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보관소의 식탁에는 먼지가 쌓여 있지 않았다.
누군가 날마다 닦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끈한 나무결이 천장 없는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식탁마다 의자가 둘 또는 셋 놓여 있었고 끝에는 언제나 빈자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빈자리에는 이름표도 없고 접시도 없었다. 도현은 어깨너머로 들어온 문을 확인했다. 들어온 문은 그대로 있었지만 복도의 불빛은 닿지 않았다.
“서가가 아니라 식당이네요.” 브론이 목소리를 낮췄다.
“기록을 적는 방식이 다른 거겠지.” 에스텔이 답했다.
세르빈이 손뼉을 쳤다. 가장 가까운 식탁 위로 오래된 장부 한 권이 나타났다. 표지에는 구호위원회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왕국은 많은 사람을 먹였습니다. 모든 식사에는 기록이 남습니다. 이곳은 그 기록을 가장 정확하게 보존하는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첫 제공 기록부터 보여 주십시오.” 도현이 말했다.
“쉽지 않습니다. 열람하려는 사람이 자기 식사를 확인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식탁 위에는 비어 있는 접시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접시의 가장자리는 제각기 달랐다. 하나는 값비싼 금박 도자기였고, 다른 하나는 흙을 대충 구워 만든 그릇이었다. 세 번째는 아이의 손바닥보다 작았다. 도현은 그 차이가 마음에 걸려 그릇들의 위치를 수첩에 그렸다.
“여기는 원본 보관소라면서 왜 문서 대신 그릇이 있습니까?”
세르빈은 우아하게 손을 폈다. “음식의 기록이니 식탁이 가장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접시가 남아 있다고 먹었다는 뜻은 아니죠. 손님이 떠나도 그릇은 식당에 남으니까요.”
“물건이야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도현은 작은 그릇 하나를 가리켰다. 테두리에 이가 빠져 있었다. 누군가 오래 쓴 물건을 급히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록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세르빈은 미소를 지웠다. 브론이 식탁 아래로 코를 들이밀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지만, 식탁마다 서로 다른 향기가 얇게 겹쳐 있었다. 마른 밀가루, 짠 생선, 태운 설탕. 몇몇 향기는 지나치게 신선했다. 십수 년 전에 차린 식탁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방금 조리한 냄새였다.
“여기 음식은 날마다 바뀝니까?” 브론이 물었다.
“기록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세르빈이 답했다.
“원본이 언제 수정되었는지는 어디에 적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그는 공문을 펴 보였다. 원본 기록의 변경 이력이 없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사본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세르빈은 공문을 거칠게 밀어냈다.
“이곳은 왕실의 권한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합니다.” 루카스가 대답했다.
한쪽 식탁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였다. 도현이 돌아보자 식탁 위에는 작은 그릇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옅은 수프가 담겼지만, 그릇 바깥의 나무바닥에는 물자국조차 없었다. 수증기가 식탁보 사이로 올라오는데도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건드리지 않았다.
“저건 방금 나타난 거죠?”
브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냄새가 없다가 갑자기 색만 생겼어요.”
도현은 기록을 만들 수 있는 마법과 실제 식사를 만드는 요리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손님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은 단지 접시 위에 보인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냄비의 온기, 식재료를 손질한 시간, 주방에서 실수한 사람의 한숨까지 실제로 있어야 했다. 하지만 보관소의 장부는 그런 부분을 지우고 결과만 만들어 내고 있었다.
세르빈은 앉으라는 몸짓을 했다. 빈 의자에는 앉지 못하게 했다. 도현이 이유를 묻자 그는 '그 자리는 값으로 남긴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어느 사람의 값입니까?”
“계약에 따라 다릅니다.”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 압니까?”
세르빈은 대답 대신 숟가락을 건넸다. 오래된 은숟가락이었다. 도현이 받지 않자 남자는 눈썹을 올렸다.
“이곳은 진실을 알려 주는 자리입니다.”
“진실을 알려 주겠다면서 먼저 뭘 삼키라는 건 좀 이상하네요.”
브론이 작게 기침했다. 웃음을 참는 소리였다.
세르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장부를 펼쳤다. 첫 장에는 이름도 날짜도 없었다. 문장 하나만 있었다.
[내일을 원하는 자는 먼저 오늘의 빈자리를 내놓을 것.]
도현은 글자를 소리 내 읽지 않았다. 읽는 행위 자체가 서명으로 해석될지 몰랐다. 에스텔이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그 문장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기근 때 저 주문을 들었어. 대기근이 끝나기 직전 구호위원회의 누군가가 이 문장을 가져왔지.”
“누가요?”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같은 자리에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의 얼굴만 비어 있어.”
도현은 그녀를 바라봤다. 누군가 자신보다 먼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에스텔이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세르빈이 손가락으로 첫 장을 두드렸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미래를 원하면 현재의 일부를 지불해야 합니다. 저주가 아니라 정당한 교환이지요.”
“그 말을 누가 동의했습니까?”
“굶주린 자들이 음식을 받았지요.”
“받았다는 사실과 동의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그 차이를 증명할 수 있습니까?”
도현은 흰 화덕섬에서 가져온 탁본을 꺼냈다. [제공자가 부담하지 못할 몫을 손님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문장이 식탁 위에 닿자 첫 장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건 섬에서 나온 기록입니다. 누군가 먹지 않은 식사의 값까지 청구하는 방식이 최초 계약을 그대로 따른 것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세르빈은 손을 뻗지 않았다. “원본이 없군요.”
