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은 실렌에게 온실의 마법을 끄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꽃이 왜 열매가 되지 못하는지 알아야 했다. 마법을 끄는 순간 식물이 모두 죽는다면 당장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들이 있었다. 반대로 정상적인 수확을 막는 규칙만 골라 바꿀 수 있다면 누군가의 희생 없이도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리벨은 도현을 작은 실험 재배실로 안내했다. 이곳은 큰 온실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낮은 유리 건물이었다. 낡은 화분 열두 개가 줄지어 있었고, 벽에는 수십 년 동안 남긴 실패 기록이 꽂혀 있었다. 식물학을 배운 사람들의 필기가 눈에 띄었다. 흙의 양, 통풍, 빛, 물의 온도까지 바꿔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꽃은 피는데 결실 시점에 다시 꽃이 돼요.” 리벨이 말했다. “제가 시작하기 전부터 그랬대요.”
“마법 바깥의 같은 씨앗도 그렇습니까?”
“바깥으로 가져갈 수 없어요. 온실 소유라고 표시돼 있어서요.”
도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배 실험이 아니라 반출 계약부터 문제였다. 그는 실렌에게 시험용 씨앗 한 줌을 정상적인 절차로 구입하겠다고 신청했다. 실렌은 처음에 비웃었다.
“온실에서 수확하지 않은 씨앗을 어떻게 팔겠습니까?”
“처음 심었던 씨앗이 다 자랐다면 그중 이미 존재하는 종자 하나쯤은 확인할 수 있겠죠. 없다면 없다고 적어 주세요.”
실렌은 긴 침묵 끝에 외부에서 가져온 씨앗을 온실 안팎에 나누어 심는 실험만 허락했다. 원래 온실 씨앗의 반출은 거절했다. 도현은 그 조건을 그대로 기록했다.
실험에 사용한 것은 루덴에서 온 평범한 완두콩이었다. 북부 검은 밀밭을 떠나기 전 마르타가 선물한 씨앗 가운데 일부였다. 씨앗은 충분히 건조되어 있었고, 도현은 먼저 소량의 발아 여부를 확인했다. 리벨은 화분 네 개에 각각 같은 양의 흙을 넣었다. 두 개는 온실 안쪽, 두 개는 출입문 바깥에 놓았다. 통풍과 물 공급을 맞추고 차이가 나는 조건은 기록했다.
“이러면 언제 결과가 나옵니까?” 브론이 물었다.
“씨앗이 자라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안 가는 곳에 심었는데요?”
“그래서 비교하는 거죠.”
브론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제가 이기는 쪽에 감자 두 개를 걸겠습니다.”
“실험에 도박하지 마세요.”
“저는 과학에 투자한다고 생각했는데.”
점심때 도현은 리벨에게 온실의 향신 채소를 써도 되는지 물었다. 리벨은 관리장의 별도 허가를 받지 않고는 손대기 어렵다고 했다. 매일 자라는 잎들이지만 계약상 첫 수확의 일부이기 때문이었다.
“잎 한 장도요?”
“자라다 떨어진 잎조차 보관 수익으로 들어가요.”
도현은 창 밖의 분홍색 꽃잎을 보았다. 마당에는 떨어진 꽃잎이 쌓여 있었다. 바람에 날아갈 때마다 장부에는 '자연 손실 수확분'이라는 글씨가 늘었다. 실제로 사람이 먹지 못한 것을 수익이라고 부르는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실렌에게 꽃잎을 음식에 넣겠다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밖에서 구해 온 마른 허브와 콩으로 점심을 만들었다. 맛을 보던 리벨이 말했다.
“온실 안의 향을 맡다 보면 아주 짙은 것 같은데, 정작 허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어요.”
“향은 향이고 음식은 음식이니까요.”
도현은 재배실 옆에 작은 표를 세웠다. 바깥에서 가져온 완두콩의 수량, 물을 준 시간, 햇빛을 받은 방향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적었다. 리벨은 처음에는 쑥스러워했지만, 직원들에게 번갈아 관찰하도록 부탁했다. 한 사람이 혼자 기록하면 그 사람의 실수나 기대가 모든 결론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먼저 지켜볼게요.” 나이 어린 직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여기선 새싹이 나면 좋은 일이라고만 적었어요. 하지만 이번엔 잎이 몇 장인지, 얼마나 튼튼한지도 적을래요.”
브론은 그 직원에게 자기 코가 얼마나 예민한지 자랑하려 했다가 도현에게 제지당했다. 실험에서는 냄새도 관찰할 수 있었지만 사람마다 감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함께 적어야 했다.
“그럼 제 코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겁니까?”
“정확하다고 알려진 코도 가끔 치즈를 전부 먹어 치우잖아요.”
“먹은 양과 맡은 양은 다릅니다!”
리벨은 웃으며 새 표의 아래에 문장을 하나 더 적었다. '확실하지 않음.' 그 두 단어를 쓰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과거 온실 기록은 언제나 성공한 것처럼 끝나야 했지만 오늘의 표는 관찰 중이라고 적을 수 있었다.
