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접시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두 조각이 식탁 위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나는 집행관 앞에, 나머지 하나는 백도현의 앞에 멈췄다. 갈라진 단면에서 검은 글자가 끓어올랐다. [승계 이의 접수.] 그리고 조금 늦게 작은 글자가 덧붙었다. [과거 이전분은 그대로 유지.]
“이의가 접수됐군요.” 도현은 그 문장을 가리켰다. “그럼 오늘부터는 제 이름을 대신 쓰지 마십시오.”
“당신 몸에 있는 저주가 바뀌지 않은 한 보관소의 기록도 바뀌지 않습니다.” 집행관이 말했다. “지금 인정한 것은 앞으로의 대리 징수 거절입니다. 과거에 이미 삼킨 것을 없애 준다는 뜻이 아니지요.”
“그 정도 차이는 구별합니다.”
도현은 굳어 가는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석화와 기억을 잠식하는 저주, 그 둘은 여전히 그의 몸에 있었다. 자신이 거절권을 주장했다고 해서 노인의 손이 다시 돌로 변하거나 소녀가 되찾은 기억을 잃어서는 안 됐다. 새로운 기록이 작은 불씨가 됐을 뿐, 이미 벌어진 일을 간단히 뒤집을 수는 없었다.
“심리의 순서를 변경하겠습니다.” 아일린이 말했다. “최초 제공자의 존재를 먼저 검증하고, 그다음 대금 청구의 적법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집행관은 허공에 손을 들어 순서를 바꾸는 동작을 했다. 첫 번째 접시에 왕실의 금색 문장이 나타났다. 두 번째 접시에는 증인이, 세 번째에는 수혜자가 적혔다. 그런데 첫 접시의 제공자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루카스가 그 자리를 보자마자 말했다. “제공자가 비어 있습니다. 대리인은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았습니까?”
“권한은 첫 식사의 성립으로 자동 발생했습니다.”
“그 문장은 권한이 생겼다는 주장이지, 누가 권한을 줬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브론이 입을 열었다. “저는 종업원인데요. 우리 식당에서도 손님이 안 먹은 양을 주방장님 대신 제가 돈 내게 할 순 없어요. 그럼 제가 종업원으로 일하겠다고 약속한 게 아니라 식당 전체의 빚을 갚겠다고 약속한 게 되잖아요.”
“늑대인간의 생활 비유는 불필요합니다.” 집행관이 차갑게 말했다.
“불필요하지 않아요.” 도현은 브론에게 시선을 돌렸다. “계약은 결국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니까요.”
집행관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흔들었다. 방의 온도가 조금 내려갔다. 부엌에서 넘어오던 수프 냄새가 멈추더니 오래 묵은 종이 냄새가 공기를 채웠다.
그는 손을 내밀어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병 안에는 검은 가루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것이 최초 제공 식사의 일부입니다. 반죽을 만들 때 들어간 검은 시럽의 잔여물이지요.”
에스텔이 한 걸음 물러섰다. 베네딕트가 9화에서 언급했던 시럽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도현은 병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집행관에게 물었다.
“채취 장소와 날짜가 있습니까?”
“처음 제조된 날입니다.”
“그 날짜를 증명할 봉인과 채취자가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최초라고 확정할 이유가 없군요.”
아일린은 왕실의 인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움켜쥔 채 있었다. 짙은 검은 왕관 문양이 장갑 아래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루카스가 의자를 끌어 그녀 옆에 놓았다. 공주는 사양하지 않았다.
“조금 앉아 있겠습니다. 제가 쓰러지면 심리를 멈춰 주세요.”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도현은 집행관의 병을 다시 바라봤다. 안의 가루는 유리벽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지만 손을 뻗어 만져 볼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앞치마 주머니에서 평범한 밀가루 반죽 조각을 꺼냈다. 조금 전 왕궁 주방에서 베네딕트가 수프와 함께 구웠던 빵을 잘라 낸 것이었다.
“동일한 환경에서 비교할 방법이 있습니까? 식탁 바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요.”
집행관의 가면 아래로 희미한 웃음이 지나갔다. “마법이 만들어 낸 최초의 식사를 평범한 빵과 비교하시겠다는 겁니까?”
“그쪽이 음식이라고 주장했잖습니까. 음식이라면 누군가 만들었고, 재료가 있고, 먹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조각을 손바닥 위에 놓고 눌렀다. 따뜻했던 빵은 조금 식었지만, 안쪽의 결은 살아 있었다. 두 손가락 사이로 밀가루 냄새가 났다. 도현은 레온의 쇠숟가락으로 빵의 겉면을 가볍게 눌러 보았다.
브론이 냄새를 맡았다. “반죽했을 때 발효된 냄새가 남아 있어요. 그런데 저 병은… 좀 다르네요.”
“무슨 냄새입니까?”
“음식 냄새가 아니라 빈 그릇을 닦은 천 냄새요. 그릇에 뭐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데 이미 다 먹었다고 우기는 냄새라고 해야 하나.”
루카스가 마지막 비유까지 그대로 기록하자 브론이 민망하게 귀를 접었다. 도현은 병 안의 물질이 음식이 아니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최초 식사’라는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관찰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었다.
