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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80화
PAYLUA ORIGINAL · 제80화

80화. 새로운 식탁의 초대장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929자

오프라인 책장
공개 심리의 첫 판정문이 나온 것은 비가 그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왕궁 지붕의 푸른 기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내성의 큰길에는 새로 뿌린 모래가 반짝였다. 백도현은 '마지막 한 숟갈'의 주방에서 국자를 닦다가 루카스가 가져온 봉투를 받았다. 사흘 동안 지하 회랑을 드나든 뒤라 자기 식당의 밝은 창문이 낯설었다. 브론은 그 사이 밀린 설거지를 하면서 입으로는 자신이 한 번도 쉬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원래 쉬고 싶다던 종업원은 설거지하면서도 이렇게 말을 많이 합니까?” 도현이 물었다. “말은 쉬는 데 포함되지 않잖아요.” 에스텔이 웃었다. 그 웃음에는 오래전 레온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사람 특유의 슬픔이 남아 있었지만, 한동안 계속되던 죄책감의 그림자는 조금 옅어졌다. 루카스가 봉투를 펼쳤다. [왕실 구호위원회 특별 공개 심리 임시 결정.] [차기 대리 징수자 백도현의 자동 승계 절차: 효력 정지.] [미수령 식사의 후손 자동 청구: 왕궁 관할 내 신규 등록 일시 중지.] [최초 제공 계약의 원본 및 개정 이력: 추가 조사.] [기존 저주 및 왕국 전체 채무: 미해결.] 도현은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정확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일이 해결됐다고 거짓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 자신에게 남은 석화와 기억 저주도, 아일린의 손에서 움직이는 왕관 저주도 여전했다. “일시 중지라면 언제까지입니까?” “특별 공개 조리 검증이 열리는 날까지입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그 날은 누가 정했는데요?” “왕실 구호위원회가 신청했고, 임시 결정 심리관이 조건을 붙였습니다. 아직 최종 날짜를 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판정문부터 보존하죠.” 도현은 루카스가 가져온 사본을 장부에 끼웠다. 이번에는 ‘승리’라고 적지 않았다. [자동 승계 정지. 신규 청구 일부 중지. 효력 범위 왕궁 관할. 외부 지역 미확인.] 그것이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의 전부였다. 아일린은 한 시간 뒤 식당에 도착했다. 왕실 마차는 골목 끝에서 멈췄고 공주는 루카스와 함께 걸어 들어왔다. 이전처럼 시종들이 앞을 비우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장갑을 낀 그녀의 오른손은 아직 불편해 보였지만 얼굴에는 지친 미소가 있었다. “오늘도 수프가 있나요?” “물론이죠. 양은 얼마나 드시겠습니까?” “작은 그릇으로요. 더 먹고 싶으면 말씀드릴게요.” 브론이 주방으로 뛰어갔다. “작은 그릇 하나요! 공주님은 오늘도 작은 그릇!” 도현이 그를 불렀다. “고객의 식사량을 그렇게 온 동네에 알리지 마세요!” “우리 식당에 방음벽은 없잖습니까.” 사람들이 웃었다. 아일린은 작은 그릇을 받으면서도 장갑을 벗지 않았다. 식사에 마법을 섞지 않았는데도 병이 낫기를 기대하는 눈빛이 주변에서 자꾸만 느껴져 부담스러웠다. 도현은 그런 기대를 만들지 않으려고 그저 수프에 들어간 재료를 설명했다. 보리와 감자, 볶은 양파, 작은 버섯 몇 조각. 공주는 숟가락을 들고 한참 향을 맡았다. “왕궁 밖에서 먹는 음식은 늘 다르군요.” “배가 고픈지부터 물으니까요.” 도현이 대답했다. 공주는 한 숟갈을 먹은 뒤 식탁을 내려다봤다. “저는 어릴 때 늘 그릇을 남기지 말라고 배웠어요. 왕실 사람이 밥을 남기면 백성의 굶주림을 모른다고요.” “낭비하지 않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먹는 것과 남는 양을 미리 줄이는 건 다르죠.” “이제야 그 말을 알겠어요.” 그녀는 그릇의 절반을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작은 그릇을 고른 덕분에 남은 양도 적었다. 브론은 말없이 접시를 치웠다. 오늘만큼은 그녀의 식사량을 외치지 않았다. 점심 무렵 식당에는 두 번째 손님들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항구에서 소금을 운반하다 다리를 다친 남자였고 다른 사람은 그와 함께 온 나이 든 여인이었다. 둘은 식당 한쪽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오늘의 수프가 얼마인지 물었다. 브론은 이전처럼 에스텔의 기분에 따라 가격이 바뀌는 일은 없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오늘은 보리 수프 한 그릇에 동화 둘입니다. 빵은 별도고요. 적은 양을 드시겠다면 그만큼 줄여 드립니다.” 여인은 가격표를 오래 바라봤다. “여기서는 밥 먹고 나면 내일 일할 날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브론이 당황했다. “아뇨. 동화 둘이면 끝입니다.” “정말입니까?” 도현이 주방에서 나왔다. “네. 추가로 해야 하는 일도 없고요. 음식의 양이 모자라면 주문 전에 말씀해 주세요.” 남자는 동전주머니를 풀며 말했다. “북부에서 돌아온 누군가가 이곳 얘기를 했습니다. 마르타라는 요리사가 다시 빵을 굽는다면서, 왕도에서까지 어떤 식당이 허위 배급표를 따졌다고 하더군요.” 도현은 웃었다. 사람들의 소문은 언제나 실제 사건보다 커지거나 작아졌다. 그 소문에 기대어 전능한 식당인 척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해결한 건 아닙니다. 마르타 씨는 돌아왔지만 다른 분들은 아직 찾고 있어요.” “그렇군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밥값이 얼마인지 정해 놓은 가게라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들은 수프 두 그릇을 먹었다. 남자는 조금 더 소금을 넣었고 여인은 후추를 빼 달라고 했다. 도현은 그 요청들을 장부에 적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취향이었지만, 식당이 손님에게 맞춰 움직일 수 있다는 표시였다. 