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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62화
PAYLUA ORIGINAL · 제62화

62화. 먹지 않을 권리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205자

오프라인 책장
마레의 집에는 시계가 세 개 있었다. 하나는 문 위에, 하나는 창가에, 마지막 하나는 식탁 바로 위에 놓여 있었다. 셋은 모두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문 위의 시계가 오후 여섯 시를 넘을 때 창가 것은 여섯 시 십칠 분이었고, 식탁의 시계는 아직 다섯 시였다. 도현이 물끄러미 보자 마레가 먼저 말했다. “고장 난 걸 아는데 안 버려요. 같은 시간을 가리키지 않아도 다 멈춘 건 아니니까.” 그녀는 의자를 가리켰다. 브론이 앉으려다 사브라의 눈치를 봤고, 사브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조용히 엉덩이를 내렸다. 항구의 평범한 집이었다. 화덕섬에서처럼 돌바닥에 기록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바람도 거꾸로 불지 않았다. 그러니 무엇이든 물어보아도 된다고 착각하기 쉬운 곳이었다. “먼저 식사를 만들까요?” 도현이 물었다. “네. 대신 제가 멈추라고 하면 멈춰 주세요.” “당연합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고 나중에는 더 먹어야 낫는다고 해요.” 도현은 앞치마를 꺼내면서 잠깐 손을 멈췄다. “그렇게 말하면 제가 잘못한 겁니다. 미리 정하지 않고 여쭤보겠습니다.” 마레는 그제야 희미하게 웃었다. 사브라는 창가에서 동생을 지켜봤다. 동생이 돌아왔을 때는 스무 살이었다는 사브라의 말을 도현은 떠올렸다. 지금의 마레는 나이를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얼굴은 성숙했지만 손등에는 어린 사람이 식기를 억지로 움켜쥐다 남은 듯한 흉터들이 있었다. 부엌에는 감자 세 알과 흰 콩 조금, 마른 생선 뼈가 남아 있었다. 도현은 생선 뼈를 데친 뒤 씻고, 양파를 약한 불에 오래 볶았다. 짭짤한 육수에 감자를 넣고 천천히 끓였다. 마지막에는 콩을 으깨 농도를 맞췄다. 마레가 원하는 것은 저주를 없애는 음식이 아니라 먹는 일을 스스로 끝낼 수 있는 식사였다. 그래서 그는 커다란 접시 대신 손바닥만 한 그릇을 골랐다. “양이 너무 적지 않나요?” 브론이 속삭였다. “다 먹고 더 원하면 다시 드리면 됩니다.” “그럼 제 건 처음부터 두 그릇으로….” “당신 건 한 그릇입니다. 천천히 먹고 생각하세요.” 도현은 마레가 꺼내 놓은 식기를 천천히 살폈다. 접시는 모두 짝이 맞지 않았다. 나무 그릇 하나, 테두리가 깨진 도자기 하나, 손잡이가 짧은 주석 컵. 마레는 그중 어느 것도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릇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지만, 그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제가 새 접시를 하나 가져왔는데, 써 보시겠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마레는 작은 접시를 받아 무게를 가늠했다. “오늘은 이걸 쓸래요. 가벼워서 좋네요.” 도현은 접시를 씻은 뒤 마레가 보는 앞에서 물기를 닦았다. 남이 준비한 것을 그대로 받아야 했던 세월을 생각하면 이 간단한 과정조차 마음에 걸렸다.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은 채 맛있다고 믿는 음식을 내놓는 것과, 맛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사브라는 동생의 곁에서 예전 이야기를 조금 했다. 마레는 어릴 적 항구를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다녔다. 파도에 떠밀려 온 유리 조각을 모아 집 안을 꾸미는 걸 좋아했고, 해마다 첫눈이 내리면 흰 소금을 접시에 담아 눈이라고 우겼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해 구호선이 모자라 사람들이 섬으로 옮겨졌고, 마레 역시 그 배에 탔다. “그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내가 제대로 아는 건 많지 않아.” 사브라가 말했다. “마레가 돌아왔을 때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고 해서, 난 그 아이가 더는 굶지 않게 하려고 매일 큰 그릇을 차렸지.” “그게 무서웠어요.” 마레가 조용히 말했다. 사브라의 얼굴이 굳었다. “그때는 몰랐어.” “알아요. 언니는 도와주려 했어요. 그런데 그 큰 그릇을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섬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사브라는 말을 잃었다. 도현은 고개를 숙여 가스처럼 일렁이는 불길을 확인했다. 솥바닥에 수프가 눌어붙지 않도록 약한 불을 유지했다. 누군가의 잘못을 판정하는 대신, 지금 식사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묻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그릇을 마레 씨가 직접 고르셨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마실 물도 여기 두었습니다. 원하시면 냄비를 아예 치워 드릴게요.” “그냥 부엌에 두세요. 있는 걸 알아도 안 먹을 수 있는 연습을 하고 싶거든요.” 마레는 새 접시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쓸었다. 작은 선택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조금 편안해 보였다. 마레는 수프 냄새를 맡았다. 불 위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얼굴을 스치자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섬에서 돌아온 뒤 처음으로 이 냄새를 맡았을 때, 무서웠어요.” “왜요?” “따뜻한 걸 먹으면 빚이 늘어난다고 했거든요.” 도현은 국자를 내려놓았다. 마레는 언제 누구에게 그 말을 들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섬의 화덕 앞에서 사람들은 그릇을 빈 채 돌려주면 안 된다고 배웠다고 했다. 배가 고파서 먹으면 내일의 노동을 약속한 것이고, 배가 부르다고 말하면 거짓말을 했다고 적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계속 먹었어요. 그릇이 빌 때마다 다시 받았죠. 어느 날은 먹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제가 받을 몫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저는 언제 그만 먹어야 하는지 몰라졌어요.” 그녀는 수프를 한 숟갈 들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도현은 그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검사받는 사람이 아니라 식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싶었다. “맛있어요.” 