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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29화
PAYLUA ORIGINAL · 제29화

29화. 먹지 않은 빵의 영수증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390자

오프라인 책장
감자죽을 끓이는 일은 전쟁과 닮지 않았다. 백도현은 그 사실이 고마웠다. 루덴 마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도 도마를 닦고, 장작을 옮기고, 물을 끓였다. 누군가는 감자를 잘못 깎아 절반을 버렸고, 누군가는 콩을 너무 오래 끓여 냄비 바닥을 태웠다. 도현과 네린은 사람들을 나무라기보다 방법을 다시 알려 주었다. 모두가 유명한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었다. 안전한 한 끼를 만들 수 있으면 충분했다. 이른 아침부터 굴뚝에서는 따뜻한 김이 솟았다. 검은 밀밭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모처럼 평범한 음식 냄새가 났다. 공동 급식소 앞에 긴 줄은 여전했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식권 대신 자기가 가져온 그릇과 작은 재료를 들고 왔다. 어느 노인은 말린 버섯 한 줌을 내밀었고, 어린아이들은 정수한 물을 양동이에 담아 날랐다. “오늘은 공짜인가요?” 핀이 물었다. 도현은 작은 칠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곡물과 재료의 기부자, 실제 사용량, 그리고 남은 재고가 적혀 있었다. “돈을 받지는 않지만 공짜로 생긴 음식은 아니야. 누가 무엇을 냈는지 모두 적어 둘 거다.” “나중에 갚아야 해요?” “아니. 너한테 빚을 지우지 않아. 도움을 준 사람의 이름을 적는 건 그걸 잊지 않기 위해서지.” 핀은 한참 칠판을 바라봤다. 이름이 장부에 적히면 반드시 뭔가를 빼앗긴다고 배운 아이였다. 그에게 ‘기록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도 남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테오는 주민들 앞에서 중앙 제분소의 재고 문서를 읽었다.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 창고에 여섯 달 치 정상 곡물이 숨겨져 있다는 기록을 본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그동안 배급량이 줄어든 이유가 흉작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제분소에 군인을 데려와야 합니다!” 누군가 외쳤다. “문을 부수고 곡식을 가져옵시다!” 다른 사람이 소리쳤다. 도현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안쪽에서 누가 곡식을 지키고 있는지, 검은 시럽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함부로 창고를 열면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우선 봉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몫을 확인해야 해요.” 루카스는 경비를 맡은 소수의 병사들과 창고 출입구를 확보했다. 그들은 무력을 사용하기 전에 보관 기록과 재고를 대조하기로 했다. 일부 인부는 도망치려 했지만 그들 역시 식권 때문에 제분소에 묶인 사람들이었다. 루카스는 그들을 무조건 체포하지 않고 진술을 받았다. 정오가 지날 무렵 테오는 원본 장부의 보관 위치를 알아냈다고 말했다. 중앙 제분소의 대형 맷돌 아래에 오래된 제분실이 하나 더 있고, 그곳에는 ‘먹지 않은 빵’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먹지 않은 빵이라니요?” 도현이 물었다. “구호위원회가 배급량을 부풀리려고 기록한 음식입니다. 실제로는 만든 적도 없는 빵인데, 사람들 이름으로 먹은 것으로 기록해 뒀습니다.” “그 빵값까지 징수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도현은 섬뜩해졌다.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었다고 속이고도 그 대가를 후손에게까지 받아 갔다면, 이 저주는 처음부터 식사가 아니라 청구서로 작동한 셈이었다. 제분소로 향하기 전, 도현은 공동 부엌의 칠판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남은 콩은 두 자루, 감자는 반 수레, 물은 끓여 식힌 것으로 여섯 통. 이 수량을 기준으로 네린이 다음날 식단을 짰다. 부족한 부분은 주민들끼리 나누어 해결하기로 했다. 큰 솥을 열어 놓는 동안 누군가 검은 가루를 몰래 넣지 못하도록 교대로 지키는 사람도 정했다. “당신 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린이 말했다. “원래 그래야죠. 