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스의 부두에는 오후가 되어서야 비린내가 돌아왔다.
폭풍을 지나온 바늘고기호가 외항의 좁은 수로로 접어들자 백도현은 난간에 손을 짚었다. 섬에서는 사흘 내내 젖은 석회와 구운 빵의 냄새만 맡았다. 익숙한 항구의 냄새가 반가운 날도 있다니, 이세계에 떨어진 첫날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육지다!” 브론이 갑판을 뛰었다. “이제 나를 흔드는 바닥이 없어요!”
“배가 아직 정박하지 않았습니다.” 사브라가 말했다.
“마음만은 이미 내렸습니다.”
브론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돛대에 이마를 부딪쳤다. 선원들이 웃었다. 도현도 웃었지만 왼손 검지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난간을 놓는 데 한참 걸렸다. 손등까지 번진 석화의 회색 선이 소금기를 만날 때마다 조용히 욱신거렸다. 소녀에게서 옮겨온 기억 저주도 사라지지 않았다. 방금 먹은 죽의 간은 떠오르는데, 어릴 적 어머니의 미역국은 여전히 아무 맛도 없는 공백이었다.
그는 손목을 소매 안으로 숨기지 않았다. 숨긴다고 나아지는 저주가 아니었다.
유리아는 제3창고 부근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해 두었다. 불탄 창고의 검게 그을린 벽에는 안전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고, 항만청 직원 두 명이 드나드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백연호는 봉인된 채 정박 중이었다. 배의 밧줄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었지만 선체 아래 물은 여전히 밤빛처럼 검었다.
“돌아오셨군요.” 유리아가 그들을 맞았다. “사흘 새 항구는 두 번 뒤집혔습니다.”
“우리는 폭풍 한 번이었는데요.” 브론이 말했다.
“폭풍보다 빠른 건 소문이죠. 누가 섬에서 열여섯 명을 구해 왔다고 떠들고 있어요.”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어제 들어온 상인들요. 한 사람의 목격이 다른 사람 입을 거치면서 열여섯 명이 됐습니다.”
도현은 곧장 부두 게시판 앞으로 갔다. 그곳에는 ‘실종 조리사 전원 구조’라는 제목의 낙서가 붙어 있었다. 아래에는 가족들이 몰려와 적은 이름이 촘촘했다. 그는 종이를 뜯지 않았다. 옆에 정확한 내용을 적어 붙였다.
[흰 화덕섬에서 증언 보관 조각 열여섯 개를 확인함. 사람의 생존이나 소재는 확인하지 못함. 제9조각은 본인 의사 확인 전까지 공개 보류 중.]
“이렇게 적으면 다들 실망하지 않을까요?” 브론이 물었다.
“그렇겠죠. 그렇지만 어제 살아 돌아왔다고 믿고 잠들었을 가족들이 내일 다시 실종 소식을 듣게 만드는 편이 더 잔인합니다.”
부두의 바람이 게시판의 종이를 뒤집었다. 검은 밀 자루 열여섯 개에 관한 소문도 바람처럼 이쪽저쪽으로 흩어졌다. 도현은 손목이 아파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그 사이 아이 하나가 낙서를 읽더니 환하게 웃었다. 자기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는 것이다. 도현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아직 찾지 못했어. 하지만 찾는 걸 그만두지는 않았어.”
아이는 손에 쥔 조개껍데기를 내려다봤다. “그럼 여기 아빠 이름도 써 주세요.”
도현은 이름을 듣고 천천히 적었다. 조개껍데기의 작은 금까지 기억하려고 손바닥에 올려 살폈다.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반드시 대단한 약속을 하는 일은 아니었다. 제대로 들었다는 사실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긴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때 게시판 옆에 서 있던 낡은 모자 차림의 여자가 도현에게 다가왔다. 게른의 어머니였다. 손에는 아들의 소라껍데기가 들려 있었다.
“제 아들은요?”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섬에서 이 이름을 확인했어요.”
그는 수첩에 기록한 수색 경로를 보여 주었다. 백연호의 제0접안지와 흰 화덕섬의 반출 장부 사이에 화물 표식 하나가 반복되었다. 원래 수령자에게 돌아가지 않은 짐을 뜻하는 표식이었다.
노인은 글자를 더듬었다. “이게 그 아이 것이라는 증거는 없는 거군요.”
“네. 아직은요.”
“그럼 찾아봐 주세요. 희망을 크게 말하지 않아도, 찾고 있다는 말만으로 견딜 수 있으니까.”
도현은 그 부탁을 적었다. 노인은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돌아서서 시장으로 가는 뒷모습이 이상할 만큼 작아 보였다.
도현은 소문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두 사람들을 한 번 더 만났다. 말이 처음 돌았다는 식당은 창고 뒤편에 있었고, 그 안에서는 젖은 작업복을 말리는 냄새와 어제 끓인 생선국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주인은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인 여자였다. 그녀는 도현을 보자 주걱을 내려놓았다.
“사람 열여섯이 구조됐다고 내가 말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난 열여섯 개 기록이 바다에서 돌아왔다고 했어요.”
“누구한테 하신 말씀입니까?”
“새벽마다 생선 받아 가는 운송상들한테. 그런데 누가 그걸 사람이라고 바꿔 전했을 거예요. 그 편이 훨씬 대단한 뉴스니까.”
“그럼 사장님이 오늘 본 건 무엇인지 적어 주실 수 있습니까?”
여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르덴 쪽 배가 돌아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죠. 내가 본 건 너희가 와서 수프를 먹을 때야.”