에스텔은 그때 벽의 마른 회벽에 남은 조리 흔적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누군가 식탁 위에서 국자를 떨어뜨리며 흘린 것으로 보이는 검은 얼룩이었다. 그 얼룩은 지금 나타난 환영의 손끝과 같은 높이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저 벽은 원래 제7조리실과 붙어 있지 않았어. 레온이 있을 때는 여기에 큰 창문이 있었지. 빵 굽는 아이들이 주방을 들여다볼 수 있게.”
집행관이 말했다. “왕궁의 구조는 수십 년에 걸쳐 바뀌었습니다. 이상할 일은 아니지요.”
“맞아요. 그래서 언제 막혔는지 알고 싶습니다. 창문을 막으면 누가 요리했고 누가 가져갔는지 서로 볼 수 없게 되니까요.”
루카스는 건축 보수 연대와 인부 명단을 요청하는 항목을 따로 적었다. 집행관은 답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아일린이 계약의 원본을 보려면 조리 장소의 변화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는 수프와 이곳에서 먹었다는 수프가 뒤바뀐 날이 있는지 확인할 길은 있었다.
벽 안쪽에서 누군가 숟가락을 세 번 두드렸다. 브론은 한쪽 귀를 벽에 댔다. “두 번은 멀리서, 마지막 하나는 바로 여기서 났어요.”
도현이 물었다. “사람이 두드렸습니까?”
“아직 몰라요. 그래도 문 너머에 공간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다시 확인하려는 순간 소리가 끊겼다. 도현은 벽을 억지로 부수지 않았다. 지금 이 방에서 잘못 꺼낸 환영 하나가 누구의 삶을 대신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구조도를 확보하기로 했다. 마법으로 보이는 것을 모두 풀려고 덤비지 않아도 요리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었다.
집행관은 갑자기 유리병을 접시 위에 올렸다. 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방의 벽면에 닿았다. 거기에는 굶주린 어머니가 아이에게 자신의 빵을 건네는 환영이 나타났다. 에스텔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 장면은….”
“당신이 본 적 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비슷한 날이 있었어. 하지만 저 여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어.”
“모른다는 것도 진술입니다.”
집행관이 말을 끊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후손의 생존을 바라며 식탁을 받아들였습니다. 무엇이든 감수할 준비가 돼 있었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아일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감수하겠다는 마음과 알지 못한 청구에 동의했다는 기록은 별개입니다. 제 조상들도 굶주린 사람을 살리고 싶었을 테지요. 그렇다고 오늘 제가 왕국의 모든 내일을 대금으로 잡을 권한을 얻는 건 아닙니다.”
그 순간 환영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빵을 밀어 주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집행관이 아닌 에스텔을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나는 아이가 먹지 않은 몫까지 달라고 하지 않았어.’
도현은 목소리를 들었지만 곧바로 수첩에 확정적으로 옮기지 않았다. 기록이 만든 환영인지, 보존된 사람의 의사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환영의 발언 발생. 본인 확인 불가.]
에스텔은 그 적힌 문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을 지키려면 먼저 저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찾아야 해.”
집행관은 유리병을 움켜쥐었다. “증언은 순서대로만 가능합니다. 중간에 질문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런 조항은 아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지금 설명했습니다.”
“심리가 시작된 뒤에 유리하게 규칙을 추가하셨군요.”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붙었다. 가면의 틈에서 잠깐 인간의 눈동자 같은 빛이 스쳤다. 집행관은 더 반박하지 않고 네 번째 접시를 꺼냈다. 접시 표면에는 [증언 보존 해제]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원하신다면 이 환영의 이름을 드리지요. 대가가 필요하지만.”
“무슨 대가입니까?”
“당신이 가진 두 기억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세요. 그 자리에 이 여자의 이름을 넣어 드리겠습니다.”
도현의 목에서 숨이 걸렸다. 소녀의 기억 저주가 그가 잃어버린 어머니의 미역국 맛을 다시 떠올리게 하려는 듯 머릿속을 긁었다. 잊어버린 추억은 언제나 대가를 미끼로 요구받았다.
“안 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도 구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사람을 구하겠다고 말합니까?”
“한 사람의 이름을 얻기 위해 다른 기억을 없애는 방식이 왜 구원이라고 불려야 합니까?”
일곱 접시 가운데 다섯 번째가 스스로 울렸다. 그 소리와 동시에 천장에서 오래된 종을 흔드는 굵은 쇠줄 하나가 내려왔다. 집행관이 팔을 들었다. 왕궁 바깥의 여섯 번째 종소리와는 다른, 커다란 빈 울림이 방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절차를 종료하겠습니다. 남은 질문은 일곱 번째 종 이후에 하시지요.”
루카스가 아일린 앞에 섰다. 브론은 출입문을 붙잡았고 에스텔은 도현의 면끈 매듭을 확인했다. 거대한 종이 한 번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냈다. 아직 소리는 나지 않았다. 도현은 손에 쥔 반죽 조각을 내려다봤다. 지금 이것을 먹거나 버리는 일 하나가 새로운 계약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빵을 입에 넣지 않았다. 먼저 반죽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만들어졌지만 아무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었다.
쇠줄 끝의 검은 글자가 잠시 흔들렸다.
[제공 예정분: 미수령.]
[채무 전환 실패.]
일곱 번째 종이 울렸다.
제7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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