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는 아침마다 두 가지 냄새로 깨어났다.
북쪽 제빵 거리에서 내려오는 갓 구운 빵 냄새와 남쪽 수로에서 올라오는 썩은 물 냄새였다. 상인들은 전자를 돈 냄새라 불렀고, 주민들은 후자를 세금 냄새라 불렀다. 어느 쪽이든 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백도현은 수로에 걸친 작은 다리를 건너며 팔목을 움직여 보았다.
왼손 검지 끝이 둔했다. 어젯밤부터 생긴 증상이었다. 석화 저주를 받아들인 손목의 회색 반점이 손등 방향으로 손톱만큼 번져 있었다. 기억을 먹는 저주는 더 교묘했다. 손님들에게 보여 주려던 첫 메뉴판의 글씨를 한참 바라보다가, 자신이 왜 그 이름을 붙였는지 잠깐 잊어버렸다.
“괜찮으십니까?”
브론이 물었다. 그는 식재료 자루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늑대인간의 걸음은 가벼웠지만 꼬리는 평소보다 아래로 처져 있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에스텔 사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다가 닷새 동안 잠만 주무신 적 있습니다.”
“그 얘긴 처음 듣는데요?”
“그분은 자기 실패담을 직원들에게 말하지 않거든요. 직원들 실패담은 술 마실 때마다 하시면서요.”
도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에스텔이 왜 자기 손목을 볼 때마다 입술을 깨무는지 궁금해졌다.
두 사람은 식당 앞에 도착하자마자 멈춰 섰다. 문 앞에 왕실 친위대 갑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어젯밤 아일린 공주를 호위하던 두 명 중 하나였다. 햇빛을 받은 투구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그런데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는데도 그는 젖은 돌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공주님이 뭔가 더 남기셨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저는 의뢰인입니다.”
기사는 투구를 벗었다. 서른을 넘겼을 법한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눈동자는 움직였으나 초점이 조금 늦게 따라왔다.
“제 이름은 루카스. 왕실 친위대 소속입니다.”
브론이 그의 손목을 쳐다봤다. 검은 실로 엮은 팔찌가 피부에 파고들어 있었다.
“당신에게선 어제처럼 피 냄새가 안 납니다.”
“제 피는 돌고 있다.” 루카스가 말했다. “다만 피가 흐른다는 감각을 잃었지.”
식당 안에서 에스텔은 손님을 보자 한숨부터 쉬었다.
“왕궁에서 또 사람을 보냈어?”
“공주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마법사는 제게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상이 없는 사람이 자기 손이 타들어 가는데도 모를 리가 없잖아요.” 도현이 끼어들었다.
루카스가 손바닥을 펼쳤다. 흰 장갑 안쪽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 있었다. 그는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전날 횃불을 맨손으로 옮겼다고 했다. 치료 마법은 상처를 봉합했지만, 뜨겁고 차가운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공주님의 호위를 맡은 지 여덟 달째. 밤에 저주가 심해질 때, 주변 사람들의 감각이 사라집니다. 저는 스스로 감각을 봉인했습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저주는 공주님에게서 옮은 게 아니군요. 일부러 자신에게 걸었다는 거죠?”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제 주문을 풀면 고통과 열이 한꺼번에 돌아옵니다. 그 통증 때문에 검을 놓을 수도 있지요.”
도현은 의자를 권했다. 루카스는 앉자마자 등받이에 부딪혔다. 자신의 몸이 어디까지 움직였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도현은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를 떠올렸다. 요리를 할 때 혀는 맛만 느끼지 않는다. 온도와 질감, 향이 서로 맞물려 있어야 음식 한 접시가 완성된다.
도현은 루카스에게 손을 들어 보이라고 했다. 그의 손등에는 작은 칼자국이 겹겹이 나 있었다. 검을 오래 잡은 사람이면 생길 수 있는 상처였지만, 일부는 상처가 아물기 전에 다른 상처가 덮인 흔적이었다.
“장갑을 벗고 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적어도 어느 부분이 찢어졌는지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기사에게 맨손은 약점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아무 느낌도 안 나는데 장갑을 끼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루카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장갑 한 짝을 벗었다. 검을 쥐는 손이 서툴게 떨렸다. 도현이 손톱으로 탁자 모서리를 긁자 그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소리는 들리시네요.”
