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사람들은 흰 밀 싹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우물에는 지붕 그림자와 푸른 하늘이 뒤섞여 있었다. 그 위로 떠오른 싹은 누군가 던진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주 오래된 계절의 조각처럼 보이기도 했다. 브론이 긴 막대기로 싹을 건져 보려 하자 도현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먼저 우물 물을 쓰는 사람들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들은 공동 부엌의 화덕을 끄고 남은 수프를 뚜껑으로 덮었다. 우물가에는 출입 통제선을 쳤지만 사람들의 길은 완전히 막지 않았다. 루카스가 다른 물통을 가져와 시장의 급한 식수 공급을 이어 주었다. 도현은 흰 밀 싹을 꺼내는 것보다 수십 사람이 마시는 물을 안전하게 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정말 저 안에 저주가 들어 있습니까?” 한 상인이 물었다.
“모릅니다. 그래서 확인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상인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다른 상인에게 물을 나눠 주러 갔다. 시장은 어느새 단순한 관람객 무리가 아니라 서로의 일을 도울 줄 아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 있었다.
아일린은 왕실 검사관에게 우물 조사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을 내리는 동안 오른팔의 검은 왕관 무늬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는 잠시 휘청였지만 루카스의 팔을 잡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다고 거짓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아픕니다.”
공주는 작게 숨을 쉬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결정을 내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에요.”
도현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는 공주조차 왕국 전체의 저주를 자기 한 사람의 몸으로 떠안아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몸의 상태와 책임의 범위를 구별하려 했다. 도현은 그 변화가 성대한 기적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왕실 의무관이 우물 물을 소량 검사했다. 일반 독성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마법 반응이 있어 정밀 검사를 권했다. 에스텔은 싹 가까이에 불꽃을 피우지 않았다. 작은 마력에도 싹이 반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르빈은 우물 위로 떠오른 문장과 싹의 모습을 서로 다른 봉투에 그려 넣었다.
“이것이 원제공자의 귀환 증거입니까?” 브론이 물었다.
“귀환 장소를 가리키는 문장이 나온 건 사실입니다.” 세르빈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실제 돌아온다는 뜻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도현은 그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일은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이전에 누군가의 성급한 결론 때문에 사라진 사람들이 있었다.
점심 이후 특별 공개 검증의 임시 판정이 내려졌다. 구호위원회의 판정관 셋, 왕실 대표 아일린, 기록관리관 세르빈이 나란히 서류를 읽었다. 라우렌은 뒤편에 서 있었고 그의 흰 장갑 한쪽에는 검은 잉크 자국이 번져 있었다.
[자체 조달 재료로 제작한 63그릇 중 실물 제공 및 수령 확인 61그릇 인정.]
[남은 2그릇은 미수령으로 기록하며, 어떠한 채무도 발생시키지 않음.]
[이날 검증대에 나타난 가상 식사 7건의 제공 판정 보류.]
[백도현에 대한 신규 대리 징수 자동 승계 금지 유지.]
[검은 시럽 병의 출처 및 권한 사용 기록: 별도 조사.]
[왕국 전체에 설정된 기존 저주와 채무: 미해결.]
마지막 줄이 읽히자 사람들 사이에 실망한 숨소리가 났다. 어떤 이는 오늘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중얼거렸다. 도현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오늘의 저녁보다 내일 아이의 상태가 더 걱정인 사람도 있었다. 아픈 가족을 데리고 온 사람에게 오래된 계약의 한 조항이 정지됐다는 말이 얼마나 작게 들릴지 그는 알고 있었다.
“저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 같네요.” 브론이 말했다.
“어쩔 수 없죠.” 도현이 대답했다. “정말 아직 안 끝났으니까.”
그는 공개 판정문 옆에 검증에서 사용한 실제 조리법을 붙였다.
오전에 아이를 안고 왔던 젊은 어머니가 다시 광장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전날 의무실에 갔던 사람이다. 아이는 아직도 기운이 없었지만 잠이 조금 편해졌다고 했다. 의무관의 진료를 받고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는 설명을 들은 도현은 안도했다.
“어제 그 검은 국물을 먹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머니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음식이었으니까요.”
“그걸 먹지 않은 게 잘한 일이겠죠?”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지 고민하신 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확인한 건 그 검은 국물이 정상적인 식사로 인정될 수 없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릇에 기적이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니까요.”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기적이 있다면 아무것이나 잡고 싶었어요.”
도현은 잠시 아이를 바라봤다. “누구라도 급하면 그럴 수 있겠죠. 그래서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더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오늘의 조리법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아이의 상태에 맞는 음식은 의료진의 안내를 우선하라고 덧붙였다. 소박한 종이를 받아 쥔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왕국의 저주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 사람은 오늘 집으로 돌아가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내일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사루가 작은 당근 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첫날 시장에서 넘어졌던 수레를 고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당근이 오늘 검증에 쓰였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쓰려고 했는데요. 다른 감자로 바꿨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왜? 당근 맛이 없었나?”