제가 다 끓이면 이 마을도 저 혼자 남는 순간 끝나 버릴 테니까요.” 네린은 종이를 접다 잠깐 멈췄다. “사실 왕궁 주방에 있을 땐 유명한 요리사 밑에서 일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제가 남에게 알려 주는 것보다 그 사람들이 각자 고치는 게 더 많아요.” “손님이 다르니까요. 우리도 다 알 수는 없잖아요.” 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그녀에게 만약 자신이 돌아오지 못하면 증거 서류가 어디에 있는지 알리고, 식당의 임시 관리권과 별개로 주민들이 자기 곡물을 사용할 권리를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겁나는 이야기를 하시네요.” “겁나니까 미리 정하는 겁니다.” 그는 마차 바닥에 작은 종이 봉투 하나를 감춰 놓았다. 왕도에 있는 리아가 그려 준 빵 그림이었다. 위험한 곳으로 갈 때마다 그 그림이 가슴 주머니에서 구겨지는 게 싫어서였다. 이 세계에 남을지 돌아갈지 아직 고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돌아가기로 약속한 일은 계속 지키고 싶었다. 마을의 작은 종이 정오를 알릴 때 그들은 제분소 담장 앞에 도착했다. 낡은 건물의 모서리에는 수십 년간 덧칠한 회색 페인트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한쪽 문턱은 밀가루 자루를 끌어 나르느라 닳아 있었다. 도현은 그런 흔적들이 이상하게 정겨웠다. 사람이 일한 자리는 늘 작은 상처를 남긴다. 문제는 그 상처가 사람의 시간과 이름으로 계산될 때였다. 일행은 제분소로 향했다. 돌벽 사이로 밀가루가 쏟아지고 대형 맷돌 두 개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맷돌 사이에는 사람 그림자가 지나갔다. 누군가의 팔과 다리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단순한 그림자로 흩어졌다. 도현은 그 광경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사람이 끼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분소의 지하실 입구에는 낡은 문이 있었다. 테오가 관리패를 갖다 대자 문이 열렸다. 내부에는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지만, 선반마다 종이 봉투가 반듯하게 쌓여 있었다. 봉투에는 날짜와 수량이 적혀 있었고 가장자리에 검은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이것들이 전부 먹지 않은 빵이라고?” 브론이 물었다. “실제 빵이 아니야.” 도현이 말했다. “그 빵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는 영수증이지.” 그는 종이 봉투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밀가루 대신 얇은 검은 종이가 있었다. [식사 1회 제공 완료.] [수령자: 이름 없음.] [결제자: 북부 제분 인력.] “수령자가 없는 식사를 누가 어떻게 받았다는 겁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마르타의 이름표가 은은하게 빛났다. 선반에 놓인 검은 종이들이 파도처럼 흔들렸다. 에스텔이 손을 뻗자 그중 한 장에서 여자의 손바닥 자국이 나타났다. 기름기와 밀가루가 묻은 자국이었다. “마르타 씨가 구웠던 빵의 기록입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분이 제공했다고 한 사람은 없었지.” 에스텔이 대답했다. 도현은 기록을 찢거나 불태우지 않았다. 먹지 않은 빵이라고 해서 그 흔적까지 없애면, 누군가가 그것을 실제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는 루카스에게 보관할 수 있는 상자를 요청하고, 테오에게 선반마다 봉인을 찍게 했다. 도현은 마르타의 이름표를 꺼내 앞에 놓았다. 이름표에는 아직도 12,481일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날짜가 없는 영수증과 이름표를 나란히 두고 외부 시간으로 기록한 수첩을 펼쳤다. “여기에는 빵을 제공했다고 적혀 있지만 받았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대로 마르타 씨는 수만 개의 빵을 구웠는데 임금을 받은 기록이 없어요. 그럼 먼저 따질 것은 누가 누군가에게 돈을 빚졌는지가 아니라, 누가 기록을 거짓으로 만들었느냐입니다.” 말이 끝나자 지하실 벽에서 문장이 나타났다. [허위 납품 증빙 확인.] [대리인에게 채권 재계산 권한 부여 대기.] 