점심 후 실험 재배실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안쪽 화분에 심은 완두콩 하나에서 새싹이 나오자 직원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싹이 네 잎을 펼친 다음 곧장 꽃을 피웠다. 그동안 줄기는 길어지지 않았고 잎은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바깥 화분의 씨앗은 아직 싹을 틔우는 중이었다.
“놀라운 성장입니다.” 실렌이 말했다.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빠르기는 합니다. 그런데 꽃이 필 만큼 식물이 자랐다는 증거인지는 모르겠어요.”
리벨이 잎을 살폈다. 안쪽 화분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마디가 몇 개 없었다. 자라난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를 흉내 낸 듯했다.
“꽃잎을 떼어 보아도 됩니까?” 그녀가 물었다.
실렌은 반대했다. “실험 자산이 손상됩니다.”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대신 떨어질 때까지 기다립시다. 다만 언제 떨어지는지 바깥 시계로 기록해 주세요.”
기다리는 동안 브론은 재배실 밖 작은 의자에서 깜빡 졸았다. 도현은 끓인 차를 놓아 주었다가 브론의 손등에 묻은 꽃가루를 보고 멈칫했다. 꽃가루는 여느 노란 가루처럼 보였지만 손으로 털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꽃을 만졌습니까?”
“아닙니다. 다만 잎이 지나가는 곳에 서 있었습니다.”
에스텔은 물로 씻기 전에 가루를 작은 솔로 털어 냈다. 흰 종이에 떨어진 가루는 바깥에서 가져온 꽃가루와 모양이 달랐다. 온실의 것은 작은 고리 모양을 하고 있었고, 미세하게 같은 방향으로 돌았다.
“아마도 실내에서 반복되는 마력이 섞인 거겠지.” 에스텔이 말했다. “하지만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니까 접촉을 피해야 해.”
리벨은 작업자들이 보호 장갑을 거의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온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꽃이 무해하다고 들었다는 이유로 매일 맨손으로 잎을 만졌다. 도현은 시설 책임자에게 보호 도구와 손 씻을 물을 충분히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여기 와서 식물을 못 먹는다고 불평만 하는 건 아닐 거예요.” 도현이 말했다. “일하는 사람 몸부터 지켜야죠.”
실렌은 소모품 비용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결국 여분의 작업 장갑을 꺼냈다. 사용 연한이 지난 장갑은 이미 갈라져 있었다. 루카스는 상태가 나쁜 장갑의 수량과 새로 필요한 물품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보호 장비 예산이 '첫 수확 이후 지급'으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호 장갑까지 내일로 미뤘군요.”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도현은 창밖으로 보이는 꽃밭을 바라봤다. 화려한 풍경이 사람을 지키는 데 필요한 가장 사소한 물건들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장갑 한 켤레를 손에 들고 말했다.
“큰 마법을 고치기 전에 이것부터 고칩시다. 손은 오늘 다치니까요.”
리벨은 새 장갑을 나눠 주면서도 자꾸 화분 쪽을 돌아봤다. 이곳에서 무엇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낯설었다. 화분이 이전과 똑같이 돌아간다면 자신들의 시도는 헛수고일까. 도현은 확답을 하지 않았다. 실패도 남겨 두어야 다음 사람이 똑같은 실험을 다시 처음부터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결국 꽃잎 하나가 스스로 떨어졌다. 접시에 담아 두자 화분의 윗부분에서 새 꽃이 피어났다. 동시에 낮에 떨어진 꽃잎이 원래 자리로 천천히 떠올랐다. 리벨은 숨을 삼켰다. 꽃잎은 공중을 거슬러 붙었고, 접시에는 빈자리만 남았다.
“되돌아갔어요.”
도현은 접시의 무게를 재 보았다. 잎 한 장의 무게만큼 줄어든 것이 맞았다. 온실의 마법은 식물을 계속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떨어지기 직전 상태로 되돌리고 있었다.
에스텔이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결실 직전의 순간을 고정해 둔 것 같아. 수확을 거절한 기록을 반복해서 읽히면서.”
“그렇다면 원래 거절자가 결실을 전부 막으라고 한 게 아닌지도 확인해야겠네요.”
그들은 실험 내용을 장부에 남겼다. 같은 조건에서 반복 실험을 해야 한다는 문장도 덧붙였다. 한 번의 기묘한 반응만으로 온실 전체의 규칙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저녁을 정리하던 리벨은 문득 도현에게 물었다.
“꽃이 내일을 만나지 못하는 거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죠?”
“우리도 내일을 만나야겠죠. 여기서 이미 날을 보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그때 온실의 북쪽 유리벽에 빗방울이 맺혔다. 실내는 따뜻했는데 창 밖에는 갑자기 서리가 내렸다. 바깥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소리를 질렀다. 원래 이날 밤에는 서리가 예보되지 않았다고 했다.
온실 한가운데의 커다란 시계가 처음으로 정각을 지나 움직였다. 바늘이 단 한 칸 이동하자 실렌의 사무실 창문에서 검은 종이가 쏟아져 내렸다.
[보존 봄 누출.]
[결실 시도 감지.]
[부족분 대체 수확 대상: 주변 경작지.]
도현은 재배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자신들의 실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밖의 밭에 서리가 내려앉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제9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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