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스 항구에서는 아침이 되면 도시 전체가 쇠고리를 흔들었다.
배가 정박할 때마다 육중한 사슬이 돌기둥을 긁었고, 어부들은 빈통을 두드려 경매 시작을 알렸다. 갈매기 떼가 선착장 위를 돌며 비명을 질렀다. 길가에는 갓 잡은 생선을 손질하는 상인들이 앉았고, 그 뒤로 소금 창고의 높은 지붕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바다를 처음 보는 사람은 풍성한 풍경이라고 생각할지 몰랐다. 도현에게는 바닷바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허기를 계산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선창 입구의 목판에는 '오늘 반입된 생선 428통, 소금 91포대, 밀 16포대'라고 적혀 있었다. 도현은 숫자를 수첩에 옮겼다. 왕도에서 전해 온 반출 기록과 같았지만 시각이 달랐다. 출발 전날에 작성된 기록이 도착 이틀 뒤 장부에 실린 셈이었다.
“거래 날짜가 왜 맞지 않죠?” 루카스가 물었다.
“물이 늦게 온 건지 종이가 먼저 왔는지 확인해야죠.”
에스텔은 멀리 보이는 하얀 지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붕 꼭대기에는 식탁처럼 넓은 나무판이 세워져 있었다. 처음 보면 창고 간판이었지만 가까이 가면 네 귀퉁이에 사람이 앉을 자리가 새겨져 있는 기묘한 문양이었다.
“저기가 제3창고야.”
“제일 오래된 곳입니까?”
“지금 보이는 건물은 새거야. 원래 창고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옛 방파제 쪽에 있었지.”
정문 앞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항만청 직원 두 명이 서 있었다. 루카스는 아일린 공주의 조사 공문을 보여 줬다. 직원은 문장을 차근차근 읽다가 봉투 뒤쪽의 봉인을 확인하고는 웃었다.
“공문은 왕도에서 발급된 것이고, 여기는 항만 자치구역입니다. 물건을 확인하려면 소유주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소유주요?”
“하얀 식탁 운송조합.”
“연락처를 알려 주십시오.”
“사무소에서 접수하시죠.”
사무소는 항구 반대편에 있었다. 간판 밑에 들어서자 또 다른 관리인이 말했다. 조합 대표를 만나려면 창고의 물건 번호가 필요하다고. 도현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물건 번호를 보려면 창고에 들어가야 하고, 창고에 들어가려면 물건 번호가 필요했다.
“이건 요리대회 참가 조건보다 까다로운데요.” 브론이 중얼거렸다.
“요리대회는 적어도 음식은 보게 해 주죠.”
문 밖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들이 아침부터 당신들만 돌려보내는 게 아닙니다.”
짙은 남색 방수 외투를 입은 여자가 사무소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뱃사람답게 얼굴이 햇볕에 그을렸고, 어깨에는 밧줄을 감아 메고 있었다.
“유리아입니다. 하역 노동조합 대표는 아니고, 적어도 저 사람들보단 부두에서 일한 날이 많죠.”
유리아는 마차 바퀴를 힐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 흙이 묻었군요. 검은 밀밭에 다녀왔나요?”
도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아도 눈치를 챈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마르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어요. 모르는 척할 필요는 없지만, 항구엔 귀가 많아요. 얘기는 생선 파는 집에서 합시다.”
유리아를 따라 걸으며 일행은 생선 경매장을 지나갔다. 막 잡힌 은빛 생선이 젖은 돌바닥 위에 펼쳐져 있었고, 상인들은 서로 값을 부르느라 목이 쉬어 있었다. 도현은 뱃살의 탄력을 확인하듯 생선 꼬리를 잠깐 들었다. 그런데 뒷편에서는 팔고 남은 생선을 소금물에 무작정 담그고 있었다. 갓 잡힌 생선과 오래된 생선이 하나의 통에 섞였다.
