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유리 온실 안에서는 처음으로 시든 꽃이 떨어졌다.
리벨은 그것을 발견하고 한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얀 꽃잎 하나가 흙 위로 떨어졌고, 그 자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꽃잎은 위로 떠오르지 않았고, 다음 순간 같은 자리에 새 꽃이 피지도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꽃잎은 손에 닿자 부서졌다. 오래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생을 마친 꽃잎이었다.
“정말 끝나는 걸까요.”
도현은 그녀 곁에 앉아 시든 꽃의 줄기를 살폈다. 밑에는 아주 작은 초록색 씨방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끝내 열매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꽃이 졌다는 사실을 마법이 지워 버리지는 않았다.
온실의 중심 시계는 천천히 움직였다. 한 시간에 한 칸씩, 평범한 시계와 비슷한 속도로. 유리 지붕을 떠받치던 기둥에서는 오래된 물방울이 떨어졌고, 화단 곳곳의 잎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백 년 동안 완벽했던 봄의 풍경은 하루 만에 불균일해졌다. 어떤 꽃은 시들고 어떤 꽃은 남았다.
“보기 싫어졌다는 사람도 있겠어요.” 브론이 말했다.
“살아 있는 밭은 원래 이렇게 제각각이죠.” 도현이 대답했다.
실렌은 관리장 외투를 벗고 직원들 앞에 섰다. 그는 보존 마법의 운영 권한을 잠정적으로 내려놓았다는 사실과, 그동안 밀린 노동 대가를 외부 회계 감사로 확인받겠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이 바로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노동자는 그에게 소리쳤고, 어떤 이는 처음으로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갔다.
“제가 일한 날을 전부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허리 굽은 노인이 물었다.
“확인되는 만큼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루카스가 대답했다. “부족한 자료는 당사자 진술과 다른 기록을 함께 대조하겠습니다. 전부 보상할 수 있다고 지금 약속하지는 못합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직 없는 돈을 이미 지급한 것으로 적지는 않았다.
바깥 밭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달렌의 채소 가운데 서리를 맞았던 일부는 끝내 시들었지만, 새로 자라는 줄기에는 비정상적인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났는지 확인하려면 더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농부들은 이날을 기적의 날 대신 '관찰 시작일'이라고 적었다.
리벨은 온실 명부 첫 장에 외부 날짜를 쓰고, 그 옆에 온실 안에서 지난 실제 하루를 기록했다. 두 날짜가 처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웃었다.
“내일이 와도 이 줄을 지우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지하의 유리상자 열여섯 개는 그대로 있었고, 그 안의 그림자가 실종된 요리사들에게 속한다는 증거도 없었다. 레온의 음성을 닮은 복제 기록은 봉인 상태로 남겨 두었다. 왕국 전체에 연결된 저주 183,442명 역시 변하지 않았다. 도현의 손목에서도 석화와 기억의 저주는 떨어지지 않았다.
도현은 이 사실을 한 줄도 빼놓지 않고 장부에 적었다. 누군가 온실의 봄이 끝났다는 이유로 왕국이 구원됐다고 선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오전 왕도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아일린이 보낸 편지였다. 그는 동부 조사단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는지 확인했고, 왕궁에서 보류시킨 가상 식사 일곱 건이 아직도 도현의 이름으로 다시 등록되려 한다고 전했다.
도현은 서둘러 답장을 썼다. 이번 온실 조사로 확인한 사실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가설을 두 장으로 나누어 적었다. 봄의 반복이 멈춘 것은 관찰되었지만, 수확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거절 기록이 복원되는 징후가 생겼지만, 원제공자의 신원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왕국에 연결된 저주의 인원 수는 변하지 않았다.
“공주님이 기뻐하실까요?” 브론이 물었다.
“기뻐하실 만한 일도 있죠. 그렇지만 이 편지를 읽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에스텔은 답장 옆에 자신의 짧은 진술을 덧붙였다. 오래전 어린 거절자를 보호한다며 동쪽으로 보내는 결정을 막지 못한 책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몇 차례 문장을 고쳤다가 마지막에는 변명 없이 서명했다.
리벨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직원들의 첫 공동회의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당장 다음 주에는 어떤 재배실을 열지, 어떤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쉬게 할지 스스로 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실렌은 관리권을 내려놓았지만 시설 안전에 관한 기술 자료를 인계하기로 했다. 그의 잘못을 따지는 조사도 별도로 진행하기로 했다.
“어쩌면 저 사람은 앞으로 다시는 관리장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온실을 유지해 온 기술과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을 권한은 같은 게 아니니까요.”
도현은 작업실 앞의 낡은 나무 의자 하나를 수리했다. 한쪽 다리가 짧아 자꾸 흔들리던 것이었다. 접시 밑에 종이를 끼워 대충 맞추는 대신 나무토막을 덧대어 높이를 맞췄다. 브론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오늘은 왕국의 식탁을 고치러 온 요리사가 의자까지 고치는군요.”
“누군가 앉을 자리가 흔들리면 요리도 제대로 못 먹잖아요.”
