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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4화
PAYLUA ORIGINAL · 제54화

54화. 먹지 않겠다는 대답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863자

오프라인 책장
두 번째 화덕 앞에 서 있으면 바다가 들리지 않았다. 뒤로 열 걸음만 물러서도 절벽 아래에서 파도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마을의 빈집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화덕 정면의 흰 돌바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도현은 그 적막이 귀를 막는 마법이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침묵처럼 느껴졌다. “열려면 빵을 거절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가 물었다. 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에게는 무언가를 먹지 않겠다고 말할 이유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유보다 거절했다는 사실만 기억했습니다.” “그럼 직접 기록을 보면 되잖습니까?” 브론이 말했다. “이곳의 기록은 읽을 때마다 모양이 달라져요. 앞에서 읽은 사람이 기대한 대답으로 바뀌기 쉬워요.” 도현은 이해할 듯 말 듯했다. 음식에 대한 기억도 비슷했다. 같은 스튜를 먹고 한 사람은 고향을 떠올렸고, 다른 사람은 군대 배급을 떠올렸다. 그러나 기억이 달라진다고 실제 들어간 재료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먼저 변하지 않는 사실을 찾아야 했다. 그는 빈집 부엌으로 돌아가 나리에게 평범한 재료를 부탁했다. 남은 콩과 마른 버섯, 소금 한 줌, 섬의 작은 양파 두 알이 전부였다. 그는 큰 냄비 대신 작은 팬을 택했다. 양파를 오래 볶으면 단맛이 나오고, 버섯은 약한 불에서 수분을 날려야 향이 선명해진다. 특별한 마법을 기대하지 않고 재료 하나씩 확인하며 조리했다. 브론은 도현의 손목을 힐끗 보았다. “또 저주를 받을 생각은 아니시죠?” “아닙니다. 오늘은 실험만 할 거예요. 저주를 가진 손님에게 내놓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면 제가 맛볼 수 있습니까?” “이번엔 직원 시식 비용 안 받겠습니다.” 브론은 환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에스텔이 작게 웃었다. 루카스는 맛이 아니라 조리 순서를 기록했다. 어떤 재료를 먼저 넣었는지, 언제 불을 줄였는지, 누가 먹기를 동의했는지. 도현이 원한 것은 신비한 결과보다 다시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었다. 수프가 완성되자 도현은 그릇 세 개를 식탁에 놓았다. 자신의 것, 브론의 것, 나리의 것. 에스텔과 루카스에게는 먹고 싶은지 먼저 물었다. 에스텔은 잠시 망설이다 작은 그릇을 받았고, 루카스는 기록을 마친 뒤에 먹겠다고 했다. 나리는 자신의 그릇을 오래 바라봤다. “안 드셔도 됩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 말을 이 섬에서 듣는 건 오랜만이군요.” 그녀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수프에서 김이 천천히 사라졌다. 도현은 자신이 만든 음식이 식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이상한 조바심을 느꼈다. 요리사에게 먹히지 않는 음식은 실패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리는 마침내 그릇을 밀어냈다. “오늘은 먹지 않겠습니다.” 브론이 입을 열려 하자 도현이 작은 손짓으로 막았다. “알겠습니다. 이유를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식탁 아래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마른 나무가 오랫동안 눌려 있던 무게를 놓는 소리였다. 나리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말해 준 사람도 오래전엔 있었어요.” 그녀는 이제야 아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기근이 오기 전, 이 섬에는 바다에 나간 가족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식탁에서는 음식을 나누되 먹을 사람과 먹지 않을 사람을 구별하는 규칙이 있었다. 음식을 거절한 아이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식탁이 어머니 이름으로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값을 청구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물었어요.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왜 엄마의 내일을 먼저 가져가느냐고.” 에스텔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왕실 구호위원회의 첫 계약을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왕실이 낼 값을 사람들의 미래에서 걷어 가기 시작한 날, 누군가 가장 먼저 거절한 것이다. “그 아이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당시는 아무 대답도 못 했습니다. 옆에 있던 어른들이 아이를 설득하려 했죠. 고맙게 먹으라고, 모두를 위해 조금 희생하라고.” “그래서 아이가 도망갔나요?” “아니요. 아이는 끝까지 식탁에 앉아 있었어요. 먹지 않겠다고만 했죠.” 나리는 조금 더 오래전의 일을 말했다. 그때 아이는 식탁 한구석에서 미역 같은 해초를 말리고 있었다. 바다에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면 끓여 먹겠다고 모아 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구호 식사가 시작된 날 마을 어른들은 아이에게 빵을 먼저 먹으라고 권했다. 아이는 갓 구운 빵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했고, 손을 뻗을 만큼 배가 고팠다. 그러나 자신이 빵을 받으면 어머니의 내일이 지워진다는 말을 듣고 손을 거두었다. “그날 어른들은 모두 한가지만 반복했어요. 아이가 너무 어려서 계약을 이해하지 못한다고요.” 나리가 말했다. “아이에게 왜 엄마를 기다리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한 겁니까?” 