도현은 바로 펜을 내려놓았다. 들은 이야기의 출처가 다시 한 사람 멀어졌다. 장부에는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는 말이 사실처럼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럼 소문을 정정해 주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젓더니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큼직한 나무판을 들고 나왔다. 붉은색 물감으로 자기가 직접 글씨를 썼다. [열여섯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조사할 단서다.] 여자는 문 옆에 판을 내걸었다.
“장부보다 이게 더 빨리 읽힐 거예요. 일하다 지친 사람들은 긴 공문 읽을 힘도 없거든.”
도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직업은 글씨보다 냄새와 맛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이었다. 사실을 알리는 데도 사람마다 다른 그릇이 필요했다.
식당을 나오려는데 모자를 눌러쓴 청년 하나가 도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노라가 맡긴 헝겊 무늬와 비슷한 천 조각이 있었다. 청년은 자기가 엘마를 안다며 큰돈을 요구했다. 브론이 반사적으로 그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도현이 멈춰 세웠다.
“언제 어디서 만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건 돈을 받으면 알려 주겠어.”
“천 조각만 보고 사람을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청년은 욕을 내뱉고 도망쳤다. 브론은 놓쳤다고 아쉬워했지만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거짓 희망을 미끼로 가족에게서 돈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청년의 인상착의와 들고 있던 천의 모양을 따로 적어 유리아에게 전달했다.
일행은 유리아의 사무실에서 증거를 정리했다. 섬에 원본을 남겨 둔 금속판의 탁본, 아르덴과 루카스가 각각 작성한 발견 기록, 아홉 번째 조각의 비공개 결정 통지. 세 가지를 한 상자에 넣지 않았다. 상자마다 다른 인장과 수령인을 적었다. 아르덴은 자기 배에서 내린 뒤 약속대로 공식 기록 한 부를 넘겼다.
“제 보고서는 계약의 효력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저희도 아직 효력이 없다고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다만 승인 원본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겼습니다.”
아르덴은 잠깐 망설였다. “왕도에 가시면 조심하십시오. 문서만 숨기는 곳이 아닙니다. 문서를 읽는 사람이 무슨 기억을 갖고 나올지도 정하는 곳이지요.”
“그걸 직접 보셨습니까?”
“보지는 못했습니다. 돌아온 동료들이 말한 것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확인한 것과 전해 들은 것을 구분했다. 도현은 감사 인사를 하고 그 말을 별도의 칸에 적었다.
오후 늦게 항만청의 봉인 창고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검은 접시 회수국의 인부들이 사본을 수거하겠다며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의 문서에는 왕실 인장이 있었지만 수거할 물건의 명칭이 모호했다. [흰 화덕섬에서 반입된 모든 유사 보관물.] 그 문구를 읽은 유리아는 문 앞을 막았다.
“유사 보관물이 무엇을 뜻합니까? 젖은 밧줄도 섬에서 가져왔습니다.”
인부는 기름 먹은 손가락으로 종이를 가리켰다. “상부 지시입니다. 이번 주 안에 왕도로 보내야 합니다.”
“지시한 사람의 이름은요?”
“그건….”
두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르덴이 회수국 표찰을 보여 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짙었다.
“지금은 봉인 해제 권한이 없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작성한 공동 보존 기록에 따라 손대지 마십시오.”
인부들은 마지못해 물러났다. 아르덴이 그들을 따라가려다가 돌아섰다.
“다음번에는 상부의 진짜 서명이 찍혀 올 겁니다. 그때도 이렇게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왕도에 가야겠죠.” 도현이 대답했다.
유리아가 봉인함을 다시 잠갔다. 항구가 저물자 붉은 등대에 불이 켜졌다. 빛은 서쪽 바다로 길게 뻗었고, 물결은 어둡게 일렁였다. 도현은 이제 곧 싸울 장소가 바다가 아닌 서류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곳에도 폭풍이 있을 것이다. 다만 파도 대신 누군가의 이름이 밀려오겠지.
그날 저녁, 사브라가 항구 동쪽 끝으로 안내했다. 언덕 아래에는 작은 벽돌집이 있었고, 창틀마다 푸른 병이 놓여 있었다. 병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었다. 일부는 젖어 있었고 일부는 말라 있었다.
“마레는 이 집에 살아.” 사브라가 말했다. “만나겠느냐고 물어봤어. 싫다면 돌아가자고도 했지.”
“뭐라고 하셨습니까?”
“요리사가 오면 밥부터 먹고 이야기하겠대.”
도현은 잠시 안도했다. 누군가 자신과 만나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러나 사브라는 현관 앞에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한 가지는 알아 두게. 내 동생은 배가 부르다는 걸 몰라. 아무리 먹어도 더 먹을 수 있다고 해. 그렇다고 더 먹이고 싶다는 뜻은 아니야.”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서 문이 열렸다. 마른 여자가 등잔을 들고 서 있었다. 사브라와 같은 회색 눈동자였지만 눈빛은 훨씬 느긋했다. 여자는 도현보다 먼저 냄비 가방을 바라봤다.
“요리사라면서요. 물어볼 게 하나 있어요.”
“말씀하세요.”
“사람들이 제가 배부른 줄 모른다고 하면, 언제나 더 먹으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알고 싶은 건 반대예요.”
마레는 등잔을 식탁에 놓았다.
“안 먹어도 된다는 걸, 누가 제게 말해 줄 수 있나요?”
도현은 냄비의 손잡이를 내려놓았다. 이번 식사의 첫 번째 재료는 고기나 소금이 아니었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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