그는 완성한 의자를 식당 바깥에 놓았다. 이름표를 붙이지 않았다. 누가 앉을지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침부터 유리문 앞에 앉아 있었다. 문 너머에서는 차가운 가을 햇빛이 돌바닥을 비췄다. 아이는 여러 번 문고리를 만졌다 놓았다. 도현은 다가가 서두르지 말라고 말했다.
“나가면 정말 바람이 차가워?”
“지금은 좀 그래.”
“내일은?”
“더 추울 수도 있고 덜 추울 수도 있겠지.”
하나는 한참 생각했다. “그럼 내일이 꼭 좋은 날은 아니겠네.”
“항상 좋진 않아. 그래도 네가 어떤 날을 보낼지는 네가 결정할 수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가을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녀는 잠시 놀라 눈을 감았지만 곧 문턱 밖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손에는 비뚤어진 매듭이 세 개 묶인 끈이 들려 있었다.
에스텔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지켜봤다. 백 년 전 자신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이제야 조금 이해한 얼굴이었다.
“엄마를 찾으러 갈 수 있을까?” 하나가 물었다.
에스텔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찾을 수 있는 기록부터 확인해 보자. 아주 오래전 일이라 살아 계시다는 약속은 할 수 없어. 하지만 그분의 이름과 이야기를 네가 알고 싶다면 함께 찾을게.”
하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응. 그럼 나도 도와줄게.”
그날 점심 도현은 온실 노동자와 바깥 농부들을 위해 커다란 식탁을 준비했다. 왕궁의 귀한 그릇은 없었다. 각자 가지고 온 대접의 크기도 달랐고, 수저가 모자라 나무 숟가락을 새로 깎아야 했다. 메뉴는 삶은 감자를 으깬 뒤 버터와 볶은 양파를 섞은 수프, 그리고 바깥 농가에서 산 보리로 구운 납작빵이었다. 온실에서 첫 수확을 거뒀다고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재료는 모두 원산지와 구입일을 적었다.
브론은 그릇을 나르다가 하나 옆에 앉았다. “오늘은 직원 식사 먼저 먹어도 됩니까?”
“당신은 직원 식사를 언제나 먼저 찾잖아요.” 도현이 말했다.
“오늘은 공식적으로 확인받고 싶어서요.”
사람들이 웃었다. 하지만 하나는 여전히 빵을 바라보기만 했다.
도현은 빈 그릇과 빵을 아이 앞에 놓고 말했다. “오늘도 안 먹어도 돼. 내일 다시 생각해도 되고.”
하나는 빵 한 조각을 들었다. 냄새를 맡고, 빵의 가장자리를 살짝 뜯었다. 그 순간 도현의 손목에 있는 기억 저주가 가늘게 떨렸다. 오래전에 잊어버린 어머니의 미역국 냄새가 잠시 떠오를 듯했지만 그는 그 감각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오늘은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날이 아니었다.
하나는 한입을 먹고 천천히 씹었다.
“맛있어.”
“그럼 됐어.”
“근데 엄마 몫은?”
도현은 다른 빵 조각을 작은 접시에 올렸다. “이건 남겨 둘 수 있어.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값을 청구하지 않고.”
하나는 그 접시를 자기 옆에 놓았다. 한 조각의 빵이 백 년의 기다림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오늘은 먹을지 말지를 본인이 결정했다.
오후에 리벨은 첫 수확 예정표를 떼어 냈다. 그 자리에는 날짜가 비어 있는 새 표를 걸었다. 실제 수확이 이루어지면 그날의 수량을 적기 위해서였다. 첫 줄은 아직 비어 있었다.
도현은 온실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하 보관실을 찾았다. 열일곱 번째 상자는 여전히 비어 있었지만 바닥의 글씨가 바뀌어 있었다.
[거절자의 침묵을 승낙으로 간주한 규정: 적용 중단.]
[첫 수확 연기 계약: 무효 여부 심사 요청.]
[원제공자 대면 조건: 한 단계 충족.]
그 아래에는 더 오래된 문장이 있었다. 도현은 먼지를 털어 내고 소리 내어 읽었다.
[원제공자의 대가를 지급한 자: 왕실 아님.]
[최초 지급 장부 보관지: 제0식탁.]
[최초 지급 대상: 왕국의 왕위 그 자체.]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왕실이 백성의 내일을 담보로 빚을 떠넘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장이 사실이라면 최초의 대가는 왕국의 사람들이 아니라 왕위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그 대가를 바꾸어 썼거나, 아주 오랫동안 숨겨 온 셈이다.
루카스가 숨을 삼켰다. “제0식탁이라니, 왕궁에도 그런 장소는 없습니다.”
“없다고 들은 거겠죠.” 도현이 말했다.
에스텔은 부러진 주걱을 꺼냈다. 쇠끝의 일곱 홈이 동시에 희미하게 빛났다. 그중 가장 깊은 홈에서 작은 글자 하나가 나타났다.
[왕위의 마지막 식사에 초대합니다.]
온실 유리문 바깥에는 가을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백 년 만에 봄이 끝난 자리에 진짜 내일이 찾아왔다.
그러나 왕국의 가장 오래된 식탁에서는, 이제 막 첫 번째 종이 울리고 있었다.
제10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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