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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74화
PAYLUA ORIGINAL · 제74화

74화. 식지 않는 주방의 목소리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949자

오프라인 책장
왕궁 주방의 보리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어제 오후 입고. 왕실 서쪽 농장 생산. 구입 대금 지급 완료.] 브론은 꼬리표의 글자를 몇 번이고 읽다가 허겁지겁 자루를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쥐어뜯을 만한 빵도 챙기려 했지만, 베네딕트가 냉정하게 손등을 쳤다. “이건 손님한테 낼 빵이지 자네 간식이 아닐세.” “주방장님을 구하는 길에 제가 굶어 쓰러지면 곤란하잖습니까.” “자네는 오늘 수프를 세 그릇이나 먹었어.” “그 기록을 그렇게 쓰시면 곤란합니다!” 베네딕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네가 직접 세 그릇이라고 적지 않았나?” 브론은 귀를 축 늘어뜨리고 두 손으로 자루를 꼭 잡았다. 왕궁의 거대한 규칙과 맞서던 중에도 이 주방의 말다툼은 평범했다. 그 평범함을 잃지 않으려고 이곳까지 온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찬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루카스가 함께했다. 통행 기록을 남길 사람이 필요했고, 왕실 물품을 다른 조리실로 옮기는 데 허가도 있어야 했다. 베네딕트는 그릇 두 개를 더 맡겼다. 하나는 주방에서 이미 사용한 것, 하나는 새것이었다. “어느 걸 썼는지도 적어 두게. 언젠가 그게 사람 목숨을 가를 수도 있겠군.” 백도현은 둘을 기다리며 제7조리실의 문턱을 살피고 있었다. 돌바닥에는 옛 화덕에서 흘러나온 검은 자국이 반원형으로 남아 있었다. 각 반원의 끝은 빈 의자가 있는 자리로 이어졌다. 문턱을 넘을 때마다 누군가의 몫이 바뀌는 구조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레온의 이름이 적힌 쇠숟가락은 그곳에서 유난히 뜨거웠다. “재료 가져왔습니다!” 브론이 외쳤다. “돌아오는 길에 누가 막지는 않았습니까?” “후미 회랑에서 흰 장갑 낀 시종을 만났는데, 자루의 출입증을 보여 달라길래 보여 줬습니다. 그러자 먼저 지나가라고 하더군요.” “얼굴은요?” “기억나요. 냄새는 하나도 안 났지만요.” 도현은 그 말을 적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벌어질 일만이 아니었다. 지금 누가 그들의 이동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그들은 화덕 앞에 휴대용 작은 놋솥을 걸었다. 브론이 가져온 보리를 물에 불리는 동안 에스텔이 불씨를 피웠다. 도현은 보리알을 손끝으로 비볐다. 껍질이 적당히 벗겨져 있었고 물에 넣자 가라앉았다. 비싼 향신료도 검은 시럽도 없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구수한 보리 수프였다.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재료가 단순하고,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설명하기 쉬운 음식이었다. “요리사를 만나려면 국을 끓이라니.” 에스텔은 국자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봤다. “레온이 살아 있었다면 참 좋아했을 말이네.” “왜요?” “그는 질문 하나를 듣고도 사람한테 수프부터 내놨거든. 배고픈 사람은 자기가 뭘 말하려는지 잊는다고.” 도현은 국물을 저으며 한 가지를 물었다. “에스텔 씨, 당신은 레온을 구하고 싶어서 저를 불렀습니까?” 그녀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화덕 위의 얇은 김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처음에는 그랬어.” “지금은요?” “지금은 네가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 레온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너 하나를 더 묶어서 그를 꺼낼 수는 없어.”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싶었던 대답과 같지는 않았어도 거짓말을 듣는 것보다 나았다. 보리 수프가 끓는 동안 브론은 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손톱을 살폈다. 쇠문을 열다가 손톱 하나가 조금 깨져 있었다. 도현이 붕대를 꺼내자 그는 부끄러운 듯 손을 감췄다. “이 정도로는 괜찮습니다. 늑대인간은 원래 회복이 빠르니까요.” “회복이 빠르다는 것과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다른 얘깁니다.” 도현은 상처를 씻어 주고 천을 감았다. 브론은 잠시 얌전히 앉아 있다가 물었다. “주방장님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가실 겁니까?”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돌아갈 길이 있다는 것과 지금 당장 떠난다는 건 다르니까요.” “제 질문이 곤란했죠?” “조금요. 그래도 물어봐도 되는 질문입니다.” 브론은 꼬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저도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요. 사장님이 당신을 처음 데려왔을 때는 며칠 하다 도망갈 줄 알았거든요. 접시도 잘 닦고 장부까지 고치니까 이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죠.” “그건 칭찬입니까?” “요즘은 칭찬입니다. 그때는 아니었지만요.” 가까운 주방 복도에서 조리사들이 솥을 옮기며 부르는 짧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도현은 젖은 행주를 걸고 국자의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그 노래에는 왕국을 구한 영웅도 저주받은 계약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장작이 잘 타게 해 달라, 육수가 넘치지 않게 해 달라, 식사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게 해 달라는 흔한 소망만 있었다. 도현은 자신이 지구에서 일하던 프렌치 레스토랑의 주방을 떠올렸다. 