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고기호가 출항한 것은 이틀 뒤 새벽이었다.
부두의 돌계단은 밤새 내린 이슬로 미끄러웠고, 해안의 소금 창고들은 옅은 안개 너머로 모서리만 드러냈다. 벨로스 사람들은 새로운 배가 출항하는 광경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부들은 매일 바다에 나갔고, 상인들은 매일 돌아오는 배를 기다렸다. 다만 이번에는 유리아가 서명한 항해 기록 두 부가 사브라의 조타실에 놓였다. 돌아오지 못하면 어디에서 마지막 신호를 보냈는지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이었다.
브론은 줄을 단단히 묶은 다음 벌써 세 번이나 토했다.
“늑대인간이 바다에 약할 수 있습니까?” 도현이 등을 두드렸다.
“저희 조상은 숲에서 사냥했지, 흔들리는 나무판에 올라타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배에 탔어요?”
“주방장님이 바다에서 길을 잃으면 냄새로 찾으려고요.”
“바다에서 전부 소금 냄새가 나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큰일이라는 겁니다.”
에스텔이 웃으려다가 곧 표정을 굳혔다. 사브라가 돛을 조금 낮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맑아 보였지만 파도 아래에서 거꾸로 흐르는 물살이 있었다. 배의 그림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포말은 반대쪽으로 미끄러졌다.
“여기부터는 소리로 길을 잡아.” 사브라가 말했다. “바람이 울리는 암초를 듣고 간다. 눈으로 보는 수로는 세 시간 전 수로일 때가 많아.”
그녀는 선미에 작은 종을 매달았다. 종은 파도가 배를 칠 때마다 서로 다른 높이의 소리를 냈다. 하나는 낮고 길었고, 다른 하나는 짧게 끊어졌다. 사브라는 그 차이를 들으며 방향을 고쳤다. 도현은 주방에서 끓는 물의 소리만으로 불을 줄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눈보다 귀가 먼저 알려 주는 일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출항 후 한 시간이 지나자 벨로스의 붉은 지붕이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도현은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를 오랜만에 봤다. 한국에서 일하던 식당은 건물들 사이의 좁은 골목에 있었고, 주방 창문으로는 건너편 가게의 환풍기만 보였다. 동료들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할 때마다 그는 예약표와 냉장고 재고를 핑계로 거절했다. 이제 바다 한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날 누가 마감 설거지를 했는지 같은 시시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기억은 매끈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휴가를 갔던 해가 언제인지 떠올리자 장면이 두 개로 갈라졌다.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 주던 모습과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동료가 도시락을 건네던 모습이 겹쳤다. 무엇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현은 잠시 난간을 세게 쥐었다.
“손목이 아파요?” 에스텔이 물었다.
“아뇨. 기억이 헷갈립니다. 내가 바다에 갔던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쉽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수첩을 펴서 지금 확실히 기억하는 사람과 장소를 적게 했다. '벨로스 항구에서 출항, 바늘고기호, 사브라 선장, 브론 멀미 세 번.' 도현은 마지막 문구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기록할 필요 없잖아요!” 브론이 외쳤다.
“당신이 나중에 멀미한 적 없다고 말할까 봐요.”
“제가 그 정도로 체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배 멈추기만 해 보세요. 바로 네 번째를 할 겁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기억 저주를 이겨 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혼자 불확실함을 끌어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글씨로 같은 항해 시각을 적어 두었다. 한 사람이 잊어도 다른 사람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한동안 바다는 평온했다. 도현은 선실의 좁은 조리대에서 감자와 마른 채소를 끓였다. 멀미가 심한 브론에게는 기름을 빼고 생강을 조금 넣은 묽은 수프를 따로 떠 주었다. 사브라에게는 짠 고기 대신 익힌 콩과 따뜻한 국물을 내놓았다.
“섬까지 가는 손님들이 요리도 하나?” 사브라가 물었다.
“저는 요리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돌아오는 길에 먹을 음식을 싣느라 가라앉을 만큼 배를 무겁게 만들곤 했지. 자네는 가진 걸로 먹을 만한 걸 만들었구먼.”
“식재료가 적을 땐 남기지 않는 게 요리 기술의 반입니다.”
사브라는 잠시 웃다가 표정을 감췄다. “그 섬에 내 동생도 간 적 있어. 서른 해 전이지.”
도현의 손이 멈췄다.
“돌아왔습니까?”
“돌아왔어. 그런데 그 이후로 어떤 식사를 해도 배부르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
사브라는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도현 역시 바로 캐묻지 않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더 밀어붙이면, 그저 다른 형태의 청구서가 되기 쉬웠다.
바람이 바뀌기 전 사브라는 한 차례 돛을 내려야 했다. 브론이 균형을 잃고 갑판에 주저앉았고, 루카스는 난간 쪽으로 밀린 빈 통을 붙들었다. 도현은 좁은 선실의 냄비 뚜껑부터 묶었다. 식당에서 일할 때 가장 위험한 사고는 대개 웅장한 불꽃이 아니라 평범한 냄비가 넘어지는 순간에 일어났다.
사브라는 도현이 뚜껑까지 고정한 것을 보고 웃었다. “좋은 요리사는 배에서도 살아남겠네.”
“좋은 선장은 요리사가 냄비 때문에 죽지 않게 도와주시고요.”