“아뇨. 그때 받은 당근은 식당 저녁에 썼습니다. 그날 손님들이 맛있게 드셨어요.”
사루는 한참 도현을 쳐다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왕궁까지 가서 남의 밥값은 꼼꼼히 따진다더니, 내가 준 당근도 기억하고 있었구먼.”
도현도 웃었다. 그 기억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잃어버린 맛이 있더라도 오늘 누군가와 나눈 말을 적어 두면 조금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보리와 콩의 양, 물을 붓는 순서, 양파를 볶는 시간, 짠맛을 맞추는 방법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썼다. 왕궁의 비밀 조리법과 달리 사람들의 부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레시피였다.
빵집 주인이 그것을 보고 웃었다. “이게 진짜 남길 만한 증거군요.”
“오늘 먹은 사람이 내일 집에서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장사는 어떻게 하지?”
“더 맛있는 걸 만들어 팔아야죠.”
브론이 즉시 끼어들었다. “직원 간식을 무료로 제공하면 매출이 오르지 않을까요?”
“그건 연구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긍정적인 답변이군요!”
사람들이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가라앉은 뒤에도 도현의 마음에는 무거운 돌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손목에는 여전히 석화 저주와 기억을 먹는 저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잃어버린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레온과 마르타의 이름을 누가 검증 후보로 쓴 것인지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한 요리사 열여섯 명의 행방은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저녁 무렵 그는 식당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한 숟갈'의 주방은 다른 날보다 조용했다. 리아와 마리아는 남은 빵을 정리하고 있었고, 베네딕트는 내일 쓸 양파를 망에 담아 두었다. 에스텔은 창가에서 오래된 레온의 주걱을 닦고 있었다. 부러진 손잡이의 홈 하나가 유난히 반짝였다.
“오늘 레온의 이름을 또 봤어.” 에스텔이 말했다.
“그가 직접 신청한 건 아닙니다.”
“알아. 그래서 그 사실이 더 화가 나.”
도현은 옆에 앉았다. “우리가 찾으면 됩니다. 하지만 누구를 대신 보내지는 않을 거예요.”
에스텔은 잠시 주걱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그녀는 레온을 구할 방법이 있다면 다른 대가도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는 도현이 말한 방법이 느리더라도 올바른 길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현은 식당 장부에 오늘의 결과를 적었다. 실제 판매된 음식과 무료로 제공한 음식을 나눠 기록했다. 그리고 여백에 한 줄을 더 썼다.
[사람의 식사와 사람의 내일은 같은 물건이 아니다.]
그 문장을 끝내자 주머니 속 레온의 쇠숟가락이 떨렸다. 구리빛 표면의 일곱 홈 중 두 번째가 서서히 밝아졌다. 도현은 숟가락을 꺼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새 글씨가 떠올랐다.
[공개 검증 1차 성립.]
[최초 제공 계약의 검증 대상 일부 분리 성공.]
[보류 채무: 183,442명. 변동 없음.]
그 아래에는 오늘 우물에서 본 것과 같은 문구가 이어졌다.
[원제공자 회신 보관 장소: 동부 유리 온실.]
[원제공자 대면 조건: 첫 수확을 거절한 자를 동행시킬 것.]
도현의 손이 멈췄다. 처음 빵을 거절했던 사람, 흰 화덕섬에서 이름을 감춘 최초의 거절자. 서쪽 항구에서 바다를 건너 찾아갔던 질문이 이번에는 동쪽 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첫 수확을 거절한 사람이라….”
에스텔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 사람을 한 명 알아.”
“누구입니까?”
“정확히는,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봤던 장소를 알아.”
도현은 그녀를 바라봤다. “어디죠?”
에스텔은 부러진 주걱 끝에 손가락을 올렸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오래된 문양이 떠올랐다. 둥근 유리 지붕과 그 아래에서 자라지 못한 작은 새싹 하나.
“동부 유리 온실.”
그녀는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덧붙였다.
“우리가 아직도 그곳을 온실이라고 부르는 이유부터 설명해야겠네. 거기서는 백 년 동안 봄이 한 번도 끝나지 않았거든.”
도현은 창밖을 바라봤다. 왕도의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의 봄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내일이 사라졌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는 일단 식당 문을 닫기 전에 내일의 재료 주문을 확인했다. 여행은 여행대로 준비하되, 오늘의 장부를 빠뜨리지 않으려는 습관이었다. 브론은 그 모습을 보고 귀를 쫑긋 세웠다.
“또 여행입니까? 이번엔 배 안 타죠?”
“동쪽으로 간다니까 배는 아닐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저는 바다보다 밭이 좋습니다.”
에스텔이 작게 웃었다. “어쩌면 그곳에선 밭이 바다보다 더 무서울지도 몰라.”
도현은 장부를 덮었다.
“그럼 가서 확인해 봅시다. 이번에는 누가 봄을 가뒀는지.”
제9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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