“청각은 남아 있습니다. 후각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고요.”
“이상하군요. 마법으로 감각을 모두 없앤 게 아니라 어떤 신호만 막았다는 뜻인데.”
“공주님의 저주가 심해지면 고통이 갑자기 밀려옵니다. 호위들이 그 순간 쓰러져 버리곤 했지요. 그 뒤부터 대가를 치르는 주문을 쓰게 됐습니다.”
루카스는 벨트에 걸린 낡은 작은 부적을 풀어 탁자 위에 놓았다. 부적에는 어린아이가 삐뚤빼뚤 쓴 문장이 있었다. '아빠, 너무 아프면 집에 와.'
“딸아이가 만들었습니다.”
도현은 부적을 읽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주님을 호위하기 전에는 접경의 작은 성에서 근무했어요. 그곳에서 괴물 습격을 막다가 다리를 다쳤죠. 딸은 제가 퇴역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주님의 저주가 주변으로 퍼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몸에 남은 능력을 조금이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딸한테는 말씀하셨습니까?”
“아직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말하지 않았습니다. 걱정할 테니까요.”
“그럼 귀가하실 때마다 다친 손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세요. 혼자 감추다가 더 큰일 납니다.”
루카스는 부적을 거칠게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주방장님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례한 말을 곧잘 하시는군요.”
“맞는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하면, 다음엔 더 맛있는 걸 드리겠습니다.”
뜻밖에도 루카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도현은 주방으로 들어서며 속으로 요리의 순서를 정리했다. 먼저 남아 있는 후각으로 향을 느끼게 하고, 다음에는 씹을 때 나는 소리와 질감을 이용하고, 마지막에 온도의 차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보여 준다. 저주를 힘으로 부수는 게 아니라, 아직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손님이 세상을 다시 느끼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 과정에 치명적인 위험이 없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뜨거운 육수는 충분히 식히고, 루카스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금속 그릇 대신 두꺼운 나무 쟁반을 깔았다. 마법의 효과가 잠깐 나타난다고 해도 그 사람의 피부와 목숨은 현실에 남아 있는 법이었다.
“저주를 풀어 드리겠다는 말은 못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공주님께 들었습니다.”
“대신 감각이 없어도 식사할 수 있게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도현은 브론에게 부드러운 빵, 굵은 소금, 얇게 깎은 말린 사과를 부탁했다. 그리고 전날 남겨 둔 닭 육수를 꺼냈다. 냄비에 생강과 허브를 넣어 향을 올리고, 그 옆에서는 버터를 낮은 온도로 녹였다.
“왜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준비합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맛을 못 느낀다고 하셨지 냄새가 모두 사라졌다고는 안 하셨잖아요. 먼저 살아 있는 감각부터 찾는 겁니다.”
작은 숟가락으로 육수를 맛보게 했다. 루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다음은 코로 김을 들이마시게 했다.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풀 냄새가 납니다.”
“좋습니다. 입안에서 맛을 찾지 말고 코에서 먼저 향을 찾아보세요.”
따뜻한 육수에 말린 사과를 얇게 썰어 넣고, 바삭하게 구운 빵 조각을 곁들였다. 부드러운 것과 바삭한 것이 번갈아 씹히도록 한 접시를 구성했다. 루카스는 첫 숟갈을 뜬 뒤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어떠세요?”
“달콤합니다.”
“사과 때문이죠.”
“아니요. 달콤하다는 걸 기억해 냈습니다. 실제로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카스는 두 번째 숟갈을 떴다. 그러다 갑자기 손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릇 가장자리가 뜨겁다는 사실을 아주 잠깐 느낀 것이다.
“아픕니까?” 브론이 물었다.
“아니.” 루카스가 목이 멘 듯 대답했다. “뜨겁군. 뜨겁다는 게 이런 거였지.”
도현의 손목에는 새로운 반점이 생기지 않았다. 그의 눈에 문장이 떠올랐다.
[증상 완화: 감각 봉인 일시 균열.]
[저주 이전: 발생하지 않음.]
[유효 시간: 예측 불가.]
에스텔이 그 문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그건 치료가 아니야. 봉인이 돌아오면 다시 감각을 잃을 거야.”
