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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93화
PAYLUA ORIGINAL · 제93화

93화. 첫 수확을 거절한 사람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829자

오프라인 책장
아침이 오자 리벨은 일지에 두 개의 날짜를 적었다. 하나는 외부에서 가져온 달력에 표시된 날짜, 다른 하나는 온실의 시계가 알려 준 날짜였다. 외부 달력은 분명 하루를 넘겼지만 온실의 시계는 어제 저녁 여섯 시에서 아침 여섯 시로 돌아가 있었다. 첫 수확 예정일은 여전히 내일이었다. “이렇게 쓰면 혼나지 않겠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계속 혼나고 있어요. 제가 날짜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요.” 리벨은 두꺼운 장갑을 끼었다. “그래도 이제 다르게 적어 보고 싶어요.” 도현은 그녀가 두 날짜를 구분한 일지에 확인 서명을 남겼다. 외부 시간이 정확한지 별도로 대조할 필요는 있었지만, 온실 기록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일행은 전날 아이 하나가 가리킨 수로를 조사했다. 물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바닥에 그어진 검은 선은 돌 틈에 뿌리내린 가는 실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덩굴 같았지만 잎도 줄기도 없었다. 브론이 코를 가까이 대자 곧 재채기를 했다. “꽃 냄새 뒤에 눅은 빵 냄새가 있습니다.” “검은 국물에서도 비슷한 냄새를 맡았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젖은 흙 냄새가 훨씬 많아요.” 에스텔은 수로와 이어진 작은 배수구를 살펴보았다. 벽돌 사이에는 오래된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 새로운 문양이 겹쳐져 있었다. 처음 문양은 물을 나누어 주는 관개 장치로 보였다. 나중에 얹힌 문양은 물이 흐를 때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었다. “물을 마시는 것까지 계약으로 삼으려 한 것 같아.” 에스텔이 말했다. “삼으려 했다는 뜻은 아직 실행 전이라는 겁니까?” “어떤 구간에선 실행됐을 수 있어. 전체를 확인해야 해.” 도현은 가죽 장갑으로 덩굴을 건드리지 않고 그 아래에 흰 접시를 놓았다. 흐르는 물이 접시에 떨어지자 아주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첫 수확 등록 거절: 한 건.] [거절 시각: 보존된 첫 봄.] [거절자의 성명: 열람 불가.] 브론이 두 귀를 세웠다. “한 사람 있네요. 우리가 찾던 사람인가요?” “첫 수확을 거절한 기록인 건 맞습니다. 흰 화덕섬의 첫 빵을 거절한 사람과 같은지는 아직 모르죠.” “둘 다 처음 거절했습니다. 세상에 처음 거절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겠습니까?” “밥 먹지 말라는 말을 거절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브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더는 단정하지 않았다. 수로 끝에는 오래된 돌문이 있었다. 문 아래 높이에 어린아이 손바닥 크기의 홈 세 개가 나 있었다. 하나는 매듭 모양, 하나는 반달, 마지막 하나는 그릇을 뒤집은 모양이었다. 도현은 흰 화덕섬에서 본 매듭 그림을 떠올렸지만 바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장치가 표식만으로 사람을 인정한다면 다른 이의 표시를 훔쳐도 열릴 수 있었다. 리벨은 돌문을 보자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여긴 관리장이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 수확이 시작되면 저절로 열리는 곳이라고.” “백 년 동안 열리지 않았겠군요.” “그래서 위험하지 않다고들 생각해요.” 도현은 문에서 한 발 물러났다. “오늘은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누가 이 문을 관리하는지 확인해야겠어요.” 돌문 앞에서 돌아서던 도현은 수로 벽에서 얇게 갈라진 자국을 발견했다. 수리한 흔적이 여러 겹 남아 있었다. 가장 오래된 벽돌은 붉은 흙으로 붙였고, 그 위에는 회색 모르타르가 덧발려 있었다. 누군가 장치를 조금씩 고쳐 쓰면서 옛 문장을 덮은 셈이었다. 루카스가 그 틈에서 오래된 표지판 조각을 찾아냈다. 문장은 반쯤 지워져 있었지만 '물을 받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남아 있었다. 현재의 수로에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이름을 적는 마법이 달려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시설이었던 건 아닐 수 있겠습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적어도 먼저 만들어진 규칙과 나중 규칙이 다르다는 건 알겠네요.” 리벨은 벽의 길쭉한 긁힌 자국을 가리켰다. “여긴 제가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누가 지우려 해도 금방 다시 나타났죠. 관리장은 낡은 문구가 남아 있어도 운영 규칙은 바뀔 수 있다고 했어요.” “운영 규칙이 바뀔 수는 있겠죠. 문제는 누가 동의했는지입니다.” 브론은 물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늑대인간의 귀에 물 흐르는 소리는 사람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한참 귀를 기울이더니 고개를 들었다. “저 밑에서 사람 목소리 같은 게 들립니다. 지금 말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한 사람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읽는 소리입니다.” “어떤 질문입니까?” “'받겠습니까?'라고 들립니다. 그런데 대답은 없어요.” 도현은 물길 아래를 들여다봤지만 어둠만 보였다. 그는 섣불리 뚜껑을 열지 않았다. 소리만으로 사람을 가두었다고 결론 내릴 수 없었다. 일단 리벨에게 과거 유지보수 기록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이 돌아서자 돌문 옆에 걸린 낡은 사슬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덧씌워진 검은 실 가운데 하나가 쭉 늘어났다가 다시 짧아졌다. 누군가 대답 없는 질문에 오래도록 답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리벨에게 작업장 사람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낮은 선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젊은 노동자부터 허리가 굽은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름표에는 모두 직무가 있었으나 노동 시작일은 비어 있었다. 