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 검증을 하루 앞둔 오후, 왕도의 하늘은 뜻밖에도 맑았다.
며칠 동안 비와 먼지에 짓눌렸던 지붕들이 햇빛에 번들거렸고, 빨랫줄마다 흰 천이 펄럭였다. '마지막 한 숟갈'의 낡은 간판도 바람에 맞춰 삐걱거렸다. 주방 창으로 들어오는 빛 아래 도현은 양파를 잘게 썰고 있었다. 도마 옆에는 무게를 잰 보리와 깨끗이 씻은 감자, 사과 껍질, 말린 버섯이 각각 그릇에 담겨 있었다.
“공개 검증 전날인데 왜 가게를 열었어요?” 브론이 물었다.
“내일 먹을 사람들 생각하느라 오늘 먹을 사람들 굶기면 안 되니까요.”
“그럴듯합니다. 그럼 오늘 직원 식사는 얼마나 일찍 나옵니까?”
“손님들이 먹은 다음이죠.”
브론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문 밖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났다. 리아가 마리아의 손을 잡고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속도를 맞추느라 천천히 걸었다. 마리아는 여전히 오래 걷기 어려웠지만 지난번보다 혈색이 좋아 보였다. 손목에는 검은 실의 흔적이 옅게 남아 있었다.
“오늘 빵 굽는다고 들었어요.” 리아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니?”
“엄마가 창문에서 버터 냄새가 난다고 했어요.”
마리아가 웃었다. “냄새가 달라졌더군요. 한동안 이곳에서는 요리보다 종이 타는 냄새가 더 많이 났어요.”
도현은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왕궁의 검증은 자신들을 기록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 식당이 처음 지키려고 한 것은 한 사람의 저녁이었다. 그는 리아에게 나무 국자를 건넸다.
“반죽이 부풀었는지 볼래? 만지지 말고 냄새부터 맡아 봐.”
소녀는 조심스럽게 반죽 위로 몸을 숙였다. “조금 새콤해요.”
“좋아. 발효가 되는 중이라는 뜻이야. 다 익은 빵하고는 냄새가 달라.”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에게서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아이는 이제 자기 기억만큼 남의 이야기도 소중하게 다루려 했다. 도현은 자신이 잃어버린 미역국의 맛을 잠깐 떠올렸지만 말하지 않았다. 오늘은 다른 사람의 빵을 잘 굽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점심 무렵 식당에는 평소보다 많은 손님이 왔다. 공개 검증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저주가 풀리는 음식이 정말 있느냐고 묻고, 어떤 이는 공주가 식당을 사들였다며 허풍을 떨었다. 브론은 표정 없이 메뉴판을 가리켰다.
“오늘은 평범한 보리 수프가 있습니다. 저주 치료는 상담도 없이 해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왕궁에서 하는 건 뭐야?” 한 상인이 물었다.
도현이 주방에서 나왔다. “식사가 실제로 제공되었는지, 그 대가를 누구에게 청구했는지 확인하는 검증입니다. 왕국 전체의 저주가 한 번에 사라진다고 약속하지 않았어요.”
상인은 실망한 얼굴로 앉았다. “그럼 대단한 잔치는 아니군.”
“맛있는 밥을 먹는 자리가 되도록 해볼 겁니다.”
주방의 따뜻한 김 사이로 사람들의 대화가 흘렀다. 어제 팔지 못한 감자를 어떻게 보관하면 좋을지, 아이가 입맛이 없어 걱정이라는 이야기, 서쪽 항구에서 소금값이 조금 내렸다는 소식. 왕국의 미래를 담보로 삼지 않아도 사람들의 하루에는 할 말이 많았다.
해 질 무렵 도현 일행은 별관으로 가기 전, 별관 앞 임시 광장에 작은 시험대를 세웠다. 사전에 허가를 받은 자리였다. 화덕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연기를 실제로 피워 봐야 했고, 시민들이 불 앞에 서더라도 참가로 간주되지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도현은 시장에서 산 감자와 양파로 수프를 끓였다. 양파를 갈색이 될 때까지 천천히 볶자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가 퍼졌다. 거기에 물을 붓고 보리를 넣어 걸쭉하게 끓였다. 감자는 모서리가 부서질 정도만 익혔다. 마지막에는 소금과 사과식초를 아주 조금 넣었다. 맛을 살리는 방법은 화려하지 않았다. 다만 사과의 산미가 버섯의 묵직한 향을 가볍게 만들었다.
브론이 숟가락을 들었다.
“맛을 봐도 됩니까?”
“오늘은 시식 담당으로 고용했습니다.”
“드디어 제 재능이 빛나는군요.”
그가 한입을 먹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평범한 감자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양파 볶는 시간이 중요해요.”
“그럼 양파에게 월급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현은 웃었다. “양파값은 이미 줬습니다.”
근처를 지나던 행상과 어린아이 몇 명이 냄새를 맡고 모여들었다. 도현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작은 컵에 담아 주었다. 받지 않겠다는 노인은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컵을 가리키며 가격이 없는 시식이라는 사실을 알렸고, 루카스는 먹은 수와 남은 수를 따로 기록했다.