바람이 잦아들자 수프 표면에 작은 기름 방울이 떠올랐다. 도현은 그것을 보며 맨 처음 배웠던 소스의 유화 원리를 떠올렸다. 아직 이론은 기억났다. 손끝의 감각도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 두 가지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자신을 도울 조리법을 찾아야 했다. 저주를 남에게 옮기지 않고 해체하는 조리법을. 그는 그 목표를 수첩 뒷장에 다시 적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수평선 위에 희뿌연 섬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화덕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둥글고 낮았다. 그 아래로 흰 연기가 가느다랗게 솟아올랐다. 바람은 육지에서 바다로 부는데 연기는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저게 섬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겉으로는.” 사브라가 대답했다. “보이는 것이 항상 상륙할 수 있는 땅은 아니야.”
배가 가까워질수록 신기한 소리가 들렸다. 물결 사이에서 접시를 가지런히 쌓는 듯한 소리였다. 철그릇도, 도자기도 아닌 맑은 금속음. 브론이 멀미를 잊고 난간에 매달렸다.
“사람 냄새가 납니다.”
“어디서?”
“바다 밑에서요.”
도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사브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다 쪽을 가리켰다. 푸른 물 아래 작은 나무 상자가 둥둥 떠다녔다. 바다에 가라앉지 않은 상자에는 손바닥만 한 도자기 접시가 매달려 있었다. 여덟 개씩 묶인 접시가 파도에 부딪힐 때마다 소리를 냈다.
“낚시 장치인가요?” 도현이 물었다.
“어떤 사람은 유령의 식탁이라고 불러. 하지만 저건 누군가 설치한 물건이야. 물결이 흔들려도 줄이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거든.”
루카스는 망원경으로 상자를 살폈다. 한쪽에 파도와 밀 이삭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숫자도 있었다. 열여섯.
“증언 보관 단위와 같은 수입니다.”
“숫자가 같다고 같은 물건은 아닙니다.” 도현이 말하고는 문양을 자세히 그렸다.
바로 그때 배 밑에서 큰 충격이 왔다.
쾅!
도현은 조리대 모서리를 붙잡았다. 브론이 루카스의 외투를 물어 난간에서 끌어내렸다. 사브라는 밧줄을 재빨리 풀고 돛을 반쯤 접었다. 바닷속에서 검은 돌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밀어 올리는 듯 천천히, 그러나 멈출 기색 없이 올라왔다.
“닻 내리면 안 돼!” 사브라가 외쳤다. “저건 바닥이 아니야!”
그녀는 배를 돌렸지만 키가 움직이지 않았다. 물살이 선저를 양쪽에서 붙들었다. 에스텔이 주문을 외우려는 순간 사브라가 손을 들었다.
“섬 근처에서는 이름 있는 마법을 쓰지 마라. 바닷길이 사용자의 이름을 기록한다!”
에스텔은 주문을 거두었다. 대신 밧줄을 매듭짓고 돛대 아래로 달려갔다. 도현도 그 뒤를 따랐다. 마법이 없어도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물이 어디서 들어오죠?”
“왼쪽 판재 틈!” 브론이 외쳤다.
도현은 수프를 끓이던 솥을 비우고 해면을 넣었다. 새는 곳에 헝겊을 밀어 넣고 나무 쐐기를 박을 동안 솥으로 물을 퍼냈다. 뜨거운 음식은 아까웠지만 살아서 돌아가면 다시 만들 수 있었다. 브론은 몸을 낮춰 판재를 붙잡았고, 루카스는 인양 기록을 쓰던 줄로 임시 고정 매듭을 만들었다.
그때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배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배삯을 청구하지 않는다.”
물밑의 상자에서 난 소리였다. 사람의 목소리처럼 정확했지만 물이 끓는 소리와 겹쳐 있었다.
도현은 선실에서 작은 구리 종을 가져왔다. 사브라가 파도 소리를 이용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종을 울리지 않고 손으로 막은 채, 한 번씩 부딪히게 했다. 낮은 음이 나는 순간 사브라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이다! 물살이 비었다!”
그녀가 키를 밀어 넣자 배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검은 돌기둥이 선체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래된 상자 하나가 물 위로 떠올랐다. 뚜껑 안쪽에는 젖은 글씨가 떠 있었다.
[빈자리 운송. 수령인 확인 전 적재하지 말 것.]
[표식 일련번호: 16-0.]
사브라는 상자를 건지지 않았다. “오늘 살아온 이유를 내일 장부에 적어도 충분해.”
섬의 서쪽에 작은 돌 틈이 나타났다. 배가 겨우 들어갈 만한 만이었다. 사브라는 돛을 내리고 닻을 놓았다. 이번에는 닻이 바닥에 닿는 무게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상륙을 앞둔 도현은 선실로 돌아가 남은 음식을 나누었다. 브론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수프를 한 숟갈 삼켰다.
“주방장님, 지금은 맛을 못 느끼겠어요.”
“멀미 때문이겠죠.”
“혹시 저주가 옮은 건 아닐까요?”
도현은 그의 귀와 눈동자를 살핀 뒤 말했다. “저주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멀미가 나아지는지부터 봅시다.”
사브라가 웃었다. “그거 좋은 항해법이네. 무서운 것마다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바다는 온통 괴물이 되거든.”
해가 기울 무렵 도현 일행은 작은 보트로 섬의 자갈밭에 닿았다. 발밑의 돌은 놀랍도록 따뜻했다. 바닷바람 속에 막 구운 빵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런데 섬 어디에도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해안 절벽의 그림자 안쪽에는 돌문이 하나 서 있었다. 문 위에는 손바닥 두 개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한쪽은 빵을 내미는 손, 다른 쪽은 받지 않는 손이었다.
도현이 문 앞에 서자 희미한 문구가 드러났다.
[흰 화덕섬의 두 번째 식탁.]
[어서 오십시오. 아직 주문하지 않은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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