급여 장부에는 '첫 수확 이후 지급'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다린 기간이 얼마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제 아버지 때부터요.” 노인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농작물 대신 땔감으로 받았는데, 이젠 그것도 줄었소.” “노동을 그만두면 어떻습니까?” 노인은 손에 쥔 낫을 내려다봤다. “장부에 남은 급여가 전부 사라진다 하더군.” 브론이 으르렁거렸다. 도현은 브론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화가 나는 말이었지만 지금 당장 계약을 태워 버리면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대가까지 사라질지 몰랐다. 도현은 점심 식사를 함께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온실 재료는 사용하지 않고 외부에서 가져온 감자와 렌틸콩을 썼다. 일하는 사람이 열둘이었으므로 그릇도 열둘을 마련했다. 도현과 일행의 몫은 따로 계산했다.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한 뒤 리벨은 작은 공동 작업대에서 수프를 나눠 주었다. 노인이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걸 먹으면 내 첫 급여에서 빠지는 거요?”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온 재료이고 오늘 제공한 식사입니다. 나중 급여와 연결하지 않겠다고 여기 적었습니다.” 도현은 조리한 날짜와 제공자의 서명을 보여 주었다. 노인은 그래도 한참 종이를 읽었다. 마침내 수프를 한 숟갈 먹더니 허리를 숙이고 웃었다. “이렇게 따뜻한 게 얼마 만인지.” 식사를 나누는 동안 도현은 노인에게 평소 무엇을 먹었는지 물었다. 노인은 물에 불린 빵과 묽은 채소죽을 번갈아 먹었다고 했다. 도현이 평범한 재료를 챙겨 오지 않았다면 오늘도 그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예전엔 여기에 과일 향이 가득했소. 아직 어렸을 때라 정확하진 않지만.” “먹어 보셨습니까?” “아니.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들었지.” 노인은 자신의 말이 우스웠는지 한 번 웃었다. 그러나 도현은 웃지 않았다. 소문으로만 들은 수확을 인생 전체의 보상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의 표정이었다. 리벨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저녁마다 첫 토마토를 따면 소금을 뿌려 먹겠다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저는 그 말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도현은 수프를 저으며 잠깐 한국의 부엌을 떠올렸다. 자신도 어머니와 나중에 함께 먹겠다고 약속한 음식들이 있었다. 기억 저주 때문에 어떤 음식의 맛은 사라졌지만,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까지 전부 잊은 것은 아니었다. “첫 열매가 열리면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시군요.” 리벨은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 뒤 숟가락을 쥔 채 말했다. “이젠 제가 누구를 초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이 자기 그릇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날이 오면 날 불러 주시오. 아버지 몫까지 두 사람이 맛을 이야기해 보면 되잖소.” 리벨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도현은 남은 수프를 그릇에 담으며, 언젠가 열매가 열리지 않더라도 오늘 이렇게 같이 먹는 시간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브론은 눈앞의 그릇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수프는 식지 않는데 사람의 마음은 얼 수 있군요.” “조금 좋은 말이네요.” 도현이 말했다. “저도 가끔은 시인이 됩니다.” “감자 세 개 더 달라는 시는 사절합니다.” 웃음이 번졌고, 리벨은 그제야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그러나 점심이 끝난 뒤 노인의 이름표에서 글자가 한 줄 사라졌다. '첫 수확 예정 노동자'라는 글씨 아래에 새 문장이 적혔다. [외부 제공 식사 수령 확인.] [미지급 노동 대가와 상계 승인 대기.] 리벨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분명 오늘의 식사는 기존 급여와 관계없다고 적었는데, 온실의 명부는 그것을 빚을 갚는 수단으로 바꾸려 했다. “이런 일은 늘 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누가 밖에서 음식을 들여올 때마다요. 관리장은 굶지 않았으면 된 것 아니냐고 했어요.” 도현은 자신의 원본 영수증과 노동자들의 확인서를 나란히 놓았다. 같은 식사를 두고 두 기록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때 낮은 돌문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누군가 안쪽에서 손바닥으로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리벨은 그 소리를 듣자 속삭였다. “문 안쪽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레온이 주걱을 세 번 두드리던 신호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안에 레온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조금 전까지 움직이지 않던 돌문이 실제로 울렸다는 사실만 적었다. 문틈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배가 고프다고 말한 적 없어.” 이어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내일을 가져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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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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