“그 통은 어디로 갑니까?” 도현이 물었다.
상인이 눈을 흘겼다. “구호위원회 납품입니다. 시장에 팔 수 없는 건 배급으로 돌려요.”
“상한 것은 아니겠죠?”
“먹을 만한 거니까 팔죠.”
도현은 생선 한 마리의 아가미를 살폈다. 당장 상했다고 단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신선도가 다른 것을 섞어 놓으면 오래된 것부터 익혀야 한다는 조리 기준도 지키기 어려웠다. 그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지 않고 상인에게 납품 규정이 적힌 표지를 보여 달라고 청했다.
표지에는 날짜 대신 '서부 공동식 42차'라고만 쓰여 있었다. 생선을 잡은 배 이름과 보관 시각은 비어 있었다. 상인은 왜 비었냐는 질문에 짜증을 냈다.
“우리는 물건을 넘기면 끝이요. 창고에서 알아서 하겠지.”
“음식이 언제까지 안전한지 알아보려면 출발한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건 요리사들 일이고.”
“맞습니다. 그래서 여쭤보는 거예요.”
도현은 자신이 아무 권한도 없는 외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다만 구호품이라서 더 대충 다뤄도 된다는 태도는 익숙하지 않았다. 먹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는 음식일수록 만든 사람이 더 신중해야 했다.
유리아는 그가 표지를 베끼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항구 사람이 하얀 식탁을 무서워합니다. 물건을 넘기고 나면 도대체 누구 입으로 들어갔는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 말에 도현은 생선의 눈을 다시 바라봤다. 요리가 완성되는 순간은 주방장이 접시에 올릴 때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것을 먹고 자신의 한 끼로 받아들일 때였다. 그런데 이 항구는 그 사이의 거리를 서류로 지워 버리고 있었다.
그들은 부두 끝 작은 식당으로 갔다. 문 위 간판에는 '물고기와 못'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식탁은 다리가 하나씩 다른 나무판을 이어 만들었고, 창문에는 소금기 때문에 뿌연 막이 끼었다. 주인은 유리아를 보자 말없이 뜨거운 차 네 잔과 물 한 잔을 가져왔다.
유리아는 다섯 번째 잔을 자기 앞에 놓았다. “뱃사람은 말하기 전에 물부터 마셔요. 물이 진짜 물인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서.”
“왜요?” 브론이 물었다.
“항구에서 무료로 나눠 주는 차가 있어요. 마시고 나면 항만청의 배급표에 서명이 생깁니다. 서명한 적 없는 사람 이름으로요.”
도현이 차를 내려놓았다. “당신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까?”
“나는 안 마셨어요. 하지만 동료 둘이 해고 통지서를 받았죠. 이유가 항만 보호식에 무단 결석했다는 거였어요. 일하는 동안 누가 자기 이름으로 식사했다는 뜻이겠죠.”
유리아는 낮은 목소리로 실종된 수부들의 이름을 불렀다. 둘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고, 조합에 도움을 청한 가족들은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른이라는 이름을 듣자 도현이 통행소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게른도 여기서 일했습니까?”
“항구 동쪽에서 배를 고쳤어요. 네 번째 잠수 수리 날 이후 돌아오지 않았죠. 부재자로 등록돼 운임이 붙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유리아는 작은 종이 꾸러미를 내놓았다. 하역 인부들이 몰래 베낀 송장이었다. 서쪽 하얀 식탁에서 검은 밀 열여섯 포대를 실어 내라는 명령. 도착지는 '제0접안지'. 항만 지도 어디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열여섯 포대가 한 번에 나갔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기록엔 그래요. 그런데 배가 떠난 걸 본 사람은 없어요.”
“배가 사라졌다는 겁니까?”
“바다에 나간 배라면 누군가는 돛을 봤을 거예요. 그런데 이 물건들은 서류에서만 출항했어요.”
