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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63화
PAYLUA ORIGINAL · 제63화

63화. 내일로 먼저 도착한 서류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350자

오프라인 책장
벨로스 항구에 새벽 경매가 열리는 날은 갈매기들도 일찍 일어났다. 해가 수평선 위로 올라오기 전, 어시장 앞에는 물건을 실은 수레가 줄을 지었다. 도현은 생선보다 사람들의 손을 먼저 보았다.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얇은 장갑만 낀 아이들, 밤새 자루를 나른 탓에 손끝이 갈라진 인부들. 누군가를 먹여 살린다는 명목으로 만든 계약이 이 사람들의 내일을 빼앗았다는 생각을 하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오늘도 수프 장사를 합니까?” 브론이 물었다. “우선 아침 식사부터요. 우리도 먹어야 움직이니까.” 도현은 어시장 끝 빈 좌판을 하루 빌렸다. 유리아가 사용료를 물어 왔고, 작은 솥과 임시 화로는 사브라의 선원들이 빌려주었다. 그는 콩을 푹 삶아 으깨고, 손질하고 남은 생선 살을 구웠다. 다친 손가락 때문에 칼질은 브론에게 맡겼다. 브론은 칼을 지나치게 높이 들어 올렸다가 에스텔에게 혼났다. “무슨 적을 토벌하니?” “양파를 토벌하고 있습니다.” “도마를 먼저 토벌하겠네.” 도현은 웃으며 브론의 손목 각도를 고쳐 주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동안 자신이 못 하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 덜 부끄러워졌다. 주방에서는 속도보다 안전이 먼저였다. 아침 수프는 팔리기 시작했다. 동화 두 닢을 낸 인부는 두 숟갈을 먹고 아이 몫을 싸 달라고 했다. 도현은 따로 작은 그릇에 담아 봉했다. 누군가는 빚을 대신 갚아 줄 테니 수프를 공짜로 주라고 했지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이름으로 새로운 장부를 만들 생각이면 안 됩니다.”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돈도 안 받고 선행하겠다는 사람을 왜 막아?” “돈을 내실 수는 있습니다. 다만 식사를 받는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빚을 지는지는 그 사람이 정해야 합니다.” 그는 판매 장부와 기부 장부를 다른 페이지에 적었다. 시장에서는 사소한 일로 보였다. 도현에게는 앞으로 왕궁에서 해야 할 싸움의 연습이었다. 도현이 끓인 수프는 인기 있는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인기와 안전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아직 첫 손님의 그릇을 씻기도 전에 항만청의 회계 서기가 나타나 노점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손에 든 나무패를 내보였다. 임시 시장 허가증이었다. “허가증이 있는데 왜 철거해야 합니까?” 유리아가 물었다. “매대에서 구호 식사를 판매할 경우 왕실 공급망에 등록해야 한다는 지침이 신설됐습니다.” “누가 신설했습니까?” “어젯밤 본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침 사본을 보여 주십시오.” 서기는 서류를 찾다가 당황했다. 그는 공문이 아니라 구두 지시였다고 털어놓았다. 가게 주인들 사이에서 이 소란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국자를 내려놓았다. “허가된 자리에서 파는 수프를 제가 멋대로 구호 식사라고 등록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런 등록은 한 적이 없습니다. 금액이 적힌 정상적인 판매입니다.” 서기가 머뭇거릴 때, 항구의 늙은 대장장이가 한 걸음 나왔다. “내가 낸 동화 두 닢은 왕실에 갚을 빚이었나?” “아닙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럼 노점에 손대지 마시오.” 대장장이가 서기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오늘 우리 돈으로 밥을 먹었다고.” 서기는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유리아는 상황을 기록하고 그에게 나중에 정식 지침이 오면 다시 확인하겠다고 했다. 도현은 다시 불을 켰다. 그러나 그 사이 수프 위에는 얇은 막이 생겨 있었다. 그는 직접 한 숟갈 떠 온도를 확인한 뒤 불을 줄였다. “괜찮습니까?” 브론이 물었다. “먹을 만해요. 하지만 아까보다 식었네요.” “손님들은 기다려 주셨습니다.” 