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94화
PAYLUA ORIGINAL · 제94화

94화. 백 년짜리 내일의 임금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779자

오프라인 책장
실렌 관리장은 해가 지기 직전에 돌아왔다. 나이가 예순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짙은 녹색 외투에는 나뭇잎 모양의 은단추가 달려 있었고, 오른손에는 짧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온실의 젊은 직원들이 그를 보자 한꺼번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실렌은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사무실의 수확 예정표부터 확인했다. “오늘 외부인이 들어왔다지.” “왕실 조사 허가가 있습니다.” 루카스가 서류를 내밀었다. 실렌은 첫 줄만 읽고 서류를 돌려주었다. “조사는 좋습니다. 하지만 식물을 손상시키거나 예정 수확에 영향을 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선 사람들의 미지급 임금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실렌의 눈썹이 움직였다. “우리 노동자들은 숙식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공된 숙식과 지급하기로 한 임금은 별개 아닙니까?” “수확이 나와야 임금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수확을 백 년 동안 하지 못했다면서요.” 실렌은 잠시 침묵했다. 창 밖에서는 여전히 꽃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도 끝나지 않은 봄의 풍경을 그는 자랑스럽게 여겨 온 듯했다. “그동안 이 온실이 어떻게 유지됐는지 아십니까?” 그가 말했다. “왕국에 흉년이 들 때마다 이곳은 씨앗을 보존했습니다. 바깥 농경지가 얼어붙어도 여기서는 식물이 죽지 않았습니다. 첫 수확을 성급히 하면 보호 마법이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럼 언젠가 수확할지 결정한 기준은 있습니까?” “그날이 오면 알게 됩니다.” 도현은 관리장의 책상 위에 있던 작은 접시를 바라봤다. 접시에는 잘 익은 말린 사과 조각이 있었다. 바깥에서 가져온 사과였다. 실렌은 온실의 열매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의 수확을 먹고 있었다. “당신은 밖에서 난 과일을 드시는군요.” “당연하지요.” “그렇다면 노동자도 당장 받을 몫은 밖의 돈이나 곡식으로 받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실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이 없는 동안 일행 뒤에 서 있던 리벨이 손을 꽉 쥐었다. 루카스는 당일의 수프 영수증을 펼쳤다. 온실 장부가 그 식사를 노동자 임금과 상계하려 한 정황도 함께 보여 주었다. 실렌은 장부의 검은 문구를 보더니 불편하게 입술을 다물었다. “자동 회계의 오류겠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류를 바로잡는 절차는 어디 있습니까?” “이 시설의 장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전통이란 말로 수정 버튼이 없는 걸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브론이 작게 감탄했다. “주방장님, 오늘은 칼보다 말이 더 날카롭네요.” “조용히 해요. 지금 재료비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렌은 일행을 내쫓지 않았다. 대신 밤까지 온실의 운영 실적을 공개하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가 돌아서자 에스텔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에게서는 오래된 마법의 냄새가 나. 직접 걸었다기보다 오랫동안 그 안에 있었던 사람 같아.” “당사자에게 확인하기 전엔 적지 맙시다.” 도현이 답했다. 실렌과 헤어진 뒤 도현은 온실 한편의 작은 기념 정원을 찾았다. 식물을 보존하는 장소라면서 그곳에는 식물보다 낡은 작업화가 더 많았다. 먼지가 쌓인 장화 열세 켤레가 서로 다른 높이의 선반에 놓여 있었고, 각 신발 뒤에는 이름 없는 나무패가 꽂혀 있었다. 리벨이 설명했다. “이곳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물건이에요. 원래는 얼굴을 새겨 드리려고 했는데, 보관소가 이름을 공개하면 채권자가 찾아온다고 금지했어요.” 도현은 기념 정원을 한참 바라봤다. 이름을 숨긴다는 이유가 언제나 악의적인 것은 아닐 수 있었다. 채무가 상속인에게 넘어간다면 가족을 보호하려고 기록을 감췄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일했던 시간과 받아야 했던 대가도 함께 지워질 위험이 있었다. “여기 물건을 보신 가족들이 있습니까?” “가끔 와요. 어떤 분은 신발 한 짝을 가져가고 싶어 했는데, 시설 재산이라고 못 가져가게 했어요.” “그 사람의 신발인데요?” “온실에서 일할 때 지급된 거라서요.” 브론이 자기 발을 내려다봤다. 거친 여행길에서 두 번이나 수선한 가죽신이었다. “제 신발도 사장님이 사 주셨는데, 나중에 그럼 식당 물건입니까?” “월급에서 공제하지 않았다면 저희 가게 장부를 확인해야겠네요.” 도현이 대꾸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제 신발이 걱정됩니까?” “앞으로는 신발을 깨뜨리지 마세요.” 브론은 입을 벌렸다. “신발은 그릇처럼 깨지는 물건이 아닙니다!” 잠깐 웃음이 터졌지만 곧 사라졌다. 리벨은 가장 작은 장화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장화를 신었던 사람이 자신에게 재배법을 알려 준 노인이었다고 했다. 도현은 나무패 뒤쪽에 그가 직접 가르쳐 준 재배법을 적어 둘 수 있느냐고 물었다. 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이 빚의 장부 하나뿐일 필요는 없었다. 그날 밤 리벨은 일행을 직원 식당으로 안내했다. 좁은 창 너머로 흐릿한 달이 보였고, 난로 앞에는 온실 직원들이 마른 빵을 물에 적셔 먹고 있었다. 빵은 왕도에서 온 지 일주일이 지난 것이었다. 도현은 빵을 확인한 뒤 곰팡이가 핀 부분을 골라 내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재료인지 살폈다. 