어져?”
“그건 우리가 확인해야 해. 지금은 마시지 않아도 괜찮아.”
브론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방장님, 제가 마셔 보겠습니다.”
“당신한테 저주가 들어가는지 확인도 안 됐어요.”
“그럼 제가 먼저 마시고 이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데요.”
“그런 식으로 안전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괜찮아도 아이에게 괜찮다는 뜻은 아니죠.”
브론은 물잔을 내려놓았다. 대신 자기 손으로 가져온 밀봉 물병을 옆에 두고, 아이에게 필요하면 달라고 했다. 하나는 처음으로 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하나는 반죽을 구경한 뒤 온실 바깥 하늘을 그렸다. 얇은 종이에 둥근 지붕을 그린 다음 그 위를 파랗게 칠했다. 그러나 지붕 바깥의 색을 무엇으로 칠할지 몰라 망설였다.
“밖은 늘 파랗지 않아?”
“아침엔 회색일 수도 있고, 저녁엔 붉을 수도 있어.” 도현이 말했다.
“그럼 왜 사람들은 날 여기 두고 나갔어?”
도현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누가 결정했는지 일부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결정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아직 몰랐다. 그는 모른다고 말한 뒤, 아이가 원하면 밖의 하늘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안전하게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네가 나가고 싶다고 했을 때, 누가 너 대신 대답하는 게 옳지는 않겠지.”
하나는 종이를 접었다. 접힌 부분마다 유리 지붕이 여러 개 생겼다. 그녀는 종이를 펴며 말했다. “나는 날마다 똑같은 꽃을 봤어. 다른 꽃이 보고 싶으면 잘못하는 줄 알았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꽃을 보는 게 아니야. 밤에 문을 열어 두면 바람이 어떤 소리인지 듣고 싶어.”
도현은 아이가 기대하는 미래가 거창한 구원보다 작은 바람 소리라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는 입가에 웃음이 번졌지만 함부로 '금방 될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온실에서는 쉽게 한 약속이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었다.
하나는 마지막으로 그림 밑에 작은 그릇 하나를 그렸다. 그릇은 비어 있었다. 아이는 거기에 음식을 그리지 않고 동그란 빈자리를 남겨 두었다.
“이건 내가 고를 거야.”
도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텔은 아이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처음 구호 계약에 입회했을 때의 아이가 정말 눈앞에 있는지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름을 잃은 아이가 남겼던 매듭, 흰 화덕섬의 질문, 첫 수확을 거절한 기록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 네 이름을 누가 그렇게 지었니?” 에스텔이 물었다.
“여기 사람들이. 첫 번째니까 하나라고.”
“그럼 처음 이름은?”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을 시작하려는 순간 얼굴이 멍해졌다. 도현은 그녀에게 억지로 떠올리라고 하지 않았다. 이름을 지우는 저주에 걸린 사람에게 기억을 강요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는 소녀 리아를 통해 이미 보았다.
“이름은 나중에 생각해도 돼. 지금 어떤 이름으로 부르면 좋을까?”
하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냥 하나. 내일이 오면 바꾸고 싶어.”
하나는 오후가 되자 도현이 가져온 작은 휴대용 팬에 관심을 보였다. 손잡이가 접히는 물건이었다. 도현은 불을 붙이지 않은 상태로 팬을 보여 주고 왜 바닥이 두꺼운지 설명했다. 불의 열이 한곳에 몰리지 않아 음식을 천천히 익힐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빵도 안 타?”
“빵을 잘 뒤집으면 덜 타겠지. 그래도 가끔은 타.”
“태우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안 돼?”
도현은 팬을 잠시 내려놓았다. 아이에게는 실수한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유리 온실의 꽃은 시들면 다시 피었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돌아가지 않고 다음에 더 잘할 수도 있어. 탄 빵은 버려야 할 수도 있지만, 다음 빵을 다르게 구우면 되니까.”
하나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럼 실패한 빵이 있으면 혼나지 않아?”
“가게에서 불이 나면 큰일 나겠지만, 빵 하나 태웠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야.”
아이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아이의 백 년을 한 문장으로 위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신 반죽을 손으로 만져 보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보기만 할래.”
“좋아.”
