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3화
PAYLUA ORIGINAL · 제53화

53화. 두 번째 식탁의 빈자리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023자

오프라인 책장
흰 화덕섬의 자갈밭은 걸을 때마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도현은 처음에는 파도에 닳은 유리 조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밑을 살피자 작은 흰 돌마다 접시의 테두리 같은 둥근 선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놓은 길이었다. 길은 해안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낮은 언덕 위의 마을로 올라갔다. 마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우물 위에는 물을 뜨다 만 나무두레박이 걸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에도 천 대신 비어 있는 식권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식권은 낡았지만 숫자가 또렷했다. 열여섯, 열여섯, 다시 열여섯. 브론이 코끝을 찡그렸다. “이상합니다. 사람이 살던 냄새는 있는데 방금 식사한 냄새가 없습니다.” “집이 오래 비었을 수도 있죠.” 루카스가 말했다. “그런데 빵 냄새는 계속 납니다. 오븐을 열기 직전처럼요.” 도현은 길가의 빈 빵집 창문을 들여다봤다. 밀가루 자루와 반죽판이 있었지만 밀가루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벽에 붙은 굽는 순서표는 오래전에 바래 있었다. 막 구운 빵 냄새가 날 조건은 아니었다. “냄새가 실제 음식에서 나오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텔은 간판을 살폈다. 상호 대신 오래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굽지 않은 빵을 기다리는 사람을 환영합니다.' “이건 최초 계약보다 오래된 방식이야.” 그녀가 말했다. “마법을 가게 간판처럼 붙여 두는 대신 손님의 행동으로 문장을 읽게 만들었어.”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마을 중심부로 향했다. 집 열두 채와 식당으로 보이는 낮은 돌집 하나, 그 뒤에 거대한 흰 화덕 두 개가 있었다. 한쪽은 굴뚝이 무너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입구가 봉인된 채였다. 마을 광장 중앙에는 빗물이 고인 식탁이 놓여 있었다. 식탁 양끝에 의자 두 개만 있었다. “두 번째 식탁이라는 게 저겁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이름이 그렇다고 해서 식탁이 둘뿐이었던 건 아닐 겁니다.” 도현은 표면에 쌓인 모래를 손으로 쓸었다. 나무는 예상보다 따뜻했다. 그러자 식탁에 희미한 글자가 나타났다. [첫 자리는 제공자.] [둘째 자리는 거절하는 자.] [어느 자리도 강제로 채우지 말 것.] 브론이 의자를 가리켰다. “그럼 전 어디에 앉습니까?” “일단 서 계세요.” “또 직원 차별이군요.”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마을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낡은 밀짚모자를 쓴 여성이 바구니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쉰이 넘었을 듯했지만 자세는 꼿꼿했다. 손에는 밀가루 대신 깨끗한 모래가 묻어 있었다. “여행자라면 항구에서 허가를 받았겠지요?” 그녀가 물었다. 루카스가 서류를 보여 주자 여자는 종이의 끝을 한참 살폈다. 도장보다 서류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더 오래 읽었다. “섬에 들어온 사람 이름이 정확히 네 명이네요. 나갈 때도 네 명이어야 합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나는 나리. 이곳 화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화덕에 불을 지피는 사람은 아니고요.” “그럼 빵 냄새는 어디서 납니까?” 도현이 물었다. 나리는 손을 펼쳐 빈 바구니를 보여 줬다. “여기서는 원래 굽지 않은 빵도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이 먹고 싶어 했던 것의 냄새지요.” 도현은 말뜻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리는 마을 한복판의 식탁을 지나 낮은 돌집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안에는 식재료가 없었다. 천장에는 건조된 허브 몇 묶음이 매달렸고, 선반에는 여러 크기의 빈 그릇이 놓였다. 가장 안쪽 벽에는 작은 창문 하나가 있었는데, 그 창으로 바다가 보였다. “여기는 손님에게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나리가 말했다. “음식을 받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지요.” “누가 그런 곳을 만들었습니까?” “그걸 묻는 사람은 많았어요. 하지만 대답을 얻은 사람은 적었습니다.” 브론이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살짝 안도한 표정으로 양말을 벗어 발의 물기를 닦았다. 나리는 그 모습을 못 본 척하며 주전자를 올렸다. “차를 드시겠습니까?” 도현은 먼저 물었다. “마시면 저주가 생기거나 누군가에게 값이 청구되나요?” 나리는 처음으로 웃었다. “아니요. 다만 뜨겁습니다. 그 위험은 제가 대신할 수 없네요.” 도현도 웃었다. 뜨거운 차를 마시는 책임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식사 시간을 담보로 잡는 책임은 달랐다. 너무 당연해서, 이 세계에서는 오히려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도현은 돌집 안쪽을 둘러보았다. 식당이라기에는 어딘가 이상했다. 낡은 메뉴판은 있었지만 음식 이름이 아니라 질문만 적혀 있었다. '정말 먹고 싶은가', '지금 먹어도 좋은가', '혼자 먹고 싶은가',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가'. 네 가지였다. 가격표가 없는 대신 작은 빈칸이 있었다. 손님이 직접 답을 적는 자리였다. 나리는 도현이 그 앞에 멈춘 것을 보고 말했다. “옛날에는 모두가 대답할 수 있었어요. 읽지 못하는 사람은 그릇 그림을 고르면 됐지요. 수저 하나를 오른쪽에 놓으면 혼자 먹겠다는 뜻이고, 가운데에 놓으면 누군가와 나누겠다는 뜻이었어요.” 브론은 식탁에 놓인 수저를 보다가 자신의 수저를 가운데로 옮겼다. “그럼 저는 나눠 먹겠습니다.” “무엇을요?” 도현이 물었다. “아직 없지만, 생기면 나눌 겁니다.” “마음은 고맙네요.” 벽의 먼지를 털자 오래된 그림도 나타났다. 화덕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빵을 굽는 사람,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뜨는 사람. 