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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7화
PAYLUA ORIGINAL · 제7화

7화. 붉은 돛을 단 배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6,016자

오프라인 책장
브론은 밤을 좋아했다. 인간들이 낮에 보는 풍경을 그는 냄새로 읽을 수 있었다. 동쪽 빵집에서 파는 갓 만든 밀가루의 온기, 골목 모퉁이 약방 주인의 진한 허브 향, 오래된 벽돌 사이를 지나가는 고양이의 체온까지. 밤이 깊어지고 거리의 소음이 줄면 수많은 냄새가 마치 지도 위의 잉크처럼 선명해졌다. 그래서 그날 밤 붉은 돛을 단 배에서 흘러나온 냄새를 놓칠 수 없었다. “이건 밀가루가 아닙니다.” 브론이 낮게 말했다. 도현과 브론은 식당 뒷골목에서 나와 수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늦은 밤의 왕도에는 통행금지가 있었지만, 공주가 남긴 왕실 출입증은 생각보다 유용했다. 다만 순찰병들이 서류를 볼 때마다 도현을 수상하게 바라보는 문제는 있었다. “왕실 요리사입니까?” “아직 아닙니다.” “그럼 왜 왕실 출입증을….” “공주님에게 저녁을 팔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병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길을 열어 주었다. 수로 끝에는 낡은 곡물 창고가 늘어서 있었다. 좁은 나무 선착장에 밧줄이 겹겹이 묶여 있고, 커다란 바지선들이 물살에 맞춰 삐걱거렸다. 붉은 돛은 세 번째 창고 뒤편에서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경꾼의 횃불이 멀어지자 주변은 짙은 안개에 잠겼다. 브론은 발을 멈췄다. “이 냄새는 알고 있습니다.” “무슨 냄새인데요?” “집을 잃은 날의 냄새요.” 도현이 그를 돌아봤다. 브론은 평소처럼 농담하지 않았다. 늑대인간의 노란 눈동자가 수면 아래를 응시했다. “어릴 때 제 마을은 산기슭에 있었어요. 흉년이 들었을 때 왕실 배급차가 왔죠. 다들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후 우리 아버지는 냄새를 맡지 못했고, 어머니는 제 얼굴을 보는 법을 잊었어요.” “브론 씨도 저주를 받았습니까?” “저는 배급 빵을 안 먹었습니다. 배가 아프다며 도망쳤거든요.”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만 멀쩡해서, 저만 기억합니다.” 도현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언제나 그릇을 깨뜨리고 잔소리를 듣던 종업원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 몰랐다. 브론이 왜 그토록 음식 냄새에 민감한지, 왜 식당에 찾아오는 저주받은 손님을 쉽게 내치지 못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 여기 온 건 같이 조사하자고 해서입니다.” 도현이 말했다. “네.” “위험하면 돌아갑시다. 둘 다 살아서 보고해야 하니까.” 브론의 귀가 잠깐 올라갔다. “주방장님은 늘 이상한 말을 하세요. 용감한 사람들은 보통 끝까지 가자고 하는데.” “저는 칼 잘 쓰는 사람도 마법사도 아닙니다. 요리사예요. 요리사는 재료가 썩었으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브론이 웃었다. “그 말은 좀 멋있네요.” 브론은 선착장의 나무 기둥마다 붙은 소금 자국을 냄새 맡았다. 수로의 물은 바닷물처럼 짜지 않았지만, 누군가 일부러 소금을 뿌려 놓은 흔적이었다. 도현은 그 기둥을 유심히 살폈다. “왜 여기만 소금을 뿌렸을까요?” “냄새를 지우려는 것 같습니다.” “소금으로요?” “저희처럼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마법의 향을 따라갈 수 있어요. 이 정도 소금이면 오래된 흔적을 가릴 수 있죠.” 도현은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꺼냈다. 낮에 시장에서 조사해 둔 배편 운항 시간이 적혀 있었다. 수로를 오가는 배는 대개 해가 지기 전에 닻을 내렸다. 그런데 붉은 돛을 단 배는 달이 뜬 뒤에만 움직였고, 상인 조합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수로를 통과하려면 검사증이 필요할 텐데.” “있겠죠. 검사를 안 받는 사람의 검사증은 특별하니까요.” 브론의 말에는 묘한 씁쓸함이 있었다. 그들은 가장 높은 곡물 창고의 뒤편까지 이동했다. 벽에는 젖은 나무 냄새가 배어 있었고, 바닥에 흘린 밀가루가 안개를 머금어 회색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멀리 선착장 끝에서는 세 사람이 작은 화로를 둘러싸고 있었다.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손을 불 가까이 대지도 않았다. “저 사람들이 인부인가요?” “그렇겠죠.” “그런데 몸을 따뜻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없어요.” 도현은 그들의 자세를 유심히 보았다. 