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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9화
PAYLUA ORIGINAL · 제59화

59화. 원제공자의 빈 서명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906자

오프라인 책장
폭풍은 밤새 이어졌다. 비가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도현은 옆에서 브론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다행히 배수로가 열린 뒤부터 두 번째 화덕 아래의 수위는 더 올라가지 않았다. 나리와 루카스는 높은 창고에 옮긴 조각 열여섯 개를 하나씩 세어 확인했고, 아르덴의 인부들은 젖은 밧줄을 다시 묶었다. 누구도 그들의 일을 믿고 있는 것까지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밤중의 추위 앞에서는 같은 불을 쬐었다. 새벽에 사브라가 찾아왔다. 그녀는 젖은 장화를 현관에서 벗고 두 손을 불가에 비볐다. “바늘고기호는 무사해. 다만 이 물때에는 내일 정오 전까지 나가야 한다. 그 뒤엔 며칠 동안 여기서 발이 묶일 거야.”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선택할 시간이 필요했다. 섬에서 더 많은 걸 알아낼 욕심을 부리면, 돌아가서 증언할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었다. “돌계단만 확인하고 돌아가겠습니다.” “확인이라는 말은 항상 가장 긴 여행을 만들지.” 사브라가 투덜거렸다. “그 말을 여러 번 들어 봤습니다.” 도현은 루카스에게 기록을 넘길 순서를 정했고, 브론에게는 등불과 마른 밧줄을 맡겼다. 에스텔은 손바닥 상처를 붕대로 가렸다. 그녀는 오늘만큼은 앞장서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걱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던 도현 역시 다른 사람의 보호가 필요했다. 돌계단은 좁고 미끄러웠다. 두 사람씩 내려가기 어려워 한 줄로 움직였다. 화덕 아래 벽에는 오래된 장면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첫 번째에는 들판을 걷는 사람들, 두 번째에는 빈 그릇을 내민 손, 세 번째에는 그릇을 밀어내는 작은 손. 마지막에는 사람의 모양이 아닌 빈 공간이 남아 있었다. “원래 마지막 장면이 없는 겁니까?” 브론이 물었다. 에스텔이 손가락으로 홈을 더듬었다. “새겨졌다가 지워졌어. 돌 표면의 결이 달라.”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도현은 손을 멈췄다. 왼손 검지가 제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물을 퍼내던 동안 무리한 탓인지 석화 저주의 반점이 손마디 주변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는 다급히 손가락을 주무르려 했지만 에스텔이 팔꿈치를 붙잡았다. “지금 힘으로 밀면 더 다칠 수 있어. 이건 타박상이 아니야.” “그럼 내려가지 말아야 할까요?” “너만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도현은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때라면 자신이 직접 가장 먼저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요리사로 일할 때도 주방이 바쁘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자기가 처리하는 게 빠르다고 믿었다. 그러나 빠르게 처리하다 보면 배우지 못한 사람은 언제까지나 배우지 못하고, 지친 사람은 말할 기회를 잃었다. 그는 루카스에게 등불을 건넸다. “먼저 바닥이 안전한지 확인해 주세요. 저는 맨 뒤에서 가겠습니다.” 브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힘이 안 들어가면 제가 붙잡겠습니다.” “당신이 미끄러질까 봐 더 무섭습니다.” “오늘은 멀미 안 합니다. 이제 바닥이니까요.” 곧 브론은 젖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거의 넘어질 뻔했다. 도현이 웃자 그가 억울하게 외쳤다. “바닥인데 왜 이렇게 흔들리는 겁니까!” “바닥이 아니라 물 위에 놓인 계단일 수도 있죠.” 에스텔이 대답했다. 실제로 계단 일부는 오래된 철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아래쪽 물이 빠지자 균열 난 받침이 드러났다. 모두가 지나가기 전 브론과 인부가 기둥을 밧줄로 고정했다. 위험을 알면서도 속도를 낸다면 오래된 계약과 다를 바 없었다. 누군가의 내일을 담보로 오늘만 통과하려는 셈이 될 테니까. 그들은 가장 아래의 방에 도착했다. 한가운데에는 작고 오래된 화덕이 있었다. 북부 루덴의 첫 화덕에서 보았던 형식과 닮았지만 크기는 훨씬 작았다. 화덕 안에는 불이 없었다. 벽면에 남은 것은 검게 탄 그을음과 깨어진 반죽판 하나였다. “이게 최초의 화덕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그렇게 단정하긴 이릅니다.” 도현이 말했다. “섬에서 가장 오래된 화덕일 수는 있죠.” 에스텔은 화덕 뒤쪽에서 얇은 금속판을 찾아냈다. 오래된 계산서와 닮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양이나 가격보다 먼저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제공자가 부담하지 못할 몫을 손님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루카스가 숨을 삼켰다. “왕실 구호위원회가 대금을 부담하기로 했다는 에스텔의 증언과 연결됩니다.” “연결될 가능성은 있죠. 작성 시점과 원본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금속판에는 구호위원회 인장도, 카르도의 대리인 서명도 없었다. 그 대신 둥근 식탁을 둘러싼 아이 셋의 그림이 있었다. 첫 번째 아이 앞에는 빈 그릇, 두 번째 아이 앞에는 깨진 숟가락, 세 번째 아이 앞에는 먹지 않은 빵이 놓여 있었다. 브론이 돌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상해요. 이 아이들은 모두 음식을 못 먹은 것 같은데, 왜 한 아이만 거절했다고 적혀 있을까요?” 도현은 그 질문을 마음에 담았다. 수령하지 못한 것과 거절한 것은 다르다. 그리고 '그릇이 없어서 먹지 못했다'는 말은 '먹을 수 있었지만 원하지 않았다'는 말과도 다르다. 기록을 만드는 사람이 선택을 구분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억지로 동의한 사람으로 바꾸기가 쉬워진다. 그때 위층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브론이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잠시 뒤 아르덴이 등불을 들고 나타났다. 