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 동쪽 연회장은 한 사람의 저녁 식사 때문에 열두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흰 식탁보의 주름을 폈고, 누군가는 은촛대를 닦았다. 은쟁반에는 고기와 과일, 향이 강한 치즈가 차례로 올랐다. 밖의 사람들은 수프 한 그릇을 나누는데 이곳에서는 접시의 방향을 맞추느라 다투고 있었다. 도현이 문턱에 섰을 때 시종장은 세 번째 잔의 위치가 틀렸다고 꾸짖고 있었다.
“그 잔 때문에 누구 저녁이 늦어집니까?” 도현이 물었다.
시종장이 도현을 쏘아봤다. “왕궁의 예절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저도 주방의 순서는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주님 건강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루카스를 따라 긴 회랑을 걸었다. 아일린은 연회장 옆의 작은 방에 있었다. 검은 왕관 문양은 손등에서 팔꿈치까지 얇은 가지처럼 뻗어 있었다. 빛나는 보석을 모두 빼 놓은 탓에 그녀는 이전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도현 씨.”
“제가 식당을 오래 비웠습니다.”
“그동안 확인한 것들은 읽었습니다. 특히 서명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더군요.”
“아직 왜 없는지는 모릅니다.”
공주가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그녀는 오늘 아침 왕실 식사대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전날 국왕의 식사를 준비한 요리사 두 명이 명단에 다시 올라와 있었고, 사흘 전 사망한 시종의 이름도 그 안에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는 똑같이 ‘남은 몫 수령’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 도장이 찍힐 때마다 공주의 손등 문양이 조금씩 뻗었다.
“저주를 가진 사람이 몇 명으로 바뀌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마지막 공식 수치는 여전히 183,442명이에요. 다만 그 수치가 오늘을 기준으로 갱신되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럼 숫자가 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군요.”
“네. 그러나 이름은 늘고 있어요.”
공주는 작은 장부를 내밀었다. 같은 사람이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었다. 도현은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켰다.
“실제 저녁을 먹었다면 주방에서 흔적이 남습니다. 사용한 재료량, 설거지한 접시, 음식을 나른 사람의 기억까지요.”
“조사를 허락하겠습니다.”
“공주님도 오늘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 정해 주세요.”
아일린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아요.”
“그러면 드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쓰러질 만큼 오래 굶으시면 안 되니까, 조금 뒤 상태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왕궁에서 그런 대답을 들은 건 처음이군요.”
아일린은 도현이 가져온 작은 식권을 들여다봤다. 마레의 그릇에 나타난 문구를 옮겨 적은 사본이었다. 공주는 그것을 읽는 동안 두 번이나 왼손을 쥐었다 폈다. 문양이 퍼진 오른팔에서는 둔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주치의가 낸 약은 진통을 늦출 뿐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마레라는 분은 저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요?”
“아닙니다. 왕실에 직접 출석해 증언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전하를 만나고 싶은지는 따로 묻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를 알려 줘서 고마워요.”
공주는 밤새 온 편지들을 꺼냈다. 북부에서 도착한 마르타의 짧은 편지도 있었다. 종이에는 [오늘은 제가 빵이 구워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라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래 갇힌 사람에게 시간이 흐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할 수 있는지 공주는 그 짧은 문장을 읽고 처음 알았다고 했다.
“왕국이 수천 명을 살렸다는 말을 저는 자랑스러워했어요.”
“그 시절 실제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당한 값을 없던 걸로 할 수는 없겠죠.”
“그렇습니다.”
공주는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사람들이 제 피부를 보고 왕국이 곧 멸망할 거라고 소리칩니다. 어떤 대신은 제가 저주를 한 번에 받아서 끝내야 한다고도 했고요.”
도현은 대답을 서둘러 하지 않았다. 이전 요리사들이 희생을 강요받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들은 한 사람을 제물로 올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오늘 공주가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다른 대안을 확인하지 않은 희생이 당연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전하가 그걸 원하십니까?”
“아니요. 무서워요. 그렇지만 왕국을 지키고 싶어요.”
“그럼 두 가지를 함께 적읍시다. 두려운 마음과 지키려는 마음. 어느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아일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웃었다. “사람들이 당신이 까다로운 요리사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군요.”
그녀는 식권 사본 옆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 [미수령 식사에 관한 왕실 확인 요청.] 단순한 문장이지만 누군가 그 질문을 무시하기 어렵게 만드는 공식 문장이었다. 공주의 체온이 내려갈 때마다 도현은 방 안의 난로에 불을 더했다. 그녀가 피곤해 보이자 질문도 멈추었다. 긴급하다는 이유로 아픈 사람을 장시간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연회장의 시종장은 아일린이 식사를 거부했다는 보고를 듣고 당황했다. 도현이 주방을 조사하는 동안 그는 내내 불평했다. “왕실 식탁에는 남긴 음식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대기근 이후의 전통이지요.”
“그 전통이 오늘의 상황을 만든 건 아닙니까?”
“말씀을 조심하십시오.”
도현은 조심했다. 그래서 직접 냄비를 열어 봤다. 가열한 육수에서는 검은 시럽 냄새가 났고, 새로 구워진 빵에는 소금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었다. 왕실 주방장 베네딕트가 그를 알아보고 급히 다가왔다.
“내가 지시한 식단이 아니다.”
“그럼 누가 바꿨습니까?”