도현은 기록 하단의 도장을 살폈다. 파도와 밀 이삭이 교차한 문양이었다. 베르크의 은색 열쇠와 닮았다. 베르크가 항구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도장 하나만으로 그가 이곳에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유리아는 해 질 때까지 창고의 뒤편을 보지 말라고 했다. 정문은 항만청의 감시를 받고 있지만 썰물이 되면 오래된 방파제의 돌다리가 드러난다. 그 길에서 제3창고의 기초를 볼 수 있었다.
“물때는 밤에야 내려갑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전까지는 항구에 왜 왔는지 알려야 해요. 저 사람들은 당신들을 밀수꾼으로 잡을 겁니다.”
도현은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이 근처에서 수프를 팔 수 있습니까?”
“갑자기요?”
“요리사가 부엌을 빌리는 건 수상하지 않으니까요.”
“이 도시에서는 뭐든 수상해 보입니다. 특히 배고픈 사람을 공짜로 먹이면요.”
“무료로 드리는 건 아닙니다. 값을 정하고, 못 내는 분은 본인이 나중에 낼지 안 낼지 선택하게 하죠. 빚은 만들지 않고요.”
유리아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이상한 주방장이군요. 그럼 우리 가게의 낡은 화덕을 쓰세요.”
도현이 앞치마를 묶자 브론은 신이 나서 냄비를 찾았다. 에스텔은 밖에서 누군가를 감시하는 대신 손목에 묻은 검은 자국을 가리며 문간에 앉았다. 루카스는 출입 명단을 적고, 누구의 이름도 본인 확인 없이 넣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수프 향이 항구 골목에 퍼졌다. 도현은 생선의 뼈로 육수를 내고 뿌리채소를 오래 볶아 단맛을 올렸다. 저주를 푸는 특별한 마법은 걸지 않았다. 단지 실제로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작은 그릇에 나누었다.
점심 뒤에는 임시로 음식값을 정하는 일이 남았다. 항구 사람들은 날씨가 나쁘면 하루 수입이 통째로 없어지기도 했다. 도현은 기본 수프의 재료값과 불을 때는 비용을 계산하고, 빈 그릇을 돌려줄 때 보증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브론이 부서진 그릇을 걱정했다.
“사장님이 알면 기겁하실 겁니다.”
“일단 그릇은 제가 씻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럼 제가 맡아서 안 깨뜨리겠습니다.”
그날 첫 두 시간 동안 그릇은 한 개도 깨지지 않았다. 브론이 감격해서 직접 벽에 작은 별표를 그렸다. 네 번째 손님이 들어올 무렵 유리아는 그 별표 옆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수프를 살 수 있음.' 자신의 이름이 함부로 장부에 실리는 것을 두려워한 인부들이 그 글씨를 보고 문을 열었다.
도현은 현금으로 계산한 식사의 총량과 이름을 남겨 달라고 동의한 사람의 수를 따로 적었다. 그것은 사람들을 익명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음식을 먹었는지조차 몰라서 빚을 만들어 내던 창고와 반대되는 방식이었다.
첫 손님으로 들어온 늙은 하역 인부가 수프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주변을 경계하다가 물었다.
“이거 먹으면 제 이름이 어디에 적힙니까?”
“여기 장부에요.” 도현이 계산대의 종이를 보여 줬다. “본인이 원하시면요. 주문하신 걸 확인하는 용도뿐입니다.”
노인은 장부를 오래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그럼 내 이름으로 오늘 처음 밥을 먹는 거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밖 제3창고의 하얀 간판이 낮게 떨렸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벽에 검은 글씨가 생겨났다.
[미승인 식사 감지.]
[부두 내 별도 조리실 등록 요청.]
도현은 간판을 바라봤다. “저쪽이 먼저 관심을 가져 줬군요.”
그 순간 멀리 정박한 배 아래에서 쇠사슬이 한 번 길게 끌렸다. 유리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 소리예요. 배가 없어도 사슬이 움직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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