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덴의 아침은 제분소가 불탄 뒤 오히려 더 분주해졌다.
예전에는 종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배급소 앞에 줄을 섰다. 이제는 노라의 옛 방앗간 앞에 사람이 모여 빵을 반죽했다. 지붕이 낮은 방앗간에서는 젖은 밀 냄새와 구운 감자의 향이 섞여 나왔다. 네린은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고 큰 나무통에 밀가루를 부었다. 구호 물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손으로 세는 일부터 시작한 그는 어제 온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익히기도 전에 요리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쪽은 너무 질어요!” 브론이 소리쳤다.
“물을 누가 넣었습니까?” 네린이 물었다.
“제가요. 잘 섞이라고요.”
“얼마나 넣었는데요?”
브론이 말없이 빈 물통을 들어 올렸다.
도현은 가게에서라면 당장 직원을 주방 밖으로 내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차라리 반죽을 가르치는 편이 나았다. 그는 조금 마른 밀가루를 덜어 브론 앞에 두었다.
“한꺼번에 붓지 말고 조금씩 넣어요. 질어진 반죽을 다시 살리는 것도 요리입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물 양을 먼저 확인하시고요.”
“이런 저를 아직도 쓰신다니. 주방장님은 마음이 넓으십니다.”
“직원이 모자라서 그렇습니다.”
방앗간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웃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손은 움직였다. 누군가는 감자를 으깼고 누군가는 오븐의 장작을 정리했다. 도현은 사람마다 맡은 일을 적어 놓되 누가 무엇을 강제로 해야 한다는 항목은 두지 않았다. 일을 할 수 없는 노인에게도 식사는 제공되었다. 식사를 받기 위해 노동해야 한다는 규칙 자체가 이 마을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노라는 어머니 엘마가 쓰던 작은 나무 주걱을 가져왔다. 손잡이에는 아주 오래된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반죽을 왼손으로 접으셨어요. 오른손이 다쳐서 그랬거든요. 저는 어머니가 빵을 만들 때만큼은 아픈 손을 잊는 줄 알았습니다.”
도현은 주걱을 받아 들었다. 주걱의 끝이 한쪽으로 닳아 있었다. 반죽을 접을 때마다 같은 각도로 힘이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왼손으로 하면 이런 모양이 나오겠군요.”
그는 노라 앞에서 천천히 접는 동작을 보여 주었다. 어머니에게 배웠던 움직임을 따라 하던 노라는 세 번째에서 멈추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어머니가 떠난 뒤에는 한 번도 빵을 굽지 않았어요. 그걸 하면 어머니가 없는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요.”
“안 해도 됩니다.” 도현이 말했다. “오늘 할 수 있다면 해 보시고, 싫으면 내일 해도 됩니다. 음식은 누군가에게 벌을 주려고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노라는 오래 생각하다가 자신의 속도로 반죽을 접었다. 그녀가 만들어 낸 작은 접힌 자국이 일정하게 이어졌다. 도현은 그 모습을 장부에 적지 않았다. 이것은 조사 결과가 아니라 한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공동 부엌에서는 먼저 음식을 받을 사람들에게 오늘 메뉴를 설명했다. 감자와 보리를 섞은 둥근 빵, 채소를 넣은 맑은 수프, 아이들을 위한 약한 꿀차. 네린은 배급 물자가 왕도의 정상 곡물이라는 사실을 주민들 앞에서 공개했고, 루카스는 왕실 구호위원회의 계약과 무관하다는 확인서를 낭독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의심했다. 공짜로 먹으면 나중에 무엇을 요구하느냐는 질문이 여러 번 나왔다.
도현은 나무판에 두 가지 문장을 적었다.
[오늘 식사는 주민 공동 부엌의 공개 기부와 공유 곡물로 제공됩니다.]
[먹었다는 이유로 노동이나 미래의 시간, 자녀의 식사 시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말요?” 허리가 굽은 노인이 물었다.
“네. 장부에 남은 곡물과 기부한 물건을 공개하고, 내일 모자라면 부족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족하다고 해서 누군가를 빚으로 묶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이 거창한 마법보다 더 어렵게 들렸다. 어떤 사람은 먹기 전에 서명을 요구했고, 어떤 사람은 서명 자체가 두렵다고 했다. 도현은 영수증을 원하면 건네되 식사 조건으로 삼지 않았다. 테오는 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이름 대신 식수만 집계하겠다고 했다. 저주의 법칙에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기록을 만들기 위한 작은 절충이었다.
노라가 오븐 뚜껑을 여는 동안, 루덴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는 할머니가 방앗간으로 들어왔다. 어깨에 낡은 망토를 두른 그녀는 빵 냄새를 맡고도 줄의 끝에 서지 않았다.
“여기선 내게 줄 빵이 없겠지.”
“다 같이 먹으려고 만들었습니다.” 네린이 대답했다.
“난 이 마을 배급표가 없어. 사십 년 전에 이름이 지워졌거든.”
할머니는 해진 손가방에서 낡은 구호표를 꺼냈다. 이름 부분이 깨끗하게 칼로 도려져 있었다. 도현은 그 표를 받아 보지 않고 할머니에게 직접 들고 계시라고 말했다. 자신의 물건을 낯선 조사자에게 주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오늘만큼은 빼앗기지 않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여기서 이름이 없어도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대신 어떤 분인지 부를 이름은 알고 싶습니다.”
“이름을 적을 거라면 싫어.”
