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에서 가장 차가운 곳은 지하 저장실이 아니었다.
제7조리실 근처의 복도를 지키는 시종들은 모두 새벽마다 식사 명단을 확인했다. 명단에는 사람보다 그릇 수가 먼저 적혀 있었고, 그릇 수보다 미수령분이 더 크게 표시됐다. 누군가 허기를 말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 남은 몫이 계산되는 곳. 도현은 그 복도를 지나면서 사람이 먹지 않은 음식의 냄새보다 더 불쾌한 냄새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베네딕트는 왕궁 주방의 좁은 부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네딕트가 내민 것은 작고 둥근 접시 일곱 개였다. 각 접시에는 미세한 칼자국이 있었지만 모양은 같았다.
“이 접시들이 오늘 만찬실에서 나온 것과 닮았네.”
“원래 왕궁의 접시였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한때 그랬지. 하지만 열두 해 전부터 사용을 금지했어. 담는 음식이 저절로 차가워진다는 이유였네.”
“마법이 걸린 접시입니까?”
“당시에는 그렇게 기록했네. 시험해 보고 싶은가?”
도현은 한참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단, 사람에게 먹이지는 않는 조건으로요.”
베네딕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늘 급박한 순간이면 도현이 요리사보다 조사관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식으로 사람을 실험하지 않겠다는 원칙만큼은 요리사의 것임이 분명했다.
왕궁 주방의 화덕 앞에 서자 도현은 실험에 필요한 물을 먼저 끓였다. 두 개의 냄비에 같은 양을 채우고 하나는 장작 불 위에, 다른 하나는 여전히 따뜻한 돌판 위에 놓았다. 직접 불을 맞은 물과 남은 열로 데워진 물의 온도가 달랐고 그 차이를 정리해 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접시의 마법 탓인지 주방 조건 탓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베네딕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왕궁이라 냄비가 충분하네. 자네 식당에서는 이렇게 못 하겠지.”
“맞습니다. 우리 식당은 그릇 일곱 개만 더 꺼내도 브론 씨가 한 개쯤 깨뜨리니까요.”
“그건 이제 옛날 얘기입니다!” 브론이 멀리서 항의했다.
“어제 접시 하나 떨어뜨렸잖아요.”
“그건 접시가 미끄러진 겁니다. 제 실수가 아니라 바닥의 실수라고요.”
베네딕트가 웃었다. 그의 웃음이 주방 바닥을 가득 채우자 근처 견습생들이 힐끗 쳐다봤다. 이곳에서는 최근 웃음보다 경고 종을 듣는 날이 더 많았다. 견습생 중 하나가 도현에게 질문했다.
“마법이 없는 사람도 이런 시험을 할 수 있습니까?”
“온도계와 시계만 있으면 일부는요. 마법의 원리를 모른다고 해서 실제로 한 일을 확인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요.”
견습생은 기뻐하며 깨끗한 걸레를 가져왔다. 그는 이름이 이반이라고 말했다. 새벽마다 저장고의 수치를 적는 일이 자신의 첫 업무라고 했다. 원래는 늘 같은 답을 적어야 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그 수치가 누구의 음식과 연결되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러면 제가 오늘 물의 온도를 적어 봐도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다만 저희가 적은 것과 다르면 고치지 말고 둘 다 남겨 주세요.”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집 난 작은 수첩에 시각을 쓰고, 온도계 눈금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 과정은 느렸다. 그러나 그가 눈금을 잘못 읽자 도현이 직접 다시 재는 법을 설명했고, 누구도 그 실수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베네딕트는 수프를 담기 전 도현을 불렀다. “자네 손목은 괜찮나? 아까는 국자를 놓칠 뻔했네.”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왼손이 굳어서 힘 조절이 잘 안 됩니다.”
“그럼 칼질은 내가 하지. 자네는 비교표를 만드는 게 낫겠어.”
도현은 처음에는 주방장의 칼을 내려놓는 일이 어색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조리 과정임을 배워 가고 있었다. 베네딕트가 일정한 두께로 감자를 썰었고, 브론은 재료가 어느 솥에서 왔는지 다른 냄비와 섞이지 않게 감시했다. 이반은 수프가 완성될 때까지 꼬박 한 시간 동안 옆에서 시간을 적었다. 이들의 이름을 식사 장부에 적는 순간, 음식을 만든 사람이 왕실 인장 하나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도현은 느꼈다.
둘은 같은 크기의 접시 여덟 개를 조리대에 나란히 놓았다. 금지된 일곱 개와 평범한 접시 하나였다. 베네딕트가 보리 수프를 같은 양만큼 담았다. 루카스는 각 그릇의 온도와 담은 시각을 적었다. 브론은 그릇의 위치를 바꾸는 일을 맡았다. 혼동을 피하려고 접시 바닥에 번호를 붙였다.
“어디서부터 이상해지는지 먼저 보죠.” 도현이 말했다.
수프는 똑같이 김을 냈다. 일 분쯤 지났을 때 평범한 접시의 김은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두 번째 금지 접시에서는 갑자기 빛깔이 흐릿해졌다. 국물이 얼지는 않았다. 손끝으로 옆면을 만져 보니 미지근했다. 그런데 수프의 향이 사라졌다. 브론이 코를 가까이 대더니 두 귀를 뒤로 눕혔다.