“그래도 뜨거운 걸 느꼈잖아요.” 도현이 말했다.
“내일은 더 심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오늘부터 다치지 않게 먹는 방법을 연습해야죠.”
도현은 루카스에게 작은 나무 주걱을 선물했다. 그가 손끝의 감각을 잃더라도 뜨거운 그릇을 직접 잡지 않도록 손잡이를 길게 깎은 물건이었다.
루카스는 주걱을 한참 바라보다가 허리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음식값 외에 한 가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봉투 안에는 구겨진 연회 초대장 사본이 있었다. 열두 해 전 국왕의 생일을 기념해 열린 '풍요의 식탁'이라는 행사의 안내장이었다.
“공주님께서 구해 달라고 하신 기록보관소 문서보다 오래된 겁니다. 왕실은 이 행사가 처음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친위대 훈련소 지하에서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식량 배급표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왜 그걸 저에게 알려 주시죠?”
“왕국에선 저주에 걸린 사람을 숫자로 부릅니다. 그런데 주방장님은 제게 어디가 불편한지 먼저 물으셨습니다.”
루카스는 주걱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처음입니다. 여덟 달 만에.”
루카스가 현관을 나설 때 브론이 뒤를 쫓았다. 그는 기사에게 간단한 종이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작은 그림과 숫자들이 적힌 종이였다.
“주방장님이 만들라고 하셨어요. 뜨거운 건 왼쪽, 차가운 건 오른쪽. 손님이 감각을 못 느끼면 모양으로라도 구분해야 한다고요.”
“이것은 무엇이지?”
“일상 점검표요. 아침에는 손에 상처가 있는지, 저녁에는 발이 붓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열이 나는 물건은 혼자 옮기지 말고요.”
루카스는 조용히 종이를 접었다.
“그대들은 이곳에서 저주받은 사람을 모두 이렇게 대하나?”
“아뇨.” 브론이 답했다. “예전엔 저주가 얼마나 심한지만 보셨대요. 그런데 새 주방장님은 손님한테 집에서 뭐가 제일 불편한지 먼저 물어요.”
루카스의 표정이 잠깐 부드러워졌다. 그는 허리춤의 부적과 종이쪽지를 같은 주머니에 넣었다.
“공주님께도 이 방식이 필요하겠군.”
“공주님은 요즘도 잠을 못 주무시죠?”
기사가 놀라 물었다.
“어떻게 알았나?”
“어젯밤 식당에 들어오셨을 때 발걸음이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잠을 못 잔 사람들은 냄새가 달라요.”
루카스는 잠시 말을 잃었다. 공주가 어떤 병을 앓는지 마법사들은 수백 장의 보고서를 써 냈지만, 왜 밤마다 혼자 깨어 있는지 물어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골목 끝으로 사라진 뒤 브론은 식당으로 돌아왔다. 도현은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오늘 장사는 적자네요.”
“왜요?”
“나무 주걱에 종이까지 서비스로 드렸으니까요.”
브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음에 요금 받으실 거예요?”
“아니요.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는 게 좋죠.”
브론은 웃었다. 그는 식당 주인이 이익보다 손님의 귀가를 먼저 계산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 에스텔은 봉투의 밀랍 자국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무덤덤하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문장….”
“왕실 문양이 아닌가요?”
“아니야. 왕실이 지금은 쓰지 않는 옛 문장이야. 식탁 한가운데 거꾸로 놓인 왕관. 이것이 처음 나타난 건 열두 해 전이 아니었어.”
“언제였죠?”
에스텔이 낮게 말했다.
“대기근이 끝난 해.”
도현은 잠시 생각했다. 기근, 식량 배급, 연회. 세 가지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브론이 창고에서 소리를 질렀다.
“주방장님! 이거 보세요!”
창고 바닥에 놓인 밀가루 자루 하나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루의 바느질 틈으로 검은 밀알들이 줄지어 기어 나왔다. 밀알들은 사람의 발자국처럼 모양을 만들더니, 그 위에 짧은 문장을 남겼다.
[첫 만찬을 기억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어라.]
에스텔이 밀가루 자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브론, 문 닫아!”
하지만 늦었다. 검은 밀알 한 톨이 창문 틈으로 날아올라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다. 누군가 이 식당이 오래된 배급표를 찾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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