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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86화
PAYLUA ORIGINAL · 제86화

86화. 어머니의 미역국 냄새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781자

오프라인 책장
왕궁의 검증대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판정관이 아니라 관람객이었다. 사람들은 검은 국물이 넘치는 그릇에서 두어 걸음씩 물러났다. 그러나 앞줄에 서 있던 젊은 어머니는 떠나지 못했다. 품에 안은 아이가 며칠째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왕실의 기적이 아이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새벽부터 줄을 섰다. “저 음식 한 숟갈이면 병이 낫는다던데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현은 아이의 얼굴을 봤다. 뺨이 붉고 입술이 말라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 어깨에 기대 힘없이 숨을 쉬었다. 그는 자신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저것이 무슨 음식인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드리면 안 됩니다.” “그럼 뭘 해야 해요?” “지금은 의무실로 가셔야 합니다. 물을 조금씩 먹일 수 있는지도 의료진이 확인해야 합니다.” 루카스가 근처 왕실 의무관을 불렀다. 의무관은 아이의 상태를 살핀 뒤 바로 안쪽 진료실로 데려갔다. 어머니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검은 그릇을 여러 번 돌아봤다. 도현은 그 시선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사람을 구한다는 거짓말이 얼마나 쉽게 절박한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지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라우렌은 어머니가 사라진 쪽을 지켜보다가 단상으로 돌아갔다. “검증을 계속하겠습니다. 저 그릇이 실제로 제공된 것인지 판정하십시오.” “제공자 확인이 안 됐습니다.” 세르빈이 말했다. “기록에 레온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레온은 지금 이 자리에 없습니다.” “마법이 대신 조리한 것은 아닌지요?” 도현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마법을 작동시킨 사람과 재료의 출처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 냄비를 잠시 화덕 옆으로 옮겼다. 도현이 움직이는 사이 광장 반대쪽에서 종소리가 났다. 왕실 구호소의 점심 배급이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평소 같으면 관람객 중 일부가 줄을 옮겼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검은 그릇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도현은 그걸 보며 불안해졌다. 기적을 기다리다 평범한 식사를 놓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다. “루카스 씨, 오늘 점심 배급이 몇 시까지인지 확인해 주세요.” “지금요?” “네. 여기서 오래 기다리는 사람이 많잖아요.” 루카스가 가까운 관리인을 불러 물었다. 배급소는 종이 세 번 울릴 때까지 문을 연다고 했다. 이미 한 번 울렸으니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도현은 관람객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검증은 당장 끝나지 않습니다. 식사해야 하는 분들은 먼저 다녀오세요. 나중에 와도 기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남기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저했다. 검은 음식이 자신들이 없는 사이 완성될까 봐 두려워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옮겼다. 도현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이상하게도 왕국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살았다. 이곳의 계약이 그렇게 가르쳐 놓았는지도 몰랐다. “검증장도 점심시간이 필요하군.” 베네딕트가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서류보다 먼저 밥을 먹어야죠.” 그는 검은 그릇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자신의 냄비를 보았다. 음식은 오래 기다린다고 더 안전해지지 않았다. 차가워진 수프는 재가열이 필요한지, 아예 버려야 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런 작은 판단들이 몸을 보호했다. 반면 검은 시럽은 오래된 재료라는 사실 자체를 권위처럼 내세웠다. 나이를 먹은 음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따뜻한 수프가 식지 않도록 천으로 감싼 뒤 검은 그릇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마법을 조사하다가 누군가 자기 음식을 실수로 먹는 일이 없게 하려는 조치였다. 베네딕트가 작은 유리판을 가져왔다. 구호 조리실에서 오래전 식품 품질을 확인하던 판이었다. 유리판은 김이 닿으면 얇게 물이 맺히는 평범한 물건이었다. 도현은 자신의 수프에서 올라오는 김을 그 위로 통과시켰다. 투명한 물방울이 맺혔다. 검은 그릇에서는 유리판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열이 없습니다.” 베네딕트가 말했다. “얼핏 끓는 것처럼 보이는데도요.” 도현은 유리판의 두 면을 함께 보여 줬다. 관람객들이 목을 길게 빼고 바라봤다. 실제로 뜨거운 수프에서는 김이 맺혔지만 검은 국물 위에는 아무런 흔적이 생기지 않았다. “요리사가 불을 쓰지 않을 수는 있죠. 차게 먹는 음식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 그릇을 음식이라고 부르려면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료는 검은 시럽입니다.” 라우렌이 말했다. “그 시럽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우렌은 입을 다물었다. 도현이 다시 물었다. “그 시럽이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습니까?” 장내가 조용해졌다.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라우렌은 검은 병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시럽이 흔들리며 가느다란 종소리가 났다. 도현의 손목에 있는 두 저주가 동시에 시큰거렸다. 갑자기 검은 그릇에서 달콤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볶은 참기름과 바다 냄새, 뜨거운 김.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몇 년 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향이었다. 