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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6화
PAYLUA ORIGINAL · 제6화

6화. 사라진 요리사들의 장부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658자

오프라인 책장
'마지막 한 숟갈'의 지하실에는 계단이 열세 개 있었다. 브론은 열네 개라고 주장했고, 에스텔은 오래전에는 열두 개였다고 했다. 도현이 직접 내려가 보니 열세 개가 맞았다. 다만 일곱 번째 계단을 밟을 때마다 발밑에서 아주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식당 구조가 원래 이렇게 이상합니까?” “월세가 싸면 이유가 있는 법이지.” 에스텔이 답했다. “여기 사장님 소유 아니었어요?” “그렇지.” “그럼 월세는 누가 받는데요?” 에스텔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하실은 위층의 따뜻한 주방과 전혀 달랐다. 돌벽 사이로 축축한 바람이 스며들었고, 천장에는 검은 곰팡이처럼 보이는 마법 문양이 자라 있었다. 양쪽 선반에는 여러 시대의 냄비와 칼, 주걱이 빼곡했다. 어떤 칼은 손잡이가 닳아 매끈했고 어떤 국자는 은빛이 번쩍였다. 도현은 식당에 처음 왔던 날, 에스텔이 자신에게 보여 준 낡은 장부를 꺼냈다. 표지에는 아무 제목도 없었다. 첫 장에는 열일곱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는 날짜와 작은 표시가 붙어 있었다. 동그라미, 줄 두 개, 검은 점.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에스텔이 한참 장부를 바라봤다. “동그라미는 일을 그만둔 사람. 줄은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 검은 점은….” “죽은 사람입니까?”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도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왜 처음부터 안 알려 줬습니까?” “네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랐어.” “그럼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고용한 거네요.” “미안해.” 에스텔의 사과는 짧았다. 평소 농담으로 말을 돌리던 그녀가 정면으로 고개를 숙이자 도현은 더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제가 알아야 할 건 전부 알려 주세요. 계속 숨긴다면 이 일은 못 합니다.” 에스텔은 장부를 펼쳤다. 가장 오래된 이름 아래에는 잉크가 다 스며들어 형태가 보이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이 식당은 저주를 먹는 부엌이야. 오래전 사람들이 한꺼번에 짊어진 재앙을 가라앉히려고 만들어졌지. 저주를 요리사에게 옮겨 담으면 손님은 살았어. 하지만 요리사에게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어.” “그 한계를 넘으면요?” “몸이 견디지 못해. 누군가는 석상이 됐고, 누군가는 이름을 잃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만 살아.” 도현은 자신의 왼손을 움켜쥐었다. 반점이 손목과 손등을 이어 얇은 줄을 만들고 있었다. 도현은 장부의 다른 이름들을 천천히 읽었다. 맨 앞의 필체는 둥글고 정갈했지만 뒤로 갈수록 획이 흔들리고 글씨가 작아졌다. 첫 번째 장에는 누군가 매일같이 쓴 메모가 붙어 있었다. [첫 손님: 두 팔에 검은 꽃이 피는 여자.] [조리: 식지 않는 생강차.] [결과: 꽃 사라짐. 오른쪽 팔 저림.] 다음 메모에는 다른 요리사가 적은 듯한 글씨가 있었다. [아이의 그림자를 돌려줬다. 아이는 웃었다. 나는 해가 지는 방향을 기억하지 못한다.] 세 번째 종이에는 짧은 문장만 남아 있었다. [손님은 살아 돌아갔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 것.] 도현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저주를 치료한 기록치고는 승리감이 없었다.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 처음 손님이 회복했을 때는 자신처럼 기뻤을 것이다. 다만 기록이 쌓일수록 그 기쁨이 공포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사람들 가족은 어떻게 됐습니까?” “일부는 찾아왔어. 그때마다 사정이 달랐지.” 에스텔이 말했다. “사라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 줬어요?” “확인된 것만.” 도현은 조용히 장부를 덮었다가 다시 폈다. 그가 가장 화가 난 것은 마녀의 무책임만이 아니었다. 