마레가 말했다. “다행입니다.” “더 먹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마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식탁 위의 시계 초침이 멈췄다. 이어 문 위에 있던 시계도 멈추었다. 창가 것만 움직였다. 사브라는 숨을 참았고 브론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숟가락 내려놓은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바로 그때 마레의 빈 그릇 테두리에 아주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잔여 식사 미수령.] [미수령분 대금: 다음 식사에 합산.] 도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레가 무서워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먹지 않는 선택조차 내일의 빚으로 바뀌는 식탁. 그는 서둘러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장부를 펼쳐 이번 식사의 재료값과 조리 시간을 적었다. “오늘 음식값은 제가 받지 않겠습니다. 선물이라고 정하고 만든 수프니까요. 마레 씨가 안 먹은 분량은 냄비에 남아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미수령분 대금: 다음 식사에 합산.] 글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에스텔이 문가에서 조용히 말했다. “여긴 마법 식탁이 아니야. 그릇에 붙은 오래된 기억이 계약을 흉내 내고 있어.” “그럼 오늘 식사와 구분할 수 있겠군요.” 도현은 마레에게 물었다. “저 문장을 제가 베껴도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그릇에 있는 표식이 왜 생겼는지 조사해도 될까요?” 마레는 오래 고민했다. “그릇은 가져가지 마세요. 우리 집에 있어야 해요. 글씨는 적어도 돼요.” 도현은 그 말대로 했다. 그릇을 들지 않고 빛의 방향만 바꿔 글씨를 읽었다. 오래된 문장 아래에 희미한 글자 세 개가 더 있었다. [정산 장소: 내륙 원본 보관소.] 사브라가 탁자를 짚었다. “마레가 그 섬에서 돌아온 지 벌써 몇 해인데, 아직도?” “그때 계약이 끝났다는 문서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루카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마레 씨가 새 계약에 동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레가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 말이 중요해요. 누군가 늘 제가 집에 돌아왔으니 계약이 끝난 줄 알았다고 했어요. 끝난 적이 없다는 말도 싫지만, 끝났다고 멋대로 말하는 것도 싫어요.” 그들은 그릇을 그대로 두고 식탁을 치웠다. 브론이 빈 접시를 씻으려 하자 마레가 잠깐 손을 뻗었다가 내렸다. 설거지는 그녀가 맡겠다고 했다. 브론은 그것도 도와주어야 하는 일 아니냐고 입술을 달싹였으나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돕는다는 이름으로 빼앗지 말아야 할 일도 있었다. 모두가 식사를 마친 뒤 사브라는 도현을 뒷마당으로 불렀다. 작은 담벼락에는 조개껍데기를 꿰어 만든 장식이 걸려 있었다. 바람이 불면 물병이 서로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사브라는 그 아래에 서서 한참 말이 없었다. “내가 동생을 고치려 한 건 아니었을까.” 도현은 대답을 고르느라 잠시 기다렸다. “동생이 아프지 않길 바라셨겠죠. 하지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는 마레 씨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는 매일 뭔가를 먹었는데도 눈빛은 더 야위어 갔어. 나는 겁이 나서 더 큰 그릇을 만들었지.” 사브라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선장 노릇은 쉬워. 폭풍이 오면 돛을 줄이면 되지. 가족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어. 밥을 조금 퍼 주는 게 옳은지, 많이 퍼 주는 게 옳은지도 몰랐어.” “오늘은 마레 씨가 양을 정했습니다. 그게 바로 달라진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걸 오래 지켜 보고 싶어.” 마당 안쪽에서 유리병이 부딪쳤다. 사브라는 동생이 어릴 적 모래를 모아 병 속에 담던 이야기를 했다. 검은 모래를 모으던 날도 있었고, 빨간 해초를 넣어 이상한 색을 만들던 날도 있었다. 병들 중 어떤 것은 마레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사브라가 직접 채운 것이었다. 기다린 날을 세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제 저 병에 뭘 넣는지 간섭하지 않으려고.” 두 사람은 집 안으로 돌아갔다. 마레는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아직 끓인 감자의 따뜻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도현은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해낸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했다. 저주는 그대로 있었고, 내일도 어려운 날일 수 있었다. 다만 오늘 그녀가 스스로 식사를 멈춘 일은 분명히 일어난 사건이었다. 늦은 밤 마레가 시계를 하나씩 맞췄다. 셋이 정확히 같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창가 시계에서 초침이 한 바퀴 돌아왔을 때 그녀는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한 그릇을 제가 끝냈어요.” “네.” “그럼 내일은 제가 안 먹겠다고 해도 될까요?” “그건 내일 마레 씨가 정하실 일이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브라의 눈가가 젖었다. 도현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발치로 차가운 바닷바람이 지나갔다. 그때 그의 주머니 속 레온의 쇠숟가락이 울렸다. 한 번, 아주 짧게. 숟가락의 홈에는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왕국의 식탁: 잔여분 자동 합산 규칙 확인.] [중단 조건: 미수령분을 발생시키지 않은 최초 제공 기록 대조.] 도현은 마레의 집을 돌아보았다. 창가에 푸른 병 세 개가 희미하게 빛났다. 잔여분이 있는 건 냄비였다. 빚이 남은 건 사람이 아니었다.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어쩌면 왕국의 오래된 계산도 바꿀 수 있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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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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