한국의 집 부엌에서 어머니가 끓여 주던 미역국. 파와 마늘을 볶아 넣던 냄비의 온기. 그가 잃은 줄 알았던 것이 코끝에서 돌아왔다. “도현!” 에스텔이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향을 맡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남이 만들어 낸 환상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손목의 검은 실이 서서히 그릇 쪽으로 뻗었다. 그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른 뒤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속이 울렁거렸다. 어머니의 기억을 찾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 그 향을 붙잡으려 그릇을 집는다면 다른 대가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제가 원해서 맡은 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텔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대답하지 않아도 돼.” 도현은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기억 저주를 언제 어떻게 풀지는 앞으로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향을 미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브론은 곁에서 평범한 물컵을 건넸다. “주방장님, 물입니다. 이건 제가 아침에 길어 왔습니다. 물값도 계산했습니다.” 그가 물을 마시고 나서야 눈앞이 조금 맑아졌다. 라우렌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류를 넘겼다. “저 요리사는 중요한 감각을 회복한 듯한데요. 그게 기적이 아니라고 하실 겁니까?” “그 향을 맡았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하지만 제 기억이 회복된 건 아닙니다. 방금 무슨 일이 생겼는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뒤편의 작은 조리대에서는 베네딕트가 음식 시료 두 개를 봉인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낡은 면끈을 고집했다. 왕실의 마법 봉인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매듭도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도현은 시료가 담긴 그릇에 날짜와 온도를 적게 했다. 검은 그릇의 시료는 내용물을 떠내지 못했으므로 접촉 없이 관찰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남겼다. 베네딕트가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오래 살면서 맛보지 못한 요리를 기록해 두게 될 줄은 몰랐군.”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건 요리라고 부르기 어렵죠.” 도현이 말했다. “옛날에는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주방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갇혀 있던 요리사 레온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검은 조리실에 들어가던 날, 베네딕트는 그저 선배 요리사가 중요한 일을 맡은 줄 알았다. 이제 그 생각이 얼마나 편리한 변명이었는지 알았다. 도현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매듭 하나를 함께 묶었다. 지나간 잘못을 없앨 수 없더라도 오늘의 기록은 혼자 들지 않아도 됐다. 그때 메리안이 단상 아래에서 손을 들었다. 그녀는 오늘 검증대의 식기를 닦는 담당자로 배치되어 있었다.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손끝은 떨리지 않았다. “제가 확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라우렌이 고개를 돌렸다. “시종의 발언은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아일린이 곧바로 말했다. “증인 보호 절차를 적용하겠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발언할 수 있습니다.” 메리안은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제 밤 저 검은 병들을 보았습니다. 이름표가 붙은 시각이 모두 같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저장된 물건이라는 설명과 맞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라우렌이 외쳤다. 세르빈은 손에 든 작은 시계를 확인했다. 병의 봉인 끈에는 보관소에서 사용하는 은색 밀랍이 발라져 있었다. 그런데 그 밀랍은 지난주부터 도입된 것이었다. 오래된 병에 새 봉인을 했다고 해서 내용물까지 새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봉인이 오래전 그대로라는 주장은 이제 할 수 없었다. “보관 기록을 제출해 주십시오.” 세르빈이 라우렌에게 말했다. 라우렌은 그를 노려봤다. “당신이 기록관리관이면서도 왕실 기록을 의심합니까?” “기록을 믿기 위해서 확인하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 검은 그릇 아래에서 작은 유리 조각이 튀어 올랐다. 그릇 속 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현의 가슴속에는 허전함이 남았다. 마치 다시 한번 어머니를 잃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서둘러 손을 뻗지 않았다. 쌓인 손실을 되돌리겠다는 욕심 때문에 더 큰 희생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은 그들의 방법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에는 이전에 없던 이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대리 제공 담당: 카르도.] [현재 문서 사용 권한: 유효.] 도현은 그 문장을 루카스에게 보여 줬다. 오래된 왕실 재정 대리인의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서명만으로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누군가 아직도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는 유리 조각을 봉투에 넣으며 말했다. “이제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보다 먼저, 누가 이 이름으로 재료를 지급하는지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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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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