일부는 상태가 나빠 폐기했다. 직원들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도현이 남은 감자와 말린 콩을 내놓자 표정이 풀렸다. “식당에선 남기면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한 노동자가 말했다. “상한 걸 억지로 먹는다고 아낀 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는 남은 식재료로 걸쭉한 죽을 끓였다. 먼저 양파를 볶아 단맛을 내고 감자를 으깨 점도를 올렸다. 콩을 넣은 뒤에는 바닥이 타지 않도록 국자를 천천히 돌렸다. 다른 곳에선 흔한 조리법이지만 이 온실에는 낯선 풍경이었다. 식물이 자라는 곳인데 식사에 쓸 재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리벨이 첫 숟갈을 먹고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여기서 일했습니다. 한 번쯤 이곳의 토마토를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언젠가 나올 수도 있죠.” 도현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약속 때문에 오늘 굶으면 안 됩니다.” 식사가 끝난 뒤 직원 하나가 오래된 시간표를 가져왔다. 표에는 노동자들의 이름 대신 꽃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첫 세대 직원부터 지금까지 같은 위치에 같은 꽃이 찍혀 있었다. “제 할아버지가 쓰던 표시입니다.” 그가 말했다. “돌아가셨는데도 장부에는 아직 일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도현은 숨을 들이켰다. 죽은 사람에게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과 그 사람에게 일을 계속 시키는 기록은 다른 문제였다. 그들은 현재 살아 있는 직원 명단을 별도로 만들기 시작했다. 사망자와 실종자는 증빙을 확인하기 전까지 임의로 분류하지 않았다. 직원 식당의 불이 거의 꺼졌을 때 리벨이 낮은 목소리로 도현을 불렀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얇은 일기를 들고 있었다. 일기에는 작물의 높이나 꽃 핀 날짜보다 사람 이름이 많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식당에서 누가 빵을 더 달라고 했는지, 누구의 아이가 아팠는지, 다음 겨울 장갑을 누구에게 빌려주었는지 남겼다. “그분의 공식 근무 기록은 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첫 수확 뒤에 정산 예정이라고만 나와요. 돌아가신 뒤에는 이름도 지워졌어요.” 도현은 일기장 끝에 적힌 한 줄을 읽었다. '올해에도 꽃은 피었다. 수확은 내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벨은 오늘 처음 걸었다.' 그는 그 문장에서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이곳의 장부는 첫 수확 이전의 모든 시간을 의미 없는 기다림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아이가 걸음을 배웠고 누군가 가족을 잃었으며 사람들이 서로 밥을 나눠 먹었다. “이 일기를 증거로 내면 빼앗기지 않을까요?” 리벨이 걱정했다. “원본은 갖고 계세요. 허락하신 부분만 베껴서 날짜 대조에 사용합시다.” 리벨은 일기를 품에 안았다. 누구나 자신의 기록을 증거로 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 밤 처음으로 아버지의 글을 누군가와 함께 읽었다. 그게 무슨 법적 효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단순히 '미지급 노동 한 건'으로만 남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새벽 가까이 실렌은 약속한 장부를 들고 나타났다. 낡은 표지에는 '보존 운영의 이익'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두꺼운 장부를 펼쳐 보여 주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 온실이 백 년 동안 확보한 예정 수확이 이 정도입니다. 왕국에 다시 기근이 들면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도현은 숫자를 읽었다. 밀 열두만 포대, 감자 여덟만 자루, 토마토는 셀 수도 없었다. 그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실제 수확량: 0.] [계약상 보존 수익: 누적.] [미지급 임금: 첫 수확 시 자동 정산.] “미래의 계획이 사람을 살릴 수는 있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계획을 실적이라고 부른 거군요.” 실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신은 요리사라서 모릅니다. 나라를 먹이는 일에는 장기적인 희생이 필요합니다.” “요리사라서 압니다. 오늘 냄비에 없는 감자로 내일 사람을 배부르게 만들 수는 없어요.” 그때 장부의 맨 아래에서 날짜 하나가 떠올랐다. 백 년 전 보존 마법이 시작된 날이었다. 그 옆에는 운영 개시 승인자의 서명 대신 수확을 거절한 사람의 손바닥 표식이 찍혀 있었다. 도현이 물었다. “이 사람은 동의했습니까?” 실렌이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그 아이가 거절한 덕분에 온실이 살아남았습니다.” “거절한 덕분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실렌은 미소를 지으려다 실패했다. “첫 수확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니까요. 그 거절을 우리가 보존 계약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에스텔의 표정이 바뀌었다. 흰 화덕섬에서 거절이 반역으로 바뀌던 기록과 반대로, 이곳에서는 거절이 계약 동의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순간을 빌려, 백 년짜리 수확과 노동을 약속하게 만든 것이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9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9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