“원본은 발견 장소에 있습니다. 보관인과 회수국 집행관이 발견 사실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사본으로는 이곳을 바꾸지 못합니다.”
“바꾸려는 게 아니라 비교하려는 겁니다.”
도현의 말이 끝나자 옆 식탁에 작은 빵 한 조각이 나타났다. 실제 빵처럼 김이 났다. 브론이 냄새를 맡고 움찔했다.
“이 빵, 먹기 전 냄새가 나요.”
“무슨 뜻입니까?”
“반죽이 익지도 않았는데 다 구워졌다고 기록할 때 나는 냄새예요. 아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저는 알아요.”
브론은 빵을 만지지 않았다. 도현은 식탁 다리 아래를 살폈다. 거기에는 분필로 써 놓은 듯한 숫자가 있었다. 제공량과 수령량이 달랐다. 누군가는 한 개를 구웠다고 기록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도현은 사본의 뒷면을 펼쳤다. 흰 화덕섬에서 만난 나리의 설명, 마레가 직접 정한 저녁 식사, 벨로스 노점에서 아르덴이 남긴 반 그릇. 서로 다른 날의 서로 다른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보관소의 규칙은 어떤 사람이 그릇을 비우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음 몫을 청구했다.
식탁 하나에는 고운 수프 냄새가 남아 있었다. 도현은 자신이 처음 만든 노인의 채소 수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잠깐 그 식탁을 향해 몸을 기울였으나 다시 물러섰다. 같은 냄새라고 같은 사람의 기록일 수는 없었다. 누군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기억을 이용해 방심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여기가 정말 왕국의 식사 기록 전부라면, 사람들이 매일 새 음식을 먹는 만큼 자리도 늘어야겠죠.” 도현이 말했다.
“늘지 않는다고 누가 했습니까?” 세르빈이 답했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자 방금 지나온 식탁 하나가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의자 사이 거리는 그대로인데 테이블만 늘었다. 브론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찾으려 코를 킁킁거렸다.
“무서워요. 우리가 걷는 것보다 식탁이 빨리 늘어나면요?”
“그래도 출구부터 잊지 맙시다.” 루카스가 말했다.
그는 일행이 지나온 식탁 다리에 작은 천 매듭을 걸었다. 에스텔은 그 천이 저주에 닿지 않는지 먼저 확인했다. 물건을 하나 남기는 일조차 조심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나무바닥 위에서 자그마한 소금 알 하나를 발견했다. 식탁과 식탁 사이에 떨어진 것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검은 점이 소금 안에 박혀 있었다. 섬에서 가져온 소금 결정과 닮았다. 도현이 손수건으로 가볍게 덮자 식탁 밑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이 소금은 섬에서 옵니까?” 도현이 물었다.
“왕국 전역에서 공급됩니다.” 세르빈이 답했다.
“그럼 이 입자의 원산지를 확인할 수는 없겠군요. 하지만 증거를 숨기려고 바닥을 청소하는 분은 없나 봅니다.”
그는 소금이 있는 위치만 표시했다. 세르빈이 비웃었다. “고작 소금 알갱이를 조사하려고 들어왔습니까?”
“음식의 맛을 바꾸는 데는 한 꼬집이면 충분하니까요.”
브론이 귀를 세웠다. 멀리 또 하나의 의자가 움직였다. 그것은 식탁이 아니라 사람이 앉은 의자처럼 삐걱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등받이에 손가락 다섯 개가 눌린 자국이 생겼다. 에스텔이 짧은 주문을 외우려 했지만 도현이 손을 들었다.
“지금은 불러내지 마세요. 본인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식탁을 지나쳤다. 뒤에서 아주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안 먹으면, 내일로 넘기나요?' 오래전 화덕섬의 질문과 같았지만 억양은 달랐다. 같은 사람이 한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도현은 돌아보고 싶었으나 참고 걸었다. 자신이 필요한 대답을 얻기 위해 모르는 사람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
식탁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끝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처음부터 모든 기록을 열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었다. 도현은 수첩에 [최초 한 장부터]라고 적었다. 가장 크고 어려운 저주 앞에서도 조사할 순서는 필요했다.
그 차이를 말하려는 순간 빈 의자가 움직였다. 의자가 스스로 도현 쪽으로 돌아섰고, 오래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먹지 않았으면, 그 몫은 누구에게 돌아갑니까?'
세르빈이 낮게 말했다. “질문에 답하십시오. 이곳에서는 대답을 피할 수 없습니다.”
도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몰랐고, 대답을 강요하는 규칙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먼저 누가 묻는지 알려 주십시오. 대답할지 말지는 그다음에 정하겠습니다.”
식탁 표면의 문장이 사라졌다. 대신 두 번째 장이 스스로 펼쳐졌다. 페이지 가운데에는 수많은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점마다 작은 글씨가 달렸다. 누군가의 내일. 누군가의 귀환. 누군가의 맛. 누군가의 이름.
맨 아래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최초 제공자: 공란.]
[최초 수령인: 공란.]
[대리 징수자: 확인 완료.]
“이상하군요.” 도현이 말했다. “돈을 주고받았다는 장부에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는데, 걷는 사람만 확실하다고요?”
세르빈은 장부를 덮으려 했다. 하지만 레온의 쇠숟가락에서 종이 울렸다. 식탁 끝의 빈 의자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도현이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이름 하나가 페이지 가장자리에 떠올랐다.
[차기 대리 징수자: 백도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움켜쥐었다. 누군가에게서 저주를 옮겨 받은 요리사라면, 다음에는 사람들의 내일도 거둘 수 있다는 뜻일까. 두 개의 저주가 손등에서 동시에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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