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물때까지는 세 시간이 남아 있었다.
흰 화덕섬의 바다는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잔뜩 흐려 있었다. 젖은 돌담 사이에서는 바닷소금이 천천히 말랐고, 화덕 위의 작은 깃발은 바람을 잃은 채 축 늘어졌다. 도현은 눈을 감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막 구운 빵 냄새는 이제 거의 나지 않았다. 한동안 섬을 감싸던 향이 사라지자 비로소 차갑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제자리를 찾았다.
나리는 두 번째 식탁 앞에 조각 열여섯 개를 펼쳤다. 아르덴은 오늘 정오까지 기록의 훼손을 막는 공동 보전 절차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것은 회수국 전체가 입장을 바꿨다는 뜻이 아니었다. 한 집행관이 현장에서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따로 남기겠다고 약속한 것뿐이었다.
“우리는 한 건의 회수 요청을 확인해야 합니다.” 나리가 말했다.
“신청자가 나타났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아니요. 하지만 이 섬에는 직접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남긴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요. 그 절차가 조작되었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열일곱 번째 빈 홈이 있는 방으로 모두 내려갔다. 나리는 가운데 작은 그릇을 놓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도현은 문 앞에서 신발의 물기를 털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들어가는 곳이라면 식당 주방보다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리가 말했다. “보관된 말 중 누군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 말이 있다면, 그 말이 스스로 닫힐 기회를 먼저 줍니다. 대신 우리는 그 말을 듣지 않을 권리를 지켜야 합니다.”
아르덴이 물었다. “스스로 닫힌다는 걸 어떻게 확인합니까?”
“닫기 전의 내용과 닫은 뒤의 내용이 같지 않음을 여러 사람이 확인하면 됩니다. 내용 자체를 모두 읽을 필요는 없어요.”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 상태와 요청 시각, 참관자만 기록하겠습니다.”
나리는 세 번째와 아홉 번째 조각을 탁자 위에 올렸다. 둘 다 같은 보관 도장이 찍혀 있었지만 그것이 같은 사람의 말이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다른 조각은 모두 제자리에 남겨 뒀다. 사람들에게 말을 줄이지 못하게 하려면, 정확히 어느 조각을 확인하는지부터 분명해야 했다.
“두 조각을 다 열어야 합니까?” 도현이 물었다.
“아니요. 회수 요청은 하나입니다. 어느 조각에 관한 것인지 우선 물어야지요.”
나리는 빈 홈 앞에 서서 오래된 인사말을 읽었다.
“이곳에 말을 남긴 분이 계시다면, 지금 돌려받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표시해 주세요.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깥에서 바람이 불었고, 위층의 누군가가 그릇을 옮기는 소리만 들렸다. 브론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 아홉 번째 조각에서 아주 작은 빛이 일었다. 유리 표면처럼 매끄럽던 도자기에 가느다란 금이 하나 나타났다. 조각 안쪽에 있던 글씨가 흐려졌다.
[공개 의사: 철회 요청.]
[요청 시각: 원래 기록에 없음.]
[신원 검증: 부분 일치.]
루카스가 숨을 삼켰다. 부분 일치. 신청자 신원이 완전히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나리는 추가 질문을 했다. 원래 보관인이 아닌 사람이 대신 신청했는지, 신청자에게 불이익이 주어지는지. 그러나 기록은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부분 일치만으로 폐기할 수는 없겠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나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공개는 보류하고 원본은 봉인 상태로 남겨 두지요. 돌려줄 주인을 찾기 전까지 어떤 기관도 읽지 못하게.”
아르덴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 조건이면 내륙 회수국에도 보고할 수 있습니다. 폐기가 아니라 보관 상태 변경이니까요.”
합의가 이루어지자 아홉 번째 조각은 희미한 회색 천으로 감싸였다. 봉인에는 나리, 루카스, 아르덴 세 사람의 확인이 남았다. 도현은 증거 내용을 복사하지 않았다. 그 조각이 원래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는 사실도 함께 기록했다.
“그럼 열여섯 명 중 한 명이 돌아올 수 있는 겁니까?” 브론이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실종된 요리사 열여섯 명과 이 조각이 각각 연결되는지조차 모릅니다.”
브론은 귀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나 곧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한 사람의 말을 강제로 가져가지는 못하게 한 거죠?”
“그건 맞습니다.”
그때 두 번째 식탁의 표면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거절은 배신이 아니다.]
[수령하지 못함은 동의가 아니다.]
[보관한 말은 보관한 사람의 재산이 아니다.]
에스텔은 그 글씨를 오래 바라봤다. 손바닥의 검은 상처가 한순간 아프게 빛났지만, 저주가 풀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 지켜야 했던 원칙을 이제야 눈앞에서 읽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 내가 해야 했던 일이 바로 이거였어.” 그녀가 말했다.
도현은 위로하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는 그렇게 하면 됩니다. 남은 일은 아주 많지만요.”
절차가 끝난 뒤 나리는 도현을 마을 광장의 식탁으로 데려갔다. 비가 씻고 간 나무결이 유난히 선명했다. 식탁 끝의 한 의자는 다리가 조금 짧았고, 다른 의자는 등받이가 높았다. 도현은 어느 쪽이 제공자의 자리인지 이제야 궁금해졌다.
“표시가 있으니 보시면 됩니다.” 나리가 말했다.