도현은 밀가루와 물을 섞어 작은 반죽을 만들었다. 누르면서 생기는 자국, 손을 떼면 천천히 돌아오는 탄력, 너무 오래 주물렀을 때 달라지는 촉감을 보여 주었다. 아이는 식탁 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건 어제랑 달라질 수 있네.”
“응.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조금씩 다르지.”
하나는 자기 손가락의 세 번째 매듭을 만지며 말했다. “나도 조금 달라져도 돼?”
“그럼.”
그 짧은 대답 뒤에 아이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현은 말을 재촉하지 않고 반죽에 천을 덮었다. 부푼 반죽을 기다리는 동안에야 아이에게도 자기 속도로 다음 순간을 맞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그들은 아이의 진술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확정하지 않기 위해 실렌에게 오래된 출입 장부를 요청했다. 실렌은 마지못해 보관함 하나를 꺼냈다. 백 년 전 흰 화덕섬에서 동부로 이송된 아동 한 명의 기록이 있었다. 성명란은 비어 있었으나 발에 있던 화상 자국과 세 매듭의 표시가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이 기록은 누구의 동의로 만들어졌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실렌이 입술을 깨물었다. “왕실 구호위원회가 보호 아동으로 등록했습니다. 그 아이의 생존을 위해서였소.”
“보호와 격리를 같은 뜻으로 쓴 겁니까?”
“밖에 나가면 보존 마법이 풀릴 수 있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이에게 설명하고 선택하게 할 방법을 찾으셨어야죠.”
실렌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신은 그때 기근을 보지 못했어!”
“맞습니다.” 도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때의 선택을 쉽게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지금도 똑같은 선택을 계속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예요.”
하나는 그들의 말을 듣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빵이 싫어서 안 먹은 게 아니야.”
모두가 아이를 돌아봤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린 거야. 나한테 빵이 남았으면 엄마 몫도 남았는지 물었어.”
도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래전 식탁에 앉은 작은 아이가 요구한 것은 대단한 마법이 아니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에게서 미래를 미리 빼앗지 말라는 질문이었다.
“그럼 지금도 첫 수확을 거절하고 싶니?” 도현이 물었다.
하나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거절한 건 엄마의 내일을 가져가는 거였어. 봄이 끝나는 건 거절한 적 없어.”
그 말이 끝나자 온실의 시계가 짧게 울렸다. 리벨의 일지에 기록된 바깥 날짜와 안쪽 날짜 사이에 검은 줄이 생겼다. 줄은 몇 번 꿈틀거리다가 멈췄다.
실렌이 놀란 얼굴로 시계를 바라봤다. “저런 반응은 처음이오.”
“아이의 말을 시스템이 기록하려는 겁니다.” 에스텔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슨 효력을 가질지는 아직 몰라.”
하나는 갑자기 에스텔을 가리켰다. “그때 너도 있었지?”
에스텔은 숨을 멈췄다. “응. 나는 있었다.”
“엄마를 찾는다고 했잖아.”
에스텔의 눈이 붉어졌다. “그랬어. 그런데 찾지 못했어.”
“지금도?”
“지금도 행방을 확실히 알지 못해.”
도현은 에스텔을 위로하겠다고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하나가 오래 기다린 대답은 변명이나 위로가 아니었다.
저녁에 하나는 식당 작업실로 찾아왔다. 그녀는 빈 그릇 하나를 들고 도현에게 부탁했다.
“내가 언제 먹을지 내가 정할 수 있게 해 줄래?”
“그건 당연히 네가 정하는 거야.”
“그럼 나도 내일을 보고 싶어.”
도현은 그 말을 기록하려다 펜을 멈췄다. 방금 아이가 한 대답을 계약의 동의로 바꾸지 않기 위해서였다. 대신 하나가 원하면 내일 다시 물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안심한 표정으로 그릇을 품에 안았다.
다음 날 아침, 하나는 스스로 일행을 찾아왔다. 그녀는 매듭 세 개가 묶인 끈을 손에 들고 말했다.
“온실의 문 앞까지는 같이 갈래. 다만 거기서도 싫으면 돌아올 거야.”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 순간 리벨이 들고 있던 첫 수확 명부에서 검은 글씨 한 줄이 떨어져 나왔다.
[거절자의 거부 기록: 미사용 동의로 자동 변환.]
그 밑에 새 글자가 나타났다.
[원래의 거절 효력 확인 요청 가능.]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장부가 '거절'이라는 단어를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다.
제9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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