마감 직전 식기세척기의 뜨거운 수증기, 양파를 볶는 소리, 한 접시가 늦게 나가자 앞치마에 땀을 닦던 후배. 그는 어린 후배가 실수했다고 혼내던 기억까지 떠올렸다. 이번에는 뒤늦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이름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 저주가 빼앗은 것인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이 일이 끝나면요.” 도현이 말했다. “주방 장부 맨 앞에 직원들이 쉬는 시간부터 써 놓읍시다.” 브론이 귀를 번쩍 세웠다. “정말입니까?” “네. 그런데 브론 씨는 쉬는 날에 여기 와서 공짜로 먹으면 안 됩니다.” “역시 이상한 인간입니다.” 두 사람이 웃는 사이 보리알이 부풀었다. 도현은 이제 가열을 조금 줄여야겠다고 판단했다. 검은 돌솥이 만들어 놓은 시간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수프의 실제 온도로 대화의 길이를 정하려 했다. 수프가 끓자 문턱의 검은 자국이 꿈틀거렸다. 루카스가 시간을 적었다. 도현은 먼저 국자를 들어 아주 적은 양을 새 그릇에 담았다. 자신이 만든 것인 만큼 한 입 맛보고 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베네딕트가 알려 준 방식으로 그릇을 잡으니 흘리지 않았다. 맛은 조금 심심했다. 그는 소금 한 꼬집을 추가한 뒤 뚜껑을 덮었다. “여기서 먹을 사람은 있습니까?” 집행관이 앞으로 나섰다. “저 안에 있는 레온이 먹게 되겠지요.” “본인에게 묻겠습니다.” 도현은 닫힌 돌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레온 씨. 이 수프를 드시겠습니까?” 문틈에서 마른 웃음이 들렸다. ‘지금 나한테 먹으라고 하면 그릇만 사라질 거야. 나는 오래전부터 음식을 받을 자격을 잃었거든.’ “그렇다면 드시지 않아도 됩니다. 우선 저희가 이 국을 식히는 동안 대화만 해도 될까요?” ‘그건 좋지.’ 집행관의 가면이 한순간 어두워졌다. 자신이 만든 조건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도현은 실제로 식사가 성립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수프는 시간과 열을 재는 도구가 됐고, 누가 그것을 먹을지는 미정이었다. 화덕 문이 손가락 세 개 너비로 열렸다. 도현은 그 안에 어둠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주방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뒤집힌 도마, 오래된 칼집, 불을 피우지 않은 돌솥. 그리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사람의 그림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얗게 바랜 요리사 모자를 쓰고 있었다. “레온 씨. 지금 보이는 모습이 실제 당신입니까, 아니면 기록입니까?” ‘그걸 내가 확신할 수 있다면 여기서 나갔겠지.’ 에스텔의 손이 떨렸다. “레온, 나야.” ‘그래, 에스텔. 네가 그때보다 나이를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난 네 얼굴을 볼 때마다 그날 같아서 겁이 나.’ 에스텔은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마녀가 된 뒤 오래 살았지만 그동안 한 가지 미안함을 꺼내 놓지 못했다. “네가 반대했던 계약에 내가 입회했어. 그다음에는 네 이름을 쓴 장부가 계속 나왔고, 나는 뭘 막아야 할지 몰랐어.” ‘모르는 게 죄는 아니야. 알아보지 않으려 했던 시간은 네 몫이지.’ “알아. 그건 인정해.” 도현은 두 사람에게 잠시 말을 맡겼다. 밖에서는 수프가 천천히 식어 가고 있었다. 김이 약해진 만큼 대화가 가능한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래된 동료들이 먼저 서로의 잘못과 생존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이 자리를 연 이유이기도 했다. “세 번째 조리 원칙을 묻겠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잔여분을 원위치로 돌린다고 했죠. 그런데 그게 저주를 손님에게 되돌리는 뜻이라면 저는 따르지 않겠습니다.” 레온은 잠시 침묵하다 아주 천천히 답했다. ‘원위치는 저주받은 사람의 몸이 아니야. 아직 제공하지 않은 몫은 제공하려던 곳에 남는다는 뜻이지. 가게가 빵을 못 구웠다면 가게가 빵값을 감당하는 거야. 손님에게 빚으로 적는 게 아니고.’ “그렇다면 이미 누군가의 몸으로 옮겨진 저주는요?” ‘그건 다른 문제야. 가장 어려운 문제지. 나는 그걸 못 풀었어.’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이 발견할 비밀을 레온이 미리 완성해 놓았다고 믿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정직한 실패담이야말로 앞으로의 길을 보여 줄 수도 있었다. “누가 당신 이름으로 사람들을 징수했습니까?” ‘도장을 가진 사람이야. 그는 내가 없다는 걸 알고도 내 손으로 만든 조리법을 계약으로 바꿨어.’ “이름은요?” ‘카르도라고 불렸어. 하지만 네가 지금 만나는 카르도가 그때 그 사람인지 나는 모르겠다.’ 루카스는 그 문장을 곧장 적었다. 에스텔은 눈을 감았다. 과거의 이름이 또 한 번 나타났다. 도현은 놀라지 않으려 했다. 카르도의 서명은 제8창고에서 확인한 적이 있었다. 다만 누가 지금 그 서명을 쓰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문턱의 국물이 거의 식었다. 레온의 그림자가 조금씩 흐려졌다. 도현은 마지막 질문을 했다. “당신을 구하려면 뭘 해야 합니까?” ‘먼저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지 마. 내가 열어 둔 문이 있다면 그 문은 반드시 밖에서도 열려야 해.’ 돌문이 닫히기 직전 그림자 속에서 작은 주걱 하나가 굴러 나왔다. 주걱 머리는 반쯤 부러져 있었다. 손잡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제7조리실 실물 확인표.] 그 아래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이 있었다. [서명자: 레온. 증인: 에스텔. 정산자: …] 마지막 칸은 일부러 깎여 나간 것처럼 하얗게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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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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