그의 뒤에는 인부 두 명이 있었다. 루카스가 막아서려 했지만 아르덴은 빈손을 보였다. “숨겨진 통로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보관물 훼손 위험을 점검할 책임이 있습니다.” “서류에 그런 권한이 있습니까?” “확인할 의무는 있습니다. 강제로 가져갈 권한과는 다르죠.” 도현은 한 걸음 물러섰다. 아르덴이 모든 것을 빼앗으러 왔다고 단정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가 말한 구별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아르덴은 금속판을 보자 얼굴빛이 변했다. 그는 흰 장갑을 꺼내 착용하고 판의 가장자리를 살폈다. “이 문구를 어디서 찾았습니까?” “여기서요.” “처음 보는 내용입니다.” 도현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다면 이번에 같이 기록해 주시죠.” 아르덴은 잠시 침묵하다 서류를 꺼냈다. 발견 장소와 소지자를 적고, 판에 손을 대지 않은 상태에서 문장을 베껴 썼다. 루카스도 별도의 기록을 남겼다. 서로 다른 기관의 필체가 같은 내용 위에 나란히 놓였다. 그때 판 뒷면이 뜨거워졌다. 누구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얇은 줄이 새겨졌다. [제공자의 의무를 손님에게 넘기려면 원제공자의 승인이 필요하다.] 아르덴의 목이 굳었다. 그의 위임장에 붙은 서명란에는 원제공자의 승인이 없었다. 그는 첫 문장이 아니라 마지막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제가 받은 지시는 이미 승인된 계약을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승인 사실이 확인됐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원본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도현은 답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직무를 준 사람이 원본을 보지 못했다면, 그의 확신이 아무리 강해도 틀릴 수 있었다. 아르덴은 잠시 등불을 낮췄다. 어두워지자 금속판의 글씨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두꺼운 선은 손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처음 이 일을 맡기던 상관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 승인했다고 들었을 뿐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이 그에게도 무겁게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제가 서류를 들고 온 이유는 기록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다만 위임 자체가 잘못됐다면 제가 믿고 있던 순서도 틀릴 수 있겠군요.” 루카스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적었다. 그렇다고 아르덴에게 책임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문서에 서명했고 누구의 말을 가져갔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그럼 내륙에 돌아가서 원본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시겠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요청은 하겠습니다. 보여 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거면 지금은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죠.” 그들은 서로 악수하지 않았다. 함께 위험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과 서로를 신뢰한다는 선언은 다른 일이었다. 아르덴은 조용히 판을 덮었다. “이 기록을 제가 가져갈 수는 없겠군요. 제 보고서에 발견 사실을 남기겠습니다.” 그 말은 굴복의 선언이 아니었다. 아르덴은 여전히 회수국 집행관이었고, 섬의 기록을 내륙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는 확인하지 않은 승인으로 압박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들이 위층에 다다를 때쯤 비가 잦아들었다. 바람이 막힌 통로를 빠져나가며 낮은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냈다. 브론은 그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와 닮았다며 귀를 세웠지만, 에스텔은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고 했다. 도현은 마음속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왜 이렇게 입안이 마르죠?” 그는 중얼거렸다. “너 아침부터 제대로 먹지 않았어.” 에스텔이 대답했다. 도현은 잠깐 멋쩍어졌다. 왕국의 식탁을 조사한다는 사람이 정작 자기 식사 시간을 잊고 있었다. 브론은 주머니에서 딱딱한 빵을 반으로 갈라 건넸다. 도현은 그것을 받아 천천히 씹었다. 맛이 선명하지 않아도 바삭한 소리와 따뜻한 손길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뒤편 화덕에서 작은 불씨가 일었다. 실제 불꽃이라기보다 오래된 기억처럼 흐릿한 빛이었다. 에스텔이 조용히 말했다. “도현, 저 문장의 다음 장이 있을지도 몰라.” 도현이 돌아보자 화덕 바닥에 작은 홈 하나가 열려 있었다. [원제공자 승인란: 공란.] [대리 승인 근거: 제2식탁 반출 기록에 보관.] 이곳에서 찾은 문장만으로 왕국의 계약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반출 기록이 어딘가 남아 있다면, 다음에 확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졌다. 문득 도현은 첫날부터 품고 있던 생각을 떠올렸다. 맛있게 요리하면 저주를 풀 수 있으리라 믿었던 자신. 이제 그는 맛있는 음식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었다. 누구에게 내놓는지, 그 사람이 원하는지, 누가 값을 내는지였다. 바깥에서 사브라의 종이 울렸다. 물때가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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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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