화로에 불이 붙어 있는 건 열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이곳에 사람이 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한 연극 같았다. 브론이 낮게 속삭였다. “신호가 바뀌면 뛰어야 합니다. 제가 세 번 꼬리를 치면 돌아가지 말고 오른쪽 골목으로 도세요.” “알겠습니다.” “두 번이면요?” “한 번 더 칠 때까지 기다려야죠.” “주방장님, 그럴 땐 그냥 도망쳐야죠!” 작은 목소리로 다투던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붉은 돛 아래에서 무언가 길게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붉은 돛이 달린 배에 접근했다. 갑판 아래에서 상자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니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인부 넷이 오래된 장부를 상자에 넣고 있었다. 상자 겉에는 거꾸로 된 왕관 문양이 찍혀 있었다. “저게 벨리온이 옮겼다는 문서겠죠?” 도현이 속삭였다. 브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선원들에게 가 있었다. “이상합니다. 네 명 다 냄새가 거의 없어요.” “공주님 호위처럼 감각을 봉인했을 수도 있죠.” “아뇨. 저 사람들은 땀 냄새도, 숨 냄새도 없습니다.” 그 순간 선원 한 명의 목이 기묘하게 꺾였다. 그는 어둠 속에 숨은 도현을 정확히 바라봤다. 눈자리에 검은 유리알 두 개가 박혀 있었다. “침입자 발견.” 네 명의 인부가 동시에 돌아섰다. 브론이 도현의 옷깃을 물어 끌어당겼다. 바로 다음 순간, 커다란 쇠갈고리가 두 사람이 있던 자리의 난간을 부쉈다. “뛰어요!” 브론이 앞장섰다. 도현은 젖은 널빤지 위에서 미끄러지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인부들의 발소리가 뒤에서 일정한 박자로 따라왔다. 숨을 쉬지 않는 사람들이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좁은 선착장의 끝에서 길이 막혔다. 왼쪽은 검은 수로였고 오른쪽은 닫힌 창고 문이었다. 도현은 허리에 찬 작은 조리용 칼을 뽑았다. 칼날이 어두운 횃불 빛을 반사했다. “주방장님, 그걸로 싸우시게요?” “고기 손질할 때 쓰는 칼이라 믿음직하진 않네요.” “그럼 제가 싸울게요.” 브론의 몸이 부풀었다. 등 뒤의 털이 곤두서고 손가락이 길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했다. 그는 선두로 달려오는 인부의 팔을 붙잡아 바닥에 내리꽂았다. 갑옷 같은 소리가 났다. 인부의 팔꿈치가 부러졌는데도 비명은 없었다. “사람이 아니야!” 브론이 으르렁거렸다. 도현은 넘어져 있는 인부의 입가를 보았다. 검은 밀가루가 입술 틈에서 흘러나왔다. 뱃속이 빈 자루처럼 푹 꺼져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검은 밀알은 빵으로 사람의 마음을 묶었고, 사람 대신 움직이는 인형까지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서 힘을 얻는 것일까. “브론! 아까 저 사람들이 상자를 옮겼죠?” “네!” “상자에서 가장 진하게 나는 냄새가 뭡니까?” 브론이 이를 드러내며 냄새를 맡았다. “탄 설탕! 그리고 오래된 피 냄새!” 도현은 창고 옆에 쌓인 작은 기름통을 보았다. 조명용으로 쓰는 끈적한 기름이었다. 그는 통을 열어 바닥에 쏟았다. 찰랑이는 기름이 널빤지 사이에 퍼졌다. “뒤로 물러서요!” “주방장님, 불붙이면 우리도 위험해요!” “불은 안 붙입니다.” 도현은 옆의 바닷물통을 집어 들어 기름 위에 쏟았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고 겉면에 미끄러운 막이 생겼다. 달려오던 두 인부가 동시에 중심을 잃었다. 뒤따르던 세 번째 인부와 부딪쳐 선착장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브론이 눈을 크게 떴다. “기름으로 전투하는 요리사라니.” “튀김할 때 미끄러지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요?” 남은 인부 하나가 도현에게 다가왔다. 브론이 앞을 막았지만 상대는 품에서 작은 종을 꺼냈다. 종소리가 울리자 브론의 몸이 굳었다. 그는 귀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브론 씨!” “그 소리… 배급차….” 브론은 숨을 몰아쉬었다. 과거의 기억이 소리와 함께 밀려온 모양이었다. 인부가 종을 한 번 더 흔들려는 순간 도현은 뜨거운 기름통 대신 허리춤의 소금 주머니를 던졌다. 흰 소금이 상대의 얼굴에 쏟아졌다. 인부의 검은 눈에서 연기가 났다. “저염식은 싫어하시는군.” 도현이 중얼거렸다. 인부가 괴성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바로 그때 물에 빠졌던 인부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 정도 방해로는 막을 수 없었다. “이제 정말 도망갑시다!” 브론이 일어나 창고 벽을 발톱으로 찍고 지붕으로 기어올랐다. 그는 아래로 손을 내밀었다. 도현이 겨우 잡자 늑대인간은 그를 감자 자루처럼 끌어올렸다. 