도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권한을 독점할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로 음식을 만들고 제공한 사람들이 확인해야 합니다.” [본인 확인에 필요한 서명: 17명.] “한꺼번에 서명하기는 어렵겠네요.” “그분들은 모두 갇혀 있잖습니까.” 브론이 말했다. “그래서 순서가 필요합니다. 먼저 한 사람의 기록이 거짓이라는 걸 증명하면, 나머지 기록도 다시 조사할 이유가 생기겠죠.” 도현은 마르타의 이름표 앞에 서류를 놓았다. 곧 작은 불꽃 같은 빛이 떠올랐다. 빛은 사람의 손가락 모양을 이루더니 서류의 끝을 가볍게 눌렀다. [마르타의 확인 접수.] [허위 지급분 이의 제기: 1건.] 이름표에 있던 숫자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아래에 처음 보는 문장이 더해졌다. [시간 압류: 일시 중지.] 그제야 도현은 작은 희망을 느꼈다. 일만 이천 일을 되돌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다시 빚을 늘리는 일을 멈출 수는 있었다. 봉인을 끝내고 돌아서려던 테오가 낡은 가죽 장갑 하나를 발견했다. 장갑의 안쪽에는 소금과 기름에 찌든 작은 이름표가 꿰매져 있었다. 테오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우리 아버지가 쓰시던 겁니다. 제분소에서 야간 근무를 할 때 손이 자주 트셨거든요.” “아버지도 여기서 일하셨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네. 그런데 돌아가실 때까지 임금이 정산되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원래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부의 숫자가 곧 사실이라고 배웠으니까요.” 도현은 장갑을 조심히 천에 싸 주었다. 사람의 삶이 장부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은 물건이었다. 지금은 그 물건의 주인이 어디까지 일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테오가 제분소의 은폐에 가담했던 이유와, 이제 스스로 기록을 공개하는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증거를 지킬 책임은 제게도 있습니다.” 테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다만 혼자 목숨을 걸고 지키라는 뜻은 아닙니다. 서류는 나눠서 보관하죠. 원본은 봉인하고, 읽을 수 있는 사본은 주민들에게도 남기겠습니다.” 그 말에 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록을 한 사람의 서랍 속에 가둬 두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배우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봉인한 서류를 옮겼다. 그러나 지하실에서 나가려는 순간 정문 쪽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베르크의 감시병들이 제분소의 뒤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명이 횃불을 던지자 마른 밀가루 자루가 불길에 휩싸였다. “원본을 태우려는 겁니다!” 테오가 외쳤다. 루카스가 급히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도현은 무턱대고 불길로 뛰어들지 않았다. 대신 물통을 찾고, 작은 문을 닫아 바람이 들어오는 길을 막았다. 에스텔은 불이 번지는 것을 마법으로 막았지만 저장된 밀가루가 한꺼번에 날리면 위험할 수 있었다. 브론이 굴뚝 옆 좁은 통로를 찾았다. 그는 냄새를 완전히 맡지 못해도 바람이 어디로 흐르는지 귀로 들을 수 있었다. 네 사람은 봉인된 증빙 상자를 그 통로로 옮겼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지붕의 일부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양동이를 나르며 불을 끄고 있었다. 적들이 원한 것은 몇 상자의 종이가 아니라, 자기들이 했던 일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이었다. 도현이 상자를 내려놓자 레온의 숟가락이 울렸다. [정산 증거 1차 확보.] [미귀환 요리사 마르타의 압류 정지.] [경고: 원본 채권 계약은 검은 밀밭의 심층에 존재.] 그 아래에 불길처럼 붉은 글씨가 생겼다. [심층 보관소 위치: 첫 번째 빵이 구워지지 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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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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