도현은 의자를 뒤집어 보았다. 한쪽에는 굽지 않은 빵 모양, 다른 한쪽에는 빈 접시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두 의자 아래에 모두 같은 글씨가 있었다. '다음에는 자리를 바꿔 앉아도 된다.'
“원래 제공자와 손님이 정해져 있던 게 아니군요.”
“서로에게 음식을 내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나리가 대답했다. “오늘 나눈 사람이 내일은 도움을 받을 수 있죠.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한쪽이 영원히 빚지는 사람이 되었어요.”
도현은 바닥에 앉아 의자 다리의 흙을 털었다. 그는 나리에게 함께 벨로스로 가겠느냐고 묻지 않았다. 섬을 지키는 일을 스스로 택한 사람에게 '구출해 주겠다'고 말하는 건 무례할 수 있었다. 대신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물었다.
“새 밧줄 조금, 그리고 겨울에 먹을 콩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리가 말했다. “이곳에는 아직 할 일이 있거든요.”
“돌아가면 물자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대금은 제가 내고, 받으시는지도 확인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보내 놓고 받았다고 적지 말고요.”
둘은 작은 웃음을 나눴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나리는 도현에게 낡은 나무주걱 하나를 건넸다. 마법이 깃든 물건은 아니었다. 손잡이에 얼룩이 많고 끝이 조금 닳았을 뿐이었다.
“언젠가 여기 다시 오면, 그때는 빵을 구워 주세요.”
도현은 주걱을 받아 들고 말했다. “그때는 드실지 먼저 여쭤보겠습니다.”
그들은 떠날 준비를 했다. 나리는 화덕 아래에서 발견된 금속판의 탁본과 발견 기록을 세 벌 만들었다. 원본은 섬에 남겼고, 탁본 하나는 루카스가, 하나는 아르덴이, 마지막 하나는 나리가 맡았다. 아무도 원본 계약의 유효성이 여기서 확정됐다고 적지 않았다. 다만 왕실이 주장해 온 '자동 대리 승인'의 근거를 다시 조사할 이유가 생겼다고 기록했다.
도현이 배에 오르기 전 사브라에게 따뜻한 수프를 한 그릇 내놓았다. 사브라는 아주 천천히 먹었다. 그녀의 동생이 여기서 돌아온 뒤 배부름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도현은 잊지 않았다.
“동생분에 대해 더 여쭤봐도 될까요?”
사브라는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마레라고 해. 돌아왔을 땐 스무 살이었지. 그 아이가 가져온 건 작은 나무상자 하나뿐이었어. 그 상자에 섬의 오래된 부두 인장이 찍혀 있었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벨로스에 있어. 항구 끝에서 혼자 살지. 가끔은 내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해.”
도현은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레가 첫 빵을 거절한 아이와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섬의 변화가 실제 사람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사브라에게 마레가 만남을 원할지 먼저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오후가 되자 바늘고기호가 섬을 떠났다. 아르덴의 배는 조금 뒤따라 출항했고, 두 배는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검은 접시 깃발은 여전히 바람에 펄럭였다. 협력한 한 번의 밤이 모든 적대를 끝내 주지는 않았다.
도현은 갑판에 앉아 새 장부를 펼쳤다.
[흰 화덕섬 열여섯 조각: 신원 미확인.]
[아홉 번째 조각: 공개 보류, 소유자 확인 필요.]
[실종 요리사 16명: 미귀환, 생사·소재 미확인.]
[게른: 수색 계속.]
[백도현의 저주: 석화·기억 2개 유지.]
[왕국의 식탁: 183,442명 연결, 해결되지 않음.]
그 밑에 새로 얻은 사실을 적었다.
[원제공자 승인 없는 대리 계약 변경의 정당성 의문. 제2식탁 반출 기록을 확인할 것.]
도현은 장부를 덮었다. 아무것도 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열흘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누군가의 침묵을 동의로 바꾸는 오래된 속임수에 맞설 문장과 목격자가 생겼다.
브론이 난간에 매달려 물었다. “다음은 왕도로 돌아가는 겁니까?”
“먼저 벨로스에 돌아가서 마레 씨의 의사를 확인하고, 섬에서 가져온 기록을 정식으로 보관해야죠. 그다음 왕도에 가야겠습니다.”
“그러면 식당 영업은 언제 합니까?”
“당장 내일 아침에 수프부터 끓일 겁니다. 사람은 조사만 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요.”
브론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는 잠시 후 다시 멀미를 시작했다.
멀어지는 섬의 끝에서 하얀 화덕 하나가 노을을 받았다. 도현은 그 모습을 보다가 레온의 쇠숟가락이 아주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숟가락 뒷면의 일곱 홈 중 하나가 희게 빛났다.
[두 번째 식탁에서 회수한 질문: 거절한 사람에게 누가 값을 청구했는가.]
[다음 조사 위치: 왕궁 구호위원회 원본 보관소.]
[주의: 최초 제공자의 서명은 원본에도 남아 있지 않다.]
도현은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서명이 없다는 말은 누군가 지웠다는 뜻일 수도 있고, 애초에 서명한 적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결국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왕실 기록을 열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왕도의 오래된 장부 맨 첫 장에는 대금을 받는 사람의 이름 대신 단 하나의 주문이 적혀 있다는 사실을.
'내일을 원하는 자는 먼저 오늘의 빈자리를 내놓을 것.'
제6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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