마지막 장면에는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자리를 뜬 사람을 향해 다른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었다. 도현은 그 대목을 오래 바라봤다. 거절을 배신으로 적어 둔 왕실 기록과 달리,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거절 뒤에도 식사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 손님이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입니까?” 도현이 물었다. 나리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달력을 센다면 지난해 여름이요.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도 날짜를 믿기 어려워요. 마을의 종이 한번 멈춘 뒤로 사람마다 지나간 날이 달랐거든요.” “마르타 씨처럼 같은 날을 반복한 겁니까?” “나는 그런 증거를 보지 못했어요. 다만 어떤 사람은 사흘 지났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열흘 지났다고 했죠.” 루카스는 그 말을 기록했다. 닮은 현상은 같은 원인일 수 있지만, 처음부터 같은 저주로 묶어선 안 됐다. 도현은 식당 문턱에 발을 놓고 바깥을 보았다. 문밖의 빈 마을은 여전히 쓸쓸했지만 조금 전보다 구체적인 생활의 흔적이 보였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메뉴를 골랐고, 누군가는 혼자 먹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예 먹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들은 차를 마시며 목적을 밝혔다. 벨로스 항구, 하얀 식탁 제3창고, 증언 보관 단위 열여섯 건, 출항을 막은 백연호의 이야기였다. 나리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 다만 열여섯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바구니를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그 숫자가 뭘 뜻하는지 아십니까?” 도현이 물었다. “한 번에 들어오는 질문의 수를 뜻했지요.” “사람 숫자가 아니라요?” “원래는요. 나중에 누군가 질문에 사람 이름을 붙여 물건처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리는 일어나 선반 뒤의 낡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도자기 조각 열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잔 바닥 같았고 어떤 것은 접시의 가장자리 같았다. 조각마다 선 하나씩이 그어져 있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증언의 사본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표식이에요. 사람을 가둬 두는 그릇은 아닙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죠.” 도현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만져도 됩니까?” 나리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조각 하나를 집었다. 희미한 빛과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날 빵을 받지 않았다.' 딱 한 문장이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언제 녹음된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도현이 조각을 내려놓자 소리도 멎었다. “누구의 목소리입니까?” “몰라요. 진짜 사람이 남긴 말인지, 계약서가 사람의 목소리를 빌린 건지도 확인해야 해요.” 나리의 신중함이 마음에 들었다. 도현은 유혹을 느꼈다. 당장 이 조각들을 들고 북부로 돌아가 실종자들의 가족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은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살아 있다고 말하는 일은 또 다른 잔인함이 될 수 있었다. 마을 밖에 황혼이 내려앉았다. 사브라의 배는 만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조수는 아직 안전했다. 나리는 그들이 밤을 묵을 수 있는 빈집을 하나 내주되 문 앞에 표식을 붙이라고 했다. 누구를 들여보냈는지, 누구를 내보냈는지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도현은 도현은 수프를 만들면서 이 섬의 물을 조금만 사용했다. 나리가 알려 준 우물물은 지나치게 맑았고, 처음 떠올렸을 때는 바닷소금 한 톨 없이도 짠맛이 났다. 그는 바로 음식에 쓰지 않았다. 마실 물과 시험할 물을 나누고, 사브라가 가져온 물로 음식을 끓였다. “새로운 재료면 먼저 맛을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브론이 물었다. “맛보는 것도 선택이잖아요.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데 다 같이 먹을 음식에 바로 넣으면 안 되죠.” 에스텔은 그 말을 듣고 유리병에 우물물을 조금 담았다. 무엇이 섞였는지, 그 물을 마시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직 몰랐다. 병에는 '확인되지 않은 섬의 물'이라고만 적었다. 겉모습이 깨끗하다고 안전하다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날 저녁 남은 콩과 감자로 작은 수프를 끓였다. 나리는 오래된 단단한 빵 한 조각을 꺼냈다. 맛이 없을지도 모른다며 미리 양해를 구했다. 도현은 그것을 뜨거운 국물에 적셔 부드럽게 만들었다. 모두 함께 먹었지만 식탁의 글씨는 변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 나리는 도현을 화덕 앞에 데려갔다. 흰 벽에는 작은 사람 손자국 수십 개가 겹쳐 있었다. 그중 하나는 유난히 낮은 곳에 찍혀 있었다. “최초에 이곳을 찾아온 아이가 여기 손을 댔습니다.” “빵을 거절했던 아이입니까?” “그렇게 불린 사람이 맞아요. 하지만 그 아이를 부르는 이름은 지금 없어요.” 나리는 어둠 속에서 굳게 닫힌 두 번째 화덕을 가리켰다. “그 아이가 빵을 거절한 이유를 알아야 문이 열립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거절한 게 아니거든요.” 닫힌 화덕 속에서 아주 작게, 누군가 반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5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5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