이 기록을 남긴 사람들 자신이 끝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 계속 요리했다는 사실이었다. “저는 적어도 다음 요리사에게 이런 장부를 물려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음 요리사를 구할 생각부터 하는 거야?” “제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요.” 에스텔은 도현을 한참 바라봤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 “누굽니까?” “레온.”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수프 냄비에는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에스텔이 발음한 이름에는 후회가 섞여 있었다. “레온은 요리사들에게 저주의 양을 가늠하는 법부터 가르쳤어. 충분히 준비한 뒤에 손님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지. 그러다 어느 날 왕실에서 부탁한 큰 만찬을 거절하지 못했어.” “그 만찬 때문에 사라진 겁니까?” “자세한 건 아직 말할 수 없어.” 도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또 그런 말입니까?” “이번엔 내가 모르기 때문이야.” 에스텔이 말했다. “그날 저녁에 문이 닫혔을 때, 나도 밖에 있었거든.” 지하실 안에서 오래된 물방울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도현은 검은 점 옆의 작은 날짜를 바라봤다. 그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누군가의 실패가 이곳에 남아 있었다. 기껏해야 손님 몇 명을 치료한 자신이 그 기록보다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있었다. 저주를 언제 받아들이고, 어떤 상태에서 위험해지고, 무엇을 하면 돌이킬 수 없는지. 적어도 그 과정을 제대로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어떻게 한도를 늘렸습니까?” “대부분은 늘리지 못했어.” “대부분?” 에스텔은 서가 맨 아래에서 작은 구리 냄비를 꺼냈다. 뚜껑이 없고 바닥이 검게 그을린 물건이었다. 손잡이에는 도현이 읽을 수 있는 문장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완성된 요리를 다시 끓이지 말 것.] “이 냄비를 사용하던 요리사는 세 개의 저주를 받아 냈어. 그 뒤에도 보름 동안 살아 있었지.” “결국 죽었군요.” “아니. 어느 날 사라졌어. 자신이 만든 마지막 요리를 남겨 둔 채.” 에스텔은 말을 멈췄다. 도현이 냄비 안을 살펴보는 순간 차가운 숨결이 올라왔다.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넣지 마. 네 몸에서 꺼낸 것을 남의 그릇에 버리지 마.' 도현은 냄비를 떨어뜨릴 뻔했다. “방금 들었습니까?” “무엇을?” “누군가 말을 했어요.” 에스텔이 다급하게 냄비를 빼앗았다. “역시 아직 반응하는구나.” “전임 요리사의 목소리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 도현은 냄비를 다시 받아 들었다. 손잡이에 아주 작은 글자가 하나 더 드러났다. [전임 요리사: 레온.] 그 이름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지하실의 조리 도구들이 덜컹거렸다. 냄비 뚜껑들이 서로 부딪치고, 매달린 국자가 흔들렸다. 브론이 계단 위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설거지들이 복수하는 겁니까?” “레온이라는 사람 알아요?” 브론은 뒷머리를 긁었다. “제가 들어왔을 때는 없었어요. 하지만 저녁마다 지하실에서 누군가 수프를 젓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왜 말 안 했죠?” “귀신이 있는 식당이라는 걸 모르는 척해야 월급이 더 나오거든요.” “그 월급 계약서 좀 나중에 봅시다.” 브론의 귀가 내려갔다. 가게 현관에는 '재료 정비로 오후 영업을 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브론은 그 아래 작게 '저주 상담은 예약해 주세요'라고 덧붙였다. 도현은 그 문구를 보고 한참 고민하다 그대로 두었다. 실제로 손님을 더 받는 건 위험했으니까. 실험을 시작하기 전 도현은 자기 상태를 점검했다. 왼손 엄지와 검지의 움직임, 손목을 돌릴 때의 통증, 한국에서 기억나는 음식 세 가지. 따뜻한 김치찌개, 차가운 물냉면, 비 오는 날 먹던 파전. 미역국 맛만은 여전히 흐릿했다. 그는 기억을 잃은 사실을 잊지 않도록 수첩에 적어 놓았다. “실험을 하다가 한쪽 손이 굳으면 어떻게 할 거지?” 에스텔이 물었다. “즉시 멈춥니다.” “의식이 흐려지면?” “브론 씨가 조리대의 불을 끄고 제 몸을 끌어내세요.” 브론이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요?” “네. 그때는 사장님이 마법을 쓰는 동안 브론 씨가 저를 옮겨 주세요.” 