“이상합니다. 보리 냄새가 없어요.”
“그릇에 아무것도 안 담긴 것처럼요?”
“아뇨. 분명 뜨거운 수프가 있기는 해요. 그런데 누군가 이미 먹은 뒤의 그릇에서 나는 냄새로 바뀌었어요.”
도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실제 조리된 음식의 상태와 기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릇을 더 오래 두지 않았다. 먼저 각 접시의 상태를 적고, 여전히 남아 있는 수프를 폐기 용기에 따로 담았다. 그 사이 평범한 접시의 향은 변하지 않았다.
루카스가 말했다. “오늘 심리에서 집행관이 돌렸던 접시와 같은 원리일까요?”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은 그릇의 현상만 확인했습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베네딕트는 장부를 다시 살폈다. 금지된 접시 중 한 개 아래에는 작은 문양이 있었다. 기근 시절의 왕실 배급 인장과 닮은 접시 무늬. 아일린이 가져온 탁본과 비교하니 위치가 거의 같았다.
“그럼 이 접시는 왜 열두 해 전에야 금지됐습니까?” 에스텔이 물었다.
“그때까진 연회에서 특별한 손님에게만 썼거든. 국물이 사라지는 건 주방장이 잘못 끓인 탓이라 했지. 그해 왕실 연회 담당 조리사 둘이 해고됐네.”
베네딕트의 목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그중 하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어. 평생 수프를 끓이던 사람이었지. 자기가 맛을 잃어버린 줄 알고 마지막까지 사과했네.”
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 해고된 요리사가 생존해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접시 하나가 이름 없는 노동자에게 미친 영향이 오랫동안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쓰렸다.
그때 주방 뒷문으로 젊은 시종이 들어왔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묶고 있었고, 팔에는 접시를 옮기다 데인 듯한 자국이 있었다. 그녀는 도현 일행을 보자 물러서려 했다.
“잠시만요.” 루카스가 불렀다. “혹시 접시 보관실에서 일하십니까?”
“오늘부터 옮기라고 했어요. 어제는 기록탑에서 일했고요.”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메리안입니다.”
그녀는 이름을 말한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제 이름을 장부에 적지는 말아 주세요. 어제 점심을 안 먹었다고 썼다가 꾸중을 들었거든요.”
도현은 수첩을 덮었다.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누가 어떤 이유로 꾸중했는지 스스로 말씀하시고 싶으시면 듣겠습니다.”
메리안은 접시들을 바라봤다. “저 접시 때문에요. 비어 있었는데 제가 비었다고 적으면, 누군가는 이미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했어요. 제가 본 게 틀렸다고요.”
베네딕트가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따뜻한 물이라도 마시겠나?”
“네. 물은 괜찮아요.”
베네딕트는 새 컵을 꺼냈다. 메리안은 손으로 컵을 감싸 쥔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제도 점심에 사람이 일곱 명이라고 적혔어요. 그런데 저녁에는 그 사람들이 다시 일곱 명으로 적혔어요. 모두 같은 이름으로요.”
“실제로 본 사람은 몇 명이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점심에는 넷을 봤어요. 저녁에는 두 명을 봤고요. 그 사람들이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몰라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는 말을 빼앗지 않았다.
“그럼 우리가 따로 확인해야겠네요. 메리안 씨 이름은 허락 없이 올리지 않겠습니다.”
메리안은 작게 웃었다. 그녀는 접시들을 잠시 더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얇은 목판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제가 옮긴 접시에 이게 붙어 있었어요. 꼭 왕실 주방에 전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목판에는 접시 일곱 개의 그림과 함께 짧은 글씨가 있었다.
[일곱 번째 접시는 비워 둘 것.]
[빈 접시를 채우려는 자에게 식사의 값이 돌아간다.]
에스텔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이건 레온이 오래전에 쓰던 문구야.”
“그럼 일곱 번째 접시가 뭡니까?” 브론이 물었다.
도현은 금지된 접시 일곱 개를 보았다. 다른 여섯 개에는 작은 흠집이 있었지만 마지막 한 개에는 흠집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 여러 해 동안 그 접시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했다.
그 순간 마지막 접시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누구도 수프를 붓지 않았는데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 도현이 아주 오랫동안 잊으려 했던 향이 스쳤다.
한국의 미역국.
그는 두 손으로 조리대를 붙잡았다. 기억 저주가 자신의 빈자리를 이용해 유혹하고 있었다. 그 향이 진짜 어머니의 음식인지, 누군가 흉내 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감지 않고 접시만 내려다봤다.
“이것도 실제로 요리한 음식입니까?”
대답은 없었다. 대신 접시 바닥에 글자가 나타났다.
[첫 번째 미지급 식사.]
[수령 대기자: 백도현.]
그가 고개를 저었다. “제 몫이라고 누가 정했습니까?”
그러자 접시에 있던 향이 툭 끊겼다. 도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당장의 유혹을 거절했다고 해서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억을 미끼로 오늘의 동의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메리안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 거의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접시요. 어제는 제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제7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