도현은 지붕에 배를 깔고 숨을 헐떡였다. “저 좀 사람처럼 들어 올리면 안 됩니까?” “주방장님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제가 요리해서 먹으니까요.” 둘은 창고 지붕을 따라 탈출했다. 붉은 돛의 배는 그사이 선착장을 떠나고 있었다. 선상에는 상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도현은 끝까지 번호를 읽으려 애썼다. [제7조리실 폐기 기록.] 그 아래 낯익은 이름 하나가 스쳤다. 마리아.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리아의 어머니에 관한 기록이 물길을 따라 사라지고 있었다. 붉은 돛은 서쪽 수로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현과 브론은 창고 지붕에서 내려오기 전 한동안 물길을 지켜보았다. 배가 건넌 좁은 수문은 평소라면 밤에 잠겨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 경고등도, 검사하는 병사도 없었다. “왕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죠?” 브론이 물었다. “적어도 그냥 밀가루를 나르는 배는 아니네요.” 도현은 공책에 수문 위치와 배가 사라진 방향을 적었다. 화로를 피워 놓은 인부들 가운데 한 명은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브론의 말이 옳다면, 수로 일대에 그런 존재가 얼마나 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창고 뒤편 골목에서 그들은 작은 신발 한 짝을 발견했다. 어린아이 것이었다. 굽이 거의 닳아 있었고, 바깥쪽에는 재봉사가 꿰맨 파란 실이 남아 있었다. “리아 신발일까요?” 브론이 물었다. “확인하기 전엔 모릅니다.” 도현은 신발을 직접 만지지 않고 천에 싸 넣었다. 리아에게 보여 줘도 되는 물건인지조차 고민스러웠다. 누군가 아이와 관계된 물건을 이 창고에 남긴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이모에게 먼저 보여 주기로 했다. 브론이 뒤를 돌아봤다. “주방장님, 아까 도망가자고 한 건 잘하셨어요.” “싸웠으면 이길 수 있었습니까?” “한 명 정도는 쓰러뜨렸겠죠. 하지만 나머지는 계속 일어났을 겁니다.” “그럼 다음번엔 더 많은 사람과 같이 와야겠군요.” “누가 같이 와 주겠어요?” 도현은 공주가 준 출입증과 루카스가 남긴 문서를 떠올렸다. 처음 이 식당에서 눈을 떴을 때는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 함께 조사하고, 위험을 알려 주고, 과거를 증언해 주고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셋쯤 있네요.” 브론이 웃었다. “저도 포함입니까?” “당연하죠. 대신 다음에는 그릇 깨뜨리지 마세요.” “선착장에 그릇은 없었는데요!” 두 사람은 웃다가 동시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개 저편에서 다시금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 새벽 종이 두 번 울렸다. 에스텔은 다친 브론의 귀를 살피며 호통을 쳤다. “둘이서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갔다고?” “혼자 보내시면 더 위험하잖아요.” 브론이 대꾸했다. 도현은 젖은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 “폐기 명부에 리아 어머니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인부들이 배를 지키고 있었어요.” 에스텔의 손이 멈췄다. “그럼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네.” “누가요?” 마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현이 들고 온 소금 주머니를 보았다. 소금은 검은 물에 젖어 있었고, 안쪽에는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섞여 있었다. “이건 종의 파편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레온이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에 있었거든. 사람들을 식탁으로 부르는 종.” 그때 멀리 왕궁 쪽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소리에 맞춰 도현의 손목에 있는 석화와 기억의 저주가 동시에 움찔했다. 창밖의 시민들은 잠결에 걸음을 멈추고,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브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방장님. 이건 성당 종이 아닙니다.” 도현은 왕궁을 바라봤다. “알아요. 식사 시작을 알리는 소리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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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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