도현은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왕국을 구하는 요리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오늘 일하러 가기 전에 몸을 데울 한 그릇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들의 생활을 자신의 영웅담에 동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점심 장사가 끝날 무렵 도현은 노점 수익을 계산해 유리아에게 사용료를 지급했다. 남은 감자와 콩은 따로 봉해 다음 장사에 쓸 만큼 보관했다. 상하지 않을 만큼만. 무리하게 공짜로 나누다가 다음 날 팔 음식을 잃는 것도 책임 있는 장사는 아니었다. 브론은 계산을 도우면서 세 번이나 동전을 잘못 셌고, 네 번째에는 정확히 맞혔다. “제가 이제 회계까지 합니다!” “그럼 급여를 올려 달라고 하실 겁니까?” “그건 아주 좋은 생각인데요?” 도현은 웃다가 잠시 생각했다. 이들이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임금과 생활비를 명확히 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주를 이용하는 계약에 맞선다고 하면서 자기 직원의 급여를 대충 넘길 수는 없었다. 그는 장부 한쪽에 브론의 밀린 근무 기록을 적었다. “왕도에 돌아가면 이번 원정 수당부터 정산합시다.” 브론은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저 방금 농담한 건데요.” “농담이라도 맞는 말이었으니까요.” 점심 무렵 아르덴이 식당 좌판에 나타났다. 항구 수비대의 망토 위로 회수국의 검은 접시 문장이 보였다. 그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도현을 찾아온 것이 뜻밖이었다. “왕도의 회신이 왔습니다. 왕궁 구호위원회 원본 보관소에서 제게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원본은 보여 준답니까?” “그 말은 없습니다. 증거를 인도하라고만 적혀 있지요.” 아르덴은 봉투를 내밀었다. 보존 확인서와 달리 이번 공문에는 작성자의 이름이 없었다. 문서 번호는 존재했지만, 왕실 인장 위로 검은 접시 모양의 그림자가 스쳐 갔다. 루카스가 종이를 읽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저 인장은 한 번 찍힌 자리에 다시 찍혀 있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브론이 물었다. “겉쪽 금박은 왕실 인장인데, 아래쪽 밀랍에 찍힌 선은 구호위원회의 구 인장입니다. 다른 시기의 도장이 한 장에 겹쳐 있습니다.” 도현은 더 자세히 살피려다 손을 뗐다. 종이를 뜯으면 기록이 훼손될 수 있었다. 그는 유리아에게 인장 측면의 모양을 떠 달라고 부탁했다. 저주로 원본을 삼킬 수 있는 자신이 모든 일의 첫 목격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 아르덴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직위를 잃을 수 있습니다.” “따르면요?” “어떤 문서를 인도했는지조차 기록하지 못할 겁니다.” 두 사람은 수프가 식을 때까지 말이 없었다. 아르덴이 가진 권한은 크지 않았고, 도현이 그를 무조건 자기편으로 만들 방법도 없었다. “저와 함께 왕도로 가실 생각입니까?” 도현이 물었다. “공식적으로는 호송 담당입니다.” “그러면 공식 기록에 그렇게 적읍시다. 별도로 증언할 마음이 생기면 그건 그때 결정하시고요.” 아르덴은 처음으로 작게 웃었다. “당신은 이상한 요리사군요. 사람을 설득하지 않고 장부부터 내밉니다.” “음식값 계산하는 걸 오래 해서요.” 아르덴은 점심 수프를 거절했다가 얼마 뒤 스스로 돌아와 한 그릇을 주문했다. 그가 내민 은화는 지나치게 컸다. 도현은 거스름돈을 돌려주었다. 회수국의 집행관이니 특별한 값을 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저를 믿으십니까?” 아르덴이 갑자기 물었다. “아뇨. 저희가 합의한 보존 절차를 믿습니다. 거기에 남긴 아르덴 씨의 행동도요.” 아르덴은 숟가락을 멈췄다. “이상하게 더 낫군요.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바로 다음에 무언가를 부탁하거든요.” 그는 자신이 처음 회수국에 들어간 이야기를 했다. 젊었을 때 그는 홍수로 집을 잃은 사람들의 물품을 돌려주는 담당자였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제 가족에게 전달하면,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좋았다고 했다. 