브론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무슨 일이든 농담을 섞던 늑대인간이었지만 이번에는 제법 믿음직해 보였다. 에스텔은 식당 한구석에 작은 보호 마법진을 그렸다. 식당 바닥의 구멍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동그란 테두리를 만들었다. “완전히 지켜 주는 결계는 아니야. 만약 네 안의 저주가 밖으로 튀어나오면 잠시 늦춰 줄 뿐이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도망칠 시간이 생기니까.” 도현은 준비된 반죽을 세 개로 나누었다.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조용, 둘째는 차가운 물에 담그는 시험용, 셋째는 자신의 손끝으로 잠깐 만지는 시험용이었다. 기적을 발견하기보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구분하고 싶었다. 에스텔이 준비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식당에선 지금껏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면 실험이 끝났는데.” “그러니까 결과가 좋았는지 나빴는지 확인하기 어려웠겠죠.” 도현은 세 그릇을 일정한 간격으로 놓고 펜을 들었다. 실패하더라도 같은 실험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온도와 시간을 적을 생각이었다. 마법이든 저주든, 조리 과정이 있다면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 있을 것이었다. 도현은 그날 오후 식당의 영업을 일찍 끝내고 실험에 착수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저주를 더 받아들이는 실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신의 손목에 이미 들어온 석화 저주의 성질부터 살폈다. 먼저 쇠숟가락을 차가운 물에 담근 뒤 손목에 갖다 댔다. 반점은 반응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그릇에 담은 밀가루 반죽을 손끝으로 주물렀다. 손등이 순간적으로 뻣뻣해졌다. 반죽의 표면에 아주 작은 회색 점들이 찍혔다. “도현, 그만해.” 에스텔이 경고했다. “지금 저주가 반죽으로 옮겨가는 걸까요?” “단순한 흔적일 수도 있어.” “그럼 끓여 보면 알겠네요.” 그는 작은 반죽 조각을 물에 넣고 가열했다. 끓는 물이 회색으로 변하며 가느다란 돌가루가 밑바닥에 쌓였다. 그러더니 물 표면에서 손가락 모양이 솟아올랐다. 브론이 기겁했다. “식당에서 손가락 수프라니! 그건 메뉴에 없는데요!” 에스텔이 얼른 불을 껐다. 회색 손가락이 무너지고, 도현의 손목에 전기가 통하듯 통증이 돌아왔다. 반죽에 나타났던 회색 점은 사라졌다. 저주는 다시 그의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보았지?” 에스텔이 말했다. “저주는 없애는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거야. 그걸 아무 물건에나 버리면 다시 주인을 찾아오거나 다른 사람에게 달라붙어.” 도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왼손이 잠깐 굳었지만 곧 움직였다. “그럼 버리는 게 아니라 조리 과정에서 바꾸어야겠네요.” “저주를?” “음식에도 독이 있으면 가열하거나 분해해서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독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저주에도 풀리는 구조가 있을지 몰라요.” 그는 장부 한쪽에 새로운 제목을 적었다. [저주 해체 조리법 실험 일지.] 첫 번째 실험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무엇이 실패했는지 기록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저주를 무턱대고 삼키는 대신 물질처럼 다뤄 보려는 시도였으니까. 그날 밤, 도현이 마지막으로 장부를 덮으려 할 때 빈 페이지에 잉크가 스며들었다. 아무도 펜을 들지 않았는데도 문장이 나타났다. [요리사 레온. 실험 기록 제29일.] [저주는 음식의 마지막 한 숟갈에 가장 무겁게 남는다.] [모든 것을 다 먹게 해서는 안 된다.] 도현은 숨을 삼켰다. 리아가 부르던 노래의 마지막 구절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나타났다. [그리고 이 식당의 주인은 에스텔이 아니다.] 도현은 계단 위를 올려다봤다. 에스텔이 서 있었다. 그녀는 마치 그 문장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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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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