도현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 역시 그 아이가 한 말을 전부 듣지 않았어요. 내 기억이 맞다고 해서 그 이유까지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화덕 위에 굳은 밀가루 자국을 문질렀다. 처음 구호 식사가 배급될 때는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달랐다고 했다. 어린아이에게는 작은 그릇이, 바다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큰 그릇이 돌아갔다. 그런데 나중에는 값이 그릇의 크기로 계산되지 않았다. 누구든 먹으면 똑같은 '내일 하나'가 청구되었다. “따뜻한 빵을 나누려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얼마나 많은 내일을 가졌는지만 세기 시작했지요.” 도현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식당의 저주와 가장 닮은 장면을 떠올렸다. 소녀의 기억을 되찾게 했던 빵. 손님의 행복을 보고 기뻤다가 자신이 어머니의 미역국 맛을 잃었다는 걸 알아챘던 날. 그때 그는 손님을 비난하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빵을 먹은 사람이 아니라, 그 대가가 누구에게로 옮겨 가는지 미리 알 수 없던 방식이었다. “제가 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어요.” 그가 말했다. “맛있으면 다 괜찮다는 말입니다.” “그 말이 싫습니까?” “예전엔 좋아했죠. 지금은 아닙니다. 맛있어도 누군가 원하지 않았다면 괜찮지 않은 일이니까요.” 브론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평소 주방의 음식을 제멋대로 집어 먹던 일이 생각난 듯했다. 도현은 그를 보고 웃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웃음은 다른 사람을 작게 만드는 웃음이 아니었다. 도현은 화덕 앞에 다시 섰다. 나리가 전해 준 것은 극적인 영웅담이 아니었다. 한 아이가 작은 의자에 앉아 자기 몫의 빵을 거절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평범한 선택이 시간이 지나면서 계약을 망치는 배신으로 기록되었다. 도현은 화덕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대신 그 앞에 빈 그릇 하나를 놓았다. “먹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의 자리입니다.” 희미한 글씨가 떠올랐다. [제공 의사: 확인.] [수령 의사: 거절.] [청구 가능액: 0.] 에스텔이 숨을 삼켰다. 원래 계약의 가장 간단한 세 줄이었다. 왕실이 나중에 덧붙인 대리 수령과 후손 담보 조항이 이 자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곧 마지막 문장이 흔들리더니 검게 바뀌었다. [거절 사유: 반역.] [청구 대상: 보호자.] 도현은 빈 그릇을 내려다봤다. 방금 실제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용이 생기려 했다. “이게 누군가 고친 기록이군요.” 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거절이 거절로 남았어요. 나중부터는 누군가의 반역으로 바뀌었습니다.” 도현은 억지로 화덕을 열지 않았다. 거절을 강제로 승낙으로 바꾸는 순간 자신도 오래된 계약과 같은 일을 하게 될지 몰랐다. 그는 루카스에게 두 문장이 나타난 순서를 그대로 적게 했다. 저녁 무렵 마을 광장에 옅은 비가 내렸다. 비가 빈 식권들을 두드리자 종이에서는 작은 쇳소리가 났다. 사브라가 만에서 신호종을 울렸다. 조수가 안전한 시간은 하루 더 남아 있었지만 내일은 풍향이 달라질 예정이었다. 나리는 도현에게 서랍 하나를 열어 보였다. 안에는 갈라진 나무 숟가락과 짧은 끈이 들어 있었다. 끈의 매듭은 어린아이가 서툴게 묶은 것처럼 보였다. “그날 아이는 자기 이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숟가락에 표시를 남겼어요. 글씨를 배운 적이 없어 매듭 세 개로 대신했죠.” 도현은 매듭을 만지지 않은 채 세었다. 하나, 둘, 셋. 마지막은 조금 비뚤었다. 그가 루카스를 돌아봤다. “벨로스에서 게른의 어머니가 그려 주신 소라껍데기 표시도 세 번 꺾였어요. 하지만 닮았다는 것뿐입니다. 같은 사람이거나 같은 계보라고 단정하지 맙시다.” “알겠습니다.” 바로 루카스는 앞서 빈 그릇을 올렸을 때 나타난 문장을 두 장의 종이에 나누어 썼다. 원래 문장과 나중에 덧씌워진 문장을 한 줄씩 비교했다. 도현이 그 종이를 살피자 먹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대로인데 청구 대상만 바뀌어 있었다. 문장의 순서는 그대로 두고 누가 값을 내는지만 바꾸는 방식이었다. “이 정도면 법정에서도 문제 삼을 수 있겠네요.” 루카스가 말했다. “기록의 원본성과 날짜가 확인돼야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실마리는 맞습니다.” 나리는 도현에게 오래된 젖은 천 한 장을 건넸다. 예전에 밀가루를 덮어 두던 천이라 했다. 가장자리에 삐뚤삐뚤한 바느질이 남아 있었다. 빵을 거절했던 아이가 바늘을 잡고 고쳐 쓴 천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녀는 단정하지 않았다. 천이 너무 오래되어 사람을 가리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현은 그 천을 화덕 위에 올리지 않았다. 오래된 물건은 애틋했지만 마법을 얻기 위한 도구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신 있는 그대로 사진처럼 자세한 그림을 그려 두었다. 그때 두 번째 화덕의 안쪽에서 처음으로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빵을 안 먹으면, 엄마는 내일 집에 올 수 있나요?' 나리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은 떨렸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도현은 빈 그릇을 들고 화덕 앞에 앉았다.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가 질문했는지 지우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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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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