그들이 나간 뒤 브론이 주방장에게 물었다. “우리가 왕궁에서 그렇게 싸웠는데 손님들은 동화 둘이 가장 중요하군요.” “밥을 먹으러 왔으니까요. 사람들에게는 큰 비밀보다 오늘 저녁의 가격이 더 절실할 때도 있어요.” 브론은 한동안 생각하다 메뉴판을 똑바로 고쳐 세웠다. 장부와 계약서를 뒤지는 동안에도 이 식당은 누군가의 저녁이 되어야 했다. 식당 문이 열리자 낯선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고운 회색 외투를 입고, 비가 오지 않는데도 검은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계산대에 작은 금화를 놓았다. “백도현 주방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입니다.” “왕실 공개 조리 검증의 참가 절차를 안내하러 왔지요.” 루카스가 남자의 표찰을 확인했다. 왕실 구호위원회 외부 조정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은 라우렌. 공식 파견장에는 서명이 있었지만 누가 그 파견장을 승인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했다. “일시 중지 결정이 나오자마자 검증을 요구하는군요.” 아일린이 말했다. 라우렌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검증을 빨리 끝내야 구호 식사의 제공이 정상화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요리사 일곱 명이 필요한 겁니까?” 도현이 물었다. “첫 식탁의 일곱 접시를 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음식을 완성하고, 그 가운데 가장 올바른 제공을 고르는 절차입니다.” “손님을 누가 정합니까?” “위원회에서 정합니다.” “그 손님에게 먹을지 말지 결정할 권리는 있습니까?” 라우렌은 웃음을 거뒀다. “구호를 기다리는 분들이 거절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있겠죠.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고, 배가 부를 수도 있고, 원치 않는 조건이 붙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라우렌은 외투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그 종이에는 두꺼운 붉은 테두리가 쳐져 있었다. [왕실 공개 조리 검증 예정.] [참가 후보: 7인.] [검증 내용: 최초 제공 계약의 재현 및 정산 주체 확인.] [특이사항: 최종 수령자가 음식을 거절하면 대체 수령인이 지정됨.] 도현은 맨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대체 수령인이라는 건 누구입니까?” “규정에 따라 선택됩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아도요?” “주방장님은 모든 규정에 허락부터 받으려 하시는군요.” “사람에게 먹이려는 규정이라면 그래야죠.” 라우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금화를 그대로 둔 채 나가려 했다. 도현은 그를 불러 세웠다. “아직 주문 안 하셨습니다. 돈은 돌려받으세요.” “수고비로 두십시오.” “무슨 대가인지 모르는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브론이 금화를 남자의 손에 돌려주었다. 라우렌은 잠깐 동요한 듯했지만 곧 모자를 눌러 쓰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도현은 마차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가게 밖을 바라봤다. “참가하실 겁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그냥 참가하진 않겠습니다. 우선 손님이 강제로 먹지 않도록 조건부터 바꿔야죠. 그리고 일곱 명 중 누가 어떻게 뽑혔는지도 공개해야 합니다.” 에스텔은 식당 장부를 꺼냈다. 오래전에 지워진 요리사들의 이름이 적힌 장부였다. 지금까지 구한 마르타 한 명과 확인되지 않은 열여섯 명의 빈자리가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 장부를 도현 앞으로 밀었다. “저쪽은 네가 참가하길 바라는 것 같아. 그러니 네가 선택해서 들어가는지, 밀려 들어가는지부터 구분해야 해.” “맞습니다.” 도현은 라우렌이 놓고 간 안내문 한 장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공개되지 않은 참가 조건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각 참가자는 검증에 사용할 식재료를 위원회로부터 지급받는다.] [수령 시 해당 식재료의 원제공 책임을 인수한 것으로 본다.] “이거군요.” 도현이 말했다. “뭔데요?” 브론이 물었다. “요리 대회를 가장해서 책임을 넘기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재료를 받기만 하면 원래 제공자의 빚까지 떠맡게 만드는 거죠.” 아일린이 문서를 내려다봤다. “그러면 검증에 동의하기 전에 재료부터 확인해야겠네요.” 도현은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직접 재료를 구해 볼 겁니다. 요리 대회가 열리더라도 사람의 미래 대신 밀가루와 물을 쓰겠다는 걸 보여 줘야 하니까요.” 그날 밤 왕궁 구호위원회의 안쪽 창고에서는 검은 시럽을 담은 병 일곱 개가 진열되고 있었다. 병마다 서로 다른 요리사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한 병의 라벨에는 이미 백도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를 관리하던 흰 장갑의 사내가 기록을 넘기며 말했다. “이번에는 저 요리사가 무엇을 거절하는지부터 확인해라.” 그는 병에 손을 댔다가 잠깐 멈췄다. 검은 시럽 속에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사내는 병을 봉인했다. 그리고 이달 들어 처음으로 혼잣말을 했다. “첫 번째 제공자가 돌아올 시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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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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