나중에는 상자를 전달하기 전에 안을 확인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그 규정이 언제부터 사람의 기억과 말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허가로 바뀌었는지 그는 정확히 몰랐다. “상자를 돌려주는 사람이어야 했는데, 어느새 비우는 사람이 돼 있더군요.” 도현은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말했다. “왕도에서 원본을 보면 모르는 부분을 더 알게 되겠죠. 다만 그때도 안에 든 말을 함부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아르덴이 대답했다. 그들은 누구를 영웅이라 부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잘못된 지시를 따랐던 사람이 한 번 신중해졌다고 해서 지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르덴은 동전을 내고 일어났다. 접시에는 수프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는 남긴 이유를 설명하려다 멈췄다. “안 드실 거면 이만 치우겠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네. 다음 몫으로 넘기지 마시고요.” 아르덴의 얼굴에 아주 짧은 미소가 스쳤다. 그날 오후 유리아는 서류를 세 벌로 나눠 보냈다. 한 벌은 왕도에 있는 아일린에게, 한 벌은 벨로스 항만청에, 한 벌은 북부 루덴의 네린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실물 탁본은 루카스가 봉인해 보관하고, 섬의 원본은 나리에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복제할 수 있고 무엇은 복제하면 안 되는지도 적었다. 제9조각에 관한 내용은 어느 사본에도 없었다. “그럼 이 기록이 사라져도 다시 확인할 길이 있군요.” 브론이 말했다. “일부는 그렇습니다. 전부를 안전하게 만들 방법은 아직 없어요.” 도현은 좌판을 접은 뒤 마레의 집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사브라 혼자 문 앞에 나와 있었다. “동생이 직접 결정했어. 왕실에 그릇에 나타난 문구의 사본을 보내도 좋다고.” “마레 씨가 직접 말씀하셨습니까?” “응. 다만 본인이 따라가서 증언하는 건 싫대. 그걸 존중해 줘.” 도현은 봉투에 적었다. [서면 증언만 허용. 출석 요청 거절.] 그리고 마레에게 보낼 짧은 편지를 남겼다. 어젯밤 먹지 않고 남긴 수프는 오늘 누군가의 빚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출발 전날 밤, 백연호 쪽에서 낮은 종소리가 들렸다. 정박 중인 배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데도 소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이어졌다. 사브라가 선착장 끝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출항종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그럼 뭡니까?” “도착을 알리는 종이지. 아무도 탄 적 없는 배에서.” 도현은 바다를 바라봤다. 물 위로 하얀 종이 한 장이 떠올랐다. 바람에 젖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았다. 루카스가 밧줄 끝으로 건져 올렸다. 종이에는 낯선 날짜가 적혀 있었다. [왕궁 원본 보관소 입고 예정: 내일.] [입고 물품: 흰 화덕섬의 미수령 식사.] [담당자: 백도현.] 도현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일이 이미 내일의 기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옆 칸에 직접 썼다. [본인은 해당 물품의 인수나 운송에 동의하지 않음.] 그 문장을 쓰자 종이 아래쪽이 검게 타올랐다. 종은 멈췄다. 어둠 속에서 바다보다 먼 왕궁의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보이는 듯했다. “우리보다 먼저 누군가 왕도로 간 모양이네요.” 에스텔이 말했다. “그렇다면 먼저 도착한 서류부터 의심해야겠죠.” 도현은 가방을 잠갔다. 이번에는 증거를 빼앗기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내일의 식사를 접수하려 한다면, 그 식탁 앞에 직접 가서 거절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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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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