그때 구경하던 아이 하나가 이상한 말을 했다.
그 아이는 낡은 모자를 눌러쓴 열 살쯤 된 소년이었다. 이름이 피노라고 했다. 아이는 수프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컵을 채우자마자 너무 뜨거워서 입을 대지 못했는지 작은 입술이 부풀어 있었다.
“뜨거우면 조금 식혀 먹어.” 도현이 말했다.
“빨리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우리 동네 배급소에서는 종 치고 나서 다 먹지 않으면 안 먹은 것도 먹은 걸로 적힌대요. 그래서 할머니가 언제나 급하게 드세요.”
도현은 수프를 젓던 손을 멈췄다. 피노가 말한 곳은 왕도 북서쪽의 오래된 구호소였다. 그 구호소는 노인들에게도 같은 시간표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오늘은 그런 규칙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두르다 입천장을 데면 안 되니 한참 식혀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럼 천천히 먹으면 제가 더 많이 먹을 수 있나요?” 피노가 물었다.
“한 그릇은 한 그릇이지.”
“그런데 천천히 먹으면 더 오래 먹는 것 같거든요.”
도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좋은 방법이다.”
아일린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왕실은 배급의 효율을 높인다는 이유로 식사 시간을 제한했지만, 그 효율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검토한 적은 드물었다. 그녀는 루카스에게 피노가 말한 구호소의 규칙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장 폐지하실 겁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먼저 실제 어떻게 운영되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아이 한 사람의 말이 틀렸다고 가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의 규칙을 바꾸는 것도 조심해야 하니까요.”
그녀는 말끝을 맺고 자신이 손에 쥔 물컵을 바라봤다. 왕실의 연회에서는 한번도 식사를 서둘러 끝내 본 적이 없었다. 왕궁 밖에서는 뜨거운 수프를 식힐 시간조차 빚처럼 계산되고 있었다.
“아저씨, 저기 빈 의자에도 누가 먹고 있어요.”
도현이 돌아봤다. 일곱 번째 화덕 앞에 놓인 의자였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의자 앞의 접시에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현이 냄비를 확인했다. 자신들이 끓인 수프는 아직 넉넉했고, 그 의자에 가져다 놓은 사람도 없었다.
아일린이 다가와 접시를 내려다봤다. 검은 왕관 무늬가 소매 아래에서 붉게 번졌다.
“저건 왕실의 식사 기록입니다.”
“음식이 없는데 기록만 있는 겁니까?”
“가끔 그래요. 어릴 때도 그런 일이 있었죠. 사람이 떠난 자리인데도 저녁 명단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요.”
도현은 접시에 손대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 있던 세르빈을 불렀다. 세르빈은 오래된 장부에서 해당 시간의 임시 식권 번호를 찾았다. 아직 아무도 발급받지 않은 번호였다. 그런데 장부에는 벌써 수령 확인 표시가 생기고 있었다.
[시험 식사 1인분 제공 완료.]
[대가: 다음 날의 식사 시간.]
“우리가 제공하지 않은 음식을 누가 기록한 거죠?” 루카스가 물었다.
장부의 잉크는 보관소의 그것과 비슷하게 새까맸다. 세르빈의 손등에 소름이 돋았다. 어제 본 살아 있는 장부가 별관까지 손을 뻗친 것이었다.
“실물과 기록을 동시에 검증하겠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는 빈 접시 옆에 자기가 끓인 수프 한 컵을 놓았다. 접시 안의 김은 잠깐 흔들리다가 냄비의 김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브론이 코를 킁킁거렸다.
“저쪽은 아무 냄새가 없어요. 따뜻한 물도 아니고 빵도 아닙니다.”
“그럼 실물 음식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일린이 왕실 임시 조리 허가증에 도장을 찍었다. ‘실물 미확인. 제공 판정 유보.’ 검은 글씨가 접시 위에서 떨렸다. 마치 누군가 의자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금속이 긁혔다. 그러나 아일린은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 하얀 김이 꺼졌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의자는 그 상태로 남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겁을 먹었으나, 도현이 남은 수프를 나눠 주자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그 의자도 배고플까요?” 한 아이가 물었다.
“의자는 배가 없지.” 브론이 대신 답했다.
“그럼 사람을 대신해서 먹으면 안 되겠네요.”
도현은 아이의 말을 수첩에 적었다. 아주 당연한 사실이라도 이곳에서는 몇 번이고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밤이 되어 장작불을 모두 끄자 별관의 일곱 화덕 가운데 여섯 개는 식었다. 마지막 한 개에서는 불씨가 없는데도 검은 그림자가 올라왔다. 그림자는 식탁 위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미수령 식사 검출.]
[검증 본식으로 자동 이월.]
도현은 그 문장을 읽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누군가 내일의 음식에 오늘의 거짓 청구를 섞어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루카스에게 말했다.
“오늘 남긴 남은 수프의 무게와 양을 다시 재 주세요. 내일 누가 수프를 만들었다고 주장할지 모르니까요.”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지켜보는 데는 익숙했지만, 자신이 먹은 것을 직접 증언하는 데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내일의 검증은 요리 기술보다도 그 차이를 드러내는 자리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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