“구호위원회에서 온 ‘표준 만찬 교정표’가 한 장 있었네. 왕실 주방의 누구도 그걸 승인하지 않았어.”
그는 낮은 서랍에서 종이를 꺼냈다. 조리법처럼 보였지만 온도와 시간 대신 사람의 이름과 ‘남겨야 할 내일’이라는 항목이 적혀 있었다. 도현은 읽던 손을 멈췄다. 요리사의 작업 지시서를 빌린 대금 청구서였다.
베네딕트가 말했다. “내가 제7조리실에서 보았던 방식이네. 레온은 이런 걸 싫어했지. 그러나 그 사람의 서명이 붙으면 모두가 따랐어.”
“서명이 진짜였습니까?”
“난 확인한 적 없어. 요리사라는 직업을 너무 믿었지.”
베네딕트는 여느 때와 달리 손을 씻은 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평생 왕실에서 칼을 잡은 남자였다. 몇 사람분의 식사를 만들었는지, 어떤 날 음식이 부족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장부는 그가 결코 만들지 않은 요리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적어 두었다.
“이렇게 살았는데도 내가 모른 척한 일이 있었겠지.” 그가 말했다.
“오늘은 그걸 확인하셨습니다.”
“확인만 해서 되는 게 아닐 텐데.”
“그렇죠. 오늘부터는 누가 냄비를 켰는지 적어 주세요. 마법이 바꿔 놓은 글씨가 아니라 조리사가 실제로 한 일부터요.”
베네딕트는 오래된 가죽 장부를 꺼내 첫 줄을 적었다. [오늘 아침 첫 화덕 점화: 베네딕트.] 그는 남들처럼 화려한 서명을 하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다 보니 글씨는 조금 삐뚤었다. 도현은 그 글씨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장부 속에서는 처음으로 사람의 손이 보였기 때문이다.
도현은 그에게 손목을 보여 주었다. “전 저주를 두 개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울수록 늘 수 있고요. 그러니 저 역시 특별하다고 무조건 믿지 마세요.”
베네딕트는 그의 손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요리사가 자기 실력을 믿지 말라는 건 어려운 부탁이군.”
“실력은 믿으셔도 됩니다. 남의 이름으로 서명하는 종이만 믿지 마세요.”
베네딕트는 도현을 따로 불러 작은 시험을 제안했다. 왕실 주방의 젊은 조리사 둘이 오늘 공급받은 육수를 각각 맛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시럽이 들어 있을 수 있는데, 손님을 시험 재료로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확인하겠나?”
“원료와 조리 과정을 먼저 비교하죠. 맛을 보지 않고도 구분할 수 있는 건 많으니까요.”
도현은 두 솥의 온도를 비교했다. 하나는 아침부터 끓인 흔적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뚜껑에 물방울이 맺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공급 기록에는 두 솥 모두 여덟 시간 동안 가열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나무주걱을 젓고 수면의 기름층을 살폈다. 실제 끓인 육수는 기름이 얇고 고르게 퍼졌지만, 기록만 만들어진 솥에는 차가운 덩어리들이 한쪽에 몰려 있었다.
베네딕트가 소금을 한 꼬집 뿌렸다. 차가운 육수는 소금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조리서에는 이미 소금과 향신료를 넣어 완성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마법이든 사기든, 조리법을 모르는 사람의 짓이군요.” 도현이 말했다.
“사기꾼이 요리사의 옷을 입었다는 뜻인가?”
“적어도 기록을 만든 사람은 주방에 와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네딕트는 젊은 조리사들을 돌아봤다. 그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어제도 완성 표시가 뜬 냄비가 있었는데, 제가 직접 불을 켰다는 걸 장부에 적었다가 상사에게 혼났습니다.”
“그때 누가 혼냈습니까?”
“구호위원회에서 나온 감찰관입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흰 장갑을 꼈어요.”
도현은 설명을 더 강요하지 않았다. 조리사는 자신이 본 일을 말했고, 이제 확인해야 할 것은 감찰관의 출입 기록이었다. 베네딕트는 그날의 조리 장부를 도현에게 건넸다. 왕실의 거대한 장부와 달리 종이는 음식 기름으로 군데군데 투명해져 있었다. 그 투명한 얼룩이 오히려 실제 조리의 증거였다.
주방을 나설 때 공주의 전령이 다시 찾아왔다. 원본 보관소의 출입 허가가 방금 내려왔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허가증에는 이상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
[열람자 1인만 입장할 것.]
[열람 중 발생한 기억 누락에 대한 이의 제기 불가.]
도현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루카스를 불렀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면 저는 안 들어갑니다.”
“다른 출입 방법을 찾겠습니다.”
아일린이 직접 회랑 끝까지 걸어 나왔다. 그녀는 허가증을 읽더니 바로 왕실 인장으로 가운데를 눌렀다.
“왕실 명령은 기억을 포기하는 계약이 아닙니다.”
그러자 문구가 검게 타올랐다. 하지만 불길은 종이에만 머물지 않았다. 복도 바닥의 돌 틈에서 얇은 검은 선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선들은 궁전의 모든 식탁이 놓인 방향으로 뻗었다.
에스텔이 숨을 들이켰다. “서류에 붙은 마법이 아니야.”
“그럼요?”
“왕궁 자체가 식사를 기다리고 있어.”
복도 저편에서, 아무도 치지 않은 저녁 종이 한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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