“적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날 그냥 할머니라고 불러.”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공동 부엌의 작은 의자에 앉아 젊은 사람들이 반죽을 뒤집는 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나중에 빵 한 조각을 받아 들었을 때도 급히 먹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따뜻한 빵의 가장자리를 만져 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옛날에도 이렇게 굽던 날이 있었어. 그땐 먹기 전에 무슨 종이가 필요한지 묻지 않았지.”
네린은 할머니가 원하는 만큼 따뜻한 물을 더 끓였다. 그녀가 빵을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원한다면 다시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도현은 그 모습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드는 부엌의 의미를 조금 더 선명하게 보았다.
빵을 굽는 동안 도현은 북부 화덕에서 본 반죽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음식을 받지 않았다. 셋째는 거부했다. 누군가 그 세 사람을 ‘받은 사람’으로 기록한 뒤, 그 후손 전체에게 대가를 청구하고 있었다. 그는 반죽을 뒤집으며 중얼거렸다.
“그릇을 받은 것과 먹은 건 다른 일이지.”
“무슨 말입니까?” 네린이 물었다.
“첫 화덕에서 본 기록입니다. 나중에 이야기해 드릴게요. 아직 확인할 부분이 많습니다.”
첫 판의 빵이 완성되었다. 부드러운 표면에는 노라가 만든 얕은 접힘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핀이 신기한 듯 빵을 들여다봤다.
“왜 빵에 흉터가 있어요?”
“손으로 만든 표시야.” 노라가 대답했다.
“그럼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있겠네요.”
노라는 빵을 손바닥에 올렸다.
손바닥에는 어머니가 쓰던 주걱 자국이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노라는 그 자국을 보며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온다면 오늘 자신이 구운 빵을 내밀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일일지, 여러 해 뒤일지는 몰랐다. 그래서 오늘의 빵을 제대로 기억해 두고 싶었다.
입가에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미소가 생겼다. 자신이 만든 것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아침이 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듯했다.
도현은 빵을 먹기 전 자신에게 저주가 옮겨올 위험이 있는지 살폈다. 마법 창은 아무것도 띄우지 않았다. 모든 식사가 곧 저주 해제는 아니었다. 오늘의 음식은 누군가의 저주를 자신의 몸으로 옮기려는 요리가 아니라, 허기를 해결하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는 그 차이가 오래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을 광장의 작은 탁자에는 테오가 밤새 옮겨 쓴 허위 배급 증빙 사본이 놓였다. 주민들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보고, 먹은 적 없는 빵이나 받지 않은 식량을 표시했다. 확인되지 않은 항목은 지우지 않았다.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존재까지 없애 버려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마르타의 이름표도 빛났다. 노라가 마을 우물가에 선 도현을 불렀다.
“주방장님, 이쪽으로 와 보세요!”
우물 옆의 돌바닥에 오래된 그림자가 나타나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손을 뻗어 빵을 만지는 모습이었다. 그 그림자는 반복되지 않았다. 도현이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마르타 씨, 지금 들리십니까?”
잠시 후 땅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오늘은 오븐이 켜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빵 냄새가 나요.”
“마을 사람들이 직접 굽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들던 빵과는 다른 재료예요.”
“누가 받아 가나요?”
“먹을 사람들이 직접 선택하고 있어요.”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마르타가 물었다.
“그럼 저도 먹어도 되나요?”
도현은 쉽게 ‘그럼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곳의 기존 규약은 갇힌 요리사가 외부 음식을 받으면 미지급 채무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그는 그 위험을 먼저 설명했다.
“제가 지금 당장 드리겠다고 약속하면 계약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 대신 확인하고, 안전한 방법을 찾아서 드리겠습니다.”
“기다릴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도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만 이천 번 넘게 하루를 반복한 사람이 이제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기다림이 또 다른 감금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이번 약속에는 남의 시간 대신 자기 행동을 담았다.
점심 무렵 마을에 북부 특별감사관의 전령이 도착했다. 감시병은 불에 탄 제분소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물에 젖은 신발을 불평하며 공문을 펼쳤다.
[비인가 빵 제조 확인. 원본 채권과 혼동 가능한 식사 기록 압류 예정.]
[감사관 베르크의 임시 행정 명령.]
[집행 시각: 오늘 해질 무렵.]
브론이 공문을 읽고 코웃음을 쳤다.
“저 사람들은 빵을 안 주면 굶긴다고 하고, 직접 만들면 못 만들게 하고.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우리가 계속 자기들 식탁에 앉아 있는 거겠죠.” 도현이 대답했다.
노라는 굳은 얼굴로 방앗간 문을 바라봤다. 오늘 첫 빵을 구웠는데 저 사람들이 화덕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에 손끝이 떨렸다.
도현은 공문을 다시 읽었다. ‘원본 채권과 혼동 가능한’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의 명령은 식사 자체가 아니라 식사 기록을 겨냥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각자의 이름과 수령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하자, 누군가의 거짓 장부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공동 부엌의 나무판을 내려다봤다. 오늘 만든 빵 73개, 실제 배부한 빵 68개, 남은 빵 5개. 숫자가 정확했다.
“문을 열어 두세요.”
“감사관들이 오는데요?” 테오가 물었다.
“다 보게 할 겁니다. 빵도, 남은 것까지도.”
도현은 나무판 맨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먹지 않은 빵은 누구의 빚도 아니다.]
해가 기울자 언덕 아래로 감시병들의 깃발이 나타났다. 그들 손에는 칼보다 두꺼운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제3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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